[종북 세력을 너무 몰랐던 尹 대통령 부부]
[2025년 서울의 '백골단 소동']
종북 세력을 너무 몰랐던 尹 대통령 부부
[정우상 칼럼]
국보법,反美운동가.. 계엄 반대 여론 타고 응원봉 사회자 변신
종북 인사 명품 받아 총선에 이용당하더니 계엄때 "종북 척결"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대학생들이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한덕수 총리 지지한 미국은 사죄하고, 이재명 범죄인 취급한 발언 취소하고 사과하라'를 외치며 기습시위를 하고 있다./뉴시스
“세월호 사태를 보며 운동가로 살 것을 결심했어요.”
‘탄핵 집회를 축제로 만든 97년생 사회자 정체’라는 동영상을 100만 가까운 사람이 봤다. 그녀 말대로라면 세월호 참사가 2014년이니 17세 때 운동가로 진로를 정했다. 그녀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 사회자였다. 그때 걸그룹 노래에 맞춰 ‘퇴진 윤석열, 탄핵 윤석열’ 구호를 유도해 유명해졌다. 응원봉, K팝이 등장한 탄핵 집회의 배후(?)에 그녀가 있었다. 세월호로 깨어나 이태원 참사 때 처음 집회 사회를 맡게 됐고, 그게 탄핵 집회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는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좋아요’를 눌렀다.
헌법 질서의 위기를 가져온 비상계엄은 앞으로 20년 이상 정치에 영향을 줄 것이다. 특히 탄핵 시위의 전면에 등장했던 2030 여성들의 보수 혐오 정서는 오래갈 것 같다. 2002년 미군 장갑차 사고 반미 시위, 2004년 노무현 탄핵 반대 촛불시위를 경험했던 지금의 4050세대는 20년 넘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같은 정당에 투표해왔다. 그와 유사한 일이 2030 여성들에게 일어났고 그 선두에 28세 여성이 있었다.
탄핵 집회 보름 전, 10여 명이 참석한 초라한 집회가 있었다. ‘국보법 폐지 시민행진’이라는 집회였다. 자주통일평화연대 국장으로 소개한 그녀는 보름 뒤 수만 명 집회의 사회를 보게 될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녀는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한 기저에는 국보법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제정 76년, 국보법 폐지” 구호가 나왔다. 참석자들은 “한미의 전쟁 연습이 남북 관계를 파탄시켰다”고 했다. 그녀는 1년 전 같은 장소에선 ‘국보법 폐지 국민행동’ 국장이라는 직책으로 나와 한미 정상의 워싱턴선언을 “전쟁놀이”라고 비난했다.
하루는 국보법 투사로, 다음 날은 한미 훈련 반대 투쟁으로, 그다음 달에는 이태원 유가족들과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다, 다른 장소에선 친일 청산을 외친다. 국보법폐지 국장, 한국진보연대 정책국장, 응원봉 집회 사회자는 모두 같은 사람이다. 이 단체들의 실세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장년들이니 28세에게 국장이란 직책은 별 의미가 없다. 탄핵 시위 참가자들은 이제 그녀를 국보법 폐지, 반미 운동가 대신 에스파의 ‘위플래쉬’ 리듬에 맞춰 ‘탄핵 윤석열’을 외친 사회자로만 기억할 것이다.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며 “종북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고 말했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부른 이들은 다름 아닌 종북 세력이었다. 종북 세력들은 자신들을 20년 넘게 짓눌렀던 ‘종북’의 압박붕대가 풀어지는 해방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독재 세력이 정치적 반대자들에게 친북·빨갱이 같은 낙인을 찍어 악용하면서 진짜 친북 좌파들이 세를 얻었다. 80년대 군부독재와 주사파의 등장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그런데 주사파들이 진보의 주류로 나서자 2001년 주사파에 반대했던 좌파 정당 대표는 “남한 민중보다 조선노동당을 우위에 두는 종북 세력과 함께할 수 없다”며 ‘종북’이란 말을 처음 사용했다. 종북은 보수가 만든 용어가 아니라 좌파 내부에서 나온 말이다. 친북 세력은 그래서 ‘종북’이란 말이 뼈아팠고 거북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계엄 명분으로 종북 세력을 내세우면서 역설적으로 이 말이 위기를 맞았다. 종북 세력을 비판하면 그들은 “윤석열 편이냐, 계엄을 옹호하느냐”며 되레 큰 소리를 친다.
오히려 종북 세력에게 조롱당하고 이용당한 건 윤 대통령 부부였다. 김건희 여사는 인터넷 몇 번만 뒤져도 금방 나오는 친북 인사에게 명품 가방을 받고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장을 보냈다. 대통령은 이 사건을 뭉개려다 총선에서 참패했고, 결국 무리한 계엄으로 이어졌다. 종북 세력이 최근 30년 사이 거둔 최대 전리품이 명품 가방 사건이다. 도포 자락 휘날리며 기행을 일삼던 종북 유튜버에게 ‘7시간 녹취록’이라는 먹잇감도 바쳤다.
탄핵 집회에 탄핵과 반미, 국보법 폐지 구호가 엉켜 있다. 농민들 트랙터 시위에 엉뚱하게 ‘대북 제재 해제’가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덕수 대행을 지지했다고 미국 대사관에서 반미 시위를 했다. 종북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공언과 반대로 그들에게 산소통을 달아준 게 이번 계엄이었다. 윤 대통령은 종북 세력을 너무 몰랐고, 종북 세력은 대통령 부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정우상 논설위원, 조선일보(2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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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서울의 '백골단 소동'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시도했던 지난 3일 오전 이른바 '백골단' 단원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윤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체포 영장 집행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체포 영장이 재발부된 지난 7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 하얀 헬멧을 쓴 젊은이 수십 명이 몰려왔다. 빨간 경광봉을 들고 무릎과 팔목엔 보호대를 찼다. 일부는 두툼한 방검복까지 입고 있었다. 이들은 조를 짜 관저 앞을 순찰하며 밤을 지새웠다. 새벽이 되자 관저 앞에서 애국가를 4절까지 불렀다. “뭐 하는 분들이냐”고 물어봤다. 한 20대는 “우리는 백골단”이라며 “민노총의 관저 침탈 시도에 맞서 윤 대통령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눈은 충혈됐지만 뿌듯한 표정이었다.
하루 뒤 ‘백골단장’을 자처하는 40대 남성을 만났다. 하필 ‘백골단’이라는 이름을 붙인 배경을 물었다. 자발적으로 한남동으로 온 2030 청년들에게 자신이 가져온 하얀색 안전모를 나눠줬는데 이 모습을 본 한 노인이 ‘백골단 같다’고 한 말이 유래라고 했다. 자유당 시절 서북청년회를 연상시키는 ‘반공청년단’의 ‘예하부대’가 백골단이라는 소개도 뒤따랐다. 경광봉은 ‘멸공봉’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런 말을 하는 내내 백골단장은 자신감이 넘쳤다.
백골단은 1980~1990년 반독재 시위대를 진압한 사복 경찰 부대의 별칭이다. 일반 전·의경과는 구분되는 하얀 헬멧을 착용했다. 백골단은 명지대생 강경대 사망 사건, 한진중공업 박창수 노조위원장 시신 탈취 사건을 자행, 민주화운동 탄압의 상징이었다. 이런 백골단이 2025년 서울 한복판에서 부활했다는 본지 보도에 야권은 경악했다. 한 여당 의원은 백골단을 국회 기자회견장에 데려와 “청년의 대표 주자”라고 치켜세웠다.
계엄·탄핵 정국에서 ‘응원봉’을 들고 반윤 집회에 나온 2030 여성이 언론 주목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멸공봉’을 들고 백골단원이 된 이들을 보고 ‘2030 남성 극우화의 징후’라고 분석하는 사람도 적잖았다. 하지만 상당수 2030 남성은 백골단에도 반감을 드러냈다. “지금이 쌍팔년도냐” “백골단이 뭔지 학교에서 안 배웠냐”고 반발했다. 윤 대통령 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에도 찬성하지만 ‘이재명 민주당’도 싫다는 이들은 백골단장에 대해서도 ‘자기 정치 하려고 청년들을 이용한다’고 비판했다.
백골단장은 지난해 총선에 국민의힘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인물이다. 이후 유튜브를 하며 부정선거론을 설파했지만 구독자는 5000명도 되지 않았다. 존재감이 없었던 그는 요즘 말로 ‘백골단 코인’을 타고 유명해졌다. ‘차기 총선용 관심 끌기 아니냐’는 본지 질문에, 과거 선거에 출마했던 그는 “원래 정치에 전혀 뜻이 없다”는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논란 확산에 해골단으로 개칭한다던 백골단은 최근 집회 현장에서 하얀 헬멧을 벗었다. 백골단 호칭은 유지한다고 한다. 위중한 시국 상황마저 자신의 입신 출세 호기로 여기는 인간 군상이 한남동·여의도에 총집결한 2025년 서울, ‘백골단 소동’을 취재하고 돌아서는 뒷맛이 씁쓸했다.
-고유찬 기자, 조선일보(2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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