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그토록 싸늘한 혈맹]
[이광의 불운, 조직의 불행]
북-중, 그토록 싸늘한 혈맹
시진핑 방북, 떠들썩 환대 속 냉기류
상호 치명적 ‘불신-경멸의 脣齒’관계
김정은, 美 이어 러 지렛대로 中 압박
核갈등 해소 없인 ‘전략적 동반’ 불가
권위주의 국가 간 정상 외교가 늘 그렇듯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1박 2일 북한 방문도 떠들썩한 환대와 화려한 언사들 속에 마무리됐다. 시진핑과 김정은은 각각 “새로운 역사적 출발점” “관계 발전의 새로운 장”이 될 것이라고 했고, 많은 관찰자들도 북-중 관계의 격상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그 만남 직전까지 벌어졌던 양측 간 신경전에 비춰 보면 그토록 넘치는 다짐들도, 관영매체의 대서특필도 판에 박힌 듯 식상해 보였다.
시진핑 방북 닷새 전부터 김정은은 새 우라늄 농축 시설과 해군 구축함, 군수공장을 잇달아 시찰했고, 이틀 전엔 여동생을 내세워 “핵보유국 지위는 절대 불퇴”라며 ‘비핵화 망상’을 걷어치우라는 담화를 냈다. 겉으론 ‘적대세력’을 향한 경고지만 실상은 대면을 앞둔 시진핑에게 보내는 압박성 시위였다. 결국 둘의 만남에선 북핵에 대한 아무런 대외적 언급 없이 끝났지만, 그 침묵이야말로 막판까지 좁히지 못한 양측 간 이견과 긴장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비슷한 갈등은 2년 전에도 있었다. 2024년 5월 리창 중국 총리가 참석한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공동성명이 나온 직후 북한은 외무성 담화를 내고 “난폭한 내정간섭”이라고 맹비난했다. 중국의 반대로 기존의 북핵 합의도 재확인하지 못한 공동성명에는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고만 했는데도 북한은 중국까지 싸잡아 힐난했다. 그날 밤엔 군사정찰위성 발사도 감행했다.
당시는 수교 75주년을 맞은 ‘조중 친선의 해’였지만 양국 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던 시기였다. 중국 다롄에 설치됐던 북-중 정상의 발자국 동판이 사라졌고, 두 정상 간 축전에선 ‘존경하는’ ‘경애하는’ 같은 수식어가 빠졌다. 김정은이 시진핑 친서를 복도에서 수령하는 결례를 보란 듯 범했고, 이에 주북 중국대사가 중요 행사에 불참하는 일도 있었다.
멀리 돌이켜 봐도 북-중 관계가 순탄했던 적은 많지 않았다. 북한은 중국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완충지대이고, 중국은 북한의 생명줄을 쥔 유일한 후원자다. 이런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는 불신과 경멸을 키우는 요인이 됐다. 중국은 골칫거리가 돼 가는 북한을 방치할 수도 다독일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지곤 했다. 생사여탈권을 가졌지만 자칫 붕괴될 수 있어 함부로 다루지 못했다. 그런 전능하지만 무기력한 중국의 취약점을 북한은 교묘히 이용했다.
냉전기 김일성은 중-소 사이에서 양측의 원조를 받아내는 ‘등거리 외교’로, 탈냉전기 김정일은 어수룩한 척 실속을 챙기는 ‘저팔계 외교’로 대응했다. 사실 북한이 중국을 다루는 솜씨를 보면 대체 불가의 후원국을 향해 노골적 도발도 서슴지 않는 대담함에 먼저 놀라고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밀착을 과시하는 천연덕스러움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김정은도 벌써 집권 15년 차다. 그는 친중파 고모부를 처형하고 중국 보호를 받던 이복형을 암살함으로써 일찌감치 ‘대중국 자주파’의 면모를 드러냈다. 급기야 잇단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중국의 유엔 대북제재 동참까지 몰고 갔다. 그랬던 김정은이 뻔질나게 시진핑을 찾아간 것은 2018년 미국과의 대화 국면에서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거래를 북-중 관계 회복의 지렛대로 사용한 것이다.
김정은의 최근 행보도 새롭게 기댈 구석, 즉 러시아라는 응원군이 생겼기 때문이다. 북한군 파병이란 큰 빚을 진 러시아는 “북한은 자체 핵우산을 가지고 있다”(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북한 비핵화는 의미를 잃었다. 종결된 문제다”(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라며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대우해 왔다. 김정은이 중국에 바라는 것도 이런 수준의 북핵 용인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생각은 다르다. 통제 불가능한 핵무기를 옆구리에 끼고 살 수는 없다. 미중 패권다툼 구도 속에 북-러와의 연대를 과시할 필요가 있어 일단 북한의 도전을 덮어두지만 그간 견지해 온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폐기하고 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할 수는 없다. 북핵 인정은 곧 ‘책임 대국’으로서 국제사회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은 ‘롱 게임’의 나라다. 이번에 시진핑은 한 달 사이에 트럼프와 푸틴, 그리고 김정은을 잇달아 만났다. 연초엔 이재명 대통령도 만났다. 북핵에 대한 모호성 유지는 북한의 영향권 이탈을 막고 향후 중재 역할도 고려한 고육책일 것이다. 일각에선 북-중이 ‘전략적 파트너’로 격상됐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이처럼 북핵을 둘러싼 이견이 큰 상황에서 전략적 협력이 이뤄지긴 어렵다. 그 불일치는 한국 외교가 파고들 틈새이기도 하다.
-이철희 논설위원, 동아일보(26-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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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의 불운, 조직의 불행

중국 간쑤(甘肅)성의 톈수이(天水)현은 제갈량이 북벌을 추진할 때 최우선적인 전략 목표였다. 그래서인지 그 지역에는 삼국지와 관련된 유적, 기념물이 곳곳에 있다. 그 덕에 주목을 덜 받는 유적이 있는데, 한나라가 흉노와 벌인 전쟁의 영웅 이광의 묘다.
이광은 진나라의 명장 이신의 후손이라고 하지만, 한나라가 건국한 뒤에는 변방인에 불과했다. 변경 지역에서 장수가 되어 빛나는 전공을 세우며 승승장구했다. 그는 무용도 뛰어났지만, 진정한 야전형·실전형 장수였다. 부하들을 잘 다루고 잘 키워냈지만, 동시에 겸손하고 수수했다고 한다.
전투에서 세운 탁월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이광에게는 출세운이 늘 비껴갔다. 결국 이광은 억울하게 죽는데 그의 불운은 아들, 손자에게까지 이어졌다. 손자 이릉은 천하의 용장이었지만, 선두로 진격했다가 적진에 버려졌다. 분노한 그는 흉노에게 투항하는데, 한무제는 이릉의 가족과 친구들을 몰살했다.
사마천도 이릉을 변호하다가 치욕적인 궁형(거세형)을 당했다. 사마천은 이광과 이릉의 이야기를 자세히 남겼다. 그런데 이 3대에 걸친 불운의 원인에 대해서는 지독히도 운이 비껴가는 사람이라는 해석, 과거에 강족 포로를 학살한 죄의 응보라는 해석 등 여러 해석이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그가 권력가와 줄이 닿지 않고 한나라 조정에서 차별받을 수밖에 없는 변방인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마천이 이광 집안의 이야기를 남긴 이유에 대해서도 자신이 궁형을 당한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있다. 아니다. 능력자를 시기하고, 무능해서 권력자에게 더 아부하며, 자신과 연줄 있는 자만 등용하는 위험성을 경고하려던 것이다. 무능한 자가 인연, 수, 선동으로 능력자를 배척할 때 모든 권력은 필연적으로 타락한다. 그러한 조직은 반드시 썩는다. 국가와 사회는 늪에 빠진다.
-임용한 역사학자, 동아일보(26-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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