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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 계승 분쟁] [모두의 '女王'이 되고 싶었다면.. ]

뚝섬 2024. 11. 19. 15:43

[왕위 계승 분쟁]

[모두의 '女王'이 되고 싶었다면, 권좌를 지키고자 했다면.. ]

 

 

막강 권력도 평생 내부의 적과 경쟁… '왕가의 라이벌' 그려

 

국내외 역사를 막론하고 왕은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이자 평생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 비극의 주인공이었어요. 왕위를 지키는 일이라면 목숨까지 걸어야 했으니까요. 왕위는 외세의 침입으로 빼앗기기도 하지만, 내부의 적에 의해 찬탈되는 경우도 많지요. 왕위 계승을 위해서라면 먼 친척은 물론 형제지간이나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칼을 겨누곤 했습니다. 최근 왕가의 ‘라이벌’을 소재로 한 두 편의 공연이 있었는데요. 바로 ‘경종수정실록’과 ‘이자벨 위페르의 메리 스튜어트’입니다.

 

정치적 라이벌 관계 아닌 형제애 주목

 

뮤지컬 ‘경종수정실록’은 조선의 20대 왕 경종(1688~1724)과 그의 이복동생으로 훗날 왕위를 잇는 영조(1694~1776)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입니다. 경종과 영조는 숙종을 아버지로 두고 있지만 어머니가 달랐지요. 숙종이 아끼던 희빈 장씨(장희빈)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경종은 세 살이 되던 해 왕세자로 책봉됐어요. 경종의 이복동생이었던 영조는 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요. 왕세자이자 후궁의 아들이었던 둘. 경종이 즉위한 이후엔 그의 지지 세력인 소론과 영조를 지지하는 노론 사이 심각한 대립이 벌어집니다. 

 

경종과 영조는 서로를 정적으로 의식할 수밖에 없었으나, 뮤지컬은 이 둘의 형제애에 주목해요. 그간 경종은 조선의 왕들 중 가장 병약하고 존재감 없는 왕으로 평가됐어요. 실제로 경종은 왕위에 오른 지 불과 4년 만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는 신경이 쇠약했고 한밤중에 마당을 배회하기도 했다고 해요. 결국 후손도 낳지 못하고 병으로 생을 마감했죠. 경종의 건강이 나빴던 것은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경종은 어린 시절 어머니 희빈 장씨가 당쟁에 휘말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봐야 했어요. 게다가 자신의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치열한 당파 싸움이 벌어졌으니, 어머니의 죽음처럼 자신의 위치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경종은 이복동생 영조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답니다. 일부에선 영조의 사주로 인해 경종이 죽게 됐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경종은 영조를 아꼈다고 해요.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싼 소론과 노론 사이 싸움에서도 소론 강경파는 영조도 처벌하라고 주장하지만 경종은 영조를 끝까지 보호하죠.

 

조선왕조실록에는 ‘경종실록’과 ‘경종수정실록’이 모두 전해져요. 노론과 소론의 당쟁이 극심하던 때에 쓰여진 ‘경종실록’이 소론 중심의 기록이라는 문제가 제기됐고, 정조 대에 ‘경종수정실록’이 쓰여졌어요. 뮤지컬엔 가상의 인물인 홍수찬이라는 사관이 등장하여 이들의 관계를 묵묵히 실록으로 남기죠. 경종 사망 후 왕위에 오른 영조는 무려 52년 동안 나라를 통치한 조선 최장수 왕이 됐답니다.

 

친척 간 왕위 계승 갈등 그렸죠

 

유럽에선 이와 정반대의 결말을 가진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경종이 태어나기 100여 년 전 영국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로 나뉘어져 있었어요. 두 국가 모두 여왕이 있었죠. 스코틀랜드의 여왕은 메리 스튜어트(1542~1587), 잉글랜드의 여왕은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였어요. 메리 스튜어트는 엘리자베스 1세의 5촌 조카예요. 잉글랜드 왕실 혈통에서 적자에 더 가까운 사람은 메리였기 때문에,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권을 놓고 두 사람은 평생을 대결하는 라이벌이 됩니다.

 

스코틀랜드의 국왕 제임스 5세의 딸 메리는 오빠들이 모두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오르게 돼요. 이때 잉글랜드의 왕 헨리 8세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통합을 꾀하며 자신의 아들인 에드워드 왕자와 메리를 결혼시키려 하죠. 하지만 친프랑스파인 메리의 어머니 마리 드 기즈는 메리를 훗날 프랑스의 왕이 되는 프랑수아 2세와 결혼시켰어요. 이후 프랑수아가 즉위 1년여 만에 사망하자 메리는 스코틀랜드의 여왕으로 귀환하게 되지요. 이는 엘리자베스 1세에게 위협이 되었어요. 메리는 오랫동안 자신이 잉글랜드의 적법한 여왕임을 주장해왔기 때문이에요.

 

지금도 영국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왕으로 손꼽히는 엘리자베스 1세는 헨리 8세와 그의 두 번째 부인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엘리자베스는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내요. 그의 어머니 앤 불린은 불륜과 모반 등의 혐의를 받아 그의 아버지에 의해 처형됐어요. 이와 함께 엘리자베스의 왕위 계승도 멀어지는 듯 했어요. 엘리자베스는 헨리 8세가 죽고 난 이후 에드워드 6세, 그리고 메리 1세(엘리자베스의 이복자매)를 거쳐 마침내 여왕으로 등극하게 되지요. 하지만 왕이 된 이후에도 고민은 계속됩니다. 평생을 홀로 지냈던 탓에 후계자에 대한 걱정이 그를 괴롭혔죠.

 

한편 스코틀랜드에선 귀족들의 반란이 일어나 메리는 1568년 잉글랜드로 망명 요청을 합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고민 끝에 자신의 친척인 메리를 받아줘요. 하지만 잉글랜드에서 반역 행위에 연루된 메리는 결국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처형당하며 생을 마치죠.

 

연극 ‘메리 스튜어트’는 파란만장했던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삶을 그린 1인극이에요.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이자벨 위페르가 내한 공연을 해 많은 관심과 호평을 받은 작품이죠. 메리가 죽음을 맞기 직전 프랑스 왕 앙리 3세에게 남긴 편지를 바탕으로 메리의 삶이 3막으로 압축돼 전달됩니다. 이자벨 위페르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메리의 비극적인 삶의 격랑이 그대로 전해졌어요.

 

이처럼 왕가의 라이벌들은 왕위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우애를 유지하면서도, 때론 피할 수 없는 운명의 파도에 휩쓸려 생을 마감하기도 했지요.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기획·구성=윤상진 기자, 조선일보(2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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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女王'이 되고 싶었다면, 권좌를 지키고자 했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 모델로 삼은 엘리자베스 1세는 후덕한 성품의 여인은 아니었다. 여왕의 사생활을 연구한 역사가 앨리슨 위어는 대영제국을 일군 이 여걸이 괴팍하고 거만하며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안하무인이었다고 썼다. 신경과민에 공황발작 증세도 있어 걸핏하면 욕설을 퍼부었다. 염문도 끊이지 않았다. 서른세 살이나 어린 에식스 백작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국가 통치에선 달랐다. 교활하리만큼 치밀했다. 세 살에 어머니를 단두대에서 잃은 그는 '진짜 마음' 숨기는 법을 일찌감치 터득했다. 주변국을 경쟁시키고 틈 벌려가며 외교적 이득을 차지하는 지략은 여기서 나왔다. 국민 마음 사로잡는 데도 귀재였다. '지도자는 국민 시야에서 벗어나선 안 된다'고 믿어 매일 저녁 배를 타고 템스 강을 건넜다. 거리를 행진할 땐 미천한 여인들이 건네는 꽃다발을 가장 먼저 받았다. 결혼하라 성화인 귀족들에겐 "나는 잉글랜드를 남편으로 섬기노라" 선언했다.

박 대통령은 삶의 굴곡이 비슷한 엘리자베스 1세처럼 나라를 통치하고 싶었을 것이다. 경제 신화 일군 아버지를 이어 통일 신화를 이루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왕정 시대 여왕도 고수했던 두 가지 통치 원칙을 그는 외면했다. 아버지 헨리 8세보다 더한 독재자란 평도 들었지만 엘리자베스는 누구보다 의회와 여론을 두려워했다. 나이, 신분, 장애를 떠나 명석한 인재를 발탁해 치열하게 논쟁했고, 총애하던 측근도 비리에 연루되면 가차없이 잘라냈다. 빈민구제법 시행을 앞두고 의회가 왕실의 독점 사업권을 내려놓으라 압박할 땐 지체없이 백기를 들었다. "국민의 사랑 없이 왕좌의 영광은 무의미하다"는 걸 그녀는 알았다.

대북 정책, 통진당 해산 등 박 대통령이 잘한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업적은 아홉 살 내 딸을 비롯한 이 땅의 여자아이들이 "내가 대통령이 되면…"이란 말을 서슴없이 하게 해준 것이다. 불행히도 그는 엄혹한 교훈도 함께 안겨줬다. 법치와 공적 시스템에 대한 지도자의 불감증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부르는지, 불통과 독선의 대가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권력이 쇠하는 순간 제 살길 찾아 날뛰는 정치인이 얼마나 많고, 여성 대통령 침실까지 파고들려는 바퀴벌레들은 또 얼마나 득실대는지 그 밑바닥을 보여줬다권좌를 지키고자 했다면 뱀처럼 냉철하고 지혜로워야 했다국정을 농단한 연인(
戀人) 에식스의 목을 도끼로 내려친 엘리자베스처럼 잔혹하고도 고결해야 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딸애는 묻는다. "엄마도 대통령 흉보는 거야?" "아니, 안개가 걷히길 기다리는 거야." 사인(
私人)에게 휘둘려 권력을 남용한 대통령에 분노하지만, 무차별 유언비어와 선동으로 무엇이 거짓이고 진실인지 모를 땐 기다려야 한다. 검찰은 대통령을 피의자로 규정했지만 위법 여부, 죄의 경중은 법이 판단할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이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버티기로 일관하면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불신의 장막을 걷으려면 겸허해져야 한다. 대통령이 먼저 용서를 구해야 한다. 상대가 국민이다. 대한민국의 첫 여성 대통령을 참담하게 떠나보낼까 두렵다. 사방이 적(敵)으로 둘러싸인 암흑을 엘리자베스는 "국민을 위해선 목숨도 내놓겠다"는 결기로 헤쳐나갔다. 아직 늦지 않았다.

-김윤덕 문화부 차장, 조선일보(16-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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