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隨想錄]

["문석열은 어떻게 됐니?"] ['봄날은 간다']

뚝섬 2025. 4. 5. 07:59

[요양병원에 누운 구순 엄마가 물었다 "문석열은 어떻게 됐니?"]

['봄날은 간다']

 

 

 

요양병원에 누운 구순 엄마가 물었다 "문석열은 어떻게 됐니?"

 

'봄날은 간다'와 엄마의 요양병원

 

지방에서 강연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라디오에서 ‘봄날은 간다’가 흘러나온다. 4월이 되면 엄마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로 시작되는 이 노래를 즐겨 부르곤 했다. 음치였던 아버지도 생전에 유일하게 흥얼거렸던 곡이다. 서울 굴레방다리 골목에서 가난하게 살았지만,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이란 가사로 위로받곤 했다. 알고 보니 작사가 손로원이 피란살이하던 부산 용두동 판잣집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노랫말이라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딸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면회를 게을리했다는 자책감이 들어 차를 돌려 엄마가 입원 중인 병원으로 향했다. 환갑을 넘긴 나이임에도 어머니라는 표현 대신 여전히 엄마라 부른다. 응급실, 중환자실, 대학병원을 거쳐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어느덧 4년째, 구순을 넘긴 엄마는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음식 삼키는 기능도 안 되어 힘겹게 버티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그림 '기도하는 손'. 응급실, 중환자실, 대학병원을 거쳐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어느덧 4년째, 구순을 넘긴 엄마는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힘겹게 버티고 있다. /위키피디아

 

인생을 흔히 전반전과 후반전에 비유하곤 하는데 100세 시대에는 ‘연장전’이라는 또 하나의 단계가 기다리고 있다. 요양병원 혹은 요양원은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곳이다. 천사의 얼굴을 가진 의사와 간호사도 있지만 감정이 메마른 이들도 간혹 만난다. 간병인 구하기가 어려워 한국어 못하는 중국인 간병인과 스마트폰 번역기로 대화를 나누는 촌극도 벌어진다. 손흥민이 뛰는 축구 경기는 연장전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지만, 인생 연장전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는 게 더 큰 어려움이다.

 

스위스 출신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죽음과 죽어감’이라는 책에서 죽음을 앞둔 인간의 심정을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단계로 나눈 뒤 영어 머리글자를 따서 ‘답다(DABDA)’라 했다. 엄마도 비슷했다. 처음 뇌경색이 찾아왔을 때 부정하다가 분노했다. 그나마 처한 현실과 타협할 수 있었던 것은 르네상스 시대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기도하는 손’ 복사본 그림 덕분이었다. 절대자에게 매일 간절히 기도했다. 

 

불편한 손으로 엄마가 그린 꽃과 새. /손관승 제공

 

아직 한쪽 손이나마 제대로 쓸 수 있을 때는 꽃과 새를 그렸는데, 그림이 완성되면 퇴원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덕분인지 기적처럼 회복해 병원 사람들의 박수 받으며 퇴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병이 재발해 다시 입원하게 되자 휴대전화가 바깥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통로였다. 동트기 전 새벽에 걸려 온 전화기에서 “나 집에 가고 싶어”라는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날에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얼마 전 엄마는 어눌한 발음으로 내게 묻는다. “문석열은 어떻게 되었니?” 무슨 뜻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더니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 입원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사태 와중에도 병실에 계시니 두 이름이 합성된 듯하다. 무거운 분위기의 병실에서 웃음을 빵 터뜨리자, 옆 침대에 누워 있던 할머니가 ‘저 사람 왜 저래?’ 하는 초점 없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요양병원의 어머니를 세상과 연결하는 휴대전화. /손관승 제공

 

단조롭기 짝이 없는 병실 생활이기에 환자들은 사소한 것에 기분 상하고 질투한다. 옆 환자에게 더 잘해 준다는 피해의식도 많다. 언어 기능이 살아있는 노인들은 아무에게나 자식 자랑 한다. 듣는 청중은 아무도 없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지루한 하루가 지나간다. 같은 병실의 다른 환자 가족이 다녀가면 나머지 환자들은 우울하다. 얼마 전 엄마를 뵙고 병실을 나오려는데, 뒤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돌아보았다. 이웃 할머니가 귀가 들리지 않는 다른 할머니에게 혼잣말처럼 말하고 있었다. “우리, 부러워하지 맙시다!”

 

갑자기 턱에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뜨거운 기운이 확 올라왔다. 피터 드러커가 말했던가. 상대방이 앞에서 말하지 않고 있는 진짜 속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진정한 소통의 의미라고. 지난해 돌아가신 장모님 병실에는 무슨 사연인지 몇 달 동안 한 번도 자식이 찾지 않는 환자도 있었다. 병원에 면회 못 가는 이유는 10개 이상 댈 수 있다. 하지만 가야 할 이유는 단 하나, 그곳에 기다리는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시간은 나는 게 아니라 내는 거다.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그림 '어머니'. /위키피디아

 

뒤러의 또 다른 그림 ‘어머니’처럼 얼굴은 말라가고 발음도 이전보다 더 어눌해지기는 해도 아직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유튜브로 ‘봄날은 간다’를 틀어드렸더니 백설희의 원곡과 장사익의 목소리가 좋다고 하면서 내 나이를 묻더니 한마디 던진다. “한창 때구나. 좋을 때이지.” 나는 인생이 찌그러진 구간에 접어들었다고 우울해하는데, 구순의 엄마에게 내 나이는 한창 때인가. 그 시기가 얼마나 좋은지는 지나 봐야 아는 법인지도 모른다. 마흔이 얼마나 좋았는지는 50이 되어봐야 알고, 50이 얼마나 행복한 시절이었는지 60이 되어봐야 안다.

 

“글의 소재는 어디서 영감을 얻나요?” 가끔 그런 질문을 듣는다. 영감의 시간이라는 것은 대부분 존재하지 않는다. 내면 어딘가에 잠자고 있던 것을 적절한 압박이 끌어올릴 뿐이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입원 중일 때 연재 마감이 겹쳐 대기실에서 원고를 쓴 적도 있다. 마감 시간을 가리켜 영어로 ‘데드라인’이라 하는데 생(生)과 사(死)를 가르는 선이다. 마감 시간 덕분에 억지로라도 영감을 떠올리게 되니 데드라인이야말로 창의성의 뮤즈라 할 수 있다.

 

인생도 비슷하다. 어쩌면 최고의 영감은 죽음 그 자체인지 모른다. 죽음을 의식하면서 우리는 매일 새롭게 태어나니까. 병원 문을 나서며 엄마가 좋아하던 노래를 마저 따라 부른다.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손관승 글로생활자, 조선일보(2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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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대중음악 노랫말은 때로 시(詩)다. 가슴 깊숙이 들어와 가슴을 뭉텅 베어 가는 노래라면 그건 시다. 계간지 '시인세계'가 2004년 시인 100명에게 '좋아하고 흥얼거리는 노랫말'을 물었다. 2~5위에 '킬리만자로의 표범'(작사 양인자) '북한강에서'(정태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양희은) '한계령'(하덕규)이 올랐다. 단연 1위는 1953년 백설희가 부른 '봄날은 간다'(손로원)였다. 열여섯 명이 꼽아 2위를 여섯 표 앞섰다. 

 

▶작사가 손로원은 원래 화가였다. 광복 후 '비 내리는 호남선'을 비롯한 여러 가사를 썼다. 그는 6.25 전쟁 때 피란살이 하던 부산 용두산 판잣집에 어머니 사진을 걸어뒀다. 연분홍 치마에 흰 저고리 입고 수줍게 웃는 사진이었다. 사진은 판자촌에 불이 나면서 타버렸다. 그가 황망한 마음으로 써 내려갔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요즘 차에 두고 노상 듣는 노래가 '봄날은 간다'다. 백설희부터 박은경과 래퍼까지 60년에 걸친 가수 스물셋이 각기 불렀다. 최백호·장사익은 감정을 간수하지 않고 뜨겁게 내지른다. 절절하게 토해낸다. 조용필·김도향·최헌은 덤덤하도록 절제한다. 들을수록 깊은맛이 우러난다. 한영애는 신들린 듯 주절대는 스캣이 오래 남는다. 나훈아·이동원·심수봉도 저마다 저답게 불렀다. 

 

▶듣다 보니 봄날이 다 갔다. 거리엔 어느새 반팔 차림이다. 좋은 시절은 금세 간다. 봄도 문득 왔다 속절없이 떠난다. 그래서 화사할수록 심란하다. '봄날은 간다'는 그립고 슬프다. '그때가 봄날이었지' 되뇐다. 다시 못 올 젊음의 회한(悔恨)을 삼킨다. 나이 든 이는 이제 봄을 몇 번이나 더 맞겠는가 싶다. 그 애틋함에 끌려 수없이 많은 가수가 불렀다. 가는 봄 서러워 목이 멘다. 

 

▶'봄날은 간다'를 듣다 듣다 별스러운 곳에서 듣는다. 며칠 전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희 의원이 첫 소절을 불렀다. 막말 소동으로 회의장에 흐르던 침묵을 깨뜨렸다. 야당 앞날을 탄식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어버이날 경로당에서 불러 드리고 왔다"고 했다. 노인 위로에 적절한 노래도 아니다. 그는 이튿날 "분위기 바꿔보려다 심려 끼쳐 죄송하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공적연금에 대한 알뜰한 맹세가 실없는 기약으로 얄궂은 노래가 됐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참 궁색하게 들린다. 정치인은 좋은 노래마저 지저분한 정치로 오염시킨다.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조선일보(1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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