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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원전 협력"… 체코를 다시 봤다] [ .. 대통령의 과학 선생님.. ]

뚝섬 2025. 5. 20. 09:15

["100년 원전 협력"… 체코를 다시 봤다]

[왜 한국에는 대통령의 과학 선생님이 없을까]

[AI가 바꾼 대학 강의실 풍경]

 

 

 

"100년 원전 협력"… 체코를 다시 봤다

 

‘팀 코리아’의 체코 원전 수주전을 지켜보며 체코라는 나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수주전 초기, 비용·납기·기술 모두 우세했음에도 “혹시 프랑스와 정치적 거래를 하지는 않을까” 무척 걱정했었다. 하지만 체코는 “모든 기준에서 뛰어났다”며 한국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했다. 최근 프랑스전력공사(EDF)가 기습 ‘계약 중단 가처분 소송’을 내며 최종 계약을 방해했을 때도 체코는 단호했다. “100년의 협력 관계가 될 것이라, 정말 신중하고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동유럽 중진국으로만 알던 체코가 생각보다 합리적이고 진실된 나라라는 생각이 들던 중, 마침 지인의 친구인 체코의 한 대학 교수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를 통해 어렴풋이 알던 체코를 좀 더 이해하게 됐다.

 

현대 체코인들의 정신적 근간에는 ‘벨벳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있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40여 년간 소련의 위성국이었던 체코는 1989년 11월 17일, 경찰의 폭력적인 학생 시위 진압 사태를 계기로 공산당 일당 독재를 규탄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2시간 총파업에 근로자 75%가 참여할 정도가 되자, 공산 정권은 단 11일 만에 백기를 들었다. 당시 벨벳 혁명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동유럽 민주화 바람, 이데올로기의 몰락 등 세계사의 격변에 힘입은 것이었지만, 체코인들의 타당하고 울림 있는 목소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당시 체코의 정신적 지주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바츨라프 하벨(1936~2011)의 철학을 들여다보면, 체코인의 진정성이 엿보인다. 그는 “‘힘없는 사람들의 힘’(The Power of The Powerless)은 결국 양심의 실천에서 나온다”면서 “스스로에게 진실된 삶을 통해 전체주의라는 거짓을 드러낼 수 있다”고 했다.

 

체코는 우리와 비슷한 점도 많다. 강대국에 둘러싸여 400년간 오스트리아 통치를 받았고, 이후엔 독일 나치, 소련에 시달렸다. 우리처럼 발효 음식을 좋아하는 체코인들은 그래서 현대차·LG 체코 공장을 통해 알게 된 한국에 유대감을 느낀다고 한다. 프란츠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의 나라답게, 냉소적 ‘블랙 유머’를 즐기는 건 체코 특유의 문화다. 실제 그들의 블랙 유머를 최근 원전 뉴스에서 보았다. 프랑스 출신 EU(유럽연합) 위원이 자국의 민원을 받은 듯, “한수원과의 계약을 중단하라”는 편지를 보낸 뒤다. 얀 리파프스키 체코 외무장관은 이 편지가 프랑스 EDF가 소송을 걸었던 그날 발송됐다면서 “프랑스인 위원이 금요일 밤 10시에 일하고 있었다니 참 이상하다. 그는 정말 부지런한 사람일 것”이라고 비꼬았다. 체코의 지인은 한국이 수주전 탈락을 걱정했다는 게 놀랍다”고 했다. 체코인들은 모든 면이 우수하다고 보도된 한국이 될 것이라고 쉽게 예상했다는 것이다. 결국 수주전의 최종 승자는 그들이 믿는 이성과 상식, 그리고 양심이 차지할 거라 믿는다.

 

-류정 기자, 조선일보(2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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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에는 대통령의 과학 선생님이 없을까

 

[박건형의 닥터 사이언스]

美 대통령 과학 선생님이자 세계 첫 수소탄 만든 가윈 별세
반세기 넘게 주요 정책 결정 조언하고, 거침없는 반대도
韓 대통령도 과학으로 답해 줄 제대로 된 선생님 찾아야

 

20세기 물리학 전성기는 두 부류의 과학자가 이끌었다.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같은 그룹이 가설을 세우고 수식을 만들면 다른 그룹이 실험으로 이를 입증했다. 이론물리학과 실험물리학이라는 현대물리학의 두 축이 이때 완성됐다. 드물게 두 분야 모두 능한 사람도 있었다. 세계 첫 원자로 ‘시카고·파일 1’을 만든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엔리코 페르미가 대표적이다. 페르미는 탁월한 교육자이기도 했다. 그의 제자 중에 겔만, 리정다오, 양전닝 등 노벨상 수상자 6명이 나왔다. 하지만 그가 가장 높이 평가한 제자는 따로 있었다. 1947년 박사 과정에 입학한 19세 청년 리처드 가윈을 두고 페르미는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천재”라고 했다.

 

1949년 가윈이 졸업하자 페르미는 그를 로스앨러모스 연구소로 보냈다. 연구소에서는 원자탄을 뛰어넘는 무기 개발이 한창이었다. 당시 과학자들은 핵분열 대신 핵융합으로 훨씬 더 큰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현실에 구현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가윈은 2년 만에 텔러-울람 설계로 불리는 다단계 핵폭탄을 만들어냈다. 1952년 11월 1일 서태평양에서 실험이 이뤄졌다. ‘마이크‘라는 코드명을 가진 82t 무게 폭탄은 히로시마 원자탄보다 700배 큰 위력을 나타냈고, 버섯구름은 160km까지 퍼졌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무기, 수소폭탄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로스앨러모스를 떠난 가윈은 최첨단 민간 연구소였던 IBM으로 향했고, 이 선택은 그를 제2의 에디슨으로 만들었다. 정찰 위성, 자기공명영상(MRI), 레이저 프린터, 위성항법장치(GPS), 터치스크린 핵심 기술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오늘날 우리는 가윈의 발명 위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 조엘 셔킨은 2017년 ‘진정한 천재 리처드 가윈의 삶과 업적’에서 “당신이 들어본 적 없는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라고 썼다.

 

지난 13일 97세로 세상을 떠난 가윈의 부고에는 단순한 과학자 이상인 가윈이 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그를 ‘대통령의 과학 선생님’으로 기록했다. 가윈은 아이젠하워·케네디·존슨·닉슨·카터·클린턴의 과학 자문위원이었다. 부시 부자와 오바마, 바이든도 가윈을 찾았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과학적 지식과 지정학적 식견을 갖춘 가윈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 결과 가윈은 마치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처럼 역사적 장면 곳곳에 등장한다. 닉슨이 초음속 수송기를 개발하려 하자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낮고,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의회는 예산을 삭감했고, 영국과 프랑스가 개발한 콩코드는 가윈이 옳았다는 증거가 됐다. 레이저로 옛 소련의 미사일을 요격하겠다는 레이건의 ‘스타워즈’ 계획이 무산된 것도 “현재 기술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효과도 없다”는 가윈의 반대가 결정적이었다. 대통령의 말도 거침없이 반박한 가윈의 영향력은 모든 판단이 과학에 근거해야 한다는 정치인들의 철학 덕분에 가능했다. 가윈의 의견이 항상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그와 대립하던 사람들도 과학이 필요할 때면 가윈을 다시 찾았다. 가윈 생전 그와 긴밀하게 소통하지 않았던 유일한 대통령이 트럼프였다.

 

과거 한국에도 가윈 같은 과학자가 있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을 세워 한국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의 토대를 닦았고 한국연구재단과 대덕연구단지를 만든 고 최형섭 박사다.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든 최 박사의 업적은 박정희와 박태준이라는 정치인들의 확고한 믿음과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가능했다. 과학기술의 비전 설계와 실행을 과학자에게 맡긴 덕분에 지금의 한국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제 한국엔 가윈과 비슷한 과학자도, 과학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정치인도 없다. 대선을 앞두고도 인공지능(AI)에 100조원을 투자한다거나, 전략 기술 연구개발 규모를 10조원대로 확대하겠다는 등 과학을 가장한 숫자만 쏟아진다. 진정으로 저런 공약이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것이라 믿는다면 그건 더 심각한 문제이다. AI·양자 같은 미래 성장 동력 발굴과 기후·에너지 위기 대응은 물론 의사 정원 문제까지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중요한 과제 대부분은 과학으로 귀결된다. 이런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과학 선생님을 찾는 것. 차기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박건형 기자, 조선일보(2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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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바꾼 대학 강의실 풍경

 

[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최근 확연히 달라진 대학 강의실 풍경은 학생들이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켜놓고 수업을 듣는다는 것이다. 교수의 설명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바로 AI에 물어보고, 어려운 개념이나 공식에 대한 해설도 청해 듣는다.

 

교수는 물론 대학원 조교에게도 질문하기가 어려웠는데, 챗GPT는 이런 불편함이 없다. 사실 학생만이 아니라 교수도 생성형 AI에 크게 의존한다. 이런 저런 주제에 관한 연구 동향을 물어봐서 브레인 스토밍을 하기도 좋고, 마치 동료에게 하듯이 자기 아이디어에 관해 논평을 청하기도 한다. 학생에게는 마음씨 좋은 교수나 조교, 교수에게는 성실한 대학원생이나 ‘포닥’이 생긴 셈이다.

 

이렇게 교육과 연구 현장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아직 생성형 인공지능의 윤리적 사용에 관해서는 합의한 게 없다. 2024년 미국과 영국의 대학에서 한 조사를 보면, 여러 대학이 독서 과제 요약과 정리, 아이디어 생성, 번역에 생성형 AI를 학생이 쓰는 것을 허용하지만, 성적을 내야 하는 시험이나 과제 작성 때는 사용을 금지한다. 대학은 학생이 생성형 AI를 사용하였으면 밝히도록 하고 있지만, 숙제를 생성형 AI로 작성한 것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효과적 프로그램은 아직 없다는 딜레마가 있다.

 

지난주 네이처(Nature)에 오른 논문은 5000명이 넘는 과학자에게 생성형 AI의 윤리적 사용에 대한 의견을 듣고 이를 정리했다. 대다수 과학자가 논문 교정이나 번역에 생성형 AI를 쓰는 것은 괜찮다고 답했지만, 논문 초고를 작성하거나 다른 연구자의 논문을 요약해서 사용하는 데 생성형 AI를 쓰는 일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응답 비율이 높았다. 그렇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나이가 어려질수록 더 많은 연구자가 생성형 AI를 실제 연구에 사용했고, 그 사용에 대해서도 문제가 없다는 관대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제 10년 후면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생성형 AI를 친구이자, 선배이자, 멘토로 삼은 세대가 연구자가 될 것이다. 인간과 AI가 협력해서 연구를 담당하는 10년 후 세상에서, 우리가 아는 과학은 종언(終焉)을 고할 것인가.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조선일보(2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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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슨 황 “정부와 함께 대만 AI 수퍼컴퓨터 구축.” 기업인이 성공해 영웅으로 금의환향, 부러우면 지는 건데….

 

○ 직업계高 출신들 “대학은 인생에 마이너스”, 생산 현장서 고임금 받고 맹활약. 프로의 세계는 학력보다 실력.

 

-팔면봉, 조선일보(2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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