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진영에 빠져 자기만 옳다는 정치… 소크라테스가 성찰을 요구한다]

뚝섬 2025. 5. 11. 05:59

[진영에 빠져 자기만 옳다는 정치… 소크라테스가 성찰을 요구한다]

[좌파 파시즘에 반대하는 게 이 시대의 中道]

[“돌팔매질을 모르는 척할 순 없다”]

[공수처는 ‘절대반지’… 권력자 善意를 믿지 말고 반지를 파괴해야]

[공수처 설치와 플라톤의 '국가']

 

 

 

진영에 빠져 자기만 옳다는 정치… 소크라테스가 성찰을 요구한다

 

한국정치평론학회와 함께하는 이 시대의 고전

플라톤의 ‘변론’: 진영 논리 넘어서기 

자크 루이 다비드의 1787년작 ‘소크라테스의 죽음’. 사형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는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 중 어느 쪽이 더 나은 운명을 향해 가는지는, 신 외엔 모른다고 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정치를 공동체의 정해진 규칙 안에서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고 이 과정에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고 타협하는 기술이라고 이해한다면, 현대 정치는 과도하게 가치관이나 세계관, 아니 삶 전체를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우리 사회는 정치 과열과 양극화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진영 논리에 포획된 정치적 양극화는 특정 진영에 속해서 같은 입장을 반복해 들으며 확증 편향을 강화하는 ‘메아리 방’에 안주하거나, 아예 정치에 관심을 끊어 버리고 탈(脫)정치를 선언하는 것 중 하나만 선택하기를 강요한다.

 

2400여 년 전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이와는 다른 정치 참여 모델을 보여줬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공동체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만,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언제 어디서건 객관적인 관점(소크라테스에게는 철학적 관점)에서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정치 참여 유형이다. 문제는 이런 소크라테스가 우리가 알다시피 사형 판결을 받았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속해 있던 아테네 역시 우리 사회 못지않게 정치적 양극화에 빠져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처형이라는 사건은 아테네가 정치적 격랑을 겪었던 시기의 끝자락에서 벌어졌다. 기원전 403년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했고, 그 여파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오던 민주정이 폐기되고 친(親)스파르타 성향의 과두정 정권이 수립됐다. 아테네는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민주정을 회복했지만 이 과정에서 과거 행적을 두고 민주파냐 과두파냐를 가르는 정파적 논란이 사회 깊숙이 자리 잡았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에 대한 재판도 ‘전문가 논지’를 주장하는 소크라테스를 과두파로 낙인찍은 민주파의 기획이었다고 의심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경주마를 훈련할 수 있는 적임자는 다수 대중이 아니라 말 전문가여야 하듯이 젊은이 교육도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가 이 ‘전문가 논지’를 정치 일반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아테네의 양분화된 정치 지형에서 소크라테스에게 엘리트주의와 과두파의 옹호자라는 혐의를 씌우기에는 충분했다.

 

당시 아테네 민주정은 양극화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과거의 행적을 문제 삼지 않는 사면령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이미 사람들 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린 상대편에 대한 정치적 혐오를 제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공식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죄목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타락죄’, 그리고 아테네가 믿지 않는 신을 끌어들였다는 ‘경건죄’였다. 기소는 당시 아테네 민주정의 제도에 따라 500인의 배심원 법정에 넘겨졌고, 소크라테스는 이 법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할 최후 진술의 기회를 얻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진 플라톤의 ‘변론(apologia)’이라는 고전은 소크라테스의 법정 진술을 당시 방청객으로 앉아 있던 플라톤이 듣고 기록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변론에서 그를 기소한 자들이 누가 젊은이들을 교육해야 하는지 생각조차 해본 적 없으면서 자신에게 타락죄라는 죄명을 뒤집어씌웠고, 아테네에 공인되지 않은 신을 끌어들였다는 경건죄를 지목하면서 자신을 동시에 무신론자로 지목하는 논리적 모순을 범했다고 지적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 소크라테스는 자신에 대한 기소가 부당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는 변론을 마친 뒤 결국 사형 선고를 받았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실패한 변론이었나?

 

기존의 양분된 정치 지형에서 더구나 짧은 시간에 많은 배심원을 동시에 설득하려면 자신을 민주파로 포장하는 것이 유리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최후 진술은 아테네 정치를 기존의 민주파와 과두파의 대립에서 무지(無知)와 지(知)의 대립이라는 새로운 구도로 전환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삶이 새로운 형태의 정치를 지향했음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배심원이 220대280으로 유죄를 판결한 것에 대해 의외로 근소한 차이라고 평가하며 놀라움을 표했다. 소크라테스는 애초에 최후 진술에서 무죄 방면을 목적으로 했다기보다 자신의 삶 전체가 아테네에서 새로운 정치를 모색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음을 입증하고자 했다. 이 법정에는 배심원뿐 아니라 그동안 소크라테스의 행적을 지켜본 아테네의 시민들이 방청객으로 앉아 있었으니 소크라테스에게는 그야말로 아테네 전체 시민을 대상으로 한 최후 진술이었으리라.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설득하고자 했던 새로운 정치 유형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소크라테스는 재물은 물론이고 권력이나 명예 같은 정치적 가치와는 결별하고 보편적 진리만을 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테네라는 정치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여느 시민들처럼 소크라테스도 아테네의 국제정치적 운명을 갈랐던 주요 전쟁에서 세 차례나 중무장병 군인으로 참전했고, 아테네 민주정의 기구 중 하나였던 ‘불레’라는 위원회에 참석해 중요 사건의 처리를 맡은 적도 있었다. 그의 삶은 여느 아테네 시민의 정치적 삶과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보여준 정치적 삶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철학적 태도가 가미된 정치적 삶이었다. 진리 추구라는 철학적 태도를 가미한 정치적 삶이라고 하면 언뜻 거창한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자명한 오류를 범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소크라테스는 민주정하에서 아르기누세 전투에서 패한 장군들을 일괄 기소하는 것에 반대했고, 과두정하에서 30인 참주가 민주파 지도자인 레온을 체포해 오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민주정의 명령이든 과두정의 명령이든 부당한 것에는 저항한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정치를 진영 논리로 이해했다면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이미 양분화된 사회에서 진영 논리에 따르지 않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를 잘 알기에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불사하고 자신을 변론할 마지막 기회를 새로운 정치의 장을 여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우리 정치의 전환을 위해서 소크라테스와 같은 순교자를 기다려야 할까? 다행히 플라톤의 ‘변론’은 우리에게 고전으로 남아 소크라테스의 외침을 고대 아테네를 넘어 새로운 정치를 모색하는 모든 사회에 들려주고 있다.

 

-박성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조선일보(2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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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파시즘에 반대하는 게 이 시대의 中道

 

지금은 보수·진보 싸움이 아니라 전체주의 1당 독재와 제2 민주화 운동의 결전
’586 NL’ 지나침의 자업자득으로 찍어줬던 중도층도 뒤집혔다
좌파 파시즘에 반대한다면 한 전선에서 만나야 한다

 

2020년 4·15 총선 이후 많은 일이 벌어졌다. 윤석열 쳐내기, 공수처법, 5·18 특별법,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 기업 죄기 3법 날치기 처리를 일거에 강행했다. 이 과정은 의회와 다수결 형식을 취한 사실상 쿠데타였다입법부를 장악한 ’586 NL(민족 해방)’ 그룹이 그들 본연의 정체성, 권위주의적·전체주의적 좌파 파시즘 발톱을 그대로 드러낸 상황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10일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본회의에 입장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위선정권 막장정치 민주당에 경고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지금 싸움은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정체(政體)하의 보수·진보 싸움이 아니다. 오늘의 싸움은 좌파 권위주의·전체주의 1당 독재냐, 아니면 이에 맞선 ‘제2의 민주화 운동’이냐 하는 결전이다. ’21세기 한국 내전(內戰)’이라 할 수 있다.

 

‘586 NL’ 그룹은 1980년대 학생운동 당시 군사 권위주의 정권뿐만 아니라, 운동 내부의 자유주의 흐름과 온건 진보 흐름도 모두 적대했다. 심지어는 같은 극좌라 할 마르크스·레닌주의(PD) 계열까지 배척했다. 민주적 좌파 아닌 전체주의적 좌파를 지향한 것이다.

 

이들은 최근까지도 자신들의 그 속내를 숨기고 짐짓 ‘민주화, 정의, 공정, 민족 자주’ 세력이라고 위장해 왔다. 그러다 4·15 총선에서 압승하자 “그래 우린 그런 사람들이다” 하며, 자신들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더 이상 거칠 게 없다는 투였다. 윤석열 찍어내기와 공수처법 날치기에 나타난 그들의 오만방자함, 후안무치, 방약무인, 철면피, 무지막지, 폭거(暴擧)는 이처럼 그들의 전체주의적 본성에 내재하는 선천적 DNA였다.

 

결과는 그러나 그들을 찍어주었던 지지층의 대거 이탈로 뒤집혔다. 지나침의 자업자득이었다. 자유당 정권도, 유신 정권도, 5공 정권도, 모두 지나침의 선을 넘어 무너졌다. ’586 NL’ 그룹도 똑같은 길을 가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지나침에 ‘노(no)’라고 말한 지지층 이탈이란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것을 제대로 짚어야 오늘의 ‘한국 내전’의 정확한 의의(意義)를 읽을 수 있다. 지지층 이탈이란 진보층, 여성층, 호남 유권자, 3040, 중도(왔다 갔다)층 유권자 상당수가 문재인 정권에 등을 돌렸다는 뜻이다. 우파 유권자는 제자리에 서 있었다. 핵심은 바로 이것, 지금까지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던 표들이 돌아섰다는 점이다. 이런 사례는 이번에 한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족보가 있는 현상, 조지 오웰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이 1945년 내놓은 정치우화소설 동물농장

 

소설 ’1984′를 쓴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을 정도의 진보적 인물이다. 그러나 전체주의적 좌익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절망하고 치열하게 싸운 사람이다. 2003년 영국 BBC 방송이 방영한 조지 오웰 다큐에서 그는 대역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1936년 이후 내가 쓴 글 한 줄, 한 줄은 모두 직간접으로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번에 문재인 정권을 버린 한국 유권자들 또한 우리가 진보적이라 하더라도 최근 일련의 사태는 너무하지 않으냐?”는 뼈아픈 회의(懷疑), 절망, 깨침을 체험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때늦은 감은 있으나, 진보 유권자들 내부에 이런 조지 오웰적 각성이 싹텄다는 것은 빈사(瀕死) 상태에 빠진 한국 민주주의 회생을 위해 주목할 사건이다. 586 NL’ 노선은 처음부터 잘못된 길이었다. 그들은 민주화를 내걸었지만, 실은 민주화와는 거리가 먼 혁명 독재를 표방했다. 그들의 ‘민족 해방 민중 민주주의 변혁’이란 말 자체가 그걸 뜻했다. 이 혁명의 미친 칼춤 앞에서 “안 돼, 이건 아니야!”라고 외친 상당수 진보·중도의 이탈은 그래서 판세 역전의 결정적인 몫을 했다. 문제는 범야(汎野)가 이 민심에 어떻게 부응하느냐 하는 것이다.

 

전체주의 좌파 쿠데타에 반대하는 정파라면 모두가 한 전선에서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여의치 않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자유’란 말조차 쓰지 않겠다고 했다. 좌클릭 하면 좌 쪽, 중도 쪽 유권자들이 감읍(感泣)하며 환영할 줄 알았는가? 어림없는 개꿈이다.

 

중도는 또 ‘산술적 중간’을 중도로 오인하는 경향이 있다. 중도는 그런 게 아니다. 중도는 적중(的中)이다. 지금은 좌파 파시즘에 반대하는 게 시대적 요청, 적중이다. 그래서인지 좌클릭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 지지율은 5~6%인데, 윤석열 지지율은 25~28%로 치솟았다얍삽한 영합보다 과감한 이미지가 국민 ‘필’에 꽂혔다는 뜻이다. 이걸 모르는 국민의힘, 뭐 하자는 것인가?

 

-류근일 언론인, 조선일보(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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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팔매질을 모르는 척할 순 없다”

 

정권 수사에 돌팔매질… 어용을 ‘저항’으로 미화
반목했던 野, 지식인, 중도… 민주주의 戰線에 집결

 

작년 9월 ‘조국 수호 집회’를 보며 나치의 뉘른베르크 집회가 떠올랐다. 정권 보위 집회, 그때는 횃불, 지금은 촛불, 유대인과 검찰이라는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등 유사성이 보였다. 지금은 공영방송 사장이 된 언론인은 “딱 보니 100만명”이라고 바람을 잡았다.

 

이런 집회는 나치 독일에서, 그리고 중국 문화혁명 때 ‘영구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다. 기득권을 뿌리 뽑으려면 계속 적을 만들어 싸워야 한다는 이론이다. 요즘 말로 하면 ‘중단 없는 개혁’쯤 되겠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조반유리(造反有理)’라는 미학을 부여했다. 모든 반항에는 이유가 있으니 젊은이여 일어나라! ‘어용(御用)’ 소리 듣기 딱 좋은 이런 짓을 ‘저항’으로 미화했다. 이런 투쟁은 지주와 자본가, 유대인이라는 타도 대상에 대한 ‘혐오’를 자양분으로 했다. 볼셰비키는 딴소리하는 지식인 160여 명을 1922년 ‘철학자들의 배’에 실어 국외로 추방했다. 중국 지식인들은 홍위병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했다. 어용 지식인, 관변 언론은 권력의 방패가 됐다.

 

검찰은 우군(友軍)이 없었다. 국민적 혐오감도 컸다. 국민에게 군림하고 권력에 순응했던 일부 정치 검사의 전력 때문이다. 조국 집회를 시작으로 검찰에 대한 돌팔매질이 시작됐지만, 국민 다수는 구경꾼이었다. 권력은 ‘우리 총장님’이 적당히 타협하고 공수처로 마무리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집권층이 예상 못 한 게 있었다. 조국 집회’를 계기로 ‘촛불’에 참여했던 일부가 돌아섰다. 진중권, 서민, 김경율 같은 ‘조국 흑서파’다. 이들의 외침은 “이건 아니다”였지 “정권 타도하자”가 아니었다. ‘양념’ 세례가 쏟아졌고 진중권과 서민은 ‘변절자의 배’에 실려 추방당했다.

 

그때 권력이 자제력을 발휘했다면 ‘소수 고립’ 작전은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찍어내기’는 관망하던 지식인과 중도층의 이탈을 초래했다. 국민은 정치 검찰을 혐오했지만 권력형 비리를 수사할 수 있는 건 검찰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윤석열 찍어내기’와 안면몰수식 공수처법 처리는 민주적 절차와 가치 유린이었다. 권력의 폭주였고 ‘촛불’의 변절이었다.

 

검찰 혐오를 ‘상식의 연대(連帶)’가 압도했다. 그래서 조국 집회 때보다 더 많은 지식인과 법조인, 그리고 국민 다수가 정권의 반민주(反民主)에 경악하며 등을 돌렸다. 정권 수사를 이유로 퍼붓는 돌팔매질을 두고 볼 순 없다는 함성이다. 방역한다며 광장을 봉쇄하고, 5·18을 놓고 다른 주장을 하면 처벌하겠다는 법을 만드는 역사의 반동은 서로 반목하던 집단을 ‘민주주의 전선(戰線)’에 함께 서게 할 것이다.

 

25년 전 가수 이적은 ‘왼손잡이’로 다수파의 폭력과 획일성을 비판했다. 그가 새 노래를 냈다. “우린 때론 적이지/ 한 곳을 향해 겨룰 때도 있지/ 하지만 누군가 너를 다르다는 이유로 지우려 한다면 그땐 우린 또 하나지/ 돌팔매를 모르는 척할 순 없지.” 공수처법을 기권하며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남긴 민주주의 없이 검찰 개혁 없다”는 말은 정치사에 빛나는 유산으로 기록될 것이다.

 

진보니 보수니, 수꼴이니 좌빨이니 으르렁댔던 야당, 지식인 그리고 국민이 “돌팔매를 모르는 척할 수는 없다”며 손을 잡으려 한다. 권력은 윤석열과 검찰을 겁낼 게 아니다. “민주주의가 위험하다”며 전선에 집결하는 사람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음을 두려워해야 한다.

 

-정우상 기자, 조선일보(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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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는 ‘절대반지’… 권력자 善意를 믿지 말고 반지를 파괴해야

 

‘반지의 제왕'과 공수처

 

어린아이 정도의 키에 맨발로 돌아다니는 소박하고 낙천적인 소인(小人)족 호빗. 그중 빌보 배긴스라는 호빗이 있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고 있는 그는 본인의 111세 생일잔칫날 홀연히 먼 여행을 떠난다. 그리하여 조카이자 양아들인 프로도가 절대반지(The One Ring)를 유물로 얻게 되었다.

 

빌보의 오랜 친구인 마법사 간달프가 프로도에게 사정을 설명해준다. 절대반지는 타락한 신적 존재 사우론이 아주 오랜 옛날 만들어낸 물건이다. 요정들의 왕이 가진 세 반지, 난쟁이 군주들의 일곱 반지, 인간의 왕들이 지닌 아홉 반지. 그 모든 반지를 지배하고 찾아내며 불러내는 절대적인 권능을 지닌 단 하나의 반지가 바로 절대반지다. 절대반지를 끼면 남에게 보이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고, 자신이 꿈꾸던 것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반지에 영혼을 잠식당하고 마는 것이다.

 

악의 화신 사우론은 먼 옛날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절대반지를 잃어버렸다. 그가 다시 절대반지를 손에 넣는다면 세상은 돌이킬 수 없는 어둠과 혼란 속으로 빨려들 것이다. 절대반지를 파괴하려면 사우론의 본거지인 운명의 산으로 찾아가 용암 속에 반지를 던져버려야 한다. 프로도와 일행은 멀고 험한 여정에 오르고, 사우론뿐 아니라 오래전 반지를 가지고 있다가 타락해버린 골룸이 그들의 뒤를 쫓는다.

 

‘반지의 제왕’은 전 세계인이 다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야기다. 그야말로 ‘현대의 신화’인 셈이다. 그것은 단지 3부작 영화가 대성공을 거두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J. R. R. 톨킨의 원작이 지니고 있는 압도적인 세계관 및 진지하고도 보편적인 문제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반지의 기원을 플라톤의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대 리비아에 기게스라는 목동이 살았다. 어느 날 특이한 반지를 얻었는데, 보석받이를 자신의 손바닥 쪽으로 돌리자 본인의 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보석받이를 손등 쪽으로 돌리면 다시 몸이 보인다. 투명인간이 되는 힘을 갖게 된 기게스는 왕궁에 숨어들어 왕비와 간통하고 왕을 살해한 다음 왕국을 장악했다. 그 유명한 ‘기게스의 반지’ 설화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글라우콘은 스승에게 묻는다. 이렇듯 누군가 남에게 들통나지 않고 어떤 짓이건 멋대로 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기게스처럼 악행을 저지르지 않겠습니까? 글라우콘은 다른 사람이 지켜보는 눈이 있어야 인간은 선한 행동을 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설령 이득이 된다 한들 악한 행동으로는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글라우콘의 입장을 윤리적 가치의 외재설(外在說)로, 소크라테스의 입장을 내재설(內在說)로 불러볼 수 있겠다.

 

두 입장에는 장단점이 있다. 윤리적 가치의 내재설부터 생각해보자. 가령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나치에 반기를 들고 히틀러 암살 계획에 참여했다. 목사가 살인 모의를 한다는 모순을 논외로 하더라도, 당시 독일인들은 히틀러를 지지하거나 묵인했으니, 그의 행동은 주변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윤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본회퍼를 위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렇듯 내재설은 타인의 반대를 뚫고 옳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때로 큰 힘이 되어준다. 개인을 위한 윤리라고도 할 수 있다.

 

반면 외재설은 사회적 관점에서 유익하다. 몽테스키외를 비롯한 초기 민주주의 이론가들은 윤리적 가치의 외재설을 따랐다.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분리하고, 언론을 통해 외부에서 감시하며, 범죄의 수사·기소·재판 또한 최대한 공개하는 제도적 장치를 고안해냈다. 남의 눈에 보이지 않고 통제받지 않으며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면 그 누구라도 기게스처럼 타락할 수 있으니, 권력자의 선의를 믿는 대신 기게스의 반지를 없애버리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2020년의 대한민국은 정반대로 향하고 있다. 공수처라는 절대반지를 기어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가 공직자 부패 사건을 모든 수사기관에서 자동으로 가져오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공수처장으로 만들면 현 정권에서 벌어진 모든 권력형 비리를 서랍 속에 넣고 묵힐 수 있다. 공직자 부패 사건을 드러내고 처벌한다는 본래 취지와 정반대로, 부패 비리 집권 세력의 손에 기게스의 반지를 끼워주는 셈이다.

 

법원을 수사 대상으로 삼는 것 또한 문제적이다. 판사도 법을 지키고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설령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헌법에 정해진 제도와 절차를 통해 수사와 처벌을 받아야 한다. 헌법에 근거가 없는 공수처는 판사들로 하여금 여차하면 먼지털이식 별건 수사를 당할 수 있다는 위협을 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폴란드는 ‘정치 활동 금지’라는 명목하에 판사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었고 EU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 또한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봐야 한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 민주주의의 근본을 뒤흔드는 법을 내놓고 입법 폭거를 저지르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왜 이렇게까지 공수처를 추진해야 하는 걸까. 최재형 감사원장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월성 1호기 폐쇄 감사 보고서를 써내려갔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그 내용에 기반하여 수사를 진행 중이다. 저들은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윤석열 죽이기 법, 최재형 재갈 물리기 법을 만들려고 드는 이유가 뭘까.

 

공수처는 절대반지다. 권력자의 부패 범죄를 안 보이게 만든다. 권력자는 모든 고위 공직자와 법조인을 억누를 수 있다. 이런 반헌법적 통치 기구는 일단 만들어지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권력자가 이렇게 좋은 걸 포기할 리 없을 테니 말이다. 절대반지를 손에 넣은 자들도 그랬다. 반지의 악에 영혼이 잠식당하고 말았다. 맥락도 논리도 없이 ‘검찰 개혁’만 외치는 여당을 보면 ‘마이 프레셔스’라고 중얼대는 골룸을 보는 것만 같다.

 

인간, 요정, 난쟁이들은 절대반지의 유혹을 견뎌낼 수 없었다. 결국 절대반지를 파괴하고 세상을 구해낸 건 보잘것없는 호빗들이었다. 공수처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 평범한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탈환하고야 말 것이다. 지금은 21세기 헌정사의 가장 어두운 밤. ‘반지의 제왕’을 다시 보며 용기를 얻는다.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조선일보(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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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설치와 플라톤의 '국가'

 

필자의 유년 시절, 한 대만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판관 포청천'. 중국 북송 시대를 배경으로 수도인 개봉(開封·카이펑)에서 부윤으로 재직했던 포증(包拯)의 이야기를 극화한 것이다. 포증은 송나라 수도의 행정을 총괄할 뿐 아니라 수사와 재판까지 지휘하는 엄청난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그 힘으로 미제 사건을 해결하고 탐관오리를 척결한다. 어떤 범인은 자신이 귀족이라는 이유로 용 머리가 새겨진 용작두에 죽기를 원하나, 판관 포청천은 단호하게 외친다. "개작두를 대령하라!"

이런 이야기와 전개에 대중이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러한 정서는 현재 여론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공수처 설치를 주제로 한 최근의 어떤 여론조사에 따르면, 찬성 의견은 51%, 반대 의견은 41%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찬성 중 일부는 현 정부와 여당에서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옹호하는 열성 지지층일 것이다. 하지만 공수처 법안을 밀어붙이는 세력의 위선과 도덕적 타락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지금까지도, 현 정권의 대선 득표율보다 높은 비율의 국민이 공수처 설치에 찬성 의견을 보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부패와 비리 없는 사회를 향한 열망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는 셈이다.

정의를 향한 대중의 일반적 관념은 '판관 포청천'에서 극화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심상에 굳이 이름을 붙여보자면 '개작두 판타지'라고 부를 수 있겠다. 백성 재산을 가로채고 괴롭히는 탐관오리를 오늘날 기준에서 보자면 독재에 가까운 초법적 수단을 동원해 단번에 척결하는 것 말이다.
 


철학적으로 논의를 승화시켜보자. '개작두 판타지'의 근간에는 결국 '각자에게 맞는 몫을 주는 것이 올바름이다'라는 원초적 정의 관념이 깔려 있다. 탐관오리는 그가 저지르는 죄악으로 개작두에서 목이 잘리는 게 합당하다. 반대로 그들에게 시달리는 백성들은 자신들이 일한 바에 따라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포청천은 탐관오리의 목을 치고 그의 재산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준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올바름이란 단순하고 명쾌한 것이다. 각자에게 그 각각에 맞는 몫을 주기만 하면 된다. 다만 그 실현을 가로막는 '기득권층의 저항' 같은 것 때문에 현실 속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그 저항을 이겨내기 위해, 마치 포청천이 살던 북송 시대에 그러했던 것처럼, 권력을 한 사람이나 기구에 몰아주자는 주장도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올바름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데 있다. 플라톤의 대표작 '국가'를 펼쳐볼 때다. 특히 칼 포퍼가 씌워놓은 오명 탓에 사람들은 '국가'를 읽어보지도 않고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나쁜 책인 양 몰아붙이기 일쑤다. 하지만 '국가'는 올바름이란 무엇인지, 그 주제를 철학적으로 탐구한 인류 최초이자 최고의 고전이다.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그가 남긴 최후 작품 '법률'을 제외하고 나면, 플라톤이 남긴 대화 편은 언제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1권 초입에서 50대의 중년 소크라테스는 그보다 나이가 많은 노인 케팔로스와 가벼운 논쟁을 벌인다. 케팔로스는 올바름이란 남에게 무언가를 빌렸다면 제때 갚는 등, 각자에게 속하는 것을 각자에게 귀속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개작두 판타지' 그 자체는 아니지만 근간에 깔려 있는 원초적 정의 관념을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그에 반박하기 위해 한 가지 상황을 제시한다. 책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보자. "가령 어떤 사람이 멀쩡했을 때의 친구한테서 무기를 맡았다가, 후에 그 친구가 미친 상태로 와서 그것을 돌려주기를 요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순순히 무기를 돌려주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성을 잃고 광분한 상태로 무기 주인이 찾아와 맡겨둔 무기를 돌려달라고 할 때, 그가 주인이라 해도 무기를 돌려주면 안 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올바름의 문제는 단순하지도 명백하지도 않다. 주인에게는 자기 물건을 찾아갈 권리가 있다는 하나의 올바름과, 누군가 남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을 때 그것을 방관하거나 조장해서는 안 된다는 또 다른 올바름이 팽팽하게 충돌하고 있다.

공수처에 대해서도 같은 각도에서 짚어볼 수 있다. 집권 여당과 청와대는 자신들에게 전례 없고 견제받지 않는 힘을 주어야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얼마 전 조국 전 장관 사태를 통해 명백하게 드러났다시피, 검찰에 의지가 있다면 성역 없는 수사는 지금도 가능하다. 게다가 청와대와 집권 여당은 불과 몇 달 전 야권의 반대를 묵살하고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그런데 실제로 성역 없는 수사가 시작되자 윤석열을 검찰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붙였다. 이런 모습이 이성을 상실한 채 무기를 내놓으라는 저 가상의 아테네인과 대체 뭐가 다른가. 하물며 수사권과 기소권은 국민 것이지 청와대나 여당이 맡겨둔 물건도 아닌데 말이다.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장관에 임명된 후 한 달 만에 가족이 연루된 온갖 비리 혐의로 옷을 벗는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더 큰 몽둥이를 쥐여주자는 주장에 설득력이 생길 리 만무하다. 올바름의 문제는 '개작두 판타지'처럼 단순하지 않다. 공수처를 만들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몰아주면 올바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인 양 말하는 이들은 다른 사람들, 혹은 스스로를 속이고 있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는 21세기 대한민국은 고사하고 기원전 300년경 고대 그리스 사람들도 설득하지 못한다.

'국가'의 1권은 플라톤이 젊은 시절 쓴 이른바 '전기 대화 편'에 속하는 작품으로, 올바름에 대한 사람들의 통상적 편견을 드러내고 깨부순다. 그리고 2권부터 10권까지 이어지는 긴 논의를 통해, 상상 속의 이상 국가를 건설하며 올바름의 진정한 의미와 그 구현 방식을 모색해 나간다. 결국 인류는 몽테스키외, 존 로크 등 선각자를 통해 견제와 균형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원리를 발견했다. 그것을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과연 지금, '열린 사회의 적'은 과연 누구인가.

 

-노정태 철학 에세이스트, 조선일보(19-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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