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隨想錄]

[어제 점심 메뉴보다 추억 속 노랫말이 더 빨리 떠오르는 이유는] ....

뚝섬 2025. 3. 23. 05:55

[어제 점심 메뉴보다 추억 속 노랫말이 더 빨리 떠오르는 이유는]

[촌 늙은이의 일상]

 

 

 

어제 점심 메뉴보다 추억 속 노랫말이 더 빨리 떠오르는 이유는

 

심리학·신경과학 교수인 저자, 25년 넘게 기억 작동방식 연구 

 

기억한다는 착각

차란 란가나스 지음|김승옥 옮김|김영사|

 

퀴즈를 내보겠다. 어제 점심에 뭘 먹었는지 한번 떠올려보라. 몇 초 걸렸는지 세보는 것도 좋다. 그다음 자신의 애창곡 가사도 흥얼거려보라. 크게 불러도 된다.

 

저자에 따르면 아마 당신은 점심 메뉴를 말하는 것보다 가사를 떠올리는 게 더 빨랐을 것이다. 점심 메뉴보다 글자 수가 훨씬 많고, 사람에 따라서는 몇십 년 전 노래일 텐데도 그렇다. 옛일만 생각나는 거 보니 치매 초기인가’ 하기는 섣부르다.

 

25년 넘게 기억의 작동 방식을 연구해 온 저자는 기억은 본질적으로 선택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일생의 경험을 모두 기억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왜 이걸 기억하느냐’를 물어야 한다.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 보관소가 아니다. '왜 자꾸 잊어버리는가' 대신 '왜 기억하는가'를 물어야만 기억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책에 나오는 미국인은 하루 평균(또는 11.8시간 동안) 34기가바이트의 정보에 노출된다. 한국인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뇌는 아주 신중히 기억해야 할 경험을 고른다. 뇌가 보기엔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의미 없는 점심 메뉴보다, 마음을 사로잡은 노래 가사가 더 기억할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캠퍼스 심리학 및 신경과학 교수인 저자는 최신 연구 결과를 곁들여 ‘기억의 과학’으로 안내한다. 참고 문헌과 각주만 80쪽에 달할 정도로 강력한 과학적 근거로 무장했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쉽게 공감할 만한 일상 사례를 더해 술술 읽히도록 한, 대중 과학서의 좋은 예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번쯤 특정 음악을 듣고, 심연에 가라앉아 있던 과거의 한순간으로 되돌아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기억은 우리를 과거의 장소와 시간으로 데려가는 ‘정신적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학술적 용어로 ‘일화 기억’이다.

 

오랜만에 방문한 특정 장소, 독특한 냄새와 맛, 음악 등이 이를 돕는 강력한 우군이다. 재밌는 건 ‘감정’도 여기에 한몫한다는 것. 짜증이 치솟을 때, 과거에 짜증 났던 일이 함께 떠오르는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흔히 기억을 이미 일어난 일의 평면적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뇌는 이 일을 어디서, 언제, 어떻게 했는지와 연결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다. ‘맥락’이다. 매일 수많은 망각을 경험하는 건, 기억이 사라지기 때문이 아니라 그 기억으로 이어진 길을 다시 찾아내지 못하기 때문. 알츠하이머 환자가 겪는 현실이 이렇다.

 

알츠하이머까지 가지 않더라도, 갑자기 부엌으로 나왔는데 ‘내가 왜 왔더라’ 머리를 긁적이며 방으로 되돌아간 일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는 기억력이 나빠서가 아니라, 기억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사건의 경계선’이라 부르는 정상적인 현상이다. 장소 변화 등 이른바 ‘사건의 경계선’에서 맥락에 대한 감각이 갑자기 변하면, 직전에 발생한 일을 떠올리기 어려울 수 있다.

 

‘도식(schema)’은 방대한 양의 정보를 기억하게 돕는 우리 뇌의 강력한 정보 처리 도구다. 일종의 정신적인 틀로, 뇌가 최소한의 노력으로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고 해석할 수 있게 해준다. 가구점 이케아에 몇 번 다녀오고 나면 미로 같은 진열대의 배치도를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 뇌는 이케아의 다른 지점에 가더라도 이미 생성된 ‘이케아 도식’을 재활용해, 그때그때 새롭게 달라지는 부분만 의미 있게 기억하는 데 정신을 집중할 수 있다.

 

물리적 공간뿐 아니다. 카페에서 주문할 때 이전 주문 기억에서 공통점을 파악해 이를 ‘카페 주문하기 도식’으로 만들 수 있다. 이렇듯 다양한 일상에서 우리 뇌는 도식을 활용한다.

 

저자는 “도식 덕분에 수백, 수천 개의 경험에 관한 기억을 압축해 하나의 포맷으로 만들어,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건들에 대해 추론하고 예측할 수 있게 된다”며 “도식은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한 지식을 이용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선수 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그러니 기억은 과거의 나뿐 아니라, 어쩌면 현재와 미래의 나를 알아가게 하는 단서일지 모른다. 우리가 지금 기억에 대해 알아야 할 이유다.

 

-남정미 기자, 조선일보(25-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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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 늙은이의 일상

 

비가 내린다. 연일 내리는 비는 인도양을 지나는 기압골이 중국대륙을 거쳐 올라오기 때문이란다. 이런 비가 여름에도 가을에도 내려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생각하는 것은 울타리 곁에 심어놓은 측백나무들이 조금씩 잎을 말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지만 어찌보면 이런 것 자체도 우리인간들이 자연을 그냥 두지 않고 인위적인 개발을 하여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리라.

 

아내는 아침을 준비하고 나는 비를 맞으며 뒤란길을 걷는다. 말이 적은 주치의가 오로지 나즈막하게 한말은 "많이 걸으라"는 것이다. 줄줄히 기다리고 서있는 환자를 보면서 많은 것을 질문하기도 어려워 ".." 하고 짧은 대답을 하고 나면 옆방으로 옮겨가는 의사를 보며 "돈도 잘 벌고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것은 좋지만 참으로 고단한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하였다. 아픈 사람을 만나고 자신을 바라보며 지친 육신을 위로 받으려는 사람들의 말과 눈빛을 보면서 의사도 지치리라 생각했다.

 

자연은 겨울채비를 끝내고 사람들만 아직도 마감하지 못한 듯 거리를 지나는 차들이 분주하다. 아침을 먹고 마주한 아내가 차를 타다 앞에 놓고선 의무적으로 마시라 하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커피를 먹으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 하였더니 요즘은 생강차와 3년 전에 담아 걸러놓은 매실액을 타서 준다. 너무 진하면 좋지 않다며 향기를 음미할 정도의 차가 앞에 놓여있고 나는 찻잔을 들어 아내의 찾잔에 부댓겨 준다. 말이 적은 편인 나는 아내가 늘 불만인 것을 잘 안다. "나가서는 말도 잘하면서....집에 오면 말을 하지 않는다"는 불만석인 투정이다.

 

그것 역시 옛 이야기다. 젊은 시절에야 내가 하는 일을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설득하고 성사를 시키기 위해 많은 말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사람을 만나려 해도 젊은이들이 부담을 느끼는 듯하여 사무실 직원 이외에는 얼굴을 마주할 일조차 없어도 아내의 생각 속에는 아직도 내가 창창한 젊은 시절의 청춘인 듯 착각 하나보다.

 

"둘이 사는 집에 뭐가 이렇게 많은가..?" 가끔은 이렇게 불만의 말을 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쓰고 또 필요한 것들을 버리지 않았지만 아주 가끔씩 쓰임이 있는 것들조차도 버리지 못한 것들이 남겨진 채 버거운 현실 속에 잠겨있는 것... 그것들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버리려 해도 버려지지 않는 물건들을 어찌해야 하나 곰곰히 생각하다가 언젠가 날을 잡아 실행해야지 하면서도 차일 피일 미루다 보면 버려질 것과 버려지지 않을 것을 구분하기도 어렵다. "남겨두면 남아있는 사람이 치우기도 버거운 것들.. 큰 액자, 취미로 모은 수석, 도자기, 평풍, 부엌 창고를 들여다 봐도옷장을 뒤져봐도, 가득한 것들이 지난 시절 필요로 했던 순간을 잊은채 내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 잊혀진 것들이다.

 

그것 역시 그것들에 대한 미련과 추억 때문이다. 한때 글씨 받기를 즐겨해서 켜켜히 받아둔 글씨와 아주 큰 액자들... 그림들, 도자기들... 지금와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현실이다내 자식은 내가 모아놓은 것들에 그리 관심이 없다. 그때는 왜 그렇게 그것들에 집착을 했는지 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제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뉴스가 온통 소식을 점령하고 있다. 그 대통령의 공, 과를 따지기도 하고 굴곡진 삶을 조명하기도 하는 뉴스를 보면서 나는 그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경제위기 IMF로 인해 죽도록 고통받았던 시절이 떠올랐고 그것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아직도 마음속에 경제에 대한 불안이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살아온 아내 역시 흘러간 세월 속에 많이 변했다. 사무실 에 걸려있는 젊은 날 여행을 하면서 아내랑 찍은 사진을 보면 저런 시절도 있었구나 하는 감회가 몰려온다. "남는 사람은 꼭 천도를 해주어야한다는 약속 아닌 약속을 가끔씩 확인 하는 것도, 아들이 오면 우리가 떠난 후의 일들을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것조차 이미 살아온 세월을 익히 알기 때문이리라. "내가 당신보다는 먼저 갈 것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그리 서운하지 않는 마음이 오래 살아온 세월의 흔적일까? 아니면 큰 수술을 받고서 내가 내린 결론 때문일까?

 

일상이 무료하다. 아침에 출근하고 바삐 움직이며 일감이 켜켜히 쌓여있어야 잠이 제대로 오던 시절은 꿈이다. 움직이지 않아도 누가 무어라 말하지 않지만 걷지 않으면 앉게 되고, 앉으면 눞게되고, 누우면 일어날수 없다는 말이 조금은 아직 이른 것 같아 내가 나를 인식시키며 움직임에 쉼이 없게 한다. 아내는 음식을 만들고 나는 뒷설걷이를 하지만 그러한 작은 것들이 나의 일상을 차지하고 있어 가끔은 불만도 생긴다.

 

둘이 먹는 밥상을 차리기 위해 그렇게도 많은 그릇이 동원 되어야 하는지?  "사서 먹읍시다"... 그러면 아내는 건강에 좋지 않다고 펄쩍 뛴다. 되고 않되는 것들의 상식은 종편 건강프로에서 익히 들어 머리에 각인 되어있기에 나조차 풀어내지 못한다. "얼마나 더 살아갈지 모르지만 건강하게 살다 갑시다" 그런 말로라도 건강을 다짐하는 것이 위안이다. "건강하게 살다 갑시다.." 말을 하진 않아도 묵계처럼 눈빛으로 각인된 우리의 삶의 모습이다. 남겨진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삶의 마무리를 위해 건강한 밥상과 운동과 그리고 소통 역시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래도 조금은 맛있는 것도 가끔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건강을 위한 식단과 의사가 지시하는 밥상은 아무래도 맛이라는 차원에서는 쳐지는 점수이기 때문이다

 

비가 내린다. 곧 눈도 내린다한다. 겨울채비는 끝냈지만 추위가 싫다. 장작을 준비했지만 그것을 나르고 불을 지피고 재를 퍼 내는 일... 그것도 찬바람 속에서는 버거운일이다. 하늘은 회색구름이 가득하고 가늘게 내리는 빗줄기는 겨울을 준비하는 대지를 적신다. 마주하고 살아온 아내와의 일상에서 서로 눈빛만으로 의사를 소통할 수 있게 통달된 느낌 속에 우리는 길고 긴 시간을 잘도 참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배려하면서 살아왔다. 아직도 가끔은 젊었을 때의 불만을 들으면서 아내는 그래도 나보다는 더 오래 살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내 앞에 떠날 수 있는 복을 즐겁게 생각해본다.

 

녹슬어가는 육신은 다시 교환하기도 어렵다. 열심히 갈고 닦으면서 간수하고 아끼고 사랑해 주어야 제수명을 다할 것이다. 맑은 영혼을 조금 더 오래 간직 하기위해 눈을 감고 두손을 모으고 참선의 시간을 갖는다. 내 바램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심으며 언젠가는 남은 찌거기를 버릴 것이고. 아주 가벼히 남을 것이다.

 

-구흥서(1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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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서는 말도 잘하면서.... 집에 오면 말을 하지 않는다" ㅎㅎㅎ..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러나 저는 요즘 마누라 앞에서 열심히 재잘 거립니다.
우선 마누라가 좋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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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늙으막에 마누라 위로 하는 것도 생활의 방편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선생님이나 제 나이 쯤엔 하초 약함을 이빨로 보상 해야 합니다.
그게 곧 중 늙은이의 살 길 아니겠습니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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