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다, 두 대륙 충돌하는 절묘한 공간… 대항해 시대 여기서 시작했다]
['스페인의 땅끝마을', 300년 전 영국 땅 된 사연은?]
[지브롤터, 스페인 속 영국 땅... 300년 넘게 영토 분쟁 중]
[지브롤터가 영국령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바다, 두 대륙 충돌하는 절묘한 공간… 대항해 시대 여기서 시작했다
[주강현의 해협의 문명사]
유럽·아프리카 가르는 지브롤터해협, 지중해서 대서양 나가는 요충지
15세기 포르투갈, 해협 건너 북아프리카 점령… 유럽의 역사적 공간 확장
英, 300년 전 스페인 남부 지브롤터 차지… 해협 둘러싼 영토 분쟁 진행 중

스페인 남부에 위치한 영국령 지브롤터의 도심과 지브롤터해협의 모습. 18세기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개입한 영국이 지브롤터를 점령했다. 지브롤터에는 영국 해군기지가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하늘에서 찍은 지브롤터의 모습입니다. 거대한 바위가 깎아지른 듯 서 있어요.
한 해협에서 두 바다, 두 대륙이 충돌하는 절묘한 공간이 있다. 지브롤터해협이 그곳이다.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고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이 만나는 특별한 접경이다. 최단거리 14킬로미터에 불과한데 수심은 무려 300미터에 달한다. 지브롤터해협을 벗어나지 않고는 대서양으로 나갈 수 없다. 그리스 문명, 로마 문명 등 지중해가 중심이던 시대에 이 해협의 전략적 가치는 실로 절대적이었다. 지브롤터해협은 고대 신화 세계에서 지중해와 대서양이 접하는 경계였다. 유럽은 지중해 중심에서 대서양으로 확장됨으로써 세계사의 지형을 바꾸었다. 대항해의 단초를 놓은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북단 점령도 지브롤터해협을 넘어가면서 가능했다. 지중해 시대가 대서양 시대로 옮겨간 지 오래지만, 여전히 해협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다.
고대인은 이 해협 양쪽에 거대한 헤라클레스의 기둥이 서 있다고 믿어왔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믿음에 따라 지중해 서쪽 끝을 세상의 끝으로 믿던 시절이었다. 지중해를 주무대로 살았던 사람들은 헤라클레스 기둥을 벗어나 대서양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서쪽으로 계속 항해하다 보면 어둠과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믿었다.
거인 신 아틀라스가 하늘을 떠받치는 곳이 바로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다. 플라톤은 헤라클레스 기둥 너머에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가 있다고 했다. 거기서 대서양(Atlantic Ocean)이 유래했다. 단테도 ‘신곡’ 지옥 편에서 인간이 더는 넘어가지 않도록 헤라클레스가 경계선을 표시해둔 좁다란 해협이라고 언급했다. 그리스 문학에 지중해 서쪽 끝은 머리 셋 달린 괴물 게리온의 고향으로 등장한다. 그곳에는 세상 서쪽 끝의 축복받은 정원을 돌보는 처녀들인 헤스페리데스의 불가사의한 정원도 있었다.

지브롤터해협을 묘사한 17세기 해양 지도 표지. 고대인들은 이 해협 양쪽에 거대한 헤라클레스의 두 기둥이 서 있다고 믿었다. 사진 가운데 기둥이 보인다. /영국도서관
그런데 신화적 경계와 현실적 역사의 경계는 실제로 달랐다. 신화에서는 분명히 지브롤터가 금기의 경계선이었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그 장벽을 뛰어넘으려고 했다. 지중해를 석권한 해양민족 페니키아가 그들이다. 고대의 페니키아는 이베리아반도 대서양변에 거점을 마련하고 지중해 무역을 대서양으로 확장시켰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벗어나서 활발한 무역 활동을 한 증거들이 무수히 있다.
스페인 남쪽 대서양변의 치피오나 등대를 찾았다. 스페인의 해양도시 세비야로 흐르는 과달키비르강에 접근하는 배가 암초와 충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운 등대다. 이 암초는 기원전 2세기부터 시작된 문헌과 로마의 고고학 자료에서 이미 확인된다. 암초는 그리스 신화에서 머리 셋 달린 괴물인 게리온의 무덤이 있던 곳이다. 리비아 사막을 지나던 헤라클레스가 이 섬에 들어가 독화살을 쏘아 게리온의 머리를 맞혔다고 한다. 게리온이 죽고 난 다음 무덤이 치피오나의 암초에 만들어졌고, 거기에 등대를 세웠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과감히 돌파해 대서양으로 진출한 페니키아인의 개척성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러한 역사적 전거가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고대는 물론 중세까지 감히 지브롤터해협 밖으로 나가는 일은 일상적이지 않았다. 15세기 말에 이르러 대항해시대에 접어들면서 해협의 경계를 돌파하는 시도가 잇따랐다. 지브롤터해협이 근대적 시야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이다.
15세기 말부터 유럽의 역사적 공간이 확장되었다. 아프리카로 세력을 확대하기 위한 1단계로 포르투갈은 지브롤터를 넘어서 세우타 정복에 나선다. 세우타는 아프리카 북단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포르투갈인은 세우타에서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인들끼리 침묵으로 교역하는 것을 목격했고, 동방 향료가 그곳까지 당도함을 알아냈다. 포르투갈이 본격적으로 지브롤터해협을 벗어났다는 것은 지중해적 세계에서 대서양적 세계로 세계관이 무한 확대되었음을 뜻한다. 또한 해협을 건너감으로써 유럽적 세계에서 아프리카로 확장됨을 상징한다.

지브롤터해협
오늘날의 스페인 국기에 해협을 가로지르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이 박혀 있다. 하나는 북쪽의 지브롤터, 다른 하나는 아프리카 스페인령 세우타에 세워진 기둥이다. 한때 포르투갈이 개척한 역사는 일찍이 사라지고 스페인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첨예한 해협의 제해권은 만만하지가 않다. 오늘날 지브롤터는 영국의 해외 영토이며 주변 바다도 영국 영해다.
영국은 18세기 이래로 이곳의 제해권을 장악해왔다. 1701년부터 1714년까지 무려 13년간 벌어졌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영국이 뛰어들어 지브롤터를 차지했다. 스페인으로서는 자신의 영토에 강력한 비수가 꽂혀 있는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도 영국은 본국 함대에 버금가는 강력한 해군을 주둔시켜 지중해와 대서양, 유럽의 아프리카 길목을 통제했다. 독일이 지브롤터를 공략하고자 한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지브롤터의 깎아지른 바위산 주변에 해군기지와 비행장이 있다. 인구는 영국, 모로코, 스페인, 포르투갈, 유대인, 이탈리아, 몰타인 등 다양하게 구성된다. 영어가 공용어지만, 스페인어와 아랍어도 들린다. 스페인 입장에서는 자국의 영토로 편입되기를 바라지만, 주민들은 스페인령이 되기보다는 영국령을 택했다. 영국의 속령이지만 고도의 자치권을 누린다. 역으로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세우타를 스페인이 점령하고 있다. 지브롤터해협을 중심으로 주변 바다에서 300여 년에 걸친 영국과 스페인의 영토 분쟁이 지속되는 중이다.
대영제국의 영화는 사라졌으나 여전히 영국이 지브롤터의 목줄을 쥐고 있음은 이 해협의 전략적 중요성을 잘 설명해준다. 지중해와 대서양, 유럽과 아프리카를 경계지어 온 지브롤터해협에서 헤라클레스의 임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다.
-주강현 해양문명사가·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 조선일보(23-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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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땅끝마을', 300년 전 영국 땅 된 사연은?
영국이 통치하는 지브롤터, 최근 스페인 정부가 영유권 주장
18세기 초 에스파냐 왕위 놓고 프랑스와 영국·오스트리아 전쟁…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영국이 차지, 현재도 군사·경제적 요충지
최근 스페인 정부는 영국이 점유하고 있는 지브롤터(Gibraltar)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지브롤터는 스페인 남쪽 끝에 지중해를 향해 뻗어 있는 곳이에요. 해안에는 길이 약 4㎞, 높이 약 400m의 깎아지르는 듯한 바위산 '지브롤터 바위'가 있는데, 산 위에는 군용 비행장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산 서쪽에는 군함과 무역선이 오가는 항구가 있고요. 지브롤터를 내놓으라는 스페인의 주장에 대해 영국 정부는 "지브롤터 주민 다수가 영국령으로 남기를 바라고 있다"며 영유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어요.
이베리아반도 끝에 위치한 지브롤터의 모습이에요. 지브롤터는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군사·경제적 요충지입니다. /위키피디아
유럽 대륙 서쪽 끝과 아프리카 대륙 북서쪽 끝이 마주 보는 지브롤터는 아주 오래전부터 군사·경제적 요충지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나라가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지요. 그럼 지브롤터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고, 영국은 어떻게 지브롤터를 차지했는지 함께 알아볼까요?
◇'헤라클레스의 기둥'에서 '자발 타리크'로
고대 그리스·로마 사람들은 지브롤터를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고 불렀어요. 그리스 신화를 보면 엄청난 힘을 가진 영웅 헤라클레스가 아틀라스 산을 무너뜨려 바다를 메우고 소 떼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스·로마인들은 지브롤터 바위산을 보고 아틀라스 산이 무너진 일부라고 생각해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고 부른 것이죠.
'헤라클레스의 기둥'으로 불리던 바위산이 '지브롤터'로 불리게 된 건 8세기 초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반도로 진출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7세기 초 아라비아반도에서 등장한 이슬람교는 빠르게 세력을 넓혀 아라비아반도 전체를 장악했고, 사산왕조 페르시아를 멸망시켜 제국으로 발전하였어요. 이들은 유럽 쪽으로도 세력을 넓히려 했지만 오늘날 터키와 그리스 일대를 차지한 비잔티움 제국이 이슬람 진출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러자 이슬람 군대는 말머리를 돌려 북아프리카로 세력을 넓혔고, 마침내 아프리카 대륙 북서쪽 끝에 닿았어요. 그리고 해협 너머로 보이는 이베리아반도로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타리크 이븐 지야드(Tāriq ibn Ziyād·?~720)가 이끄는 이슬람 군대는 해협을 건너 바위산을 점령한 뒤 사령관의 이름을 따 '자발 타리크(Jabal Tāriq·'타리크의 언덕'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바위산에 붙여주었어요. 이 '자발 타리크'가 후대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지브롤터'로 변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발 타리크를 넘은 이슬람 군대는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하던 서고트 왕국을 무너뜨렸고, 이후 15세기까지 이베리아반도에는 이슬람 세력권이 유지되었어요. 하지만 13세기부터 이베리아반도 내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려는 재정복운동(Reconquista)이 활발해지면서 이슬람 세력은 점차 작아졌고, 1492년 에스파냐 왕국 군대가 이슬람 세력의 최후 거점인 그라나다를 점령하면서 지브롤터는 에스파냐 왕국이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과 지브롤터
에스파냐 왕국이 다스리던 지브롤터를 영국이 차지하게 된 건 지금부터 약 300년 전인 18세기 초의 일입니다. 17세기 말 에스파냐 왕국은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인 카를로스 2세가 다스리고 있었어요. 당시 합스부르크 왕가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독일 국왕, 오스트리아 대공, 에스파냐 국왕 자리를 모두 차지해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에스파냐 왕위 전쟁 당시 영국·네덜란드 해군과 프랑스 해군의 해전을 그린 그림.
그런데 카를로스 2세가 후사를 남기지 않고 죽자 스페인 왕위를 누가 이을 것인지를 두고 여러 나라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어요. '태양왕' 루이 14세가 다스리던 프랑스는 "카를로스 2세의 조카 손자이자 루이 14세의 손자인 앙주 공작 필리프가 에스파냐 왕위를 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카를로스 2세가 앙주 공작 필리프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영국·오스트리아·네덜란드 등은 "카를로스 2세의 조카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 레오폴트 1세의 아들 카를 대공이 에스파냐 왕위를 이어야 한다"며 프랑스에 맞섰어요. 만약 앙주 공작 필리프가 에스파냐 국왕이 되어 프랑스와 스페인이 합병하면, 프랑스가 너무 강력해지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양쪽의 입장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프랑스와 영국·오스트리아·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동맹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어요. 이것이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1701~1713)'입니다. 10년이 넘는 전쟁에 지친 양측은 앙주 공작 필리프가 '펠리페 5세'가 되어 스페인 왕위를 잇는 대신 프랑스가 스페인을 합병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위트레흐트 조약을 맺어 전쟁을 끝냈어요.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에스파냐·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럽 각지에 가지고 있던 영토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등이 나누어 갖게 되었습니다. 영국도 위트레흐트 조약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차지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에스파냐 왕국으로부터 지브롤터를 할양받은 것입니다. 이때부터 지브롤터는 영국이 쭉 지배하게 된 것이죠.
영국이 지브롤터를 할양받은 건 지브롤터의 전략적 가치가 아주 높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중해 인근 국가들은 지브롤터를 지나야만 대서양으로 나갈 수 있었어요. 지브롤터해협이 봉쇄되면 이들에게 지중해는 호수나 다름이 없었지요.
이 점을 간파한 영국은 지브롤터를 차지함으로써 지중해 제해권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지브롤터는 군사 요충지로서 미군의 작전기지로 사용되었고, 지중해 제해권을 노린 독일 공군이 지브롤터를 폭격하기도 했지요.
20세기 이후 세계 각지에 있던 식민지를 포기한 영국이 오늘날까지 지브롤터를 포기하지 않는 건 역사로 증명된 지브롤터의 전략적 가치가 오늘날에도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윤형덕 한일고 역사 교사/기획·구성=배준용 기자, 조선일보(17-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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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롤터, 스페인 속 영국 땅... 300년 넘게 영토 분쟁 중
18세기까지 스페인 땅이었지만 현재 영국 땅인 '지브롤터'를 두고 최근까지 영국과 스페인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이베리아 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영국령 지브롤터는 1713년 영국이 '위트레흐트' 조약을 맺고 당시 스페인 왕을 지지하는 대가로 스페인으로부터 넘겨받은 지역이에요. 그 후 300년간 스페인과 영국은 이 땅을 두고 서로 권리를 주장하며 싸우게 되었지요.
스페인이 1713년 영국에 넘긴 땅인 지브롤터에는 경관이 아름다운 ‘지브롤터의 바위’가 있어요. /Getty Images/이매진스
최근 지브롤터에서는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을 뜻하는 'Britain'과 탈퇴를 뜻하는 'exit'의 합성어) 문제를 놓고 주민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며 영국·스페인 공동 주권까지 주장하고 있어요. 지리적으로 스페인과 가까운 지브롤터의 경제와 일자리 때문이에요. 현재는 영국이나 스페인이 모두 유럽연합 회원국이기 때문에 지브롤터에서 스페인 내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간단해요. 하지만 만약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한다면 스페인이 지브롤터에 대한 국경 통과 절차를 엄격하게 통제하게 되겠죠. 그렇다면 지브롤터에 스페인을 통해 오가는 관광객이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되고 지브롤터의 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 예상돼요. 영국은 오는 23일 유럽연합을 탈퇴할지 여부를 두고 국민 투표를 벌일 예정이래요. 현재 지브롤터 주민의 88%가 브렉시트를 반대하고 있지만 이는 영국 전체 투표권자의 0.05% 정도에 불과해 국민 투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래요. 그래서 지브롤터 자치 정부의 파비안 피카르도 수석장관이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할 경우 지브롤터 지역은 스페인·영국의 공동 주권을 주장하겠다"고 말한 거지요.
지브롤터의 인구는 약 3만여 명이고, 면적이 우리나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3분의 2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과거 스페인이 통치하던 시절에는 '이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쓰인 표지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고 해요. 지중해를 중심으로 살아오던 옛날 유럽 사람들은 무역과 항해가 활발해진 15세기 후반이 되기 전까지 지브롤터 해협을 세상의 끝으로 여겼대요. 그래서 세상의 끝을 빠져나가면 절벽으로 떨어져 죽을 거라고 착각했지요.
지브롤터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헤라클레스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는 명소 '지브롤터의 바위'도 있어요. 헤라클레스가 모험을 떠나다 지중해의 길목이 거대한 바위들로 막혀 있는 것을 보고, 맨손으로 그 바위들을 갈라서 양쪽으로 내던져 길을 만들었대요. 헤라클레스가 던진 바위가 지중해를 내려다보는 절벽 땅에 떨어져 산을 이룬 것이 바로 지브롤터의 바위라고 해요. 지브롤터의 바위에서는 이곳의 명물인 수많은 원숭이를 만날 수 있죠. 이곳에 왜 이렇게 원숭이들이 많은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져요. 먼 옛날 아프리카에 살던 원숭이들이 지중해를 넘어 지브롤터에 온 뒤 살아남았다는 설과, 아랍이나 영국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데려다 놓았다는 설이 있지요. 이 원숭이들에게 마음대로 먹이를 주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요. 만일 먹이를 주다가 적발되면 우리 돈으로 약 700만원 정도의 어마어마한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하니 꼭 주의해야겠죠?
-기획·구성=김지연 기자/민병권·중동고 교사(EBS 세계지리 강사), 조선닷컴(1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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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롤터가 영국령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700년 스페인 왕 카를로스 2세가 대를 이을 자식을 남기지 않은 채 죽자, 혈통상으로 스페인 왕가와 가장 가깝다고 여겨진 프랑스 루이 14세의 손자가 왕위에 올랐다. 프랑스가 스페인에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는 동맹을 맺고 왕위 계승을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지브롤터 해협의 '헤라클레스의 기둥'
이 전쟁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라고 합니다. 전쟁은 13년이나 계속되었고, 결국 동맹국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이 전쟁으로 영국은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관문인 지브롤터를 차지하게 됩니다. 1830년 영국은 지브롤터를 식민지로 선포하고,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목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스페인에서는 줄기차게 영토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영국이 들어줄 리가 없습니다. 영국은 주민의 동의 없이 지브롤터의 지위를 변경하는 그 어떤 협상도 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 실시한 국민 투표에서 지브롤터 사람들의 98.7%가 영국령에 계속 남아 있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세계지리를 보다(박찬영∙엄정훈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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