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란 관계]
[이스라엘의 '핵 인질' 탈출법]
이스라엘·이란 관계
미사일 공동 개발한 우방국… '이란 혁명' 이후 앙숙으로
작년 10월 하마스(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1년 넘게 계속되고 있어요. 그런데 올해 4월과 10월에는 하마스뿐 아니라 이란과 이스라엘이 서로의 영토에 미사일을 발사하며 군사 분쟁이 벌어졌어요. 많은 사람이 이란-이스라엘 전쟁도 날지 모른다며 걱정하는 상황이지요.
지금은 서로 미사일을 겨누고 있지만, 이란과 이스라엘은 사실 사이가 좋았던 시기가 있었답니다. 오늘은 두 나라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아볼게요.
군사∙경제적 협력하던 이란과 이스라엘
기원전 6세기에 이스라엘인의 조상들은 나라를 잃고 오늘날 이라크에 있는 바빌론으로 끌려가 노예 생활을 했어요. 이후 이란 사람들의 조상인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황제가 바빌론을 정복했는데, 그는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고향으로 돌아가 살 수 있게 해주었답니다. 과거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킨 게 이란의 조상인 것이지요.
두 나라가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부터입니다. 석유가 많이 나는 이란과 군사 기술이 뛰어난 이스라엘은 서로 경제적·군사적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협력 관계였답니다.
1968년 두 나라는 공동으로 석유 파이프라인도 건설해요. 홍해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최남단 에일라트 항구에서부터 지중해와 맞닿아있는 이스라엘 북부의 아슈켈론 항구까지 송유관을 설치한 거죠. 이스라엘 입장에선 석유 운반 수단이 생기고, 이란 입장에선 비싼 통관료를 내야 하는 수에즈 운하 대신 이 파이프라인을 이용해 유럽으로 석유를 수출할 수 있으니 양측 모두 이득이었죠.
양국은 1970년대 후반엔 장거리 탄도미사일 공동 개발 사업도 벌입니다. 미사일 기술을 발전시키려 했던 이란은 돈을 대고, 이스라엘은 그 돈으로 새로운 미사일을 개발하고 실험해 기술을 이란에 이전해주는 방식이었어요. ‘플라워(flower)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사업입니다.
‘이슬람혁명’ 이후 앙숙 관계 됐죠
두 나라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한 것은 1979년부터예요. 당시 이란에선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며 왕정이 무너지고 이슬람교 신앙에 기반해 국정을 이끄는 혁명 정부가 들어섰어요. 초대 이란 최고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는 이슬람 세계의 연대를 강조하는 동시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를 반대하는 정책을 폈죠. 이스라엘을 향해서는 팔레스타인 땅을 강제로 점령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오늘날 중동 정세를 이해하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부터 이해해야 해요. 세계 곳곳에서 박해받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대 유대인의 땅인 팔레스타인 시온(예루살렘)에 나라를 세운다는 ‘시온주의’를 내세우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를 세웠지요.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에선 아랍민족주의를 앞세운 아랍 국가와 시온주의의 이스라엘이 다투게 돼요. 그런데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박해를 받는 이슬람교 신자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 갈등을 ‘이슬람 세계와 이스라엘’의 대립으로 바꾼답니다.
이란은 팔레스타인에 독립 이슬람 국가를 만들려는 무장 단체 하마스를 지원했어요. 또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레바논에서 활동하는 반(反)이스라엘 무장단체 헤즈볼라에도 무기와 돈을 지원하고 있죠. 팔레스타인 독립을 돕는 시리아의 친(親)이란 민병대, 이라크의 이슬람저항군, 예멘의 후티반군도 모두 이란이 지원하지요.
이에 이스라엘은 이란의 이슬람 정부를 무너뜨리고자 이란 안팎의 반정부 세력을 돕지요. 이란은 다민족 국가예요. 언어 또한 페르시아어가 국어(國語)이긴 하지만, 국민 약 40%는 쿠르드어, 아제르바이잔어, 아랍어 등을 쓰죠. 이 사람들 중에 이란에서 독립하고 싶은 세력을 이스라엘이 몰래 지원하는 거예요. 이처럼 이란과 이스라엘은 뒤에서 조용히 상대방의 반대 세력을 지원하는 ‘그림자 전쟁’을 오랫동안 벌이고 있어요.
핵무기 두고 갈등 깊어졌어요
두 나라의 관계는 2002년 이란 반정부 단체의 폭로 때문에 더욱 멀어지게 됩니다. 이란 정부가 비밀리에 핵(核)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힌 거예요.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주변 아랍국가와 전쟁을 한 나라죠. 한 이란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고까지 적개심을 드러냈지요. 그런 나라가 핵개발을 한다니, 이스라엘은 더욱 이란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거죠.
현재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의 핵시설을 파괴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어요.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반이스라엘 무장단체도 지원하는 이란을 가만히 두고서는 이스라엘 안보가 불안하다고 여기지요. 이란은 호시탐탐 이스라엘을 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고요. 그래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는 우려가 나오는 거랍니다.
작년 10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텔아비브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 장관과 면담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어요.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의 핵 시설 공격 등 강경책을 주장해요. /로이터 뉴스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핵시설을 공격하려는 이스라엘의 전략에 동의하지 않았어요. 중동 지역 갈등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예요. 이란이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해 국제 사회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과 핵시설 파괴에 따른 오염도 우려했죠.
하지만 이번에 미국 대통령에 다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는 입장이 다릅니다. 이전 대통령 재임 시절 아랍 국가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대사관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길 정도로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거든요. 얼마 전 선거 유세 기간엔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격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죠.
중동 내 살얼음판 같은 긴장관계는 앞으로도 쉽게 해소되긴 어려울 전망이에요. 이란은 그동안 대량 살상 무기인 핵은 이슬람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며 평화로운 핵개발만 하겠다고 했는데, 최근 이스라엘과 공격을 주고받은 후에는 ‘국가 안보에 필요하면 핵무기를 가질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기획·구성=윤상진 기자, 조선일보(2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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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핵 인질' 탈출법
이스라엘, '미국 힘' 빌려 4년여 이란 '경제 봉쇄'
겨우 4개월 된 對北 제재… 20개월 넘게 지속해야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이란에 2010년은 악몽의 한 해였다. 핵 프로그램을 통제하는 컴퓨터 수천 대가 스턱스넷(stuxnet)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의 20%가 통제 불능에 빠졌다. 주요 핵 시설에서 원인 모를 폭발 사고와 고장이 이어졌고 핵 과학자들은 줄줄이 암살당했다.
뉴욕타임스 등은 '이란 핵을 막으려는 이스라엘 비밀공작의 결과'라고 했다. 핵 조기 완성을 노리던 이란 계획은 계속 차질을 빚었다. 이스라엘은 1980년대 말 이란이 비밀리에 파키스탄 핵개발의 주역인 압둘 카디르 칸 박사와 손잡을 때부터 심각성을 알아챘다. 칸 박사는 시리아·리비아 등에도 핵 기술을 판매한 인물이다. 2005년 '이스라엘 멸족(滅族)'을 공언한 아마디네자드가 이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스라엘은 명운을 걸고 핵 저지에 나섰다.
이스라엘은 1981년 6월 이라크의 원자로와 2007년 9월 시리아의 원자로를 '외과수술식 타격(surgical strike)'으로 제거한 나라다. 특히 2007년 공습의 경우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협조를 거부했는데도 단독으로 F-15 전투기를 띄워 원자로를 폐허로 만들었다. 그랬던 이스라엘도 이란 핵 시설은 때리지 못했다.
위성촬영 업체 디지털글로브가 제공한 이 두 위성촬영 이미지는 핵시설로 의심되는 시리아 시설로 지난 2007년 9월 6일의 이스라엘 공습 전과 공습 후의 모습니다. 좌측 이미지는 지난 2007년 8월 5일, 그리고 우측 이미지는 2007년 10월 24일 각각 촬영한 것이다. /연합뉴스
2002~2011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를 이끈 메이어 다간은 "군사 공격으로는 이란 핵개발을 지체시킬 뿐"이라고 했다. 실제 이라크·시리아의 핵은 노출된 원자로가 전부였지만, 이란 핵은 이슬람 시아파 성지와 지하동굴 등에 분산 은닉돼 있었다. 위장 시설도 많아 공격 목표를 특정하기 어려웠다. 이스라엘은 1960년대 말 이미 자체 핵무장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중동 강국인 이란과의 전면전이 가져올 치명적 피해를 우려했다.
이스라엘의 선택은 미국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미국 내 유대인 영향력을 십분 활용했다. 2011년 12월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외국은행을 미 금융시스템에서 퇴출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란 '돈줄'인 원유 수출 대금은 중앙은행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 법은 이란산 원유 금수(禁輸)나 다름없었다. 한 달 뒤 유럽연합(EU)은 이란 원유 수입을 막았고, 이란 우호국이던 중국도 이란산 수입을 평소 절반으로 줄였다. 미국은 이란 은행과 거래했다는 이유로 중국 14위 규모였던 쿤룬은행을 제재했다. 결국 2013년 당선된 개혁파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미국과 진지하게 협상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고, 2015년 이란 핵과 경제 제재를 맞바꾸는 협상이 타결됐다. 대(對)이란 제재가 본격화한 지 4년 만이다.
한민족을 절멸시킬 수 있는 북핵이란 암 덩어리는 외과 수술로 제거하기에는 너무 커졌다. 북핵 암 진단을 받은 지 25년이 지났으나, 우리 정부가 북핵을 늦추기 위해 이스라엘처럼 필사의 비밀공작을 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북은 핵을 개발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북한 핵 보유는 일리가 있다"는 소리만 들렸다.
미·중 등 국제사회가 대(對)이란 수준의 대북 제재망을 구축한 게 겨우 3~4개월 전이다. 그 약효는 북한 김여정이 평창올림픽에서 미국 부통령을 만나려 한 데서 입증됐다. 한반도와 중동은 다르다. 그러나 전쟁 없이 '핵 인질' 위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경제 봉쇄를 당한 이란이 비핵화 대화에 나오는 데도 20개월 넘게 걸렸다. 지금 대북 제재에 엉뚱한 구멍을 내지 말고 20개월만 유지해 보자. 몰리고 다급한 쪽이 더 많이 양보하는 법이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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