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중되는 美의 파병 압박, 정부의 지혜 절실한 때]
[호르무즈발 에너지 대란, 겨울 대비에 역량 집중해야]
가중되는 美의 파병 압박, 정부의 지혜 절실한 때

16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발언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UPI 연합뉴스
한국을 포함해 특정 국가를 거명하며 이란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보내라는 미국의 요구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누가 우리를 도왔는지 기억할 것”이라며 이 사안이 대미(對美) 관계의 척도가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한국, 일본, 독일의 미군 주둔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그들을 보호해줬지만 그들은 열의가 없다. 그 열의 수준은 나에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날 미 국무장관과 통화했던 조현 외교부 장관은 17일 국회에서 미국의 파병 요청 여부를 묻자 “현재로선 답변 드리기 참 곤란하다”고 했다.
한국 원유 수입의 60%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고 있다. 208일분의 원유를 비축하고 있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은 가늠하기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악의 시나리오 대책을 언급하면서 “차량 5부제나 10부제 대책을 수립하라”고까지 했다.
호르무즈 문제는 한국 경제와 직결된 문제이면서 동시에 한미 동맹에 큰 영향을 미칠 사안이다. 미국은 한국의 대응 수준을 보면서 관세 등 경제 문제부터 주한미군, 핵우산 등 안보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호르무즈는 미 해군조차 직접 군함을 투입하지 못할 정도로 위험한 해역이어서 우리 해군이 이 해역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감내해야 한다. 한국이 군사작전에 동참할 경우 중동의 주요국인 이란과의 관계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현재는 대부분의 나라가 군함 파견에 선뜻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명시적으로 거부했고, 영국과 프랑스도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트럼프는 31일로 예정됐던 미중 정상회담 연기까지 시사하며 반발했다. 결국 미국의 압박은 동맹이면서 호르무즈 해협 의존성이 높은 한국과 일본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앞둔 일본 총리는 “대답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곤란하다”는 우리 정부 답변은 파병 요구를 수용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난처함이 반영된 것이다. 정부는 일본, 영국, 프랑스 등 우방 국가들과 보조를 맞추는 한편 현재 중동 부근 해역에 파견 중인 청해부대의 활용에서부터 기뢰 제거함의 투입 같은 다양한 대응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란 전쟁 상황은 예측불허다. 트럼프도 예측불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국익을 지킬 정부의 지혜가 절실하다.
-조선일보(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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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파병 청구서’ 받아들고 트럼프 만나러 가는 日 다카이치. ‘1번타자’ 결과에 모든 나라 耳目 집중.
-팔면봉, 조선일보(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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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발 에너지 대란, 겨울 대비에 역량 집중해야
강원도에는 3월에 봄을 시샘하는 눈이 내렸다. 겨울은 지나갔지만 산하에는 아직 겨울의 잔상이 남아 있다. 다행히 지난겨울은 크게 춥지 않았다. 우리는 비교적 무난하게 겨울을 넘겼다. 그래서인지 연말에 찾아올 다음 겨울도 그 정도로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 그러나 세계 정세는 우리의 이런 소박한 기대를 쉽게 허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 에너지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천연가스 가격은 급등했고 유럽은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시장은 어느 정도 충격을 흡수했고, 우리에게는 기억이 희미해진 사건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세계 에너지 시장은 다시 거대한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
중동 지역의 분쟁은 여전히 세계 에너지 시장의 핵심 변수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물류의 전략적 요충지다. 이 좁은 해협을 통해 세계 원유의 상당량이 이동하고 카타르가 수출하는 액화천연가스(LNG) 대부분도 이 길을 지나간다. 이곳의 항행이 위협받는 순간 세계 경제는 곧바로 충격을 받는다. 실제로 전쟁이 시작된 첫 주에 국제 유가는 배럴당 120달러까지 상승했다. 이후에 다소 가격이 떨어지긴 했어도 90~100달러 안팎에서 불안정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장은 이미 지정학적 위험을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이번 위기가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고 낙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전쟁은 언제나 예상과 다르게 전개된다. 미국은 조기 종전을 기대하고 있지만, 이란의 대응 강도와 전략을 고려하면 장기전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던 일은 일어나지 않고,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The inevitable never happens, the unexpected always does)”고 말했다. 국제 정치와 에너지 시장만큼 이 말이 자주 맞아떨어지는 분야도 드물다.
이번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지속되고 에너지 생산 설비 피해가 누적된다면 석유와 천연가스 공급은 상당 기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에너지 산업은 생산과 물류 복구에 긴 시간이 필요한 산업이다. 설령 전쟁이 조기에 끝난다 하더라도 공급망이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몇 개월이 걸린다. 그리고 그 시점은 겨울과 겹칠 가능성이 높다. 겨울이 가까워지면 세계 각국은 천연가스 비축을 위해 수요를 급격히 늘린다. 계절적 수요가 집중되는 시기다. 이미 불안해진 공급망 위에 이런 수요가 겹친다면 에너지 가격은 다시 한번 크게 요동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아직은 석유와 천연가스를 대체할 에너지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은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에너지 수요는 단기간에 줄어들지 않으며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광범위하다. 그래서 이번 겨울이 더욱 걱정스럽다. 전쟁, 공급망 불안, 에너지 가격 상승, 그리고 겨울. 이 네 가지가 동시에 겹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에너지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우리가 아무 일 없이 지나온 지난 겨울이 오히려 예외였을지도 모른다. 다가올 올해 연말이 그저 평범한 겨울이기를 바랄 뿐이다.
-정용헌 전 아주대 국제대학원 교수, 조선일보(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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