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한국을 뒤덮은 위험한 낙관론] ['징비록'을 다시 읽으며] [우리는 '식민' 극복 성공했는데 왜 실패한 나라처럼 행동하나] ... 日帝 극복

뚝섬 2019. 10. 7. 07:58

한국을 뒤덮은 위험한 낙관론

 

일본은 공부 모임 만들어 상대 국가 깊이 분석하는데
한국에선 日 기술·행정보다 관광·음식에만 관심

 

지난달 한·일 관계에 관심이 많은 일본 지식인들의 벤쿄카이(勉强·공부 모임)에 초대받았다. 휴무(休務)인 토요일에 열린 모임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했다가 금세 자세를 가다듬어야 했다. 발표자가 "일본은 약속을 중시하는 반면 한국은 정의가 중요하다"며 양국을 비교 분석하자 참석자 20여 명은 깨알 같은 글씨로 메모했다. 문재인 정권과 한국 사회에 대한 분석에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하는 모습엔 긴장감마저 느껴졌다. 한 참석자는 어디서 들었는지 "난난갓토(남남갈등·南南葛藤)가 무슨 뜻이냐"고 기자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얼마 전 도쿄의 한 신문사에서는 서울 특파원으로 파견됐던 중견 기자의 사내 특강이 열렸다. 문 대통령은 누구인지, 한국의 집권 세력은 어떤 이들인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가 많아 기자들과 직원들을 상대로 벤쿄카이를 연 것이다.

1
년 전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로 양국 관계가 '정치적 단교'에 이른 후 일본 사회에는 한국 공부 붐이 일고 있다. 최근 NHK 도 아닌 민영 상업방송이 주말 황금시간대에 한·일 관계를 2시간 동안 다룬 것은 이런 현상의 방증이다. 일본의 주간지, 월간지에는 요즘 한국 관련 기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 분위기가 과열돼 자극적인 혐한(嫌韓) 기사로 연결되는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도쿄의 한국 특파원들은 일본인들을 만날 때마다 한국의 현 상황을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고 있다. 그 덕분에 기자는 한동안 일본에서는 생소한 '세키헤이세산(적폐청산·積弊淸算)'의 뜻을 자주 설명해줘야 했다.

일본의 대학생 10여 명을 만나 얘기할 때였다. 간담회를 마치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이메일을 보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세 명으로부터 한국 국회의원의 일본에 대한 관심, 한국 젊은이들의 정치 참여 등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받았다.

최근 한·일의 상황을 비교하자면 일본 사회는 한국 연구에 몰두한 반면, 한국은 일본 비난에 더 많은 힘을 쏟는 것처럼 보인다. 아베 정권으로부터 초유의 경제제재를 당하면서도 일본을 알려고 하는 분위기보다는 청와대의 주도로 일본을 비난하고 접촉을 차단하는 '쇄국(鎖國)'으로 맞서는 것 같다. 더욱이 한국 사회는 신임 법무부 장관 조국 관련 파문이 커지면서 한·일 관계가 관심사에서 벗어나 버린 것은 아닌지….

지난달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 사무총장으로 서울에 부임한 일본 외교관 미치가미 히사시(道上尙史)는 이런 상황을 분석해 '문예춘추' 최근호에 기고했다. 그는 '한국을 뒤덮은 위험한 낙관론의 정체'라는 글에서 한국에서는 이제 일본을 공부하는 분위기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한국인에게) 관광 음식의 대상이 돼버렸다" "과거처럼 상대방 일본의 산업기술 법률 행정 학문 패션에 대해 열심히 연구해서 배우는 것은 대폭 줄었다"고 했다. 미치가미는 서울대 유학 후 주한 일본 대사관 참사관·공사, 부산 주재 총영사로 10년간 근무한 한국 전문가라는 점에서 그의 관찰은 아프게 다가온다.

조선 시대 이후 한·일 관계를 결정지은 것은 상대 국가에 대한 연구였다.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의 치욕을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는 뜻에서 유성룡이 기록한 징비록(懲毖錄)을 번역해 읽었지만 조선 왕조는 이를 금서로 지정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전후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조선을 연구한 후 정한론(征韓論)의 토대를 만들었지만 우리는 '왜놈'이라고 비하하며 일본을 비난하는 데 그쳤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데 지금도 그런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하원 도쿄특파원, 조선일보(19-10-07)-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징비록'을 다시 읽으며


통치자, 선악 이분법 역사 재단… 현실 외면하면 환란 닥친다는 징비록의 경고
한·일협정 성사시킨 건 박정희, 한·일 관계 극대화한 건 DJ… 나라 살린 현실주의 리더십의 정수 


'징비록(懲毖錄)'은 가슴을 찌른다. '쓰러지는 나라를 지키지 못했으니 그 죄는 죽음으로도 씻을 수 없다'는 서애 유성룡(1542~1607)의 말이 통렬하다. '징비록'을 능가할 임진왜란(1592~ 1598) 기록물은 없다. 영의정과 도체찰사로서 국정과 군무(軍務)를 총괄한 서애는 '()의 근본을 밝힌다.' 국가 리더십 붕괴가 부른 총체적 위기와 비정한 국제정치를 낱낱이 해부한다. '징비록' 1633년 처음 출간된 후 1695년 일본에서도 간행됐고 중국에서도 읽혔다.

'
지난 잘못을 징계해 미래의 환란을 경계함'이 징비(懲毖). 선조가 명나라로 내부(內附·귀순)하려 하자 유성룡이 필사적으로 막았다. 민심 수습과 산업 장려, 명과의 교섭, 군비 강화도 서애의 몫이었다. 명·왜의 조선 분할 획책을 온몸으로 저지한 것도 서애였다. 유성룡은 '징비록' 맨 앞에 그 100여 년 전 외교·국방 전문가인 신숙주(1417~1475)의 유언을 인용했다. 세종대왕의 명으로 1443 27세에 일본을 다녀온 신숙주는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로 일본을 분석한다. 나라의 길을 묻는 성종에게 신숙주는 '일본과 친하게 지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다.

문재인 정부의 한·일 관계가 최악이다. 한국은 반일 감정이 들끓고 절반이 넘는 일본 시민이 대한(對韓) 무역 제재에 찬성한다. 유성룡이 '간교한 왜적의 용병(用兵)이 속이지 않는 법이 없다'고 개탄한 것처럼 음험한 아베 정부에 우리가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분노만으로 나라를 이끌 순 없다. 아베 정권의 수출 규제는 선거 방략이자 한국 경제의 중추인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꺾는 경제 전술이다.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 국가'로 나아가려는 거시적 국가 전략이기도 하다.

일제 식민 통치의 본질에 대한 합의 부재가 한·일 갈등의 근원이다. 일본은 1910년 한·일 병합과 35년의 식민 지배가 국제법적 합법이었다고 강변한다. 일제 식민 통치는 불법 강점이며 사죄와 배상 책임이 따른다고 확신하는 우리와 정반대다. 이런 이견을 남긴 채 세계 냉전 체제에서 상호 국익을 위해 타협한 게 1965한·일 기본 조약이다. 한국 경제개발의 종잣돈이 된, 당시 일본 외화 보유액의 4분의 1인 무상 3억달러와 유상차관 2억달러에 대한 해석도 다르다. 한국은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금'으로 여기고, 일본은 '독립 축하금'이자 '경제협력 자금'이라고 주장한다.

"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한·일협정 제2 1항은 이런 절충의 산물이다. 현대 한·일 관계의 기초이자 역사 전쟁의 근원이 된 봉합이었다. 한국인의 민족 감정이 일본의 주장을 수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민족 감정과 국가이성이 격렬히 부딪치는 지점이다. 그러나 한국은 살아남기 위해 국가로서 타협책을 선택했다. 한·일협정이 한·일 두 나라의 호혜적 발전 토대가 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국가를 과거사와 민족 감정에 종속시키지 않는다. 한·일협정을 성사시킨 건 박정희였지만 한·일 관계를 극대화한 건 김대중(이하 DJ)이다. 1965년 야당 의원 DJ는 박정희가 밀어붙인 한·일 회담을 공개 지지해 '토착 왜구'로 낙인찍힐 선택을 감내했다. DJ의 대승적 일본관은 1998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승화된다.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한 현대 일본을 높이 평가한 DJ에게 호응해 오부치 게이조 당시 일본 총리는 일제 식민 통치를 '통절하게 반성하고 마음으로부터 사죄한다'고 화답한다. 현대사의 최대 라이벌 박정희와 DJ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함께 정초한 것이다. 나라를 살린 현실주의 정치 리더십의 진수다.

서애가 감당한 현실은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잡아먹어 길가에 사람의 뼈가 잡초처럼 흩어진" 현장이었다. 성리학 이념에 대한 맹종이 망친 나라를 현실주의 시무(時務) 리더십이 살렸다. 유성룡의 안목은 전쟁 발발 전 이순신을 종6품 정읍현감에서 정3품 당상관 전라좌수사로 7단계나 뛰어넘어 발탁한 데서도 입증된다. 이게 나라의 명운을 갈랐다. '징비록'통치자가 선악 이분법으로 역사를 재단하고 현실을 외면하면 국가에 환란이 닥친다고 외친다. 외교 안보와 경제를 이념과 도덕근본주의가 망친다고 고발한다. 위기의 한·일 관계 앞에서 국보 제132 '징비록'의 절규가 가슴을 친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조선일보(19-07-12)-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우리는 '식민' 극복 성공했는데 왜 실패한 나라처럼 행동하나


청구권 자금 5억달러는 당시 日 외환 보유액 24%… 그 돈으로 경제 기적 이뤄
1
29 GDP 격차 이제 13… 피해 의식 아닌 日帝 극복 성공한 자부심으로 일본 바라봐야 한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에 포함된 청구권협정 '한국의 일본에 대한, 일본의 한국 내 재산에 대한 국가나 개인 청구권이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신 한국은 보상금으로 5억달러가 넘는 외화와 물자를 받았다. 이 돈은 '한강의 기적' 마중물이 됐다. 일본은 한국이 이 협정을 파기했다고 무역 보복을 하고 있다. 그해 6 23일 박정희 대통령은 '한일 국교 정상화에 즈음한 특별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엔 한일 관계와 우리 사회에 대한 박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지금도 되새겨볼 부분이 있다.

그는 '한 나라의 운명 개척엔 국제 정세에 적응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국제 정세에 역행하는 국가 판단이 어떤 불행을 가져왔는지는 조선 말엽 우리의 뼈저린 경험이 실증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우리 주변에선 1964년 중국이 핵폭탄 개발에 성공했고 북한은 중·소를 이용해 군사력에서 한국을 앞서가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안보와 경제 발전을 위해선 자유세계 국력 2위로 부상한 일본과 손잡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누구와도 손잡아야 한다. 자유와 독립, 내일의 조국을 위해 도움이 된다면 어렵지만 과거의 감정을 참고 씻어버리는 것이 진실로 조국을 사랑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나의 확고부동한 신념이올시다'라고 했다
.

박 대통령은 '지난 수백 년간 일본은 우리 독립을 말살했고, 우리 부모·형제를 살상했고, 우리 재산을 착취했다. 과거만을 따진다면 불구대천(의 원수)이다. 그러나 이 각박한 국제사회에서 아무리 어제의 원수라도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그들과도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 국리민복을 위한 현명한 대처가 아니겠읍니까'라고 했다. 그는 현실주의자이자 실용주의자였다
.

박 대통령은 한일 국교 정상화에서 과거 청산, 호혜 평등의 기본 관계 설정과 청구권 문제, 어업협정 문제, 60만 재일 교포 처우 문제, 문화재 반환에 주력했다. 그러나 일본은 완강했다. 무엇보다 한일 합방의 국제법적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이런 문제가 우리 주장대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국익 확보에 최선을 다했다. 외교란 상대가 있는 것이고 일방적 강요가 안 된다'고 했다
.

박 대통령은 격렬했던 국내의 반대에 대한 생각도 솔직히 밝혔다. '굴욕적, 저자세, 군사·경제적 침략 자초, 심지어 매국적이라 비난한다. 이 주장들이 우리 정부의 대일(對日) 입장을 강화할 수 있어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만일 그 주장들이 진심으로 우리가 또다시 일본 침략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이라면 묻고 싶다. 어찌하여 그처럼 자신이 없고 피해 의식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일본이라면 무조건 겁을 먹나. 이것이 바로 굴욕적인 자세다. 일본 사람하고 맞서면 언제든지 우리가 먹힌다는 이 열등의식부터 버려야 한다. 우리의 근대화 작업을 좀먹는 가장 암적인 요소도 바로 패배주의와 열등의식 그리고 퇴영적인 소극주의, 비생산적인 사이비 행세'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아무 실력 없이 반일(反日)만 내세우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속은 텅텅 비고도 겉치레만 번지레 꾸미려는 명분주의, 언행 불일치주의'라고 했다
.

1965
년 일본의 외환 보유액이 21억달러였으니 우리가 받은 보상금 5억달러는 거의 4분의 1에 이르는 돈이었다. 박 대통령은 '다시 일본 침략을 당한다는 열등의식도 버려야 하지만 당장에 우리가 큰 덕을 볼 것이라는 천박한 생각도 절대 금물'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앞으로 결과가 좋을지 불행할지는 우리 자세와 각오에 달려 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사리사욕을 앞세우면 이번에 체결된 모든 협정은 제2의 을사조약이 된다. 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같이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

식민지 독립국 중에 외국에서 받은 돈으로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발전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기적'이다. 1965년 박정희가 국민 모두의 각성을 촉구했던 때 한국의 GDP는 일본의 29분의 1이었다. 작년엔 그 격차가 3분의 1로 줄었다. 식민 피해국이 가해국을 상대로 이렇게 확실하게 과거를 청산·극복한 사례는 한국 외에 없다. 그런데 우리만 이를 인정하지 않고 마치 극복에 실패한 나라처럼 행동한다
.

박 대통령은 '일본 국민들에게도 밝혀 둘 말이 있다'고 했다. '우리와 그대들 간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손을 잡게 된 것은 다행이다. 과거 일본 죄과의 책임이 오늘 일본 국민에게 있다고는 생각 않는다. 그러나 국교 정상화의 이 순간에 침통하고 착잡한 심정으로 구원을 억지로 누르고 다시 손을 잡는 한국 국민들의 이 심정을 단순하게 보아 넘기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그대들의 한국 국민에 대한 자세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일본은 역시 믿을 수 없는 국민이라는 감정이 우리 국민들 가슴에 다시 싹트면 이번에 체결된 제 협정은 아무런 의의를 지니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요즘 혐한이 유행이라는 일본 국민과 아베 총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양상훈 주필, 조선일보(19-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