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의 3大 두려움
오늘은 문 대통령이 갖고 있는 ‘세 가지 두려움’에 말하겠다.
지난 두 달, 온 나라를 대결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일들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는가. 어제 광화문 집회부터 짚어보겠다. "서초동은 ‘조국 수호’, 광화문은 ‘조국 아웃’." "서초동은 200만, 불과 닷새 뒤 광화문은
300만." "아니 야당 원내대표 말처럼, 서초동 인파를 계산했던 민주당의 셈법으로 한다면 광화문은 2000만이다." 이렇게 말해놓고 입맛이 쓰다. 광화문에 나온 사람들은
옳고 그른 것을 따지러 나온 게 아니었다. "그들의 뻔뻔함을 참을 수가 없어서"(조선일보) 난생 처음 광화문에 나온 사람도 많았다.
문재인 정권의 잘못은 안보, 외교, 정치, 경제, 사회 이것저것 수없이 열거할 수 있지만 그중 결정적인 잘못은
‘나라를 두 동강 낸 것’이다. "국민을 거리로
내모는 ‘분열의 정치’"(국민일보), "‘서초동’ 대(對) ‘광화문’ 세 대결은 안 된다"(한겨레), "200만(서초동)→300만(광화문)…‘조국 대전(對戰)’ 위험한 광장 대결"(한국일보). 여기서 보듯 여러 성향의 언론은 분명한 문제점을 짚고
있다. 국민을 거리로 내몬 ‘분열의 정치’는 누구 책임인가. 조국
책임? 윤석열 책임? 이해찬 책임? 황교안 책임? 아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 책임은 오로지 문재인 대통령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문제를 만들고 이렇게 국민을 두 동강 내 거리의 싸움터로 내몰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조선일보)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왜 양쪽으로 찢어지는 낭떠러지에 국민을 몰아넣고 있는 것일까. 왜
그럴까. 그에게는 ‘세 가지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도전(挑戰) 받고 있다는 두려움’이다. 과거 어느 시절에는 이른바 ‘3대 권력기관’에 ‘정치적 파워의 어두운
본질’이 숨어 있었다. 검찰, 국정원, 국세청, 이곳이다. 이
세 곳은 대통령의 입안에 든 혀처럼, 대통령의 손발처럼 움직이면서 반대파를 통제했다. 그중에서도 검찰은 대통령 곁에 앉아 있는 사나운 맹견처럼 움직였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라고
하는데, 윤석열 검찰총장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면서 문 대통령과 청와대에 도전하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장도, 국세청장도, 다른
고위공직자도, 중앙정부의 일반 공무원도, 심지어 민간기업
총수들도 모두 문 대통령이 윤석열 총장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지켜보고 있다. 그들은 언제든, 감히, 대통령에게 등을 보일 수 있다. 그것이 문 대통령은 그들의 ‘도전’과 ‘말없는 관망’이 두려운 것이다.
둘째는 문재인 대통령에겐 ‘무시당하고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1965년 이후 최악의 한일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을 대놓고 외면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정상회담 때마다 곁에 앉은 문 대통령을 마치 투명인간 취급하듯 혼자만 기자회견을 한다. 그렇다고 북한 김정은과 중국 시진핑 주석이 곁을 주느냐. 아니다. 김정은은 트럼프에게조차 문 대통령을 흉보면서 트럼프하고만 대화하고 협상을 하려고 한다. 시진핑은 북경에 찾아온 손님인 문 대통령을 ‘혼밥’ 먹게 했던 일이 상징하듯 정상적인 파트너 대접을 하지 않는다. 정상들끼리 모이는 국제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느끼는 ‘외로움’은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다. 그 ‘왕따’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다. 회의장 한 번 갔다 오면
침대에 누워야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무시당하고 있다는 두려움’이 때로 어떤 정치인에게 아집을
피우게 만들고, 감당 못할 일을 저지르게 만든다는 점이다.
셋째는 문재인 정권은 ‘보복당할 것이란 두려움’을 갖고 있다. 처음에는 신임 대통령이고, 현직 대통령이지만,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전직 대통령이고, 죽은 권력이 된다. 자기들끼리 20년 집권, 30년
집권이란 말을 하지만, 한발 삐끗하면 오늘부터 레임덕이다. 그때부터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을 문 대통령은 잘 알고 있다. 오늘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조국 사태는 문재인 정권의 최대 기획인 ‘조국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를 좌초시켰다." 그런가 하면 조선일보 사설은 이렇다. "조국
사태는 조국으로 막기 어려운 지경으로 가고 있는데, 문재인 사태로 번지고 있는 이 일을 누가 만들었는가."(조선일보). 지금 상황은 ‘조국 사태’를 넘어서서
‘문재인 사태’로 가고 있으며 그것은 문 대통령 본인 탓이라는 진단인 것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그 책임을 묻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문 대통령은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김광일 논설위원, 조선닷컴(19-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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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촛불’은 집권세력에 약일까 독일까
▲지난 9월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7차 검찰개혁 사법적폐청산을 위한 촛불집회.
집권세력이 모처럼 만에 웃었다. 지난 9월 28일 대검찰청이
위치한 서울 서초동에 집결한 조국수호 촛불은 지난 8월 9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 이래 수세에 몰려 있던 집권세력에 반전의 계기로 다가갔다. 집회에 참석한
집권당 의원들은 “백만 촛불이 일으킨 민란이 정치검찰을 제압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집회
이틀 후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검찰개혁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집권세력은
서초동 촛불을 보며 촛불혁명 시즌2를 꿈꾸고 있다. 이들의
바람은 과연 이루어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의명분이다. 서초동 촛불의 주장은 ‘조국수호 검찰개혁’이라는 8자 구호로 압축된다.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피의자 조국을 지키는 것과 검찰을 개혁하는 것이 어떻게 한 묶음이 될 수 있는가. 조국의 혐의는 문 대통령의 말대로 검찰수사 등 사법절차를 통해 가려지면 된다.
거기에는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정치와 사법을 분리한 민주공화국의 핵심 원리다. “법무부는 법무부가 할 일을, 검찰은 검찰이 할 일을 하면 된다”는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조국 수사와 재판은 검찰과 법원이, 검찰개혁
방안 확정은 국회가 하면 된다.
이처럼 ‘조국수호 검찰개혁’은 전혀 연관성이 없는 두 사안을 억지로 끌어다 붙이는 견강부회(牽强附會)다. 검찰개혁이라 쓰고 조국수호라고 읽는 것은 국민적 공감을
얻기 힘들다. 이 억지 구호를 외치면 외칠수록 검찰개혁의 진정성은 빛을 바랜다. 실제 검찰은 대통령 지시가 있은 지 하루 만에 서울중앙지검 등 3곳
빼고 특수부 폐지, 파견검사 전원 복귀 및 형사·공판부 배치, 검사장
전용차 폐지 등 개혁안을 내놓았다. 개혁은 개혁대로, 수사는
수사대로 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더 나아가 조국을 지켜내 검찰개혁의 도구로 쓰자는 주장은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메시지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전달하는 메신저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낮으면, 메시지는 오염된다. 피의자 장관이 검찰개혁의 주체로 나서는 것은 오히려 검찰개혁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깎아먹는다. 조국은 검찰개혁의 적임자가 아니라, 검찰개혁을 위해서라도
물러나야 할 사람인 것이다.
윤석열 검찰을 정치검찰로 낙인찍는 프레임 공격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치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에 줄을 대 기획사정과 하명(下命)수사를 일삼는
행태를 가리킨다. 집권세력의 실정으로 인한 반사이득을 챙기지 못하고 젊은이들에게 인기도
없는 허약한 야당과 내통하여 무언가를 도모하는 ‘바보 같은’ 정치검찰은 없다. 살아 있는 권력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점에서 윤석열 검찰은 오히려 정치검찰 흑역사의 대척점에 서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25일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권력형 비리에 대해
정말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자세로 아주 공정하게 처리해 국민의 신망을 받으셨는데 그런 자세를 끝까지 지켜주기
바란다”고 당부하며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시길 바란다”고 주문하였다. 윤 총장은 대통령의 주문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을 뿐이다. 정치권력과의
건전한 긴장관계가 없는 ‘원만한’ 검찰이야말로 정치검찰의 시작이다. 친문 정치인들이
윤 총장을 정치검찰이라고 공격하면 할수록 ‘문적문’ 프레임이 강하게 작동할 것이다.
그렇다면 실리적 측면은 어떨까. 대통령의 경고와 서초동의 촛불은 조국을 향한
검찰의 칼날을 무디게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기껏해야 정경심씨 소환 방식이 비공개로 바뀌는 정도일 것이다. 진정한 검사는 바람이 불면 알아서 눕는, 시류의 추종자가 아니다. 누를수록 더 튀어오르는 용수철 기질의 보유자들이다. 특히 특수부
검사들이 그렇다. 때릴수록 독해지고, 압박하면 더 파고든다. 윤 총장을 비롯해 조국 수사팀은 목을 걸고 수사에 임하고 있다. 검사는
수사로 말한다고 완벽한 공소장을 위해 불철주야 뛰고 있다. 검찰에 대한 여권의 강도 높은
비판과 압박은 오히려 완성도 높은 수사의 촉매제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이 다중의 위력이다. 대전 인구 150만명보다 많은 200만명이 서초동의 일부 구간에 집결했다는 주장은
의욕 과잉으로 인한 뻥튀기였다. 그런데 설령 그 숫자가 모인다고 해서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이루어질까. 민주공화국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혼합물이다. 공화의 핵심가치는
자유인데 예속과 굴종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공화주의자 루소는 “나는 오직 법에만 복종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지 않기 위해서다”라고 갈파했다. 자유를
위한 법치야말로 공화국의 핵심가치인 것이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의 철학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조국은 서초동 촛불과 관련해 “국민들의 검찰개혁에 대한 열망이 헌정 역사상 가장 뜨겁다”며
“국민들은 검찰개혁을 요구하면서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 묻고 있으며,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견제를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에 대한 통제는 법에 의거해 이루어진다. 그 어느 누구도 법에 근거하지 않고 검찰을 움직일 수 없다. 현재의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국회의원들을 움직여 법을 바꾸어야지 검찰청사 앞에서 촛불을 들 일이 아니다. 다중의
위력으로 검찰의 사법행위를 조종하려는 시도야말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서초동 촛불로 윤석열 검찰을 제압하려는 시도는 대의명분, 프레임의
적절성, 실리 등 모든 면에서 설득력과 실효성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집권세력은 왜 서초동 촛불에 열광하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그것이
분위기 반전 및 국면 전환의 유일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수세국면이 지속되면 지역구 민심에
민감한 수도권 의원들의 동요가 커질 것이고, 이는 당청 갈등 등 내부 균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권력은 외부 공격보다 내부 균열로 무너진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경험칙이다. 그런
점에서 서초동 촛불은 내부 균열을 방지하고 결속력을 높이는 모멘텀이 되고 있다. 이종걸, 안민석 등은 서초동 촛불에 고무되어 윤석열 사퇴에 총대를 메고 나섰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도 탄력을 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 대다수는 문제투성이인
조국도 그만두지 않는데 윤석열이 왜 그만두어야 하는지 의문을 품고 있다. 내부 균열 방지도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진보 성향인 경향신문 10월 2일자 1면 헤드라인은 ‘조국 사태, 진보를 가르다’였다. 서초동 촛불은 조국으로
인한 고통을 완화시켜주고 역전의 희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구세주로 여겨질지 모르나, 그 파급력에는 한계가
뚜렷해 보인다. 오히려 방향변경 및 노선전환의 가능성을 차단하여 손실을 키울 위험성이
높다. 촛불은 바람에 흔들려 꺼지기 전에 크게 몸부림친다. 서초동 촛불은 집권세력에 약이 아니라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주간조선(19-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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