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서기와 새치기

지인이 베이징 만리장성에 오르기 위해 입구에서 줄을 섰지만 좀처럼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새치기로 끼어드는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줄이 조금씩 뒤로 밀릴 정도였다. 아무리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관람한다고 해도 이 정도면 정나미가 떨어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20년 전 얘기니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긴 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건 지루한 일이다. 하지만 더 짜증 나는 건 앞에서 새치기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새치기해도 내 출퇴근 시간이 몇 초 늦어지는 것뿐이라고 생각해보지만 얄미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애매한 경우도 있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 서울역 에스컬레이터 등 곳곳은 사람들이 밀려들면서 긴 줄이 생긴다. 그런데 타고 내리는 사람이 뒤섞이면서 순식간에 새로운 줄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새로 생긴 짧은 줄에 서는 것은 괜찮은가, 40~50m 늘어선 원래 줄 뒤로 가는 것이 맞는가.
▶얼마 전 테마파크 우선 이용권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롯데월드에서 웨이팅을 하던 시민이 줄을 서지 않는 매직패스 이용객을 보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며 “우선 이용권 시스템을 막아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누리꾼들 평가는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고, 살지 말지는 소비자의 선택”이라는 주장과 “돈을 주고 새치기하는 것”이라는 반응이 엇갈렸다.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다.
▶최근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는 동양인 승객들이 단체로 새치기하는 일이 잇따라 발생했다. 대기열을 따라 이동하지 않고 자세를 낮춘 채로 차단선 아래로 체크인 카운터로 돌진하는 모습이 영상에 잡혔다. 이들이 쓴 언어 등으로 미뤄 중국인으로 보인다. AI 영상으로 의심됐지만 실제 발생한 일로 밝혀졌다. 공항 당국은 중국인 보따리상 등이 먼저 탑승 수속을 밟기 위해 카운터가 열리자마자 달려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의 경우 버스정류장은 물론 화장실 입구 등에도 자연스럽게 한 줄이 생기는 것을 보면 줄서기 문화는 어느 정도 정착한 것 같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미국·독일·북유럽을 줄서기에 엄격한 국가로, 아랍·남미·남유럽·아프리카 국가를 새치기에 관대한 국가로 분류했다. 하지만 우리도 차선 끼어들기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다. 출구로 나가려고 차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있는데 마지막 순간 차선에 끼어드는 얌체족이 적지 않은 것이다. 줄서기에서 새치기하는 것과 달리 차를 운전할 때는 얼굴이 안 보이니까 염치도 실종되는 것일까.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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