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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 전쟁 이긴 영웅의 10년 방랑 서사시… ] [트로이 발굴]

뚝섬 2026. 7. 20. 11:43

[오디세이아, 전쟁 이긴 영웅의 10년 방랑 서사시… 서양 고전 원조]

[트로이 발굴(1871~ )]

 

 

 

오디세이아, 전쟁 이긴 영웅의 10년 방랑 서사시… 서양 고전 원조 

 

오는 8월 5일 국내 개봉 예정인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는 올해 전 세계 영화계의 가장 큰 화제로 꼽힙니다. 작년 말 이 영화 1차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 하루 만에 누적 조회 수 1억2140만회를 기록했어요. 2023년 개봉해 아카데미 작품상 등 수많은 상을 받은 놀런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 예고편 기록의 2배가 넘습니다. 국내에서도 기대감이 어마어마한데요. 예매를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이 몰려 홈페이지와 모바일 앱 접속이 지연되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아’를 원작으로 합니다. 오디세이아의 영어식 명칭이 오디세이예요.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라는 뜻의 서사시로, 트로이 전쟁 후 섬나라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귀향하면서 겪은 신기한 모험을 담은 책입니다. ‘일리아스’와 함께 서양 고전의 원조로 여겨진답니다. 오디세이아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요?

 

트로이 전쟁 승리 묘안 짜내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 전쟁은 그리스와 트로이 두 세력의 대결이에요. 전쟁은 10년 동안이나 지지부진했는데, 계책에 능한 오디세우스가 그리스군 총사령관에게 묘안을 내놓습니다. 아군이 있던 자리에 정예군 40명을 숨겨놓은 거대한 목마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몰래 숨어 있자는 계책이었습니다.

 

트로이는 그리스가 긴 전쟁으로 지쳐 철수했다고 생각했고, 이 목마를 전리품 삼아 성 안으로 들여놓습니다. 하지만 한밤중 목마 안 병사들이 나와 성문을 열었고, 결국 트로이는 함락됩니다. 문제가 없는 것처럼 위장한 뒤 상대 안으로 깊이 침투해 헤집는 전략이었던 겁니다. 오늘날에도 자주 쓰는 컴퓨터 바이러스 용어 ‘트로이 목마’가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해를 끼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위험한 바이러스죠. 

트로이 목마 그림입니다. 프랑스 화가 앙리폴 모트(1846~1922)가 그렸습니다.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이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눈을 멀게 하는 장면을 담은 고대 도자기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이 일로 폴리페모스의 아버지인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게 됩니다.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1849~1917)가 그린 오디세우스 일행과 세이렌의 모습입니다. 호기심이 많은 오디세우스는 '죽음의 노래'인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어 선원들에게 귀를 막고 자신은 묶어두라고 지시했습니다.

오디세우스의 유모가 변장한 그를 알아보는 장면을 담은 그림입니다. 영국 화가 에드워드 포인터(1836~1919)가 그렸습니다. /위키피디아

 

‘죽음의 노래’ 향한 호기심

 

오디세우스는 전쟁 영웅이었지만 이후 무려 10년 동안이나 고향에 돌아가지 못합니다. 신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에요. 트로이 함락 후 귀향길에 나선 오디세우스는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들렀다가 부하 여섯을 잃게 됩니다. 오디세우스는 녀석이 잠에 곯아떨어진 사이 그의 하나밖에 없는 눈을 못 쓰게 만든 다음 간신히 동굴을 탈출했습니다. 문제는 폴리페모스의 아버지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라는 것이었죠. 분노한 포세이돈이 폭풍우를 일으켜 해코지하는 바람에 오디세우스는 하릴없이 바다를 방랑하게 됩니다.

 

한번은 오디세우스가 ‘세이렌’ 자매의 섬을 지나게 됩니다. ‘세이렌’은 머리는 여자, 몸통은 새인 괴물이에요. 상체는 여자, 하체는 물고기인 인어라는 다른 설도 있습니다. 그들은 평소엔 조용히 있다가도, 멀리서 배가 보이면 매혹적인 노래를 부릅니다. 선원은 배를 몰고 더 가까이 가서 노래를 듣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게 돼요. 결국 배는 암초에 부딪혀 난파되고, 선원들은 모두 익사하고 맙니다.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섬에 가까워지자 자신만큼은 세이렌 자매의 노래를 꼭 듣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부하들의 귀는 밀랍으로 막고, 자신은 돛대에 단단히 묶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절대 풀어 주지 말고 더 단단히 묶으라고도 당부했어요.

 

마침내 세이렌 자매의 매혹적인 노래가 들려왔습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부하들과 달리, 오디세우스는 섬에 가까이 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는 몸부림치며 부하들에게 풀어 달라고 외쳤어요. 그러자 부하 두 명이 그 모습을 보고 미리 명령받은 대로 다른 밧줄로 그를 더 꽁꽁 묶어 버렸어요. 그렇게 무사히 세이렌의 섬을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호기심이 드러난 이 이야기는 오디세이아의 명장면으로 꼽힌답니다. 오늘날에도 세이렌의 모습을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데요.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의 로고는 세이렌이 인어라는 설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또 경보를 의미하는 ‘사이렌’도 ‘세이렌’에서 유래한 말이에요.

 

기회 노리며 자신의 정체 숨겨

 

오디세우스는 여러 모험 끝에 드디어 고향 이타카에 돌아와요. 하지만 곧바로 궁전에 가지 못했어요. 그가 죽었다고 지레짐작한 젊은 귀족들이 매일 궁전에 찾아와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구혼하고 치근댔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는 아테나 여신의 도움으로 거지 노인으로 변신한 채 궁전 밖 돼지치기의 오두막에서 먼저 아들 텔레마코스를 만납니다. 그리고 함께 구혼자들을 응징할 계획을 세워요.

 

텔레마코스가 먼저 돌아가고 오디세우스는 다음 날 궁전으로 향했어요. 이때 오디세우스는 궁전 앞에서 트로이로 떠나기 전 자신이 아꼈던 충견 아르고스를 만납니다. 시간이 흘러 노쇠한 자신의 개를 보고 오디세우스는 너무 반가웠지만, 만약 그를 안았다가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울음을 삼키며 모른 체 지나쳤어요. 아르고스는 이내 고꾸라져 최후를 맞이했죠.

 

그날 저녁 구혼자들이 모두 돌아간 뒤 페넬로페는 거지로 분장한 오디세우스를 부릅니다. 그의 정체가 남편인 줄은 모르고, 혹 거지 노인이 구걸하느라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남편 소문을 들었나 싶어 불렀던 거예요. 하지만 이때도 오디세우스는 아내에게 정체를 밝히지 않아요. 페넬로페가 내일이면 남편감을 선택해야 한다며 한탄해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의 유모를 불러 거지 노인의 발을 씻겨주고 침상을 깔아주라고 합니다. 유모는 그의 발을 씻겨주다가 허벅지에서 흉터를 발견해 그가 오디세우스임을 알아차리고 소스라치게 놀라는데요. 그러자 오디세우스는 유모의 입을 틀어막으며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합니다. 이처럼 확실한 기회를 잡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겼던 오디세우스는 결국 구혼자 108명을 처단하고 아내와 재회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 오디세우스는 평정심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이후 등장한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평정심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는데, 오디세우스를 롤모델로 삼을 정도였답니다.

 

-김원익 홍익대 문과대학 교수·사단법인 세계신화연구소장/기획·구성=김민기 기자, 조선일보(2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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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발굴(1871~ )

 

아마추어 고고학자가 찾아낸 그리스 서사시의 진실

 

최근 그리스 정부 소속 과학자들이 그리스 남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테네아'라는 고대 도시 유적을 발굴했어요. 테네아는 트로이전쟁으로 트로이가 멸망한 뒤 생존자들이 도망가서 세운 도시라고 해요.

트로이전쟁은 서양 최초의 서사시 '일리아스(Ilias)'의 소재입니다. 10년에 걸친 트로이전쟁 중 마지막 해에 약 50일 동안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아킬레우스, 아가멤논, 오디세우스, 파리스 등 쟁쟁한 영웅들이 등장하는 흥미로운 전쟁 이야기로 유명하지요.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전쟁은 신화냐 역사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어요. 지금은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고 있지요. 테네아가 발굴되면서 트로이전쟁이 허구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증거가 하나 더 늘어난 거예요.

트로이의 존재가 증명된 건 19세기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Schliemann· 1822~1890·작은 사진) 덕분이에요. 그는 유년 시절 읽은 '일리아스'를 그대로 믿고, 직접 트로이를 찾아내겠다고 다짐했어요.

호메로스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슐리만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깐 먼저 호메로스와 그의 작품 '일리아스'에 대해 알아볼게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Odysseia)'의 작가 호메로스는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입니다. 기원전 8세기 말에 살았던 인물로 추정되지만, 정확히 언제 태어나 언제 숨졌는지는 알 수 없어요. 그가 정말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썼는지, 전해오는 이야기를 정리한 건지도 확실치 않죠. 호메로스가 여러 명이라는 주장도 있어요.

트로이전쟁은 호메로스가 살던 시대보다 수백년 앞선 기원전 1300~1200년 사이에 일어났다고 해요. 하지만 호메로스 이전에 이 전쟁에 대해 기록한 사료는 남아 있지 않아요. 짐작하건대 트로이전쟁은 여러 음유시인의 기억과 노래를 통해 구전된 것 같아요. '일리아스'라는 제목은 '일리온(Ilion)의 노래'라는 뜻이에요. 일리온은 트로이의 다른 이름이랍니다.
 

터키 동부에 남아있는 트로이 유적. 독일인 하인리히 슐리만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가 진짜라고 믿고 19세기 이곳에서 트로이 유적을 발굴해내요. 허구인 줄 알았던 트로이가 역사였다는 게 확인된 거죠. 트로이 문명 유적은 199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어요. /터키문화관광부

 

다만 우리가 흔히 아는 트로이의 목마 이야기는 '일리아스'에 나오지 않아요. 트로이전쟁을 다룬 여덟 편의 그리스 서사시를 '에피코스 키클로스'라고 부르는데요, 그중 두 번째 이야기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랍니다. '일리아스'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를 그리고 있지요. 트로이의 목마 이야기는 다섯 번째 서사시인 '일리오스의 함락'에 나옵니다. 이건 호메로스가 아니라 아크르티노스라는 시인이 썼다고 알려져 있어요.

'일리아스'와 함께 호메로스가 남긴 또 다른 작품이 일곱 번째 서사시 '오디세이아'랍니다.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수많은 역경을 딛고 10년 걸려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죠.

사실 슐리만이 트로이를 발굴하기 전까지 대다수 사람은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역사적 사실이 아닌 문학적 허구라고 생각했어요. 슐리만의 발굴로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지요.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
 

 

슐리만은 1822년 독일 북부 작은 마을에 태어나,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자랐어요. 고대사에 관심이 많은 아버지가 어린 슐리만에게 그리스·로마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지요. 어린 슐리만은 어딘가에 트로이 유적이 묻혀 있을 테니, 발굴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는 14세에 식품점 직원으로 일하게 돼요. 어느 날 가게에 술 취한 손님이 들어와 '일리아스'의 일부를 그리스어로 낭송하는 걸 듣고, 잠시 잊고 있던 꿈을 다시 떠올렸지요. 이후 슐리만은 암스테르담에 있는 무역회사에서 일하게 됩니다. 일이 잘 풀려서 1845년 러시아에 무역회사를 세웠어요.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이 크림전쟁(1853~1856)을 벌일 때 군수물자를 팔아 큰돈을 벌었죠. 돈을 충분히 모았다고 판단했을 때 그는 사업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고고학 발굴에 뛰어들었어요.

그때까지 많은 사람은 터키의 부나르바시 마을이 트로이가 있던 자리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슐리만은 그보다 북쪽에 있는 히사를리크일 거라고 봤어요. 그쪽이 호메로스가 묘사한 지형에 더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했죠. 히사를리크는 에게해와 마르마라해를 잇는 다르다넬스 해협 서쪽 끝에 있어요.

슐리만은 1871년 히사를리크 발굴에 착수했어요. 놀랍게도 이 지역은 한 시대의 유적 위에 다음 시대의 유적이 층층이 쌓여 있는 곳이었어요. 무려 아홉 층이 쌓여 있었지요. 그는 그중 두 번째로 오래된 층(기원전 2500~2200년 추정)에서 성벽과 성문 유적을 발견했고, 트로이 유적이라고 확신했어요.

지금까지 나온 연구 성과를 종합하면, 진짜 트로이 유적이 묻힌 층은 슐리만의 생각과 달리 그보다 1000년 뒤에 형성된 일곱 번째 층(기원전 1275~1100년 추정)이었어요. 슐리만은 커다란 업적을 세웠지만 안타깝게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고고학자가 아니었어요. 그는 오로지 트로이 발굴에 몰두했기 때문에 다이너마이트까지 써가며 성급하게 땅을 파헤쳤어요. 그 바람에 일곱 번째 층에 있던 진짜 트로이 유적 상당 부분이 파괴되어 버렸지요.

그런 이유로 "슐리만은 아마추어였을 뿐"이라는 비판이 나와요. 발굴한 유물 일부를 빼돌린 탓에 '도굴꾼'이라는 욕도 먹지요. 하지만 그의 열정으로 수천년 잠들어 있던 유적이 빛을 봤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요. 지금도 고고학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윤서원 이대부고 역사 교사/기획·구성=양지호 기자, 조선일보(18-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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