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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넉 달, 요란한 ‘문워크 외교’] .... [美 신용 108년 만의 추락.. ]

뚝섬 2025. 5. 20. 08:49

[트럼프 넉 달, 요란한 ‘문워크 외교’]

[그 많던 反美는 정말 사라졌을까]

[美 신용등급 108년 만의 추락… 달러 찍는 나라도 빚은 못 이겨] 

[자가용 보유가 가져올 북한의 변화]

 

 

 

트럼프 넉 달, 요란한 ‘문워크 외교’

 

[이철희 칼럼]

매파 참모 경질 뒤 ‘新고립주의’ 후퇴 뚜렷
오지랖 과시 속 ‘군사 불개입·외교적 봉합’
北엔 ‘스몰딜’ 거래, 南엔 ‘분담’ 압박 우려
2주 뒤 새 정부가 당장 마주할 한반도 현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불쑥 예멘 후티 반군에 대한 공습 중단 사실을 기자들에게 알렸다. 그는 “후티 반군이 ‘제발 더는 우리를 폭격하지 말아 달라. 그러면 당신네 선박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요청했고, 우리는 그 말을 받아들여 즉각 폭격을 중단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항복했다”고 했다.

한데 좀 이상했다. 그런 ‘승리’를 트럼프가 그저 몇 마디로 슬쩍 넘길 일이 아닌데, 왠지 군색했다. 트럼프는 생뚱맞게 “2, 3일 뒤 엄청나게 큰 발표를 할 것”이라고도 했는데,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꼼수 아니었나 싶다. 이어진 뉴스들에서 그 이유는 드러났다.

미국과 후티 간 휴전을 중재한 오만 측은 양측이 서로를 공격하지 않기로 했다는 합의 내용을 전했다. 다만 후티 측 약속은 오직 미국만 공격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이었다. 후티는 “미국을 물리쳤다”며 대대적 선전에 나섰고, ‘이스라엘과 그 연관 선박’에 대한 공격은 계속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실제로 이후 후티의 이스라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후티 공습은 군사력 사용에 신중하던 트럼프가 모처럼 “완전 몰살”을 외치며 승인한 군사작전이었다. 항공모함 2척과 B-2 폭격기, 각종 전투기, 첨단 방공 시스템까지 중동에 추가 배치했고, 1000개 넘는 목표물을 집중 폭격한 2조 원 넘게 들어간 고비용 작전이었다. 하지만 작전 한 달이 지나도록 미군은 제공권 장악도 하지 못한 채 더 큰 전쟁으로 끌려들 수 있다는 우려만 커졌다. 결국 트럼프의 인내심이 바닥나면서 서둘러 출구를 찾은 것이다.

후티 공습 중단은 트럼프 2기 행정부 내 사실상 유일한 안보 매파였던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이 전격 교체된 직후 이뤄졌다. 왈츠 경질은 J D 밴스 부통령을 필두로 한 마가(MAGA) 진영, 즉 신(新)고립주의 노선의 승리였다. 밴스는 작전 개시 전부터 “우리가 유럽을 돕는 실수를 하고 있다”며 반대했었다. 왈츠가 빠진 국가안보회의(NSC)는 일찌감치 마가 진영으로 전향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지휘 아래 대대적 조직 축소에 들어갔다.

트럼프의 요즘 대외 행보를 보면 군사적 불개입, 외교적 해법 선호가 두드러진다. 트럼프는 지난주 중동 3개국을 순방하면서 오랜 적국이던 시리아에 대한 제재 해제를 선언하고 현상금 1000만 달러가 내걸렸던 지하디스트 출신 시리아 대통령과도 만났다. 트럼프는 그를 “젊고 매력적인 터프가이”라고 했다. 이란에 대해서도 “나는 영원한 적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며 새로운 핵 협상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과거 오바마 행정부가 이룬 이란 핵합의(JCPOA)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던 트럼프다. 핵심 쟁점인 우라늄 농축 문제를 두고 이란은 여전히 ‘고농축 우라늄은 폐기할 수 있지만 민간용 저농도 농축은 양보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합의가 이뤄진다면 그 내용은 파기된 합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취임 100일을 넘긴 트럼프의 거래 본능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 성적이 신통치 않다. 위기를 고조시켜 협상으로 끌어내는 데는 능하지만 대부분 봉합 수준일 뿐 제대로 매듭짓는 것은 거의 없다. 중재인을 자처하지만 보증인, 실행인 역할은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평가한다. 막강한 군사력과 달러 패권을 가진 슈퍼파워로서 오지랖 넓게 나서지만 책임지는 일은 회피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동맹·우방에 대한 무신경이다. 후티와의 휴전은 물론이고 하마스와의 인질 협상에서도 이스라엘은 철저히 배제됐다. 트럼프는 인도-파키스탄의 전면전 위기에서 휴전 합의를 끌어냈다고 자랑했는데, 그간 ‘제3국 중재 반대’를 고수해온 인도로선 미국의 공치사에 불만을 삭여야 했다. 미중 관세 휴전을 두고도 “통일과 평화에 도움이 될 것”이란 실언(失言)으로 중국의 무력통일(복속)을 두려워하는 대만을 기함하게 만들었다.

트럼프의 외교 사전에 민주주의, 인권 같은 단어는 없다. 오직 편의적 실리주의만 있다. 때론 공직과 사익 간 구분조차 없다. ‘미국 우선주의’ 기치 아래 몰가치·불가측·무원칙의 요란한 뒷걸음질을 하고 있다. 앞으로 나가는 듯하지만 실제론 백스텝을 밟는 ‘문워크(moonwalk) 외교’인 셈이다.

이런 트럼프에 현상 타파 세력은 일제히 환호한다. 특히 ‘핵 국가’ 북한 김정은은 군사적 불개입과 스몰딜 타결, 게다가 뒷수습은 동맹에 떠넘기는 트럼프식 거래 셈법을 누구보다 예의 주시하고 있다. 당장 2주 뒤 선출될 새 한국 대통령이 마주할 현실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동아일보(2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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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反美는 정말 사라졌을까

 

이재명 후보 외교·안보 원칙
"국익에 따라 실용적으로"
미·중 선택 압박 받는다면?
답하지 못할 이유 없지 않나
 

 

2008년 6월 8일 저녁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광우병 위험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집회 당시 모습. /조선일보DB

 

루마니아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적나라한 친(親)트럼프 노선을 내건 후보가 18일 역전패를 당했다. 최근 있었던 캐나다·호주 선거도 일방적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유권자 반감이 표출돼 트럼프에게 대항하겠다고 한 후보들이 당선됐다. 우방에까지 관세를 막무가내로 올리는 트럼프의 최근 행태에 분노하는 이들이 많다는 의미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발한 2008년 ‘광우병 시위’ 당시 저녁 먹으러 갔다가 인파에 떠밀려 회사에 돌아오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거친 반미 시위였다. 광우병 공포는 결국 비과학적이었다고 판명이 났지만, 격렬한 반미 정서에 놀란 미 정부는 (광우병 감염 우려가 거의 없는) ‘30개월령 미만’ 소고기만 수출하기로 했다. 트럼프는 요즘 이 소고기 수입 제한을 풀라고 공격하고 있다. 한국 무역 협상의 성역(聖域)으로 여겨져온 쌀까지 ‘문을 열라’고 압박 중이다. 한국은 의외로 조용하다. 이쯤 되면 슬슬 고개를 들었어야 할 반미(反美)가 안 보인다.

 

과거 여러 차례 적나라한 반미 감정을 드러냈던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도 ‘미국과 잘 지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18일 토론회에선 과거 반미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한미 동맹이 가장 중요하다”는 원칙적 답을 했다. 그는 불과 3년 전 사드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며 “미국에서 무기 사들일 필요 없이 자체 기술로 자주 국방을 실현할 수 있다”고 책에 썼다. 성남시장 때인 2017년엔 “미군 철수를 각오하고 사드를 철회해야 한다”고도 했다. 틈만 나면 주한 미군 병력을 줄이겠다고 하는 트럼프가 솔깃할 얘기인데, 이 후보는 미국에 유화적 발언을 하면서도 과거 입장을 철회하거나 후회한다고 한 적이 없다.

 

이 후보는 18일 토론회에서 미·중 가운데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외교·안보는) 국익을 중심으로 실용적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미·일·중·러 모두와의 관계를 잘 관리해야 한다고 뭉뚱그려 말했다. 이른바 ‘황희 정승식 외교’로, 미국과 중국이 역사상 가장 치열한 패권 경쟁을 벌이는 지금 같은 때엔 현실적인 계획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는 한국이 결국 미·중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곧 닥치리라고 예상한다. 이 후보의 진짜 계획은 무엇일까. 속을 알 수가 없다. 

 

2020년 9월 23일 "포용성을 강화한 국제협력, 모두를 위한 자유" 을 주제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제75차 유엔 총회 영상 기조연설의 한 장면. 문 전 대통령은 유엔 등에서 북핵 관련 대북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고 해 미 정계의 반발을 샀다. /당시 청와대

 

“국익을 지키기 위해선 미국과의 협력뿐만 아니라 중국·일본 등 주변국과의 균형 있는 외교가 필요합니다.” 이 후보의 최근 발언이 아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대선 캠페인 때 한 말이다. 문 전 대통령은 당선 후 결국 반미 정서가 강력한 집단인, 당내 ‘86세대’의 뜻대로 움직였다. 미국의 어떤 정권도 원치 않는 북핵 관련 대북 제재 완화를 주장해 미 정계에서 반발이 일었고, 미군의 전시작전권 조기 환수를 추진했다. 한미 연합 훈련은 축소·중단됐다. 유세 때 말한 ‘국익’과 ‘균형’은 미국과의 불협화음을 정당화하는 단어로 용도가 바뀌었다. 문 정권의 핵심 인사 중 다수가 지금 이 후보 캠프에서 일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반미 감정 확산에 불만이 컸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 장관은 2004년 한국에 있는 여단 중 하나를 이라크에 보냈다. 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트럼프 정부의 당국자들은 이미 주한 미군의 역할을 ‘북한 억제’가 아닌 ‘중국 견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전략을 바꾸고 있다. 중국·대만 충돌 시 주한 미군을 빼서 중국 저지에 쓰겠단 얘기다. 주한 미군의 요격 미사일인 ‘패트리엇’ 중 일부는 예멘과 싸우는 중동으로 벌써 보냈다. 다음 정권이 반미의 기척만 보여도 트럼프는 기꺼이 주한 미군을 줄일 것이다. 이 와중에 북한은 혈맹이 된 러시아로부터 무기와 전술을 빠르게 습득하고 있다. 국익에 따라 실용적으로’를 넘어서는, 이재명 후보의 보다 명확한 입장이 궁금한 이유다.

 

-김신영 국제부장, 조선일보(2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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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신용등급 108년 만의 추락… 달러 찍는 나라도 빚은 못 이겨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지난주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한 계단 강등했다. 무디스 평가에서 미국이 최고 등급을 받지 못한 건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7년 이후 108년 만이다. 이로써 미국은 2011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 2023년 피치에 이어 세계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모두 최상위 등급을 박탈당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조차 나랏빚이 급격히 불면서 신용등급이 깎이는 수모를 당한 셈이다.

무디스는 미국에 대해 “10여 년간 지속적인 재정적자로 연방정부 부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공화당이 추진하는 대규모 감세안이 이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은 국채를 찍어 나라살림을 꾸려 오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지난해 123%로 치솟았다. 늘어난 빚에 국채 금리까지 뛰어 미 정부가 국채 이자로 지출한 금액만 지난해 1조 달러를 웃돈다.

무디스는 “미국의 재정건전성이 근본적으로 훼손되고 있고, 그 자체가 경제 전반에 부담이 된다”고 했는데, 한국도 허투루 들을 일이 아니다. 팬데믹 위기 이후 매년 100조 원 안팎의 재정적자가 쌓이면서 한국의 국가채무는 역대 최대인 1175조 원을 넘어섰다. 증가 속도가 주요국 중 가장 빠르다. 급속한 고령화로 의무 지출은 가파르게 늘어나는데 대규모 세수 펑크와 추경 편성 등이 반복되면서 나랏빚이 더 불어날 일만 남았다.

 

이런데도 주요 대선 후보들은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선심성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연간 15조 원이 소요되는 간병비 건강보험 적용을 비롯해 농촌 기본소득 지급, 아동수당 확대, 소상공인 부채 탕감, 근로소득세 기본공제 확대 등 퍼주기식 공약이 수두룩하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정부와 기업의 차입 비용 상승은 물론이고 외국인 투자 감소, 원화 가치 하락 등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무디스와 피치 등은 이미 정치·경제 불확실성과 재정적자 증가 우려 등을 이유로 한국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 가능성을 경고했다. 포퓰리즘 공약이 남발되기 쉬운 지금이야말로 나랏빚의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한층 더 높여야 할 때다.

 

-동아일보(2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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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용 보유가 가져올 북한의 변화 

 

북한 노동신문에 8일 실린 평양 여명거리 사진. 2017년 완공된 평양 핵심 지역이지만 차량이 거의 없어 8차로 간선도로가 한산하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올 초부터 자가용 승용차 소유를 전격 허용했다는 대북 소식통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자가용을 사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거의 없어 정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그럼에도 이것이 사실이라면 개인 휴대전화 허용보다 더 북한 사회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2017년에도 북한이 자가용 승용차 보유를 허용했다는 뉴스가 나왔지만, 당시엔 개인 명의 차량 등록은 불가했고 사업소나 기관 명의로 해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엔 개인 명의 등록까지 허용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물론 지금까지도 자가용 소유는 북한 법률상 불법은 아니었다. 북한 민법 59조는 ‘공민은 살림집과 가정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가정용품, 문화용품, 그 밖의 생활용품과 승용차 같은 기재를 소유할 수 있다’고 개인 소유권 대상을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가용을 소유한 사람은 총련 귀국자에 한정돼 있었다. ‘개인 소유의 성격과 원천’을 규정한 민법 58조에 ‘개인 소유는 노동에 의한 사회주의 분배, 국가 및 사회의 추가적 혜택, 터밭(텃밭)경리를 비롯한 개인 부업경리에서 나오는 생산물, 공민이 샀거나 상속, 증여받은 재산, 그 밖의 법적 근거에 의하여 생겨난 재산으로 이루어진다’고 규정됐기 때문이다.

차량을 살 수 있는 큰돈은 ‘그 밖의 법적 근거에 의하여 생겨난 재산’밖에는 만질 수 없는데, 지금까지 이 ‘재산’은 일본에서 송금이 오는 총련 귀국자들이나 인정받을 수 있었다.

북한에서 자가용 승용차 보유를 허용하려면 바뀌어야 하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이 58조 적용의 유연성이다. 차량 구매 비용은 분배나 개인 부업으로 충당할 수 없다. 북한 같은 체제에선 많은 돈을 합법적으로 벌었다고 증명하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 증명하려다가 오히려 재산이 공개돼 ‘비사회주의적 행위자’로 처벌받을 위험이 높다. 자가용 소유는 외국과의 무역을 통해 얻은 개인 수입이나, 외국에서 벌어온 재산, 장사를 통해 번 재산을 모두 ‘법적 근거에 의하여 생겨난 재산’에 포함시켜 인정해야 가능하다.

또 운전면허 제도도 개편해야 한다. 북한에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으려면 ‘자동차운전사양성소’에서 1년을 공부해야 하는데, 입학 자격과 연령이 매우 제한적이다. 여러 장애물이 있겠지만 자가용 승용차 보유가 허용되면 북한 주민들의 욕망을 크게 자극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에 자가용 승용차 10만 대 정도 팔릴 수 있는 구매력은 충분히 존재한다. 당장 평양에만 집값이 수만 달러인 주택이 수십만 채 있다. 대다수 거주권은 달러로 거래된다. 평양 주택 구매 자금도 이 58조에 따르면 태반이 불법이다. 하지만 주택만큼은 이 조항이 유명무실해졌다. 처벌의 칼날을 쥐고 있는 자들부터 좋은 집에서 살고 있으니 다른 누굴 처벌할 명분이 없는 것이다. 자가용 승용차도 권력층부터 보유하게 되면 주택과 마찬가지로 민법 조항은 사문화될 것이다.

자가용 승용차 보유를 허용해도 아무나 무작정 좋은 차를 살 순 없다고 한다. 메르세데스벤츠나 렉서스 같은 고급 승용차는 여전히 고위 간부만 탈 수 있고 개인은 중국산 차량만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팔리는 판매가격 5000달러 안팎의 4인용 전기차 등은 북한에서도 잘 팔릴 것이다. 폐기 직전의 값싼 중고차도 북한에 대량으로 들어갈 것이다.

휴대전화는 보유 허용 초기에 장사꾼이 많이 샀다. 실시간 정보 교환은 이들에게 더 큰 부를 안겨 주었다. 자가용 승용차도 마찬가지로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 삶의 질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될 것이다. 팔 물건을 넣은 배낭을 메고 다니는 장사꾼은 도태될 것이며 물류 이동은 훨씬 활발해질 수밖에 없다.

자가용 보유의 의미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 비싼 집과 차는 인간의 탐욕을 자극하는 가장 대표적인 상품이다. “우리 집은 왜 차가 없느냐”는 자녀의 투정에 초연할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다.

자가용 보유가 허용됐다고 해도 아직은 정말로 믿고 사도 될지 몰라 서로 눈치 보는 시기일 것이다. 하지만 권력이나 인맥을 믿고 용감하게 사는 자들이 점점 나오게 될 것이고, 그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보면 너도나도 사게 될 것이다. 나중에 자금 출처를 들먹이며 자가용을 뺏기도 쉽지 않다. 차를 몰수한다는 것은 곧 부유층에게서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도 빼앗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동아일보(2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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