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급등 속 주력 산업 줄줄이 역성장]
[서학개미 탓 하더니 정작 자신들이 서학개미]
[코스피 5000 시대의 '헬조선']
[일용직에 떠넘긴 '안전 책임']
주식 급등 속 주력 산업 줄줄이 역성장

작년 8월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에 선적을 기다리는 철강 제품들이 쌓여있다./뉴스1
지난해 산업 생산이 0.5% 증가에 그치며 5년 만에 최소 성장폭을 기록했다고 국가데이터처가 밝혔다. 코로나 팬데믹 때보다 낮았다. 반도체(13.2%)와 조선 등 기타운송장비(23.7%)의 기록적 고성장에도 불구하고 건축(-17.3%)·토목(-13.0%)과 건설 경기 위축의 영향을 받은 시멘트 등 비금속광물 생산이 두자리수 감소폭을 보였다. 철강·석유화학·디스플레이·이차전지 등 한국 경제의 주력 업종마저 중국 공세 등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주식 시장이 활황인 가운데 산업 생태계는 ‘성장 멈춤’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뜻이다.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와 산업연구원도 지난해 13%의 고속 성장을 보인 반도체의 독주를 걷어내면 나머지 제조업 생산은 마이너스 2%대의 역주행을 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가동률이 정점을 찍는 동안 반도체를 뺀 일반 제조업 가동률은 코로나 수준인 70% 초반까지 밀려났다. 글로벌 금융위기때와 근접한 수준이다. 석유화학·철강은 중국 쇼크로 수출과 생산 모두 마이너스 5~7%대의 역성장을 기록하고 있으며, 미래 성장 엔진으로 여겨졌던 이차전지마저 마이너스 4.4%로 주저앉고 있다. 많은 주력 업종이 단순한 경기 변동 차원을 넘어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한국 경제는 반도체·자동차·방산 등 몇몇 업종만 독주하고 나머지는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극심한 산업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고용과 부가가치에서 큰 축을 담당해 온 전통의 주력 업종이 세계 무대에서 줄줄이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한때 10여 개의 주력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맹활약한 ‘산업 다관왕’ 한국이 이젠 서너 개 업종에 국가의 명운을 걸어야 할 처지로 몰리고 있다.
반도체라는 우산이 씌워져 있을 때 다른 산업들을 서둘러 수리해야 한다. 최근 산업부 장관이 “배터리 3사 체제가 너무 많을 수 있다”며 과잉 투자를 점검하고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코스피 불장이나 반도체 호황에 매몰될게 아니라, 철강·화학 등 한계에 다다른 주력 산업의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기업 역시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사업 재편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조선일보(2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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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개미 탓 하더니 정작 자신들이 서학개미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기관전용사모펀드(PEF)운용사 CEO와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스1
환율 상승 원인이 “해외 주식 투자자 탓”이라는 이재명 정부에서 고위 공직자 상당수가 ‘서학 개미’인 것으로 드러났다. 공개된 고위 공직자 362명의 재산 현황을 보면,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애플과 테슬라 등 1억5000만원 상당의 미국 주식을 갖고 있다고 신고했다. 이 원장은 고환율을 해결하겠다며 증권사의 해외 투자 마케팅 자제 등을 압박해온 장본인이다. 재산 1위(530억)인 노재헌 주중 대사는 본인과 가족 명의로 주식 213억원을 신고했다. 이 중 대부분은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주식이었다.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재산 221억원 중 테슬라와 애플, 팰런티어 테크놀로지 등 미국 주식이 35억원이었다.
청와대 인사들도 해외 주식 투자에 적극적이었다. 주식 보유를 신고한 전·현직 청와대 인사 19명 중 15명이 본인이나 가족 소유로 해외 주식이 있었다. 이장형 법무비서관은 본인과 장남, 장녀 명의로 94억원어치의 테슬라 주식 2만2081주를 신고했다. 문화체육비서관과 국민통합비서관 배우자는 각각 TSMC, AT&T 주식을 갖고 있었다. 홍보기획비서관은 본인 명의로 3억7000만원의 해외 주식을 신고했는데, 이 중 상당수는 일본 주식이었다. 주식을 소수점 단위로 소량 매수한 경우도 많았다. 청와대 참모들도 해외 주식 거래를 일상적으로 해온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환율 상승의 원인으로 서학 개미를 지목한 뒤 각종 대책을 내놨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해외 주식 투자에 대한 추가 과세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서학 개미가 거세게 반발하자 규제 대신 이들을 국내 증시로 끌어들일 정책을 내놨다. 금융 당국은 지금도 수시로 해외 투자자들의 국내 유인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뒤에선 자신들도 외국 주식을 갖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 때 정권은 다주택자를 비난하는데 뒤에서 정권 고위 인사들은 다주택자였던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에 재산이 공개된 고위공직자들은 작년 7월부터 11월까지 신분 변동이 있는 사람들만 해당한다. 이 정부에서 임명된 더 많은 고위공직자들이 정부 기조와 반대되는 투자를 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은 이런 공직자들을 보면서 정책의 신뢰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2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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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5000 시대의 '헬조선'
구청장 자리 사려 했던 전 市의원
구한말 고부군수 조병갑과 판박이
공직을 수탈과 치부의 수단 삼아
정치권이 만든 21세기 '헬조선'

(왼쪽부터)김경 전 서울시 의원, 강선우 무소속 의원, 김병기 전 민주당 원내대표./뉴스1
고부군수 조병갑은 1892년 고부에 부임했는데, 어떤 연유에선지 바로 다음 해에 익산군수로 전임(轉任)된다. 막 터를 잡고 치부를 시작하려던 차에 새 임지로 발령이 나자, 이를 되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수단은 로비였다. 전라감사 김문현을 찾아간다. 이미 조병갑에게 받아먹은 것이 많던 김문현은 조정에 유임 요청을 보내 조병갑을 다시 고부군수에 앉힌다. 고부에 복귀하기까지 한 달여가 걸렸는데, 기록에 따르면 그사이 무려 여섯 명의 후임자가 고부에 부임했다가 물러났다(신복룡, ‘동학사상과 갑오농민혁명’). 당시 매관매직이 이 정도로 심했다. 만경평야 한가운데 노른자위 땅에 군수 자리가 나자 비집고 들어오려 한 이가 많았던 것이다. 그 벼슬 장사를 조정이 했다. 망한 나라 ‘구한(舊韓)’의 말기가 이랬다.
조병갑을 떠올린 건 ‘구청장’을 노렸던 김경 전 서울시의원 때문이다. 그가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포함해 일부 여당 실세 의원들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는 일들이 통화 녹음 형태로 있다고 한다. 2023년 7월 강서구청장 출마가 무산돼 “돈을 너무 많이 썼다, 아깝다”라고 했을 때 심정은 고부에서 하루아침에 익산으로 발령 난 조병갑 심정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매관매직은 비용편익 관점에서 봐야 한다. 돈을 써 관직을 얻을 수 있고 이를 회수할 수 있다면, 돈을 얼마나 쓸지 ‘가격’이 나온다. 비용 회수는 대부분 공공사업 형태를 띤다. 예컨대 조병갑은 고을민을 동원해 만석보를 쌓아 놓고 물을 댈 때마다 수세(水稅)를 받아 이를 착복했다. 김 전 시의원은 의정 활동 중 청년용 ‘매입 임대주택’을 늘리라고 반복적으로 요구했다는데, 이때 남동생이 지은 오피스텔을 SH공사 청년 임대주택용으로 매각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직접 수탈이 아닐 뿐, 이것도 국민 세금을 착복한 것이다.
김문현 전라감사가 조병갑의 군수 자리를 챙겨준 것처럼, 지금은 국회의원이 공천을 보장해주고 지방의원은 이권을 챙긴다. 김병기 의원 부인에게 자신의 업무추진비 법인카드를 쓰게 해줬던 조모 동작구의회 부의장은 이 지역 재개발조합장이었다. 공천을 줬기에 ‘상납’을 기대하고, 공천을 받은 덕에 각종 인허가·조례·예산·민원에 개입해 돈을 만들 수 있었다.
국민이 선거로 공직자를 선출하는데 무슨 구한말 타령이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곳들은 사실 선거와 별 관계가 없다. 특정 정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기에 이런 ‘수익 모델’이 가능하다. 김경 전 시의원 입에서 나왔다는, “나만 그런 게 아닌데 억울하다”는 말은 그리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지금도 전국 226곳의 시·군·구 어디에선가 당선만 보장된다면 법인카드 갖다 바치고, 굳이 ‘헌금’이라 부르는 공천뇌물을 상납할 사람들이 줄을 서 있을 것이다.
‘헬조선’(지옥+조선)이라는 말이 등장한 지 10여 년이 지났다. 이는 함께 유행했던 ‘수저 계급론’ ‘노오력의 배신’ 같은 말과 함께 다소 과장 섞인 비유로 받아들여졌다. 아무리 불공정해도 백성을 제도적으로 수탈했던 진짜 헬조선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우리나라의 순자산 지니 계수가 0.625를 기록했다. 사회적 불평등을 나타내는 이 지수가 0.5를 넘으면 공동체가 감내하기 어려운 불평등 사회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코스피 5000 시대의 장밋빛 전망이 아무리 쏟아져도, 부동산 가격 폭등과 자산 양극화를 체감하는 이들에겐 오히려 박탈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김경 전 서울시의원과 강선우·김병기 의원 등은 민주주의와 선거 제도를 농락한 또 다른 수탈의 구조를 보여줬다. 이제 누군가 여기가 헬조선 아니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답하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신동흔 기자, 조선일보(2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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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에 떠넘긴 '안전 책임'

지난 21일 오전 5시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거리에 일감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있다. 대부분 중국인이었다. 반면에 근처 한국인 노동자들이 모이는 거리는 한산한 모습이었다./김민혁 기자
“다시 말하는데 ‘업무에 지장 없음’으로는 부족합니다. ‘건설업 근무 가능’이라고 고쳐 오세요.”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이후 건설사들이 일용직 근로자에게 이런 ‘확약’을 요구하고 있다. 법의 취지는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자는 데 있지만, 현실은 달랐다. 법의 부담이 가장 약한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책임이 전가되고, 현장 안전 대신 사고 위험이 없는 노동자만 골라 쓰는 ‘선별 채용’ 꼼수가 횡행하고 있다.
수도권의 한 검진센터장은 “건설사들이 사고 책임을 면하려고 ‘노동자에게 아무 문제없다’는 의료진 진단을 받아오라고 강요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전한 작업 환경을 구축하는 대신, 사고가 나지 않을 만한 이들만 골라 채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가 의학적으로 “지장 없다”고 판단해도, 기업은 법적 리스크를 피하려 ‘무결점 보증’이 없으면 문전박대하기 일쑤다. 하루 벌어 하루 버티는 노동자들이 “건강하다, 제발 일하게 해 달라”고 호소해도 소용없다.
법은 기업의 무거운 책임을 강조했지만 현장을 보니 그 책임은 일용직 근로자들이 다 짊어지고 있었다. 기업은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고 노동자를 더 쥐어짠다. 회피 비용을 약자에게 청구하는 것도 문제다. 소견서 발급비 3만원에 재검을 받느라 공친 일당 15만원을 합치면, 노동자는 18만원을 허공에 날려야 한다. 병원 창구에서 “종이 한 장 받으려다 일당 날렸다”는 거친 항의가 터져 나오는 이유다.
새벽 4시 서울 남구로역 인력 시장에서는 “일당을 깎아서라도 태워달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빈손으로 돌아서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경력 30년의 60대 노동자는 “이젠 영세 업체조차 60세가 넘으면 받아주질 않는다”고 한탄했다. ‘고령자는 안전 교육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황당한 논리까지 동원해 채용을 막고 있었다. 본지가 만난 숙련공들은 “노하우가 있어도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아 비참하다”고 했다.
새벽 5시 30분, 그곳에는 고성과 체념이 뒤엉켜 있었다. “8만원에 가지 마, 이건 아니잖아!” 날카로운 고함이 새벽 공기를 갈랐다. 제 살 깎아 먹기식 ‘단가 후려치기’ 전쟁이다. 싸움에 끼지 못한 이들은 “오늘도 공쳤다”며 힘없이 발길을 돌렸다. 절박함엔 하한선이 없다. 새벽 4시 10분에 나왔다는 50대 노동자는 “일당을 반만 줘도 나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거절당한 이들이 내뿜는 희뿌연 담배 연기만 곳곳에서 피어올랐다.
정부는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현장은 여전히 ‘책임 떠넘기기 전쟁’ 중이다. “일주일에 반이라도 현장에 나가고 싶다” “쌈박질 그만하고 제발 경제 좀 살려달라”는 외침은 생존의 절규에 가까웠다. 정부와 기업은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현장과 노동자를 위한 진정성 있는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그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
-구아모 기자, 조선일보(2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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