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자본'을 아시나요]
[AI 강국을 만들겠다는 새 정부가 잊지 말아야 할 것]
['서울대 10개 만들기' 잘못하면 헛돈 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국립대 개혁 없인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과학 자본'을 아시나요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첨단 연구소? 연구비? 노벨상? 다 틀렸다. 답은 ‘인재’다. 인재가 없으면 노벨상도 공염불이며, 연구비를 쏟아부어도 도루묵이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좋은 대학을 지원하는 학생들이 과학기술 분야로 오지 않으며, 과학에 흥미가 있어도 상위권 대학의 관문을 넘지 못해 과학을 단념하는 학생들 역시 많다는 이중적인 것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면서 과학기술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주목할 개념이 ‘과학 자본(science capital)’이다.
영국 킹스칼리지의 루이즈 아처 교수는 5년에 걸친 추적 조사를 통해 과학에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나중에 과학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학생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것은 이들의 부모가 과학을 좋아하거나 취미로라도 과학을 한다는 것이다. 아처는 이런 현상을 포괄하는 개념을 찾다가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문화 자본에 착안해서 과학 자본 개념을 만들었다.
과학 자본은 과학에 대한 태도, 경험, 사회적 관계, 일상적 실천을 모두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다. 한 개인이 삶을 통해 축적한 과학 관련 사회·문화 자본의 총체로 정의된다. 과학 관련 콘텐츠를 이해하는 과학 문해력(scientific literacy)은 과학 자본의 한 요소다. 이 외에도 과학 매체 소비, 가족의 과학 역량, 과학 관련 인맥, 일상 속 과학 대화 등이 과학 자본을 구성한다.
과학 자본이 낮은 학생들은 과학을 ‘나와 무관한 분야’로 인식한다. 따라서 단지 흥미 유발로만은 이들을 과학으로 유인할 수 없다. 과학에 진입하는 경로를 다양화하고,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넓히는 과학 대중화를 통해 과학 자본이 낮은 학생들에게 과학 자본을 축적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과학은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가 접근할 수 있었던 공공 자산이었다. 이런 정신을 복원하려면 과학 자본 축적의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하는 실천적 과학 대중화가 필요하다. 과학 자본은 과학의 발전을 넘어 사회적 격차를 줄이는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조선일보(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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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강국을 만들겠다는 새 정부가 잊지 말아야 할 것
1880년 프랑스 정부는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에게 볼타상을 수여했다. 벨은 상금 5만달러로 미국 워싱턴에 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벨 연구소(Bell Labs)’에서 전파망원경, 형광 현미경, 트랜지스터, 레이저, 광전지, 디지털 카메라의 핵심 기술 전하결합소자(CCD), 컴퓨터 운영체제 유닉스, 프로그래밍 언어 C·C++ 같은 성과가 탄생했다. 디지털 세상의 토대가 이곳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벨 연구소 연구원들이 받은 노벨상만 11개에 이른다.
인공지능(AI)의 역사도 벨 연구소에서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벨 연구소에서 일하던 26세 청년 클로드 섀넌은 영국에서 찾아온 수학자를 만난다. 세계 최고의 암호 해석 전문가로 꼽히던 그의 이름은 앨런 튜링. 섀넌과 튜링은 매일 차를 같이 마시며 수학을 활용해 디지털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토론했다. 특히 섀넌은 튜링이 고민하고 있던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라는 아이디어에 깊은 영감을 받았다.
섀넌은 ‘계전기와 스위치로 이루어진 회로의 기호학적 분석’과 ‘정보통신의 수학적 이론’이라는 논문을 썼다. 수학을 이용해 정보를 비트라는 단위로 수치화할 수 있으며, 압축해 정확하게 전달할 수도 있다는 내용을 담은 이들 논문에서 지금의 컴퓨터 회로 설계 방식과 AI의 개념이 만들어졌다. 섀넌은 1950년 미로(迷路)와 금속 쥐, 전기 회로를 이용해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친 그리스 신화 속 영웅에서 이름을 딴 최초의 AI 기계 ‘테세우스 머신’을 만들었다. 테세우스 머신 속 금속 쥐는 미로를 탐색하면서 학습을 거듭해 막힌 길을 피해가며 최단 거리 탈출 방법을 찾아낸다. 75년 전의 일이다. 오픈AI·구글과 함께 글로벌 AI 시장을 지배하는 앤스로픽이 AI 모델 이름을 ‘클로드’로 지은 것도 섀넌이 컴퓨터와 AI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보여준다.
모든 학문이 그렇듯 섀넌의 위대한 업적도 무(無)에서 창조한 것이 아니다. 섀넌이 정보 이론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 영국 수학자 조지 불의 연구 덕분이다. 가난한 제화공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않은 불은 독학으로 퀸스칼리지 수학과 석좌교수가 됐다. 그는 철학의 영역이었던 논리학에 대수학을 결합해 ‘참’과 ‘거짓’만으로 문제를 푸는 수학, 이른바 ‘불대수’를 창안했다. 아무도 연구의 가치를 몰랐지만, 불이 사망한 지 반세기가 넘게 지난 다음에야 섀넌이 참과 거짓이라는 불대수의 논리를 0과 1이라는 컴퓨터의 이진법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AI 혁명은 한 수학자의 호기심과, 버려진 연구의 활용법을 고민한 또 다른 수학자의 탐구심 덕분에 가능했다. 불이 ‘논리의 수학적 분석’을 쓴 것이 1847년이었으니 현재의 AI는 178년에 걸쳐 자라온 것이다.
AI의 역사는 실패와 절망, 냉소와 비판으로 가득 차 있다. 쓸모없는 연구라며 세계적으로 외면받는 ‘AI의 겨울’도 여러 차례 겪었다. 그때마다 과학자들은 기초과학에서 돌파구를 찾았고, AI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연구들이 AI의 발전을 이끌었다. 이미지·텍스트 같은 데이터를 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도록 묶는 방법은 선형대수학의 행렬, AI의 추론은 확률과 통계를 활용한다. AI 학습의 핵심인 딥러닝(심층학습)은 미분에 근간을 두고 있고, AI의 구조를 형성하는 인공신경망은 뇌과학자들이 만들었다. AI의 구루(스승)로 불리는 거장 대부분의 학문적 출발점이 수학·생물학·물리학·통계학 같은 기초과학인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정말 사람처럼 생각하고, 언젠가 사람을 뛰어넘을 궁극의 AI를 만드는 여정에서 얼마나 많은 장벽이 등장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 장벽을 넘을 실마리가 세계 어딘가의 기초과학 연구실에서 태동하고 있을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소버린(Sovereign·주권) AI를 만들어 ‘AI 세계 3대 강국’이 되겠다는 새 정부의 AI 전문가들이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와 함께 꼭 생각해줬으면 한다. 기초과학이 없으면 AI도 없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박건형 콘텐츠앤AI전략팀장, 조선일보(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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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10개 만들기' 잘못하면 헛돈 쓴다
<YONHAP PHOTO-2101> 질문 답하는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이진숙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주요 교육 공약인 ‘서울대 10개 만들기’ 설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대선 중앙선대위에서 이 공약 추진위원장도 맡았다. 이 후보자가 장관이 되면 이 공약을 중점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은 9개 거점 국립대의 교육 여건을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서울대가 6059만원, 거점 국립대 9개 학교 평균은 2450만원이다. 거점 국립대 교육비를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려 10년 내 세계 100대 대학에 거점 국립대 3개 이상을 진입시키는 것이 목표다.
민주당은 이를 위해 해마다 3조원 이상의 예산 투입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수도권 쏠림 현상을 완화하고 지역 대학에서도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점에서 필요한 정책이다. 서울대가 입시 지옥의 정점에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사회 최대 문제 중 하나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이기도 하다. 물론 서울대 지원을 깎아내리는 하향 평준화가 아니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거점 국립대에 서울대 수준의 교육비를 투입하기 전에 반드시 지방대 혁신이 전제돼야만 한다. 지금 거점 국립대들은 백화점식 학과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사립대는 사회 변화에 맞게 학과도 상당히 조정했는데 지방 국립대는 놀라울 정도로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편하게 하던 대로 하는 문화가 고착돼 있다. 경쟁과 혁신은 찾아볼 수 없다. 직선제 총장은 교수들이 싫어하는 개혁은 손도 대지 못한다. 이 상태에서는 아무리 정부 예산을 쏟아부어도 예산만 낭비할 가능성이 있다.
지방 국립대 지원은 필요하다. 다만 나눠 먹기가 되지 않도록 철저한 전략이 필요하다. 대학별 특성화 분야를 집중 지원하고, 엄격하게 결과를 평가해야 한다. 한번 교수가 되면 평생 그럭저럭 지낼 수 있는 풍토도 바꿔야 한다. 9개 거점 국립대를 모두 서울대와 같은 연구 중심대, 대학원 중심대로 만들 필요도 없다. 앞으로 세계 100대 대학에 진입하는 거점 국립대가 등장하기를 기원한다.
-조선일보(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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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10개 만들기… 국립대 개혁 없인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이재명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 추진위원장을 맡았던 이진숙 전 충남대 총장이 지명됐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이 대통령의 핵심 교육 공약으로 지역 거점 국립대 9곳의 교육비 지원을 서울대의 70%로 끌어올리는 내용이다. 거점 국립대 총장 출신인 이 장관 후보자는 “국가 균형발전을 실현하고 사교육비와 입시 경쟁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며 추진 의지를 재확인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연 3조 원 넘는 재정을 투입해 거점 국립대를 상향 평준화한다는 구상이나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교육비만 서울대 수준으로 늘리면 그만한 경쟁력이 생긴다는 단순한 논리도 문제지만, 막대한 재정을 9개 거점 국립대에 몰아주는 것에 대해선 “지방대 100개 죽이기”라며 형평성과 실효성 논란이 제기된다. 전국엔 4년제 일반대학이 180개가 넘고 이 중 80%가 사립대다. 지역 균형발전이 목적이라면 국립 사립 가리지 않고 될성부른 지방 대학을 밀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동안 거점 국립대들은 막대한 정부 지원을 받아왔지만 세금에 의존하는 ‘주인 없는 대학’의 특성상 연구 실적이나 교육 개선을 비롯한 혁신의 노력이 사립대보다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같은 국립대 내에서도 연구 분야에 따라 거점 대학보다 앞서 나가는 곳들도 있다. 거점 국립대라는 이유만으로 개혁 없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한다면 도덕적 해이만 부추기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다 끝날 수 있다. 경쟁력 있는 대학과 학과에 지원하되 그 성과에 대해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도 어렵겠지만 설사 만든다 한들 큰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서울대는 영국 대학 평가기관 QS의 ‘2025 세계대학 평가’에서 38위로 전년보다 7계단이나 밀려났다. 과학 연구 역량을 평가하는 ‘네이처 인덱스’ 순위에선 52위로 뒤처졌다. 반면 중국은 상위 10위권에 8곳이 이름을 올렸다. 세계 일류 대학과 일류 학과를 육성한다는 ‘쌍일류’ 정책 10년의 성과다. 정치적 구호에 가까운 국내용 교육 정책으로는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릴 세계 일류 대학을 키워내기 어렵다.
-동아일보(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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