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스위스'의 저력… 美·이란 핵 협상은 왜 오만이 중재할까]
[美의 40년 '反이란 노선'을 낳은 결정적 사건]
[미국이 항상 이스라엘을 편드는 이유]
'아랍 스위스'의 저력… 美·이란 핵 협상은 왜 오만이 중재할까
아라비아반도 남쪽에 조용하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왕국이 있다. ‘아라비아의 스위스’라 불리는 오만(Oman)이다. 사우디나 UAE(아랍에미리트 연합) 또는 카타르처럼 주변의 이목을 끌지는 못한다. 그러나 진중함과 묘한 신비감이 담긴 외교 행보에 만만치 않은 무게가 실린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을 중재하면서 보여주는 몸놀림이 남다르다. 지난 4월 12일 시작된 협상은 회차를 더하면서 오만의 역할이 도드라진다. 적대적인 두 나라 사이에서 대화를 끌어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오만은 해내고 있다. 무엇보다 과묵하고 신중한 행보에 국제사회가 상찬한다. 2015년 7월 역사적인 이란 핵 합의가 타결되었을 때 일등공신은 비밀리에 대화를 주선한 오만이었다. 3년 후 트럼프가 판을 깨고 나갔다가 이번에 재개한 협상에서 오만은 다시 등장했다. 다른 아랍 나라들은 못 가진 중재의 묘를 발휘하는 오만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첫째, 종파다. 오만은 수니파도 시아파도 아닌 이바디(Ibadi)파 가르침을 따른다. 오만과 북아프리카 일부 지역에 퍼져 있는 소수 종파다. 핵심 가치는 ‘관용’에 있다. 유일신교 이슬람을 믿으면서도 이교도에 대해 관대하다. 인도 출신 이주 노동자들이 다신교 힌두 사원을 건축하려 하자 흔쾌히 허락했다. 종파 간 차이점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외려 공통 요소를 찾아내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를 찾는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이념이나 교리로부터의 탈각(脫却)은 대화를 이끌고 협상을 중재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긴요한 덕목이다.
둘째, 바다다. 아라비아반도 사람들은 대개 사막의 오아시스에 잇대어 살아가는 유목민의 후예들이다. 반면 반도 끝 오만 사람들은 먼바다로 나가 해양을 누볐다. 18세기 부사이디 왕조는 동아프리카까지 진출했다. 인도양 일대에서 해양 제국을 건설했다.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태어난 탄자니아 잔지바르도 오만의 영토였다. 천일야화의 신드바드가 맹활약하던 오만의 무역항 소하르는 여전히 분주하다. 뱃사람들의 시선은 사막이나 내륙 도시에 갇힌 사람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세상이 얼마나 넓고 다양한지 알고 있다. 오만은 걸프 왕국들 중 유일하게 제국의 기억을 갖고 있다.
셋째, 지정학이다. 역내 강대국 사우디와 육지에서 접경하고, 이란과는 불과 30여㎞ 폭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 경계인 무산담 반도는 호르무즈 해협을 내려다보고 있다. 감각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오만에게는 중동 평화가 곧 자국의 안보다. 소위 ‘저항의 축’을 이끌며 핵 문제의 중심에 선 이란 관련 협상에 오만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중재를 자임하는 이유다.
이처럼 종파, 해양 문화, 지정학은 오만의 중재 외교 행태를 이해하는 유용한 배경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요인이 있다. 지도자다. 1970년부터 2020년까지 무려 50년간 오만을 통치한 선왕 술탄 카부스(1940~2020)가 주인공이다. 그는 “모두와 친구가 되고, 아무와도 척지지 않는다”는 선린 우호 정책을 견지했다. 전쟁이 만연한 중동에서는 힘든 일이다. 사우디 등은 줄곧 이란과 대립했지만 오만은 예외였다. 역사 때문이다. 1960년대 오만 남부 공산주의자들의 반란, 이른바 도파르 전쟁 때 이란은 자국군 4000명을 파병했다. 이웃 걸프 국가는 파병하지 않았다. 700명의 이란 병사들이 희생되며 오만은 기사회생했다. 술탄 카부스는 이란에 호메이니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고마움을 간직했다. 이란을 적대시하지 않았고, 호르무즈 해협의 평화를 위한 이란과의 협력 채널을 유지했다.
술탄 카부스는 이란의 적대국인 미국과의 관계도 잘 관리했다. 무엇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대한 전 세계의 우려가 커졌을 때 오만은 선명하게 친미 노선을 천명했다. 미 해군은 오만의 무스카트, 두큼, 살랄라항(港)에 군수 정비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중동과 서남아를 관할하는 5함대에는 필수적인 시설이다. 외교적으로도 미국과 함께하고 있다. 1978년 미국이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 캠프 데이비드 평화협정을 추진하자 아랍 국가들은 강력히 항의하며 미국을 비난했다. 이때 평화가 정치보다 중요하다며 미국 편을 들어주고 이집트와 단교하지 않은 아랍 두 나라 중 하나가 오만이었다.
이란과 미국 사이에서 오만은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기계적, 무차별적 중립이 아니다. 우선순위를 명확히 했다. 미국이 최우선 협력국이고, 여기에 이란을 품는 순서다. 미국과 협력으로 강력한 군비 확충에 나섰다.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이 6.5%로 역내 최고 수준이다. 2024년 국방 지출이 전체 정부 지출의 25%를 상회할 정도로 자강(自强)에 역점을 두고 있다. 중립은 강력한 방위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오만은 잊지 않고 있다.
술탄 카부스는 친미, 친서방 입장을 명확히 하고,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바탕으로 이란과도 우호 정책을 유지하는 적극적 중립주의를 펼쳤다. 아무도 오만을 중간에서 눈치 보는 나라라 힐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과 이란은 오만을 최상의 중재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대화가 필요할 때 오만으로 달려간다. 반도 한구석 뱃사람들의 나라가 외교의 숨은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술탄 까부스의 사후, 뒤를 이은 하이삼 국왕 역시 외교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세상이 어지럽다.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멈추지 않는다. 다행히 휴전에 합의했지만 카슈미르도 불안하다. 이 와중에 외교가 작동하는 현장이 있다. 바로 오만이 중재하는 이란 핵 협상이다. 강대국 사이에 낀, 소수 종파 비주류의 나라 오만이 조역 같은 주역임을 세계가 응시하고 있다. 술탄 카부스는 ‘지리와 이웃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 바꿀 수 없다면 내 생각과 행동을 바꿈으로써 상황을 이끌어가리라는 의미를 담은 말이기도 했다. 오만은 조용히 탁월했고 인정받고 있다. 지정학을 읽어내는 리더가 그만큼 중요하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조선일보(2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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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의 40년 '反이란 노선'을 낳은 결정적 사건
전쟁에서 맞서 싸운 적 없는데도 1979년 '호메이니 혁명' 후 斷交
444일간 美 대사관 인질 억류가 원인… 해묵은 원한 씻어내야 平和도 가능
꼭 1년 전 '미국이 항상 이스라엘을 편드는 이유'라는 글을 이 지면에 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반발에도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을 선언한 즈음이었다. 반면 미국이 늘 의심하고 압박하는 나라가 있다. 이란이다. 미국의 중동 외교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친(親)이스라엘, 반(反)이란'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올해 5월 트럼프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이란 핵 합의에서 탈퇴하며 제재를 복원했다. 나름대로 합의를 지켜온 이란은 분노했다. 독일과 프랑스가 나서서 미국의 합의 준수를 설득했지만 트럼프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미국의 반이란 감정은 트럼프 정부만의 얘기가 아니다. 오바마 정부 시절 미·이란 핵 합의 타결 직후 실시한 갤럽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 국민의 57%는 협상에 반대했다. 당시 이란 호감도는 이전 27년간 평균(11%)보다 약간 높은 14%였으나 이는 합의 타결 직후 컨벤션 효과에 가까웠다. 미국인 열에 아홉은 이란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명쾌하게 설명하기 쉽지 않다. 미국과 이란 양국은 최근까지 전쟁에서 맞싸운 적이 없다. 그런데도 미국은 이란과는 40년 가까이 아예 단교(斷交) 상태다.
1979년 호메이니 혁명 이전까지 미국에 이란은 둘도 없는 친구였다. 팔레비 왕정 퇴진 후 반미 정권이 들어섰으나 미국인을 겨냥한 구체적 살상 행위는 딱히 없었다. 1983년 레바논 베이루트의 미국 대사관 및 해병대 기지 폭탄 테러를 일으킨 헤즈볼라의 배후로 이란이 의심받긴 했으나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1988년 호르무즈해협 상공에서 미군이 이란 민항기를 전투기로 오인, 격추해 290명의 승객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테러 사건인 9·11은 사우디 출신을 주축으로 하는 알 카에다의 소행이었다. 사건 직후 하타미 이란 대통령은 미국 정부에 위로를 표했고, 테헤란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미국 희생자들을 추도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나선 미군에게 이란은 자국 영공 통과까지 허용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 전쟁을 선언하면서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의외였다. 이란이 반미 독재국가여도 적어도 알 카에다와는 적대관계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국제무대에서 이란의 행태는 여전히 음험하다. 신정주의 독재 체제는 억압적이고 인권문제도 자주 불거진다. 핵개발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고, 재래식 군비 확충과 함께 헤즈볼라 지원 등 역내 안정을 해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동맹국 사우디아라비아의 독재 체제도 만만치 않게 억압적이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지만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는 대략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유독 이란을 싫어하는 다른 명분과 이유가 있을 법하다. 혁명 당시 과격파들이 미국 대사관을 습격, 인질 52명을 444일 동안 억류했던 사건으로부터 뿌리 깊은 반감이 시작되었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있다. 대사관은 미국 영토다. 인질들은 미국 국민이었다. 영토와 국민이 폭도들에게 유린당한 기억은 오래 남았다. 미군 특수부대의 비밀 구출 작전이 처참한 실패로 끝난 비극도 덧대어졌다. 전쟁 피해만큼이나 아픈 기억을 40년 가까이 갈무리해 온 셈이다. 켜켜이 쌓인 미국의 이란 불신과 적대감을 이해할 만하다. 이란 입장에서도 1953년 미국과 영국이 총리 모사데그를 비밀 쿠데타로 실각시킨 기억이 상처로 남아 있다. 이란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이 쿠데타만 아니었다면 중동 최초로 이란이 민주주의를 꽃피울 수도 있었다는 회한을 토로하곤 한다.
어쩌면 국익을 둘러싼 면밀한 전략적 평가나 치열한 게임의 셈법만큼이나 역사의 기억들도 국제정치를 움직이는 변수인지 모른다. '기억의 정치학'은 말한다. 진정한 평화를 얻기 위해 때론 해원(解寃)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조선일보(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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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항상 이스라엘을 편드는 이유
트럼프의 예루살렘 발언 배경엔 유대인 표의 강한 힘 작용했지만
'약속의 땅 회복이 역사의 완성' 종교적 믿음도 현실 정치에 영향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를 흔들었다. 지난 6일 특유의 손짓과 단호한 어조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하며 대사관 이전을 호언했다. 이스라엘의 650만명 유대인 편에 서서 4억 아랍인 그리고 아랍 포함, 15억 무슬림을 순식간에 적으로 돌렸다. 교황을 비롯, 기독교권 유럽 국가 다수의 반대도 거세다. 유엔 안보리도 비판 일색이었다. 우리 편을 늘리고 적을 줄이는 외교·안보의 기본을 거스르는 선언이었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미국은 늘 이스라엘만 편드는 걸까? 비단 트럼프뿐만 아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관계가 껄끄러웠던 오바마조차 이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이 이렇게까지 무조건 편드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일까?
대략 세 가지 이유로 설명한다. 전략적 가치, 미국 유대인들의 힘 그리고 종교적 배경 등이다.
독재 일색인 중동에서 이스라엘은 미국의 유일한 민주주의 동맹이었다. 냉전기 미국이 속내를 터놓을 만한 중동의 친구는 이스라엘밖에 없었다. 냉전 이후 적대 세력으로 새롭게 부상한 이슬람과의 싸움에서도 정보 자산과 대테러전 노하우를 가진 이스라엘은 미국에 둘도 없는 파트너다.
둘째, 막강한 미국 내 700만 유대인의 힘 때문이다. 이들은 정·재계, 학계, 언론 및 문화 예술계를 망라하며 미국의 핵심 의제를 좌우한다. 외교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은 상상하기 어렵다. 국제정치학자 미어샤이머와 월트 교수가 도발적인 저작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신랄하게 비판한 부분이다. 유대계 로비로 미국의 이스라엘 편향 노선이 지속됐고, 이 때문에 미국의 외교도 왜곡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만으로 이번 선언의 배경을 전부 설명하기 어렵다. 이전 정부에서도 이스라엘의 가치는 동일했고, 로비도 계속 작동해왔기 때문이다. 왜 이 시점에 선언이 이루어졌는지도 설명이 안 된다. 종교적 배경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러시아 스캔들 등으로 최근 지지율이 32%까지 내려간 트럼프는 핵심 지지층을 다시 끌어모아야 한다. 특히 취임 당시 자신에게 78%의 압도적 성원을 보냈던 기독교 복음주의권(圈) 지지율이 61%까지 밀린 것은 충격이었다.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도가 더 내려가면 위험해진다. 지지층이 듣고 싶어하는 메시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미국 복음주의자들 중 상당수가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 종말론을 믿는다. 성서에 의하면 인류 역사는 7개의 단계(세대)로 구분되며, 신(神)이 주신 영토를 이스라엘이 전부 회복할 때 마지막 세대가 완성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기독교 시오니즘(Zionism)을 신봉하게 된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소위 '약속의 땅'을 완전히 장악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신의 섭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메시아 교리상 상극이지만 이 지점에서는 묘하게 교통한다.
복음주의자 다수는 이스라엘을 공동 운명체로 인식한다. 이들은 1967년 전쟁 후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드디어 마지막 세대가 시작되었다며 환호했다. 서안과 가자 모두 약속의 땅이므로 정착촌 확대를 지지한다. 이들이 바로 미국 사회의 주류다. 트럼프를 포함해 카터, 레이건, 부시 부자(父子) 등 이전 대통령 다수를 지지했다. 복음주의는 미국의 친(親)이스라엘 외교정책을 견인하는 종교적·심리적 배경이 된다. 예루살렘을 수도로 선언하는 파격적 모습을 통해 트럼프에게 조금씩 실망하고 있던 복음주의자들의 마음을 다시 얻으려는 의도가 읽힌다.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신의 땅 논쟁이 벌어지고, 종말론과 외교정책이 연결되는 모습이 낯설다. 정통파 유대교, 근본주의 이슬람, 복음주의 기독교 등 유일신 종교의 초월적 신념이 예루살렘을 두고 현대 정치와 맞물려 서로 증오하고 있다. 분노한 군중 위로 최루탄가루가 넓게 퍼진 예루살렘의 오늘 풍경은 이 도시 이름의 뜻인 '평화의 도성(都城)'과 대척점에 서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現 히브리대 방문학자, 조선일보(1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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