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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군수는 정말 100만원씩 나눠줄까] [고속도로 '통행료 인하'.. ]

뚝섬 2024. 11. 14. 07:56

[영광 군수는 정말 100만원씩 나눠줄까]

[고속도로 '통행료 인하'라는 거짓말]

[정(正) 자의 빛과 그림자]

 

 

 

영광 군수는 정말 100만원씩 나눠줄까

 

빈곤 탈출 아니라 빈곤 고착일 때 쪽방촌 비즈니스는 돈을 번다
빈곤과 시혜의 중독을 퍼뜨려 표를 얻는 빈곤 정치 어른거린다

 

한 러시아 농부가 길에서 요술램프를 주웠다. 램프를 문지르자 요정 지니가 나와 “소원을 말해보라”고 했다. 농부는 “내게는 소가 3마리밖에 없는데, 이웃 이고르에겐 10마리나 있다”고 하자, 지니가 “당신은 20마리의 소를 갖고 싶겠군”이라고 말했다. 농부는 답했다. “아니, 그보다는 이고르가 가진 소들 가운데 일곱 마리를 죽여 주게나”

 

옛 소련의 개혁·개방 정책을 주도한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이 미 국무장관 베이커에게 했던 말로, 베스트셀러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빵 개수를 늘리기보다 똑같은 빵만 받으면 된다는 ‘이상한’ 평등주의에 빠진 국민을 상대로 개혁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소연한 얘기였다.

 

그렇다면 러시아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원인은 무엇일까. 이념만이 아니다. 국민에게 자립의 힘과 기회를 박탈한 결과였다. 실현 불가능한 이상을 제시한 뒤 희망 고문을 통해 빈곤을 고착시키고, 결국 자립할 능력을 잃은 국민에게 각종 복지로 둔갑시킨 시혜성 포퓰리즘으로 중독시키는 방식이다. 고기를 잡는 방법은 가르치지 않고 고기만 나눠주면서 사람을 길들이는 것이다.

 

지금도 이런 시도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나같이 평등과 분배의 가치를 강조하는 당의정(糖衣錠)의 형태다.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끝난 전남 영광군수 재보궐 선거를 기억할 것이다. 조국혁신당 후보는 “당선되면 전 군민에게 행복지원금 1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시동을 걸자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까지 가세해 “주민들에게 1인당 연간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맞불을 놓았다. 기자가 과문한 탓인지 이런 노골적 매표는 본 적이 없다. 영광군 인구는 5만명 수준, 대략 연간 500억원 이상 필요하다. 돈을 어디서 구할 것이냐는 지적에 양당 모두 영광군에 위치한 한빛 원전에서 나오는 ‘지역자원 시설세’를 쓰겠다고 했다.

 

‘탈원전 정당’들이 유권자에게 뿌릴 돈은 원전에서 구하는 발상도 놀라웠다. 미래 경쟁력은 외면한 채 현금 살포 잔치를 벌인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가난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되 빈곤 탈출이 아닌 빈곤 고착화로 돈을 버는 게 ‘빈곤 비즈니스’라고 한다”

 

몇 년 전 ‘쪽방촌 심층 르포’로 최은희 여기자상을 받은 기자의 책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이 기자는 서울역 서울스퀘어 뒤, 종로 귀금속 상가 거리 뒤, 영등포역 옆 등의 쪽방촌을 파헤쳤다. 1.25평짜리 쪽방의 월세는 25만원, 평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40평짜리가 월세 1000만원 가깝다. 웬만한 서울 강남의 월세보다 비싸다. 그런데도 쪽방엔 보일러도, 화장실도 없다. 이 쪽방의 주인들은 강남 초고가 아파트 주민이었다. 기자가 등기부 등본 260여 통을 일일이 떼서 확인한 사실이었다. 쪽방촌 주인은 쪽방촌에 중독된 이들을 상대로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었다.

 

지난 정부의 한 실세는 “집 없는 사람이 많아야 진보가 집권한다’는 내용을 담은 책을 쓰기도 했다. 그 책에는 빈곤 중독의 마수가 어른거린다. 기자가 2006년 인도 특파원 시절 본 한 주지사 선거에선 ‘온 주민에게 컬러 TV를 주겠다’는 후보가 당선됐다. 그는 주민 10%에게만 TV를 지급했다. 이후 다음 선거에 출마하며 내세운 공약이 “또 뽑아주면 반드시 모두에게 주겠다”였다.

 

영광 군수의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었으면 한다. 유권자도 용인해 주기를 바란다. 어찌 성장한 나라인데, 빈곤 비지니스인가. 무능, 부패보다 더 무서운 게 이것이다.

 

-이인열 기자, 조선일보(2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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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통행료 인하'라는 거짓말 

 

인천공항 고속도로의 '신공항 톨게이트' 모습.

 

정부가 ‘깎아준다’는 표현을 써가며 가격을 계속 내리고 있는 요금이 있다. 민자고속도로 통행료 얘기다. 지난해 10월 인천공항 고속도로 통행료가 6600원에서 3200원으로 내린 걸 비롯해 전국 대부분 민자고속도로가 순차적으로 가격을 깎았다. 가격 인하는 어디서든 환영을 받는다. 내가 내는 돈이 줄어든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같은 할인 정책이 본격화된 건 지난 2018년 8월 문재인 정부가 반년간 연구, 관계 기관 협의를 거쳐 ‘민자고속도로 통행료 관리 로드맵’을 내놓으면서다. 국민 부담을 줄이는 정책 추진 내용이 대대적으로 홍보됐고 별 반대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러나 공짜는 없다. 모든 민자고속도로 통행료는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해 올라가도록 설계·협약돼 있다. 통행료 미인상에 따른 부족분은 정부가 물어야 한다. 실제 매년 정부가 민자고속도로 운영사에 주는 지원 금액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내년 정부 예산을 살펴보니 지난해 16개 민자고속도로의 정부 지원액은 930억원에서 1885억원으로 2배 늘어난다. 통행료 인하 정책의 청구서가 날아오는 셈이다.

 

정부 돈을 들여 민간 운영사의 손실을 보전한다는 건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짐을 지운다는 뜻이다.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한 번도 이용하지 않은 사람도 통행료를 함께 분담하라고 하면서 ‘가격 인하’란 말을 쓰는 건 언어유희일 뿐이다.

 

더욱이 정부는 통행료를 낮춘 대신 유료 도로 운영 기간도 대폭 늘려놨다. 인천공항 고속도로의 경우 애초 2030년까지만 유료 도로로 운영될 예정이었지만, 통행료를 깎은 탓에 2061년까지 유료 도로로 유지된다. 유료 도로로 운영되는 기간이 늘어나면 유지비 등 총액도 늘어나 결국 국민 부담도 커지게 된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민간 회사 입장에서도 달가운 결정일 리 없다. 이들은 빠른 자금 회수가 중요하다. 기간이 길어지는 건 리스크다.

 

정부는 예산 과다 지출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통행료를 낮춘 일부 사업을 한국도로공사 같은 공기업에 떠넘기기도 한다. 실제 내년 민자고속도로 운영사에 대한 정부 지원 금액이 1885억원에 그치는 것도 인천공항, 대구~부산, 천안~논산 등 민자고속도로 사업을 재구조화해 국가 예산이 아니라 한국도로공사 등이 보전하는 방식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돈을 내는 주체만 변경한 것인데, 이 3개 민자 고속도로 운영사에도 연간 3500억원 규모 금액을 내야 한다. 한국도로공사는 지난해 연말 기준 부채 규모가 38조원이 넘는다. 일평균 이자로 갚아야 할 돈만 27억원이다.

 

외면하고 싶은 얘기지만, 애초부터 통행료를 깎아준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민자도로는 이용한 이들의 통행료를 통해 운영되는 게 기본 원칙이다. 지금이라도 통행료 현실화에 나서야 한다.

 

-김아사 기자, 조선일보(2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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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正) 자의 빛과 그림자

 

정(正)이라는 한 글자만 잘 음미해 보아도 정치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공자는 당시 실력자 계강자(季康子)가 정(政)을 묻자 정(正)이라고 답하면서 “대부께서 바름[正]으로 이끄신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이런 사례는 ‘논어’에 아주 많이 등장한다.

 

자로(子路)라는 제자가 “위(衛)나라 군주가 스승님을 기다려 정치를 맡기려 하니 스승님께서는 장차 무엇을 먼저 하시렵니까?”라고 묻자 “반드시 이름부터 바로잡겠다[正名]”라고 답했다. 또 “(임금의) 자기 몸이 바르면[正] 명령하지 않아도 일이 행해지고 자기 몸이 바르지 않으면[不正] 설사 명령을 내려도 (신하들이) 따르지 않는다.”

 

이때 말하는 정(正)과 짝을 이루는 말은 부정(不正), 즉 사(邪)이다. 그래서 정사(正邪), 즉 바르거나 그르거나라는 말이 있다.

 

이상은 수기(修己) 차원의 정(正)이다. 공자는 치인(治人) 차원으로 들어가면 정(正)과 중(中)이라는 짝을 강조한다. 이 경우 정(正)은 신하의 도리이고 중(中), 상황에 적중함[時中]은 군주의 도리가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나라 환공을 도와 패권을 이룩한 관중(管仲)에 대한 공자와 제자들의 시각 차이이다. 자공과 자로는 자기 주군을 배반하고 환공을 도운 관중을 부정(不正)하다고 보아 어질지 못하다고 했다. 그러나 공자는 단호하게 “환공은 제후들을 아홉 번 모으면서도 무력을 쓰지 않았는데 이는 관중의 힘이었으니 (누가) 그의 어짊만 하겠는가? 그의 어짊만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 정치는 여야 지도자 모두 정사(正邪) 중에서 사(邪)에 빠져 서로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언감생심(焉敢生心), 정(正)에서 중(中)으로 나아갈 고민은 해보지도 못하고 있다. 정사(正邪)의 정(正) 못지않게 중정(中正)의 중(中)을 잘 잡아 쥐는 지도자를 가져본 지가 언제이던가?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조선일보(2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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