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여자축구단이 보여준 북한의 민낯]
['깜깜이' 南北 축구]
[北 왕조 선전장 만들어주려 2전 3기 올림픽 유치했나]
[北 기만극에 안 넘어가는 2030]
[내가 겪은 北 예술단 공연]
[ 蕩子의 선물을 두려워하라]
내고향여자축구단이 보여준 북한의 민낯
[朝鮮칼럼]
北은 스포츠도 정치 도구
감정 억제와 돌출 발언은
충성과 생존 위한 선택
같은 경기장 공유했지만
전혀 다른 두 사회를 봤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도 확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6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챔피언스리그(AWCL)에서 우승한 '내고향여자축구단' 선수들이 평양에 귀국해 환영을 받았다고 27일 보도했다. 이들은 지난 17일 방남해 수원에서 열린 AWCL 4강전과 결승전을 치렀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이 최근 한국을 방문해 치열한 경기를 펼쳤다. 이 방한 소식을 접하는 순간 지난 2월 김정은이 9차 당대회 이후 열린 열병식에서 한 발언이 떠올랐다. 그는 당시 “한국과의 관계에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있다면 우리 국익에 준한 냉정한 계산과 철저한 대응뿐”이라고 했다.
이 발언은 대남 비난 차원을 넘어, 남북관계를 철저히 이해관계에 기반한 ‘국가 대 국가 관계’로 고착시키겠다는 선언이었다. 북한은 최근 헌법과 당규약을 개정하며 통일과 동족 개념마저 지우고, 남북관계의 틀 자체를 없애려 하고 있다. 이번 선수단 파견 역시 북한식 ‘국익 계산법’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한다. 북한 입장에서 스포츠는 노골적인 정치 선전보다 훨씬 효율적인 정치 도구다. 스포츠 무대를 통해 자신들이 주장하는 ‘두 국가론’을 자연스럽게 각인시키려 한 것이다.
현실적인 계산도 깔려 있다. 북한 여자축구는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종목이다. 과거 남북 간 경기에서 한국팀을 3대0으로 꺾은 적이 있고, 국제무대에서도 꾸준히 강팀으로 평가받아 왔다. 북한은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선수단 방한을 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 승리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상금으로 경제적 실익까지 챙길 수 있다면 국익에 부합한다. 한국에 비해 현저히 열세인 남자축구였다면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게 바로 북한식 ‘국익 계산법’이다.
북한 내고향체육단은 김정은 경호를 전담하는 호위총국 소속이다. 김정은의 개인 체육단이나 다름없다. 북한 체제에서 최고 지도자와 직접 연결된 조직의 의미는 특별하다. 스포츠팀이 아니라 권력의 사조직에 가깝다. 김정은은 농구를 즐기던 시절에 자신의 전용팀 격인 ‘번개팀’과 ‘우뢰팀’을 운영한 적이 있다. 호위총국 소속으로 ‘리명수 축구단’도 활동했다. 이러한 팀의 승리는 곧 지도자의 업적으로 인식된다.
이번에 방한한 여자축구 선수들은 육체적으로 서방 선수들 못지않았다. 체격과 체력, 경기 운영 능력 모두 상당한 수준이었다. 이는 김정은의 직접적 관심과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최고급 수준에서 선발과 훈련, 영양 공급이 이뤄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식량난과 경제난을 겪고 있는 주민들과 달리, 체제 선전에 활용되는 분야에는 자원이 집중되는 북한 체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경기에서 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가진 품격과 여유를 다시 확인했다. 공항에서는 시민단체가 북한 선수단을 환영했고, 경기장에서는 시민 공동 응원단이 남북 선수들을 함께 응원했다. 상대가 북한이라고 해서 적개심부터 드러내지 않았다. 스포츠 자체를 존중하고 선수들을 예우하는 모습에서 대한민국 사회의 개방성과 자신감이 뚜렷이 드러났다.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의 리유일 감독은 우승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자의 ‘북측’ 표현에 공식 국호 사용을 요구하며 항의한 뒤 자리를 떠났다. /뉴스1
반면 북한 선수단의 모습은 안쓰러웠다. 입국 과정에서 자신들을 환영하는 우리 국민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무표정하게 숙소로 이동했다. 경기 전후 북한 감독은 침묵과 경직된 태도로 일관하며, 공동 응원단에 대해 “관심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일면식 없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고 응원해 줬는데도, “감사하다”는 인사 한마디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모습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물론 그들 개인을 탓할 수는 없다. 북한 밖에서의 말과 표정은 단순한 표현이 아닌 체제의 감시와 평가를 의식해야 하는 문제다. 남측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만으로도 엄청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그 두려움이 언행을 통제하고 감정을 억눌렀을 것이다. 결국 그들의 행동은 체제에 대한 충성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선택에 가까웠다. 자유롭게 웃고, 인사하며, 감사하는 것조차 제약받는 현실은 북한 체제의 한계다.
내고향여자축구단 감독은 우승 후 기자회견에서 ‘북측 여자축구’라는 한국 취재진의 표현에 “국호를 제대로 부르라”며 항의하고 굳은 표정으로 회견장을 떠났다. 이는 당국의 사전 지시나 감독의 과잉 충성에서 비롯된 돌발 행동으로 보인다. 북한은 정상국가가 되겠다고 하지만, 정상국가가 되기에는 아직 한참 멀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경기는 축구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우리는 같은 경기장을 공유했지만 서로 전혀 다른 체제를 살아가는 두 집단의 모습을 보았다. 한쪽은 상대를 향해 자유롭게 박수와 응원을 보낼 수 있는 사회이고, 다른 한쪽은 환대 앞에서도 마음을 숨기고 감정을 억제해야 하는 사회다. 그 장면에서 우리는 북한 체제의 민낯과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이일규 前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정치참사, 조선일보(2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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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이' 南北 축구
분단 이후 남북이 축구에서 처음 맞붙은 건 1976년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 대회 준결승이었다. 경기 전 남북 단장이 "외국에서 추태 보이지 말자"고 약속한 덕분인지 경고나 퇴장 없이 끝났다. 결과는 북한의 1대0 승리였다. 2년 뒤 같은 대회에서 설욕의 기회가 왔다. 그러나 그 무렵 북이 판 '제3 땅굴'이 발견돼 서울에서 '김일성 화형식'이 열렸다. 북한팀 주장은 우리 주장의 악수도 거부했다. 당시 주장이 박항서 감독이다. 북 선수 4명이 옐로카드, 1명이 레드카드를 받은 거친 경기였다. 승부차기에서 한국이 6대5로 이겼다.
▶북은 2010년 월드컵 예선 당시 평양 남북 대결을 앞두고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를 허가할 수 없다"고 억지를 부렸다. 결국 장소를 중국으로 옮겨야 했다. 우리 대표팀이 A매치에서 북에 패한 건 1990년 평양 통일축구 경기가 유일하다. 선제골을 넣었던 김주성은 "주심이 북한 심판이었는데 1대1이던 후반 막판에 추가 시간을 7~8분 이어갔다"며 "북이 페널티킥으로 결승골을 넣자 경기가 끝났다"고 했다. 친선경기라 해도 북 축구가 평양에서 지는 꼴은 보기 싫었던 것이다. 2005년 북한과 이란의 월드컵 평양 예선 때는 북이 0대2로 끌려가자 관중이 의자와 빈 병을 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북이 2010년 월드컵 본선에서 최강 브라질과 첫 경기를 했다. 선전한 끝에 1대2로 졌다. 자신감을 얻은 북은 두 번째 포르투갈전을 북 전역에 처음 생중계했는데 0대7로 대패했다. 한 탈북민은 "북한과 세계의 격차를 모든 주민이 절감한 경기"라고 했다.
▶내일 평양에서 열리는 월드컵 예선 남북전에서 우리 대표팀은 취재진도 응원단도 한 명 없이 뛰어야 한다. TV 생중계 역시 불투명하다. 북이 선수단을 제외한 우리 측 인원의 방북을 아무런 설명 없이 불허했기 때문이다. 2011년 평양에서 일본과 대결한 월드컵 예선을 생중계했던 북이 지금 우리한테는 냉담하다.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김정일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이 축구장이었다. 김정은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규모 응원단을 보낸 뒤 '남북 쇼'를 시작했다. 스포츠를 정치 도구와 선동의 수단으로 써온 것이다. 우리 대표팀의 나 홀로 평양행은 북이 올 초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상종 않겠다' '삶은 소대가리' '겁먹은 개' 운운할 때부터 예견된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얼마 전에도 "2032년 서울·평양 공동 올림픽 개최"를 강조했다. 남북 축구 한 경기도 어려운데 무슨 올림픽 공동 개최란 말인가.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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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왕조 선전장 만들어주려 2전 3기 올림픽 유치했나
15일 열린 평창올림픽 남북회담에서 올림픽이 아니라 북한 예술단 파견 문제가 먼저 논의됐다. 북에서 140여명으로 구성된 삼지연 관현악단이 내려와 서울과 강릉에서 공연하기로 했다. 북측의 요구에 의해 '예술단 회담'이 먼저 열렸지만 이해하기 어렵다. 올림픽에서 부차적인 문화·예술 행사가 먼저 의제에 오른 것 자체가 북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지금 남북 간에 진행되는 일이 얼마나 비정상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북은 우리가 각고의 노력 끝에 유치한 올림픽에 무임승차하고서 이 대회를 북 김씨 왕조 선전 무대로 만들려 하고 있다. 북은 2015년 체제 선전을 위해 중국 베이징에 모란봉 악단을 파견했다가 미사일 선전 내용 때문에 철수했었다. 이번에 급조된 것으로 보이는 삼지연 관현악단의 공연 내용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올림픽에 참가하기로 했으면 다른 나라들처럼 선수단을 파견해 경쟁하면 된다. 평창올림픽은 의도가 뻔한 북의 정치 쇼 무대가 될 수 없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이날 한반도기를 든 남북 대표단의 공동 입장과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을 기정사실화했다. 과거 9차례의 전례가 있다고 한다. 한반도기를 드는 것은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롭게 지내자는 것이다. 그러나 북은 한반도기를 드는 기간 중에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무더기로 쏘고 우리 군함을 격침시켜 병사들을 떼죽음시켰다. 무엇을 위한 한반도기인가. 북 사기극의 도구였던 한반도기 때문에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올림픽 개막식에서 개최국 선수단이 자랑스러운 국기를 앞세우고 입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누가 납득할 수 있나.
지난 9일 첫 남북 고위급 회담에선 북이 이산가족 상봉을 갖자는 우리 측 제의에 2016년 입국한 중국의 북한 식당 여종업원들 송환이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정부는 이 사실을 숨겨오다가 14일 일본 언론의 보도로 알려졌다. 이 회담에서 북측 대표는 "(비핵화 요구를 하면) 회담이 수포로 돌아간다"고 협박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비핵화 요구가 아니라 '남측 언론 보도'를 문제 삼았다고 한다. 우리 정부가 과연 제대로 비핵화를 제기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남북 고위급 회담 내용 중에 또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북은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회견에서 북의 비핵화와 관련한 언급이 나온 데 대해 '얼빠진 궤변'을 했다고 비난했다. 문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까지 무례하고 우매할 수 있느냐' '비굴한 처사는 눈을 뜨고 보지 못할 지경'이라고 했다. 지금이라도 평창올림픽 참가를 걷어찰 수 있다는 위협도 했다. 그래도 정부의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북이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은 핵을 포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반대 목적을 위해서다. '이러려고 올림픽을 유치했느냐'는 여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18-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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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기만극에 안 넘어가는 2030
2015년 12월 김정은 '친위 걸그룹' 모란봉악단이 베이징 공연을 3시간 앞두고 돌연 철수하자 공연장인 국가대극원에 모였던 중국 관객 100여 명은 분노를 터뜨렸다. 한 대학생은 "진싼팡(金三胖·김씨 세 번째 뚱보, 김정은) 때문에 신경질 나 죽겠다"며 "공연 당일 돌아가는 게 어디 있느냐"고 했다. 바링허우(80년대생)·주링허우(90년대생)로 불리는 중국 2030세대는 전(前) 세대와 달리 북한, 특히 김정은에 대한 감정이 나쁘다.
▶이들은 김정은을 전 세계에서 가장 꼴불견인 '푸얼다이(富二代·금수저)'로 본다. 20대에 물려받은 권력과 돈으로 초호화 생활을 누리며 사람까지 쉽게 죽이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한 중국 외교관은 "김정은에 대한 젊은 세대의 차가운 시선이 대북 정책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했다.

▶주체사상이 휩쓴 1980년대 대학을 다닌 한국의 586세대는 '남북이 하나 된다'는 구호에 솔깃할지 몰라도 2030세대는 다르다. 북이 우리를 어떻게 속여 핵무장에 성공했는지 다 알고 있다. 북이 주민들에겐 생지옥, 김정은 일파엔 천국이란 사실도 다 안다. 서해 교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지뢰 도발로 또래들이 희생당한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이들에게 속 보이는 '남북 정치 쇼'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평창올림픽 때 삼지연 관현악단 140명이 내려오고,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구성되는 문제에 대한 2030 네티즌 반응이 차갑다. 친(親)정부 성향 포털에서도 옹호 댓글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죽 쒀서 × 준다'는 울분이 넘쳐난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문제에 대해선 "청춘을 바친 노력이 정치 놀음에 물거품"이라고 했다. 정부의 갑질과 불공정을 참지 못한다. 북 예술단에 대해서도 "오지 말라" "쇼 하지 말라"고 한다.
▶지난 9~11일 실시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30대에서 89%로 가장 높았고, 20대가 81%였다. 그런데 인터넷에선 '문 대통령 찍었는데 이건 정말 아니다'는 젊은 층 반응이 줄을 잇고 있다. 2030세대는 지난 대선에서 이른바 '적폐'에 분노하며 문 대통령을 찍었다. 지금 한반도의 최대 적폐는 핵을 든 김정은 집단이다. 그 적폐가 우리 올림픽에 숟가락을 얹고 주인 행세하는 모습에 분노하는 것이다. 정부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고 생각할까.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18-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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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北 예술단 공연
요즘 평창올림픽을 둘러싼 남북 논의를 보면서 지난해 4월이 떠올랐다. 기자는 당시 여자 축구 아시안컵 예선 취재를 위해 엿새 동안 평양에 머물렀다. 지난 9일 남북 고위급 회담에 참여하기 위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온 북한 인사 중에는 지난해 평양에서 만났던 인물도 포함돼 있었다.
평양에서의 6일은 철저히 통제된 생활이었다. 숙소인 평양 양각도호텔과 김일성경기장 외에는 움직일 수 없었다. 호텔 문밖으로 산책도 나갈 수 없었다.
평양에 도착한 지 나흘째인 4월 6일 북한 측은 대한축구협회 임원진과 취재진을 평양의 한 식당(고려동포회관)으로 안내했다. 이례적인 외출이었다. 한국과 인도의 여자 축구 경기에서 북한 관중이 일방적으로 인도를 응원한 다음 날이었다.
고려동포회관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 갑자기 '북한 봉사원'들이 들어왔다. 이들은 사전 예고가 없던 예술 공연을 시작했다. 한복을 차려입은 북한 봉사원들은 '고향의 봄' 등 낯익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네 번째 곡에서 "인민이 제일 좋아하는 우리 아버지" "우리 원수님" 따위의 가사가 들렸다. 우리 측에서 "이거 뭐야"라는 말이 나왔다. 몇몇이 우리 정부 측 인사에 문제 제기를 했고, 결국 공연은 중단됐다. 알고 보니 이 곡의 제목은 '친근한 우리 원수님'이었다. 김정은 지시로 만들어진 청봉악단이 2015년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발표한 곡이다. 소동이 있은 뒤 북한은 취재진이 평양을 떠날 때까지 외출을 허용하지 않았다.
북한은 동계 스포츠가 취약한 나라다. 대한체육회에선 많아야 10명 정도의 선수가 평창에 올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이 공들이는 건 예술단이다. 스포츠로 평창 주인공이 되긴 어려우니 예술로 '우회 기동'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15일 북한 예술단 파견 관련 남북 실무 접촉을 위해 나온 북한 대표단에는 현송월 관현악단 단장이 있었다. 현송월은 2015년 12월 모란봉악단의 중국 베이징 공연 개막 3시간을 앞두고 취소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중국 측이 김정은 숭배 일색 공연에 난색을 표하자 현송월 등은 "우리 공연은 원수님(김정은)께서 직접 지도해주신 작품이기 때문에 점 하나 뺄 수 없다"고 맞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을 평창올림픽의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듯한 현 정권을 보면서 북한 예술단이 평창에서 갑자기 '친근한 우리 원수님'을 부르는 상상을 해본다. 체제 선동이 주업인 북한 예술단이 노골적인 찬양가는 아닐지라도 '은근하고 비유 섞인 찬양가'를 들고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분위기에서 이런 공연을 누군가 중단시킬 수 있을까. 평양에서의 황당함을 평창에서 다시 겪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
-석남준 스포츠부 기자, 조선일보(18-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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蕩子의 선물을 두려워하라
만약 성경의 '돌아온 탕자'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는데도 그 아버지가 그를 열렬히 환영했다면 아들의 방탕을 조장하는 어리석은 아비였을 것이다. 김정은은 한마디의 반성도 없이, 오히려 훈계하는, 선심 쓰는 말투로 남한 정부를 압도했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제의는 세계인들이 북핵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평창 방문을 주저하는 상황에서 환영할 일임은 틀림없다. 북한의 속셈이 동족의 행사를 돕는 것이 아니고 핵 기술을 완성할 시간을 벌면서 '깡패 국가'의 이미지를 순화해서 국제 제재를 좀 완화해보려는 것이라 해도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의 과잉 환영은 뉘우치지 않는 탕자(蕩子)에게 아버지의 집은 언제고 쳐들어가서 파먹고 휘저을 수 있는 곳으로 얕보게 만들고 있다. 올림픽이 아니라도 대화 제의에는 응해야 하겠지만 저들에게 우리 국민을 몰살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것임도 잊지 말아야겠다.
물론, 상식적으로는 김정은이 뒤로는 핵무기를 완성할 시간을 벌면서 표면적으로 '평화 애호국'으로서의 이미지를 벌 속셈에서라도 대회에 참가할 이유가 충분하다. 그러나 김정은은 이성이나 양식, 국제적 평판을 늘 비웃지 않는가. 이번에 김정은이 평창에 파견하는 인원 중에 테러분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고, 평창에 참가해 주는 '대가'가 시답지 않다고 생각할 때 깽판을 벌일지도 알 수 없다. 우리 정부는 그런 불상사에 대한 대비는 전혀 없이 그저 황송하게 받들어 모실 궁리만 하는 것 같다.
고대 로마의 서사시 '아이네이스' 2장에는 트로이가 멸망하게 된 경위가 자세히 나온다. 그리스군이 거대한 목마(木馬)를 만들어서 그 안에 정예 무사 수십 명을 넣어서 트로이의 해안에 남겨놓고 자기들은 싸움에 지쳐 본국으로 철수하는 척하면서 떠난다. 트로이의 백성들은 현자(賢者)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목마를 성안으로 갖고 들어간다.
밤중에 목마의 배에서 나온 무사들이 성문을 열어서 야음(夜陰)을 타서 돌아온 그리스 병사들을 성안에 들이고 트로이는 지도에서 사라진다. 트로이의 제사장(祭司長) 라오콘은 목마를 성안에 들이지 말라며 절규했었다. '나는 그리스인이 두렵다. 선물을 갖고 온다 해도.'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조선일보(18-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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