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트럼프의 압박, '핵연료 동맹'으로 판을 뒤집자] ....

뚝섬 2025. 8. 26. 09:44

[트럼프의 압박, '핵연료 동맹'으로 판을 뒤집자]

[흔들리는 우라늄 공급망, 안정적인 공급처 확보를]

[북한의 광물자원]

[북한의 광물]

['北경수로'와 'UAE 원전'의 주역, 변준연씨]

["核무장론은 국제 현실에 무지하거나, 정치적 선동에 불과"]

[누가 책임질 건가.. ]

 

 

 

트럼프의 압박, '핵연료 동맹'으로 판을 뒤집자 

 

[朝鮮칼럼]

농축우라늄 시장을 러·중이 장악하고 있다
韓美에 모두 위험 요소
원전용 우라늄 농축과 글로벌 공급 컨소시엄으로
동맹을 격상켜야 한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진이 국산 핵연료 실험을 하고 있다./한국원자력연구원

 

동맹 여부를 불문하고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이라는 이유로 주요국 지도자들을 꼼짝없이 줄 세우고 있는 트럼프의 위세가 가관이다. 이른바 ‘백악관 집무실에서 살아남기’에서 보여준 우크라이나·남아공·캐나다·EU 정상들의 고군분투는 국제정치의 피도 눈물도 없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레임덕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11월 중간선거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 미국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데 더욱 집중할 것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요구했다는 ‘한미 동맹의 현대화’와 우리가 언급한 ‘미래형 포괄적 전략 동맹’의 접목 가능성을 주목한다. 지난 70년간 미국의 안전 보장에 의존한 한미 동맹을 다가올 70년간 보다 호혜적인 ‘첨단 과학기술 동맹’으로 전환시킬 계기가 마련된다면 역사에 남을 정상회담이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정상회담 후속 협의 과정에서 ‘핵발전 연료인 농축 우라늄 생산과 글로벌 공급의 한미 공동 추진안’에 특별한 관심을 갖기를 촉구한다. 한미가 손잡고 원전용 우라늄 농축 및 공급 컨소시엄을 만든다면 양국의 자체 수요 충족은 물론이고, 글로벌 핵연료 시장에서 안정적이고 새로운 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열릴 것이다.

 

현재 전 세계 약 440기의 원자력발전소가 필요로 하는 핵연료(농축우라늄)의 44%를 러시아가 공급하고 있다. 중국은 15%를 차지하고 있다. 이 두 나라가 마음만 먹으면 세계 원자로의 과반이 가동 중단되는 위기가 올 수 있다. 미국은 현재 가동 중인 94기의 원전에 필요한 농축우라늄의 약 23%를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러시아에서 32%, 중국에서 5%를 수입하고 있다. 한미가 공히 러시아와 중국에 높은 의존성을 가지고 있다는 취약점을 노출하고 있는 셈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주춤했으나 중국의 시장 점유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러·중의 농축우라늄 시장 장악은 계속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2~3년 분량의 핵연료를 비축하고 있지만 심각한 글로벌 위기는 언제든 닥쳐올 수 있다.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은 ‘원자력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며 원전 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4배로 늘리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AI(인공지능) 수요의 폭발적 증가와 SMR(소형모듈원전)의 급속한 확산이 배경으로 분석된다. 94기의 원전을 운영하는 미국은 대부분의 농축우라늄을 외국에서 수입하거나 미국 내 다국적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미 의회는 지난해 5월 러시아산 농축우라늄 수입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의 자체 공급 대안 마련이 발등의 불이 된 상황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폭락한 농축우라늄 가격이 지난 5년간 3배 폭등했다. 이런 수급 환경의 격변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 5위의 원전 국가인 한국이 핵 원료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중 37% 이상을 장기적 공급 신뢰성이 의심스러운 러시아와 중국에 의존한다는 것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위험 요소다. 5% 저농축 우라늄 연료봉은 핵무기 생산과 직접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라늄 농축 기술의 민감성 때문에 미국은 한국의 자체 생산을 봉쇄해 왔다. 2015년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으로 20% 이하의 우라늄 농축을 원칙적으로 허용했으나, 한미 원자력 고위급위원회를 통한 사전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족쇄 조항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어떤 진전도 없었다. 군사 목적으로는 어떤 농축 기술도 이전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1978년 채택된 미 핵비확산법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5위의 원자력 강국이 이런 오해와 수모를 겪고 있는 것은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한미 간 원전용 우라늄 농축과 글로벌 공급 컨소시엄’은 첨단 과학에 기반한 순수 산업적 프로젝트라는 것을 명확히 함으로써 미국 내 핵비확산그룹의 우려와 오해를 효과적으로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 원자력 협정의 개정과 원자력 고위급 위원회의 활성화 방안이 구체화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차원에서 미국의 유일한 우라늄 농축 시설 보유사인 센트루스(Centrus)가 한국수력원자력과 4세대 첨단 농축 우라늄 장기 구입 계약을 하고 공동 생산 협력을 위한 협력 방안도 모색한다는 소식은 고무적이다. 공동 생산이나 글로벌 공급망 확보보다 적극적인 진전을 위해서는 세계적 수준의 기술 잠재력을 가진 우리 기업의 과감한 참여가 필요하다. 이름 붙이자면 ‘핵연료 동맹’이다. 한국의 제조·마케팅,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그리고 금융, 미국의 원천 기술이 힘을 합해 한·미·일 3국 컨소시엄 형태로 추진한다면, 러시아와 중국이 장악한 세계 시장 판도를 뒤집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박인국 前 주유엔대사, 최종현학술원 초대원장, 조선일보(25-08-26)-

______________

 

 

흔들리는 우라늄 공급망, 안정적인 공급처 확보를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 등으로 원자력발전소의 핵심 원료인 우라늄 공급을 둘러싼 불안감이 높아지고 가격이 급등하면서 우라늄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전 세계 우라늄 공급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공급망 확보를 위해서다특히 차세대 혁신형 소형 모듈 원전(SMR) 등 차세대 원전에 필요한 고순도·저농축우라늄(HALEU) 확보가 관건으로 떠올랐다HALEU는 핵연료로 많이 사용하는 우라늄235를 5~20% 농축한 것으로, 생산 기업이 몇 곳 안 된다.

최근 ‘원전 대국’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해 우라늄 협력 강화를 논의했다. 카자흐스탄은 프랑스가 우라늄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또 미국도 우라늄 농축 회사인 센트루스(Centrus)로부터 HALEU 20kg을 납품받는 등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고 있다.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우라늄을 전량 수입하는 우리나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라늄 수급 문제를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국내에 운영 중인 25기 원전과 현재 건설 중인 3기 원전 가동에 필요한 우라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에너지 정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 4월 미국 센트루스와 ‘원전 연료 안정 수급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존 농축 우라늄 공급사와 협력을 강화하고, 센트루스의 우라늄 농축 시설 확장에 지분을 투자해 더욱 안정적인 농축 우라늄 공급망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는 우라늄 생산국과 자원 외교를 강화해 장기적인 우라늄 수급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조선일보(23-11-21)-

______________

 

북한의 광물자원


"김정은이 마음만 바꾸면(change his mind) 북한은 부자 나라가 될 수 있다. 북한은 이미 돈방석에 앉아 있다(sit on a stockpile of money)."

미국 경제 매체 쿼츠는 "북한은 아직 손도 대지 않은 7조달러(약 8050조원) 상당의 광물 위에 앉아 있으며, 그 가치는 전 세계 70억 인구에게 1인당 1000달러씩 나눠주고도 남을 정도"라고 말한다. 10조달러(약 1경1500조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북한은 금, 은, 아연(zinc), 구리(copper), 석회석(limestone), 철(iron), 흑연(graphite), 텅스텐 등 200여 종의 방대한 광물 매장량을 갖고 있다. 스마트폰과 여타 첨단 기술 제품 생산에 필요한 희토류 금속(rare earth metals needed to make smartphones and other high-tech products)도 풍부하다.

이처럼 산악지역 지하에 묻혀 있는 막대한 광물자원에도 불구하고(despite the enormous mineral resources embedded beneath the mountainous zones) 북한은 이 재물을 제대로 활용하지(take advantage of the riches properly) 못하고 있다. 극심한 경제 상태로 인해(due to its dire economic situation) 새 채굴 장비와 기계류를 구입할 수 없는(be unable to purchase new mining equipment and machinery) 형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응징으로 유엔과 미국이 제재를 가하고 있어(impose sanctions on it) 그나마 어렵사리 캐낸 광물을 수출할 판로도 막혀버렸다(be blocked up).

에너지 부족과 부실한 전력망으로 인해 (owing to the energy shortage and poor condition of power grid) 기존 광산 시설의 평균 가동률(average operational rate of existing mine facilities)은 용량의 30%에도 못 미치고(be below 30% of capacity), 상당수는 아예 방치된 상태다(be in a state of neglect). 설상가상(to make matters worse) 북한 대외무역(external trade)의 90%를 주무르는 중국이 북한을 자국 광물을 위한 폐쇄 시장으로 가둬두고(keep it as a closed market for minerals) 독점 유지에 열중하면서(be keen on maintaining their monopoly) 갈수록 속박돼 가고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에 혈안이 돼 있는 현재로선 이런 상황이 어쩌면 다행이다. 한국 입장에선 북한이 손대지 못하는 이 엄청난 광물자원(the tremendous amount of mineral wealth)을 장차 통일 비용을 대는 수단(means of meeting the cost of reunification in the future)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윤희영 디지털뉴스본부 편집위원, 조선일보(17-07-06)-

______________


북한의 광물


일제가 핵무기 개발에 손을 댄 건 태평양전쟁 말기다. 미국보다 1~2년 뒤진 시점이었다. 일제가 당시 원료 확보를 위해 주목한 곳이 식민지 한반도의 북쪽 지역이다. 평안북도와 황해도 광산에서 우라늄을 품은 광물이 많이 나오고 있었다. 당시 일제는 황해도 국근광산에서 산출한 광물 '퍼거소나이트'를 제련해 원폭 제조에 필요한 우라늄 235의 절반가량을 얻으려고 했다.

▶사실로 증명되지 않았으나 전쟁 말기 일제가 원폭 실험에 성공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때 거론되는 원폭 실험 장소가 함경남도 흥남이다. 핵무기 제조에는 막대한 전력(電力)이 필요하다. 당시 흥남은 한반도는 물론 일본·만주·대만 통틀어 전력 공급이 가장 잘되는 지역이었다. 압록강 지류인 부전강의 수력 덕분이다. 아시아 최대 비료 공장이 흥남에 들어선 것도 부전강이 생산한 전력이 기반이었다.

 

▶북한이 남한보다 일제가 남긴 산업 유산 면에서 훨씬 큰 혜택을 받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제는 민관이 함께 제철·화학·전력 등 당시로선 첨단 산업을 북한에서 일으켰다. 1940년 북한 지역의 1인당 광공업 생산액은 남한 지역의 두 배에 달했다. 물론 일제가 북한을 개발한 것은 식민지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식민지의 풍부한 자원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일제는 북한을 '광물의 표본실'이라고 했다. 특히 전쟁에 사용되는 광물이 많았다. 일제가 북한에 만든 무기 공장은 몇 년 후 북한의 남한 침략에 그대로 이용됐다.

▶북한의 풍부한 광물은 6·25 전쟁의 재원이 되기도 했다. 과거엔 소련이 '공산 형제국' 북한을 물심양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은 소총 하나 공짜가 없었다. 북한은 소련제 전차·전투기·중화기를 얻은 대가로 소련에 금·철·비철금속·화학제품·쌀을 지불했다. 유엔군과 북한·중공군이 사생결단의 전투를 벌이는 순간에도 북한의 광물을 산더미처럼 실은 배는 어김없이 소련을 향했다. 소련이 2차대전 때 입은 손실을 6·25 때 보전했다는 얘기도 있다.

▶미국이 대북 제재의 강력한 수단으로 북한의 석탄 수출을 막는다고 한다. 북한의 석탄 수출은 전체 수출액의 3분의 1 규모라니 철저히 막을 수만 있다면 북한 정권의 기반을 흔들지 모른다. 해방 후 70년이 넘었건만 북한은 여전히 땅을 파서 먹고 살고 있다. 천혜의 선물을 악용해 흉계를 꾸미는 것도 여전하다. 전쟁도 모자라 이젠 형제를 몰살하는 핵폭탄인가. 일제 강점기 때 그랬듯 북한 광물은 김씨 왕조의 발밑에 있는 한 민족의 축복이 아니다. 통일 때까지 땅속 그대로 있는 게 훨씬 낫다.  

-선우정 논설위원, 조선일보(16-10-01)-

______________

 

 

'北경수로'와 'UAE 원전'의 주역, 변준연씨

 

"가발 만들어 팔던 나라가 原電 수출하는 기적... 이제 스스로 허물어"

'北경수로'와 'UAE 원전'의 주역, 변준연씨 

 

"세계에서 원전 수출국은 우리를 포함해 미국·프랑스·일본·중국·러시아 등 6개국뿐이다. 이런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최첨단 기술과 인프라를 보유한 우리가 스스로 원자력을 포기하고 시장을 떠나려고 한다. 어떤 나라들은 수십년간 노력하고, 하고 싶어도 기술이 안 돼 여기에 끼지 못하는데…, 정말 납득이 안 되는 일이다."

변준연(62)씨는 한전(韓電)에서 36년간 재직하면서 북한 경수로 건설 사업을 총괄했고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원전수출본부장과 해외사업부사장 등의 이력처럼 그는 세계시장을 직접 뛰었던 사람이다. 지난 4월 한전 사장 최종 후보에 올라갔지만 탈락했다.
 

 

변준연씨는“대북 경수로 사업의 노하우가 UAE 원전 수출에 결정적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를 만난 것은 '한전이 22조원 규모의 영국 원전(原電) 수출에서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상실했다'는 발표가 있은 뒤였다.

"원전 수출은 국가 대항전이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지원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 같은 탈원전 분위기에서 산자부나 한전의 어느 누가 한번 해보자고 적극적으로 나서겠나."

작년만 해도 영국 원전 수출이 기정사실처럼 보도됐는데, 왜 갑자기 이런 상황이 됐나?

"이번에는 우리가 22조원의 투자를 해서 원전을 건설한 뒤 직접 운영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이다. 투자를 받으려면 언제까지 원금을 상환하고 언제부터 수익이 난다는 구체적 이행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보증도 해줘야 한다. 이런 금융 조달 계획을 내놓지 않고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도 보이지 않은 채 지체시키다보니 우선협상자의 지위를 잃게 된 것 같다."

재원 조달 계획에서 발생된 문제라는 것인가?

"당사자들은 서로 자기에게 유리한 금융계약을 하려고 한다. 과거에 불발된 터키 원전도 이런 방식이었다. 당시 전력 1kw당 단가를 얼마에 책정하느냐를 놓고 협상할 때 1센트 차이가 전체로는 8조원 차이가 났다. 대규모 투자를 하려면 이처럼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계산해야 한다. 심지어 발전소 건설 공사가 지연되거나 중단될 수 있고, 당초 계획과는 달리 발전소 효율이 낮고 예상된 전기 출력이 실제 안 나올 수도 있다. 이런 숱한 리스크를 모두 감당해야 하는 것이 투자자 입장에서 쉽지 않다."

당초 이런 조건을 모르고 한전이 협상에 뛰어든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한전이 협상 주체는 맞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원전을 수출하려면 건설사, 설계회사, 기자재 제작 회사, 운송회사, 보험회사 등이 힘을 합쳐야 한다. 막대한 외부 재정 지원도 받아야 한다. 지금은 탈원전 분위기로 이를 주도할 컨트롤타워가 없고 꼭 하겠다는 적극성도 모자랐다고 본다. 비록 우선협상대상자의 지위는 잃었지만 협상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영국 가디언지(紙)는 "한국 정부의 교체와 한전의 새 사장 임명으로 불확실성이 생겼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산자부에서는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상실은 탈원전 정책과 무관하다고 반박했는데.

"이번 계약 당사자는 영국이 아니다. 영국 원전 사업의 수주권을 딴 일본 도시바와 협상하는 것이다. 탈원전 정책이 직접 이유는 아닐 것이다. 대규모 재원 조달과 투자금 회수, 전반적인 수익 조건 등에서 서로 계산이 안 맞아 그랬다고 본다. 하지만 한국은 '탈원전'으로 전문 인력과 부품업체 등 원전 인프라가 허물어질 판인데, 영국 정부로서는 자기 땅에 '한국형 원전'이 30~60년 운영되는 동안 안전 관리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 우려할 수 있다고 본다."

당신이 한전 출신이라 이해관계 때문에 탈원전 정책을 비판한다고 보지 않겠나?

"원자력을 단순히 발전소 하나 안 짓는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 원전 건설은 엔진인 원자로(原子爐)만이 아니라 최고 수준의 기술과 내진 설계가 뒷받침된 펌프, 케이블, 밸브, 배관, 첨단 전자제품 등 수백만 개의 기기와 부품이 모여 이뤄진다. 또 운영과 유지 보수도 중요하다. 세계 최고의 기술 수준과 수많은 전문 인력을 계속 유지하려면 제품이 지속적으로 생산돼야 한다. 급격한 탈원전 정책으로 수요가 끊기면 이런 산업계 인프라가 무너진다. 한번 무너지면 회복이 어렵다. 산업계 기술력의 후퇴는 국가 차원의 재앙이 된다."

폭염에 전력난을 겪으면서 일반 대중도 탈원전의 비현실성을 알게 됐다. 하지만 현정권은 특정 이념에 사로잡혀 자신의 방향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도 물러설 것 같지 않다. 갑갑한 얘기는 그만하고, 당신은 과거 대북 경수로 건설에 사업총괄역을 맡았다고 들었다. 1995년 북한의 핵(核) 동결 조건으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집행이사국인 한국·미국·일본·EU 등이 100만kW급 경수로 두 기를 지어주기로 한 것인데?

"정치적으로 시작됐으나 한전 입장에서는 비즈니스였다. 처음에 총사업비로 75억달러를 제시하자, KEDO 이사국들은 자신의 분담금을 적게 하려고 총사업비를 깎을 것을 요구했다. 2년간 협상을 벌여 최종 46억달러로 확정했다."

나라별로 어떻게 사업비를 분담했나?

"당시 김영삼 정부는 경수로 사업의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 분담금의 70%를 내기로 했다. 일본은 10억달러를 엔화로 내겠다고 했다. 전체 분담금의 22%에 해당되는 돈이다. 미국은 발전소 준공 때까지 매년 50만t의 중유 비용을 부담키로 했다. EU는 미국 뉴욕에 있는 KEDO 사무국의 운영비 일부를 댔다. 당시 북한에 경수로를 공짜로 준 게 아니었다. 북한은 준공 후 3년 거치 17년 분할 상환하기로 되어 있었다."

경수로 건설 현장은 함흥에서 약간 떨어진 신포였는데.

"첫 3년 동안 작업 기반 인프라를 만들었다. 도로와 방파제를 건설하고 노무자들이 이용할 숙소·식당·체육시설·병원·종교시설 등을 지었다. 북한과는 상호 합의할 사항이 너무 많았다. 북한 출입은 여권과 비자, 비표 어느 것으로 하느냐, 건설 현장에 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가 조사하느냐, 북한 내 비행기나 자동차를 이용할 때 운임은 얼마나 할 것인가 등 모두 협상해야 했다. 공휴일, 식사 제공, 출근 시간, 작업지시 방법 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협상해야 했다. 이때 작성된 협정서가 뒷날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사업에서 많은 참조가 됐다."
 

 

1997년 경수로 공사 현장에서. 

 

경수로 사업은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실험을 몰래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결국 2005년 말 중단됐는데.

"그때 우리의 원전 기술과 부품이 들어간 경수로가 완성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북한이 경수로를 운영하려면 우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남북관계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전체 공정의 34%에서 중단됐고, 그때까지 1조5000억원이 투입됐다. 마지막 날 공사 현장에서 북측은 어떻게 행동했나?

"북측 관계자가 우리를 불러놓고 평양 수뇌부의 지시 사항을 낭독했다. '모든 합의 사항 무효, 한 달 만에 모든 인력은 현장 철수, 현장 기자재는 그대로 둘 것, 모두 서류 및 시설은 현 상태로 둘 것, 이를 어길 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법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사 현장은 콘크리트 흉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수로 사업의 경험은 UAE에 한국형 원전을 수출하는 데 절대적 도움이 됐다."

북한 경수로와 UAE 원전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나?

"원전 수출에는 발주국의 까다로운 요구 사항에 부합하는 명품 제안서를 영문으로 내는 게 중요했다. 10여 년간 경수로 사업을 하면서 KEDO 이사국의 요구에 따라 수만 장의 영문 서류를 작성한 노하우가 UAE 원전 수주에 결정적으로 통했다."

―UAE에 원전 수출은 누가 해보자고 했나?

"2009년 초 원전 사업 입찰 설명회에 참석해 달라는 UAE의 공식 초청장을 받았다. 이런 입찰 초청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20조원이라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해외 프로젝트였다."

사전에 통보나 만남 없이 초청된 것인가?

"2008년 말 양복 차림을 한 UAE 정부 측 암행탐색반이 주요 원전 국가들을 순방했다. 이들은 미국과 프랑스에서는 무시당했고, 일본에서는 의례적인 미팅을 했다. 한전을 찾아왔을 때 내가 이들을 접대했다. 좋은 인상을 받았는지 그 뒤 다시 한번 찾아왔다. 이들이 '내년에 원전 도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솔직히 믿지 않았다. 이집트·터키·필리핀 등은 수십년간 그런 계획을 세웠지만 여전히 원전을 한 기도 갖지 못했으니까."

이들이 UAE 원자력전담대사, 원자력사장 및 정부의 원전 최고 정책 책임자라는 건 뒷날 입찰 설명회에서 알았다고 한다. 설명회는 사흘간 진행됐다. 입찰 요구 조건은 매우 까다로웠다.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를 경쟁자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경수로 사업의 자료가 잘 준비돼 있었다. 경수로팀을 주축으로 한 100여 명이 한전 지하 벙커에 '워룸(war room)'을 두고 열 달 동안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작년에 완공된 신고리 3호기가 UAE에 수출한 원전과 같은 모델인데.

"UAE 수출 당시 설계 도면만 있었지 차세대 한국형 원전의 실체가 없었다. 과거에 정주영 현대회장이 거북선 도안이 있는 500원 동전을 보여주고 영국에서 선박을 수주한 상황과 비슷했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먼저 4개를 짓고 있으니 당신 나라에 건설할 원전은 다섯번째가 된다. 당신 것은 더 완벽하게 지을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는 원전 수주를 위해 두바이만 70차례를 오갔고, 그해 말 한국으로 결정됐다.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나라가 월드컵 우승국이 된 것과 같은 쾌거였다. 가장 값싼 노동집약형 산업인 가발을 만들어 팔던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최강국들을 제치고 첨단 원전 기술을 수출하는 기적의 나라가 된 것이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18-08-06)-

______________ 

 

 

"核무장론은 국제 현실에 무지하거나, 정치적 선동에 불과"

 

['문재인 외교안보 멘토' 이수혁과의 激論… '核무장 과연 가능한가?'] 

 

"레이저 이용한 신기술로 농축우라늄 0.2g 추출… 

盧 정부 때 그 사실 드러나… 유엔 안보리 회부 위기 처해"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핵무장 단계별 각본 짜봤다 북한처럼 몰래 준비한 뒤 NPT 탈퇴 선언할 것인지…" 

 

이수혁(68)씨는 문재인 전 대표의 '외교·안보 멘토'다. 공식 직책은 더불어민주당 경제통일위원장. 노무현 정부 시절 6자회담 수석대표. 독일대사, 국정원 1차장을 지냈다.

당초 인터뷰할 계획은 없었다. '자위적 핵무장론'에 대한 견해를 참고 삼아 듣기 위해 통화를 했는데, 그는 "핵무장론은 정치 포퓰리즘이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처럼 떠드는 것은 국제 현실에 대해 무지하거나 정치적인 선동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안보 비상 상황에서 집권당 대표까지 '자위적 핵무장 검토'를 발언했고 국민 여론 조사에서는 65%가 찬성했는데 말이다.

"핵무장을 할 수 있다고 떠드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짓이다. 가능한 것을 대안이라고 해야지, 핵무장은 불가능한 것이다. 마치 팔다리를 잃은 사람에게 언덕 너머 무지개를 따오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의 단호한 반응으로 30여분간의 통화는 논쟁이 됐다. 며칠 뒤 우리는 만나서 정식 대담을 했다.

 

-이수혁씨는“한·미 동맹에 매달려온 보수 진영은 이제 와서 미국을 못 믿겠다는 건가”라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핵무장의 현실적 어려움을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국가 생존이 걸린 문제라면 결단할 수 있지 않은가?

"핵무장을 할 수 있으면 좋지. 그러나 우리에게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미국이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가 핵무장하면 일본과 대만이 핵무장하고,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가 붕괴된다. 한국 때문에 국제 질서가 그렇게 되는 걸 좌시하겠나."

―NPT에는 '최고 국가이익(supreme interests)을 위태롭게 하는 특수 상황 시 탈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지 않은가?

"북한이 1993년 NPT를 처음 탈퇴하겠다고 했을 때 바로 그런 논리를 폈다. 한·미 팀스피리트 훈련과 군사기지를 들여다보겠다는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특별사찰로 심각하게 위협받는 안보 상황에서 주권과 생존권을 위해 탈퇴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2003년 NPT를 탈퇴했지 않나?

"국제사회는 이런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한은 석 달 뒤 탈퇴 보류를 했다가, 소위 '제2차 북핵 문제'가 터진 2003년에 탈퇴했다. 이때부터 유엔 안보리는 북한 제재에 들어간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우리 입장은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우리가 생존권 논리로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 있다고? 우리의 핵개발만 예외적으로 인정해달라고? 우리에게 그런 외교 역량이 있다면 진즉에 중국을 잘 설득해 북한을 압박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우리의 독자적 기술로는 핵무기 개발이 어렵다고 보는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핵무기 제조 기술은 더 이상 국제 비밀도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원자력연구소에서 농축우라늄 0.2g을 추출한 적 있었다. 레이저를 이용한 신기술이었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IAEA의 사찰로 그 사실이 드러났다. 유엔 안보리에 우리나라를 회부하겠다고 해서 난리가 났다."

어떤 식으로 매듭됐나?

"내가 6자회담 수석대표를 할 때였다. 북한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우리의 핵 문제가 터진 것이다. 우리가 코너에 몰렸다. '과학자들의 호기심과 실수로 그렇게 됐다'고 설득해 안보리의 제재는 받지 않았다. 한낱 0.2g에도 이렇게 시끄러운데 핵무장이 어떻게 현실적이겠나."

국제사회에서의 불이익과 경제 제재를 감수하겠다는 결단을 내리면 왜 못하겠나?

"너무 이상적으로 얘기하면 답답하다. 나는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핵무장 방법론'에 대해 논의했다. 우리가 핵무장을 하겠다면 어떤 순서로 할 것인지, 북한처럼 몰래 준비를 한 뒤 NPT 탈퇴 선언을 할지, 아니면 탈퇴 선언을 한 뒤 핵실험에 들어갈지 단계별 각본을 짜본 거다. 그 어느 쪽도 초입 단계에서 불가능했다."

상황에 처하면 방법은 나오게 마련이다. 준비를 한 뒤에 NPT 탈퇴 선언을 한다면?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큰 규모의 핵시설과 핵물질의 확보가 관건이다. 이게 IAEA의 사찰을 피할 수가 없다."

―NPT 탈퇴 선언과 함께 IAEA의 사찰을 거부한 뒤 핵개발에 착수하면?

"NPT를 탈퇴해도 평화적 이용을 위한 원전(
原電) 시설과 기술을 핵무기 개발에는 쓸 수 없는 조항을 뒀다. 우리가 핵물질이나 핵 관련 시설을 수입할 수도 없다. 기존의 원전 시설까지 가동 못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은 무엇인가?

"이들 국가는 당초 NPT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의 국익 차원에서 무마됐다. NPT 체제에 속한 우리의 경우는 다르다. 탈퇴하는 순간 유엔 안보리의 제재에 자동 회부된다. 한·미 안보동맹도 근본에서 흔들릴 것이다."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다시 들여오는 것도 반대하는가?

"이는 한미(
韓美)가 합의하면 된다. 국제법적 제약이 없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원해도 미국의 핵 정책으로 어렵다. 이미 미국 측은 '한반도에 전술핵 재배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통보해왔다. 전술핵 재배치 문제도 미국을 설득 못하는데 핵무장이 어떻게 가능하겠나. '핵확산 억제'의 국제 질서에서 우리 위주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우리 안에서 '자위적 핵무장론'이 확산되면, 미국은 우리를 안심시킬 대안으로 전술핵 재배치를 고려하지 않을까?

"미국은 '핵 확산 억제' 정책으로 1992년 나토(NATO)와 한반도를 비롯해 미국 영토 밖에 있는 모든 전술핵무기에 대한 철수를 완료했다. 한국에 전술핵을 다시 배치하려면 미국의 핵무기 정책의 유일한 예외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의 핵무장 의지는 중국 등에 북한의 핵 포기를 압박하는 카드도 될 수 있지 않겠나?

"우리가 핵무장을 할 수 없다는 걸 아는데 협상 카드가 안 된다."

어쨌든 보수 진영에서는 미 전술핵 재배치와 자위적 핵무장론을 내놓았다. 진보 진영의 해답은 무엇인가?

"보수 정권 9년 동안 답이 없게 만들었다."

 

보수 정권의 책임을 묻는가? 지금 와서 이를 따지는 게 무의미하지만, 북핵 문제는 진보 정권에서 시작됐다. 김대중 정부에서 북한에 얼마나 돈을 댔는지까지 계산하고 있다.

"4억5000만달러? 최초 핵실험을 막지 못한 것은 노무현 정부의 책임? 이들 정부의 책임이 없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대북(
對北) 압박만 밀어붙인 보수 정권에서 북핵은 소형화, 경량화, 규격화, 표준화에 성공했다. 이번 5차 핵실험의 폭발력은 4차 때의 두 배다. SLBM(잠수함탄도미사일) 성공까지 이르렀다. 지난 9년의 대북 압박 노력은 실패했다. 다른 방법이 없다. 국제 협조를 얻는 외교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핵 보유의 현실을 인정하고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오는 것이다."

진보 정권에서 이미 실패한 대북정책을 되돌리려는 것인가? 미국의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그동안의 협상은 북한에 인센티브만 주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협상해야 한다. 북한의 핵 보유 현실을 인정하고, 그 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협상을 벌여야 한다. 지금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만약 도발하면 지구 상에서 평양을 사라지게 하겠다'며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은 안 된다. 이는 핵전쟁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한반도가 핵 전장(
戰場)이 된다는 얘기다. 대통령이 오죽 밀리면 이런 말까지 했을까 싶지만, 국가책임자로서 할 말은 아니다."

―'공포(
恐怖)의 균형'으로, 핵무기 사용의 유혹을 꺾는 것은 결국 핵뿐이라고 하지 않는가?

"핵무장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강 대(
對) 강'으로 나가면 기분은 좋겠지만 해법은 아니다."

핵무기를 휘두르겠다는 북한의 요구에 맞춰 끌려가는 게 평화인가? 우리 국민은 그런 굴욕적 평화는 원치 않을 것이다.

"국내 형법에도 '자위권'을 엄격하게 규정한다. 폭력의 에스컬레이터가 안 되도록 하는 것이다."

국민의 북핵 불안감은 커졌다. 현 상황의 타개없이 계속 갈 수는 없다.

"우리가 '언더독(underdog·약자)'이다. 이런 상황이면 통일도 안 되고, 대응 수단을 만드는 게 백 번 맞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핵무장을 할 방법이 없다. 북한은 핵무기를 언제든지 사용하겠지만, 그렇게 못 하도록 관리할 시간은 아직 있다. 정책의 초점을 여기에 맞춰야 한다."

평화를 유지하려면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전쟁이 터지면 과연 우리가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한판 붙자고 큰소리치는 이들은 냉정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우리의 안보 전략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있다."

핵을 가진 쪽과의 협상에서 안 가진 쪽은 끌려갈 수밖에 없다. 어떻게 협상이 되겠는가?

"남북한만의 협상이 아닌 국제사회의 틀에서 협상을 하는 것이다. 미국과 국제 질서가 북핵을 막도록 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생존 문제를 미국의 손에 맡기자는 건가?

"미국은 한국의 안보를 책임지겠다고 했다. 한·미 동맹에 매달려온 보수 진영은 이제 와서 미국을 못 믿겠다는 건가.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이렇게 시위하는 것은 미국에 자신의 체제를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소위 '인정(
認定) 투쟁'이다. 특히 젊은 나이에 권력을 쥔 김정은에게 인정받고 싶은 대상은 미국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겠지만, 북핵 해결의 열쇠는 미국이 북한 체제를 인정하고 수교를 맺는 것뿐이다."

그게 답이라면 왜 그동안 진전이 없었나?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신봉하는 미국은 수교 협상에서 인권 문제를 우선 따진다. 우리가 보기에는 급선무인 '북핵 폐기' 조건으로 수교를 맺으면서 인권 문제를 풀어갔으면 했다. 물론 북한이 쉽게 핵 폐기 제안을 받을 리 없었겠지만, 미국은 '인권 우선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6자 회담 대표를 할 때도 이 부분에서 막혔다."

앞서 한·미 동맹을 중시하면서 사드 배치에는 왜 반대했나? 문재인 전 대표의 '사드 배치 재검토'에 조언을 한 걸로 아는데.

"그렇게 조언한 것은 북핵 해결에서 중국의 전략적 역할 때문이다. 사드 배치에 따른 국익 문제를 좀 더 신중하게 따져보라는 것이었다. 그 뒤 북한의 SLBM과 핵실험은 이런 반대 명분을 약화시켰다."

서로 일치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의견 차이를 확인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본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16-09-26)-

______________

 

 

누가 책임질 건가..

 

北核 경보음 계속 울렸는데 '좋은 게 좋다'고 서로 외면

좌파정권은 북핵을 외면하고 우파정권은 북핵에 무력해

국민을 속인 지도자들이 贖罪하는 게 대책의 출발

 

통탄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북핵(北核)을 대비하라는 나라 안팎의 경고에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살아왔다. 사이비 안보론자, 친북론자들은 물론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려 애를 써왔다. 그러나 북핵의 제1 피해자들인 우리가 지난 25년간 속고 또 속았는데도 쉬쉬하고, 대책도 없는데 발 뻗고 잘 잤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지난해 초 미국의 지그프리트 헤커 박사는 "(북한으로서는) 핵폭탄을 더 많이 만들고 그 성능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런 것들이 북한 정권에 그릇된 자신감을 불어넣어 북한의 전술·전략적 카드들을 늘려준다"고 했다. 그는 2010년 영변을 방문해 우라늄 농축 현장을 확인한 세계적인 핵과학자다. 미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수석연구원은 "북핵 위험이 현실화될 경우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했고, 며칠 전 타계한 스티븐 보즈워스 전 주한미대사는 "한미 양국이 북핵 위기에 일종의 불감증이 생겼다"고 했다. 그런데도 이런 발언들은 주목받지 못했다. 언론이 크게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핵 불감증에 대해 셰인 스미스 미 국방대학교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8월 '북한의 핵 전략 보고서'에서 "주된 이유는 세 가지"라고 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능력을 폄하해왔고, 북한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으며, 북핵 전략의 목표가 비군사적이라고 가정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핵의 목표가 국제적 위신이나 내부의 지지, 또는 협상용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국내에서는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이 경고음을 계속 울렸다. 그는 최근엔 "북한의 수소폭탄 개발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지 못하면 미증유의 안보위기가 찾아올 것"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한다면 증폭 핵분열탄 또는 수소폭탄 실험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는 "핵 카드만이 북의 핵개발을 억제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일찌감치 핵무장론을 폈다.

돌이켜보면 북핵을 방치한 책임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몫이 가장 크다. 김대중 정부는 2002년 부시 미국 행정부가 고농축우라늄(HEU) 문제를 북한에 제기하자 노골적으로 탐탁지 않게 여겼다. "사실도 아닌데 공연히 한반도 정세를 긴장시킨다"는 게 이유였다. 국내 좌파들이 떠받들었던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 역시 이런 미몽에서 오랫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그는 2007년 "HEU에 대한 미국의 첩보는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WMD)와 다를 바 없다(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북의 HEU 프로그램이 벌써부터 가동됐다는 사실을 이제는 다 안다.

노무현 정부는 북한이 2005년 핵무기 보유 선언을 하고 2006년 1차 핵실험에 성공했는데도, 셰인 스미스 연구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북핵의 목표가 비군사적이라는 가정"을 설파하는 데 주력했다. 노 대통령 스스로 "북한이 '핵은 외부 위협에 대한 자위용 억제 수단'이라고 한 것은 일리가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한명숙 총리는 "북한의 재래식 무기는 우리를 겨냥하고 있지만 핵무기는 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북은 "온 민족이 핵전쟁의 재난을 면할 수 없을 것" "누르면 발사하게 돼 있다"고 여러 차례 위협했다.

김영삼 정부는 북핵 해결의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클린턴 행정부는 1994년 영변 핵시설에 '족집게 폭격(surgical strike)을 하려 했으나 김영삼 정부가 반대했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한) 국경선의 포가 남쪽을 보고 있는데 (미국이 영변을 공격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된다"면서 "전쟁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이 만일 북이 수소폭탄 실험까지 할 줄 알았다면 과연 그때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이명박 정부는 북핵을 포기시켜야 한다는 당위론에만 의지한 채 이를 실현하기 위한 외교력이나 대북 협상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히틀러가 연합군이 관리하던 라인란트를 점령하고 체코슬로바키아를 합병한 것도 줄줄이 묵인해줬다. 그는 평화를 갈구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싸우지 않는 것이 평화'인 줄만 알았지 '때로는 싸워야 진정한 평화가 온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제 우리는 미국의 핵우산 이외에는 북핵에 무방비 상태다. 미사일을 쏘기 전 타격하는 킬 체인(Kill Chain)이나 발사된 미사일을 요격하는 한국형미사일방어(KAMD)는 10년쯤 돼야 쓸만해 진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국민을 속이고 국민을 잘못 이끈 지도자들이 반성하는 게 출발점이다. 체임벌린처럼 현실을 직시할 안목도, 국민에게 때로는 희생을 요구할 수 있는 용기도 없는 비겁한 지도자는 여야 없이 물러나야 한다.

 

-주용중 부국장 겸 국제부장, 조선일보(16-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