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로또, '복권의 저주'를 피하려면]
["빅테크가 산타는 아니다"… 젠슨 황이 남긴 '선물'의 불편한 진실]
[삼성·SK ‘반도체 지방행’ 검토… 최종 결정은 100% ‘경영판단’으로]
반도체 로또, '복권의 저주'를 피하려면
남미 은광이 부른 스페인 위기
북해 가스 대박發 '네덜란드 병'
국가 횡재도 복권도 잘 써야 藥
경제 충격 없게 후대에 물려줘야
미국 매체 뉴욕 포스트는 2020년 7월 ‘가장 불행한 복권 당첨자’ 잭 휘태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2002년 성탄절 그는 우리나라 로또와 비슷한 파워볼에서 행운 번호 6개를 모두 맞혀 3억1500만달러(약 4800억원)의 당첨금을 거머쥐었다. 당시까지 가장 많은 당첨금을 받은 미국인으로 기록됐다. 그는 건설사 사장이었고 재산이 1700만달러(약 260억원)에 달해 이미 백만장자였다. 그래서 이런 행운이 자신의 삶을 크게 바꿔놓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미국의 파워볼 복권. /AP·연합뉴스
하지만 6년 후 그는 공개 석상에 나타나 “빈털터리가 됐다”고 했다. 돈을 마구 쓴 데다 그 사이 이혼을 했다. 같이 살던 손녀딸은 마약 남용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자린고비는 아니었기에 1400만달러를 들여 자선재단을 만들었고, 도움을 원하는 편지 수 천 통에 한 푼 두 푼 주다 보니 재산이 갈수록 줄었다고 했다. 재단은 자금이 떨어져 1년도 안 돼 문을 닫았다. 그는 불행의 이유를 “복권 당첨 때문”이라며 “복권을 찢어버릴 걸 하고 후회한다”고 했다.
하지만 휘태커가 빠진 ‘복권의 저주’를 피해 재산을 잘 관리한 사람도 적지 않다. 잔디 깎기로 생계를 유지하던 어윈 웨일스가 하나의 예다. 그는 2001년 4110만달러(약 630억원)짜리 복권에 당첨됐다. 당첨되자마자 변호사를 고용하고, 자금 관리를 위해 투자 전문가와 회계사를 찾았다. 그의 일상은 새 트럭을 산 것 외에 크게 바뀌지 않았고, 마을 공동묘지에서 잔디 깎기 봉사도 계속했다. 집 주변의 인구 1만명 정도인 벅스턴이란 지역을 돕기 위해 500만달러로 자선 재단을 만들었는데, 매년 원금을 운용해 나오는 5%의 수익만 자선에 쓰고 원금은 영원히 보존되도록 했다.
미국 복권 당첨자 얘기를 길게 했지만, 국가적 횡재도 잘 관리해야 국민 일상 생활에 충격을 주지 않는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상수지 흑자가 2500억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역대 최대였던 작년 1231억달러의 배가 넘는다. 그간 한 번도 보지 못한 정도의 달러가 한국 경제에 쏟아지는 횡재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바탕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AI(인공지능)발 반도체 호황으로 벌어들이는 달러다.

역사를 보면 국가적 횡재를 맞았다가 불행에 빠진 일이 적지 않다. 스페인 왕국에는 1545년 남미 식민지에서 포토시 은광이 발견되자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은(銀)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왕실은 군대를 키우고 전쟁을 하느라 국고를 탕진했다. 반면 풀린 은은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1557년 왕실이 빌린 돈을 못 갚겠다고 선언하는 등 국가 파산이 이어졌다. 제대로 된 산업은 없이 돈만 풀리자 국민은 고물가에 고통 받는 위기에 빠져 들었다.
1959년 북해에서 천연가스를 발견한 네덜란드에는 가스 수출로 외화가 밀려 들어왔다. 이에 자국 통화 가치가 오르고 수출 상품 가격도 올라 수출산업의 경쟁력이 망가지는 일을 겪었다. 천연가스 산업만 호황이고, 나머지 산업은 침체하면서 경제 전체가 하강 곡선을 그렸다. 1977년 영국 경제 매체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네덜란드 병’이라 이름 붙였다.
국가적 횡재를 잘 관리한 사례도 있다. 북해 유전에서 들어온 돈을 국부 펀드에 쌓아 놓고 매년 3% 한도로 재정에 지원하는 노르웨이가 대표적이다. 지금 세대가 흥청망청 쓰다가는 인플레이션과 국가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뿐이다. 복권 사례에서 보듯 미래 세대에 잘 물려줄 수 있도록 절제와 철저한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반도체 로또’가 한국 경제에 저주가 될지 축복이 될지 선택할 결정적 순간이 오고 있다.
-방현철 편집국 경제부 부장, 조선일보(26-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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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가 산타는 아니다"… 젠슨 황이 남긴 '선물'의 불편한 진실
韓, AI 인프라 산업 수준 끌어올릴 기회
美 빅테크 종속 구조 우려도… 日 D램 산업의 몰락 '반면교사'
"엔비디아 지렛대 삼아 '넥스트 레벨' 목표 삼아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엔비디아 코리아 AI 에코시스템 리셉션'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스1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4박 5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지난 9일 한국을 떠났다. 삼겹살 회동, 야구장 시구, 대학 연구소 방문까지 국내 산업계는 들떴고 증시는 연일 들썩였다. 하지만 고조된 기대의 이면에는 불편한 질문이 남는다. 세계 빅테크의 거물이자 실리콘밸리의 정점에 서 있는 황 CEO가 한국에 남긴 것이 단순히 선물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엔비디아와의 결속이 반도체, IT 인프라, 로보틱스 등 한국의 기술적 강점과 국제적 지위를 끌어올릴 기회라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빅테크와 종속 관계 형성'이라는 위기가 공존한다는 시선이 제기된다. 과거 세계 최대 전자·제조 강국이었던 일본 NEC, 도시바, 히타치 등이 미국 빅테크와의 파트너십이 종속 관계로 이어지면서 경쟁력 저하로 이어졌던 선례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 "엔비디아와 계약, 최종 목표 아니라 성장 발판"
10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와 국내 다수 기업들이 발표한 파트너십의 구속력이 느슨하고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한 기간 나온 논의들은 대부분 양해각서(MOU) 혹은 구두 합의 수준에 그쳤다. MOU는 법적 구속력도, 이행 의무도, 위반 시 페널티도 없다. 업계에서는 이번 방한이 엔비디아의 글로벌 인공지능(AI) 인프라 확장 전략에서 한국에 역할을 배정하는 성격이 짙으며, 향후 어떤 지위를 차지할 수 있을 지는 앞으로의 과제가 더 크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분야 협력의 경우 이번 방한으로 구조적 변화가 생긴 건 아니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AI 칩에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약 70%를 공급하고 있다. 이 같은 수치는 양날의 검이다. 한국이 엔비디아에 필수적인 파트너인 동시에, 엔비디아 없이는 이 물량을 소화할 고객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의 분업 구조는 명확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해관계에도 부합하지만, 설계(엔비디아)와 제조(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원·하청 구조가 고착될수록 중장기적 리스크가 존재한다.
일례로 1980년대 일본 반도체 산업과 미국 실리콘밸리 강자들의 파트너십이 결과적으로 일본 D램 산업의 몰락으로 귀결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한때 NEC, 도시바, 히타치 등 '빅5'를 주축으로 세계 D램 시장의 80%를 장악했지만, '제조는 일본, 설계는 미국'이라는 분업에 안주하며 생산 능력 확대에만 집중했다. 이후 미·일 반도체 협정에 따른 가격 하한제 강제와 엔화 강세, 삼성전자의 공격적 투자와 공급망 진입 등 복합적 요인이 겹치며 일본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SK 서린빌딩에서 열린 엔비디아-SK 협력 관련 언론브리핑을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뉴스1
엔비디아와 장기 공급계약을 시사한 SK하이닉스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제기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AI 반도체 시장의 무게중심이 학습에서 추론으로 이동하면서 메모리 수요도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국내 AI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계 고위 관계자는 "브로드컴, 구글, 오픈AI 등이 메모리 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단일 고객에 매몰되는 것은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며 "엔비디아와의 계약을 최종 목표로 할 것이 아니라 엔비디아를 도구로 활용해 기술 수준을 높이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 中 부상 대비하며 '투트랙' 전략 준비해야
로보틱스 분야에서 한국의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에 대한 의문 부호도 있다. 엔비디아의 피지컬 AI 전략에서 한국보다 중국이 더 비중 있는 파트너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산업용 로봇 시장이자 소비국이다. 유니트리(Unitree) 등 중국 휴머노이드 기업들은 이미 엔비디아 아이작(Isaac) 플랫폼 위에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 제조 현장은 엔비디아가 피지컬 AI를 실증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테스트베드이기도 하다.
황 CEO가 로보틱스 분야에서 한국을 강조한 배경에는 기술력보다 지정학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엔비디아는 현재 미국 수출통제 규정에 따라 중국에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공급하는 데 제약을 받고 있다. 한국은 제약 없이 엔비디아 최신 플랫폼을 도입할 수 있는 아시아의 몇 안 되는 동맹국 중 하나다. 향후 미·중 관계가 완화되거나 수출통제 구도가 바뀔 경우, 로보틱스에서 한국이 누리는 지정학적 프리미엄이 빠르게 희석될 수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나 애플 같은 빅테크는 전통적으로 단일 벤더에 안주하는 전략을 택하지 않는다"며 "한국이라는 파트너의 기술이 일정 수준의 상향 평준화를 이루면, 표준화된 제조 레시피를 기반으로 중국이나 다른 경쟁자로 시선을 돌리고 공급 단가를 낮추는 과정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민규 기자, 조선일보(26-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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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 ‘반도체 지방행’ 검토… 최종 결정은 100% ‘경영판단’으로

9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에서 분주하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공동취재) 2026.01.09 [용인=뉴시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 등 비수도권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삼성전자는 광주에 반도체 패키징(후공정) 생산기지 신설을, SK하이닉스는 전남권에 반도체 투자를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말 열릴 대통령과 주요 그룹 총수 간담회에서 반도체 투자 관련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반도체 기업들의 ‘지방행’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반도체 업계에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그동안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경기 평택, 용인과 충북 청주 팹(공장) 등을 중심으로 투자를 늘려 왔고 이들 지역에 생산 및 연구개발(R&D) 시설, 인력 등이 밀집해 있다. 비수도권에 새로운 거점을 조성하면 집적 효과가 약화되고 인재 유치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선 호남 등 비수도권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하고 용수 확보도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며 비수도권 투자 확대를 요청하고 있다. 지역 균형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다.
중요한 것은 투자가 100% 기업의 자율적 판단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여야 정치권은 앞다퉈 전국 곳곳에 반도체 유치 공약을 내세우며 알게 모르게 기업들에 부담을 줬다. 최근에도 비수도권 반도체 공장 유치를 기정사실화하며 기업들을 압박하는 움직임이 있다. 지자체나 정치권이 나서서 특정 지역에 특정 공정을 배치해 달라고 무리하게 요구해선 안 된다. 특히 수백 개의 소재·부품·장비 업체가 밀집해 생태계를 이뤄야 하는 전공정 라인까지 분산해 달라는 요구는 기업 입장에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기업이 오로지 글로벌 경쟁력 하나만을 잣대로 충분히 숙고해 전략적 선택을 하도록 지켜봐야 한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연구개발(R&D)과 설비 투자에 쏟아부은 금액만 125조 원에 달한다. 불확실한 업황 속에서도 선제적 투자를 단행해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토대를 닦을 수 있었다. 기업의 미래를 가를 만큼 중요한 투자에서 경영 외적인 고려가 개입되는 것은 곤란하다. 투자 결정은 기업에 맡기고 정부와 지자체는 전력, 용수, 도로 등 인프라를 적기에 공급하고 우수 인력의 유치·양성과 파격적인 규제 완화 등의 지원에 주력해야 한다. 어떤 경우든 기업의 경영 판단과 어긋나게 지방 이전을 ‘압박’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26-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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