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세는 北 바라는 대로, 우리 대선에선 '북핵' 실종]
[미국의 不관용, 이제 뉴노멀 국제 질서로 받아들여야]
국제 정세는 北 바라는 대로, 우리 대선에선 '북핵' 실종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주북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해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대사와 악수를 하고 있다. 뒤편에 딸 김주애가 경호원이 우산을 받쳐주는 가운데 대사관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인다.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이 러시아 전승절 80주년을 맞아 주북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TV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이 9일 주북 러시아 대사관을 찾아가 “우크라이나 괴뢰들이 핵 대국(러시아)의 영토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노골화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해 둔다면 (중략) 서울의 군대도 무모한 용감성을 따라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핵 없는 한국이 핵 있는 북한에 무모하게 덤벼들까 봐 러시아에 북한군을 파병했다는 듯한 얘기다. 북한은 러시아에 포탄 등을 제공한 대가로 러시아제 첨단 방공 장비도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군 파병도, 북·러 간 무기 이전도 모두 ‘북한과 일체의 군사적 협력을 금지한다’고 규정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지만 북한은 오히려 이를 남북 관계와 연관 지어 정당화하고 있다.
지금의 국제 정세는 이런 북한의 행태에 전혀 제동을 걸지 못할 만큼 혼란스럽다. 지난 8일 러시아 전승절을 계기로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관련국들이)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강압적 조치와 무력 압박을 포기”해야 한다는 공동성명을 냈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이, 대북 제재 해제만 주장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북한을 “핵 국가”로 부르면서 김정은과의 소통을 강조해 왔다. 중·러의 지지와 미국의 침묵 속에 김정은은 “핵전력 강화”를 외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 가장 긴장해야 할 나라는 당연히 핵을 가진 북한을 핵 없이 상대해야 하는 한국일 것이다. 북한의 핵 위협 억지와 비핵화에 국가의 명운이 걸려 있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그러나 우리 대선 현장에서도 ‘북핵’은 실종된 것이나 다름없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로드맵 제시나 현 국제 정세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8일 “도발은 명백한 오판”이라고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며 “중단된 북미 회담은 다시 재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 위협에 어떻게 대응할지, 북한 비핵화를 위해 우리 나름대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언급이 없었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는 9일 “북한의 핵 위협이 더 가중되면 전술핵 재배치 또는 나토식 핵 공유를 미국과 검토”하고 “핵추진 잠수함을 개발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아무 대안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모두 미국이 난색을 표한 적 있는 방안들이다. 이래도 괜찮은 것인지, 우려스러울 뿐이다.
-조선일보(2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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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不관용, 이제 뉴노멀 국제 질서로 받아들여야
[朝鮮칼럼]
'승자의 관용' 자체가 드문 일
공화정 시대 로마 정도가 예외
두 번째 예외가 2차대전 후 미국
갑작스러운 변신에 반발하지만
中에 쫓긴 10년 전부터 예고돼
그렇다고 중·러 의존 땐 더 큰 손실
'정직한 야만 시대' 이제 현실이다
고대의 전쟁사 기록에는 ‘승자의 권리’와 ‘승자의 관용’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고대 세계에서 전쟁의 승자는 패자의 영토, 주민, 재산에 대한 완전한 처분권을 가졌다. 승자는 패자의 영토와 재산을 몰수함은 물론, 주민을 모두 학살하거나 노예로 팔아넘기는 것도 당연한 권리로 여겼다. 유럽을 침공했던 몽골군이 저항하는 도시의 주민을 몰살했던 것으로 악명 높지만, 다른 정복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방 제국들은 물론이고 비교적 문명국이었던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한 고대 세계에서 ‘승자의 권리’가 아닌 ‘승자의 관용’을 기치로 급속히 세력을 팽창한 나라가 바로 로마였다. 공화정 시대의 로마는 도시국가로 출발해 많은 전쟁을 거쳐 지중해 패권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패전국을 관용으로 포용했다. 로마는 패전국 지도부를 처벌하거나 영토를 빼앗지 않았고 세금을 부과하지도 않았으며, 패전국의 왕은 국가적 독립성과 왕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로마가 패전국에 대해 요구한 것은 단지 로마와의 동맹 조약 체결과 소규모 전쟁 배상금뿐이었다.
동맹의 조건이 그처럼 너그러웠던 까닭에, 로마와 동맹을 맺고 로마연합의 일원이 된 나라들은 로마를 배신할 이유가 없었다. 카르타고 장군 한니발의 침공으로 이탈리아반도 전역이 16년간이나 무참히 짓밟혔던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로마를 배신한 동맹 도시는 단 2개뿐이었다. 로마가 수십만 병력의 희생 끝에 한니발군을 무찌르고 카르타고 본국을 정복했을 때도 로마는 카르타고의 주권과 영토를 그대로 인정했고, 단지 로마와의 동맹 조약과 전쟁 배상금 및 해군력 제한을 요구했을 뿐이다. 로마가 타국에 대해 패권국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건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제정 로마를 출범시킨 이후부터였다.
인류 역사상 공화정 시대의 로마와 가장 유사한 관용 정책을 동맹국과 패전국에 베풀었던 패권국은 미국이었다. 근대 제국주의 시대 이래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등 모든 패권국은 피지배국에 대한 가혹한 압제와 착취를 당연시했지만, 양차 세계대전 후 영국에 이어 패권국이 된 미국은 예외적으로 민주적 건국 이념과 풍족한 국부를 바탕으로 우방국의 안보와 경제 재건을 물심양면 지원했던 관용적 패권국이었다. 외세의 주권 침탈 위기에 처했던 구한말 우리 조상들이 미국의 도움에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이유도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이 없는 유일한 제국이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한국 등 많은 나라가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국가를 재건한 것은 무엇보다도 패권국 미국의 너그러운 무상 경제·군사 원조 덕분이었다. 당시 공산주의 진영 패권국이던 소련은 추종국들을 정치적으로 강력히 통제했으나, 경제적으로는 막대한 무상 원조로 그들을 먹여 살리는 관용 정책을 폈다. 그런데 소련의 뒤를 이어 전체주의 국가들의 패권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대외 안보 지원과 무상 원조에 매우 인색할 뿐 아니라, 주변 약소국의 영토를 갈취하고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개도국들에 고리대금업 수준의 고금리 차관을 제공하는 등 19세기 제국주의 국가를 능가하는 착취적 패권자로 군림하고 있다.
너그러운 패권국이었던 미국의 우산 아래 80년간 안주해 온 자유 민주 진영 국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별안간 들이대는 ‘동맹 관계 재정산 청구서’를 받아 들고는 아연실색이다. 그들은 미국의 갑작스러운 변신에 분노하고 반발하지만, 문제는 현실적으로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들이 미국과 결별하고 독자 생존을 추구하거나 아예 진영을 바꾸어 중국이나 러시아의 안보 지원에 의존하려면 훨씬 더 큰 경제적 손실과 주권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위협과 중국의 서해 불법 점유 위험에 직면한 한국으로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미국적 관용의 타락을 비난하지만, 이는 미국이 중국의 패권 도전에 쫓기기 시작한 2010년대부터 이미 예고된 변화였다. 현재 미국이 쏟아내는 온갖 소동들은 그간 예외적으로 너그러웠던 패권국 미국이 국력의 한계에 부딪혀 남들과 똑같은 자국 우선주의 나라, 불관용의 제국, 이기적 패권국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진통이다. 어느 한국 학자가 “우아한 위선의 시대는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왔다”고 지적했듯이, 패권국 미국의 불관용은 이제 뉴노멀의 국제 질서로 정착되고 있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조선일보(2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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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주고받으며 확전 우려됐던 인도·파키스탄, 美 중재로 일단은 휴전. 큰불 꺼진 후엔 ‘잔불 관리’가 중요.
-팔면봉, 조선일보(2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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