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隨想錄]

[94세 기타, 96세 그림 시작.. 일본 百歲人들..] [월급쟁이 퇴직 후..]

뚝섬 2025. 3. 11. 10:04

[94세 기타, 96세 그림 시작… 취미가 일본 百歲人들 살아있게 한다] 

[월급쟁이 퇴직 후.. ] 

 

 

 

94세 기타, 96세 그림 시작… 취미가 일본 百歲人들 살아있게 한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올해 방송 100주년을 맞아 얼마 전 100세 장수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일본에는 현재 100세 이상 고령자가 9만5119명 있다(2024년 9월 기준). 인구비를 감안하면 우리보다 대략 5배 많다.

 

NHK는 백세인 100명을 찾아가 건강 비결을 분석했는데, 3가지로 압축했다. 첫째는 염증을 줄이고 노화를 억제하는 양배추 등 식이섬유를 매일 많이 섭취했다. 둘째는 하루 종일 뭔가를 하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셋째는 어울림이다. 여러 사람과 두텁고 끈끈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이다. NHK는 사진과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에 동의한 90명을 모아 인물 편람을 냈다. 거기에 백세인의 일상과 인생 좌우명, 100년을 살면서 기뻤던 순간 등이 잔잔히 나온다.

 

102세 여성은 일본 민속 현악기 샤미센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낭곡사 생활을 열일곱 살에 시작해서 지금도 하고 있단다. 그녀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먼저 말을 거는 수다쟁이라며 매일 낫토를 먹는다고 했다. 사교 댄스 강사가 직업이던 100세 할머니는 여전히 수강생을 가르친다. 그녀는 독일어를 잘해서 독일인 제자도 키운다고 했다.

 

101세 현역 약사인 여성은 살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영화로 2016년에 개봉된 판타지 로맨스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君の名は)‘을 꼽았다. 사람의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라며 90년째 자전거 수리점을 하고 있는 102세 남성은 낚시로 큰 복어를 잡았던 기억이 가장 기뻤다고 했다. 그는 ‘절대’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게 좌우명이고, 건강을 위해 매일 단무지를 100번 씹어서 먹는다고 했다. 전직 교사였던 104세 여성은 자기가 가르친 학생들이 88세가 되어 연 동창회에 초대받아 갈 수 있었던 일이 기뻤다고 했다.

 

98세에 뇌동맥류 출혈이 발생했다가 회복한 101세 여성은 97세에 시작한 스마트폰과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대화를 즐긴다. 해발 2300m 산장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100세 여성은 지금도 매일 20~60㎏ 양파 껍질을 까고, 살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가게에 수돗물이 나왔던 때라고 말했다.

 

100세인 모두 매일 한결같이 취미 생활을 즐기거나, ‘인생 운동’을 가지고 있었다. 94세에 기타를 배우고, 95세에 컴퓨터를 알고, 96세에 그림을 시작하고, 100세에 영어를 새로 익힌다. 70대에 책의 글을 점자로 바꾸어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게 하는 점역을 배워서 현재 교정사로 활동하는 여성이 있고, 80대에 취미로 시작한 헝겊 아트가 지금은 작품 활동이 됐고, 90대에 시작한 동물 조각이 번듯한 작가 대열로 이어졌다. 나이 든 이들을 대상으로 화장품 판매원으로 일하는 101세 여성은 열흘에 한 번 미용실에 다니며 자신을 꾸민다. 한 달에 4~5번 등산을 다니는 101세 남성은 매일 50명과 대화를 나누는 게 목표라며, 데이 케어 센터 자원봉사에 나선다.

 

12살에 배운 유도를 100세가 되어서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궁금한 것을 못 참던 사람은 지금도 사전을 끼고 살고, 젊었을 때부터 보던 신문을 여전히 매일 아침 숙독하며, 가족에게 시사 뉴스를 해설한다. 햄버거, 감자튀김, 피자, 스파게티, 일본 술을 즐기는 사람도 꽤 된다. 누구는 매일 바구니를 만들고, 어떤 이는 늘 밭일을 한다. 활쏘기, 서예, 역사 소설 읽기, 자전거 타기, 프랑스 수예, 골프, 그림 색칠하기, 자수, 여행기 쓰기, 자서전 쓰기, 거리 청소, 수영, 게이트볼 등 각자 즐기는 취미와 일상 작업이 다양하다.

 

100년을 살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가장 많이 등장한 주제는 전쟁이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나를 가족들이 반긴 장면, 죽은 줄 알았던 남편과 재회한 기억, 미군 포로가 됐다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종전(終戰) 소식을 들으며 먹었던 주먹밥 등이다.

 

100개의 무덤에는 100개의 스토리가 있단다. 백세인 인물 편람을 보면서 100년의 인생이라는 것,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하던 거 하고, 나이에 굴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거 하면 되지 싶다. 다만 시대는 평화로워야 하고, 건강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하는데, 인생을 예술가처럼 살면 인생도 길고 삶이 작품이 되지 않을까.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면, 거창한 것보다 일상을 뭘로 채울지를 고민하시라. 건강이 우리에게 시간을 선물해 줄 테니.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조선일보(2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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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 퇴직 후..

 

우재룡 서울은퇴자협동조합 이사장은 두루 인정받는 '은퇴 전문가'였다. 번듯한 금융사에서 일하며 한 해 150차례 넘게 은퇴자를 위한 강연을 하다 지난해 퇴직했다. '은퇴 후'를 가르치던 그가 막상 은퇴해보니 일정 챙기는 것부터 막막했다. 비서와 운전기사가 갑자기 없어졌기 때문이다. 몇십 년 만에 버스를 타고 다녔더니 석 달 만에 몸무게 2kg이 빠졌다. 그는 "미리 준비하라고 외치다 막상 내가 퇴직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 했다. 

 

▶월급쟁이들은 퇴직하고 대개 한두 달 해외여행을 다녀온다. 그러고 나서 갈 길을 찾는다. 외국계 회사 간부가 얼마 전 은퇴해 빵집 창업 강좌를 들었다. 그는 "목숨 걸고 창업하라"는 강사 말에 주눅 들어 다시 월급쟁이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준비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시간만 보낸 셈이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며 창업을 그저 쉽게만 여겼다 정신 번쩍 들었다 

 

▶월급쟁이들은 회사만 왔다갔다하느라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버스 노선은 고사하고 지하철 노선이 너무 복잡해 한눈팔다 반대 방향으로 타기 일쑤다. 심하게는 "전역하는 직업군인 돈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도 있었다. 오랜 군 생활을 하다 보면 세상 물정에 어둡다는 얘기다. 월급쟁이도 그리 다르지 않다. 부장이니 이사니 하는 직함 떼고 마주 선 세상은 정글이나 다름없다. 사람 쉽게 믿다 낭패하기 일쑤다. 

 

▶삼성전자가 퇴직 앞둔 임직원에게 '유익한 생활 정보'라는 안내 책자를 나눠줬다고 한다. 100여 쪽에 통장 만들고 예금 인출하는 법부터 시내버스 타는 방법까지 시시콜콜 싣고 있다. 지하철에선 '목적지로 가는 전동차를 확인하고 승강장과 전동차 사이에 발이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서 승차한다'고 썼다. 여간 자상한 게 아니지만 정작 집에서 발 헛디디지 않는 요령이 빠졌다. 

 

▶월급쟁이 남편들은 흔히 아내와 속 터놓고 얘기한 지 오래됐다. 은퇴 후 얼마 안 가 아내를 동반자로 믿었던 게 착각이라는 걸 깨닫는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조사에서 남편 56%는 은퇴 후 하루 절반 이상을 아내와 보내고 싶다고 했다. 아내들은 47%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은 하루 4~5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나마 아내들이 후하게 대답했다. '2의 인생'은 은퇴 자금 모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마음의 준비를 넘어 집 안과 밖에서 어떻게 살지 도상(圖上) 연습을 해야 한다. 평생 가족 먹여 살리느라 일벌레로 살다 가족에게까지 거추장스러운 짐이 되지 않으려면.

 

-방현철 논설위원, 조선일보(1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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