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國史-文化] 693

[55세에 유배 당한 추사… 절대고독 속 ‘세한도’가 탄생했다] ....

[55세에 유배 당한 추사… 절대고독 속 ‘세한도’가 탄생했다][추사가 그린 ‘세한도’ 속 집, ‘이것’ 덕분에 숨통 트였다]['세한도' 소장史에 담긴 한일 父子] [1000억 땅에 세한도까지… 代를 이은 기증] [10번 주인 바뀐 세한도, 하마터면 일본서 폭격에 사라질 뻔] [세한도(歲寒圖)에 얽힌 비밀]   55세에 유배 당한 추사… 절대고독 속 ‘세한도’가 탄생했다 [손관승의 영감의 길]제주 별도봉에서 돌아본 김정희 세한도 180주년 제주도 별도봉 산책코스. 왼쪽은 제주항이고 그 옆으로 화북포구. /손관승 제공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를 보러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가 뜻밖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작품 탄생 180주년을 맞아 오랜만에 공개되었다는 사실보다 내가 주목한 건 5..

[밀가루 두 포대의 기적, 대전 성심당] [식민시대 군산의 흔적들]

[밀가루 두 포대의 기적, 대전 성심당] [식민시대, 그 이중적인 삶과 기억과 군산에 남은 흔적들] 밀가루 두 포대의 기적, 대전 성심당 한국전쟁 때 흥남 철수선을 타고 탈출한 실향민 임길순씨가 진해에서 서울로 가려다 열차에 문제가 생겨 대전에서 내렸다. 생계가 막막하던 그에게 대전 대흥동 성당이 구호물자였던 밀가루 두 포대를 내줬다. 임씨는 가족 끼니를 해결하고 남은 밀가루로 찐빵을 만들어 대전역 앞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나무 간판에 ‘성스러운 마음’이란 성심(聖心)을 새겨 넣었다. 대전의 명물 빵집, 성심당의 시작이었다. ▶북한을 탈출할 때, 임씨는 ‘이번에 살아남으면 남은 인생은 남에게 베풀기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임씨는 하루에 만든 빵 중 100개는 이웃에게 나눠줬다. 당일 만든 빵 중 안 ..

[고려거란전쟁과 양규 장군] [고려거란전쟁의 영웅들] ....

[고려거란전쟁과 양규 장군] [고려거란전쟁의 영웅들] [거란전쟁과 병자호란] [강감찬과 귀주대첩] [망하는 길로 가니 亡國이 온다] 고려거란전쟁과 양규 장군 거란 40만 대군에 맞서 흥화진 지켜… 포로 3만명 구해 지난달 KBS 대하 사극 '고려거란전쟁'이 종영했어요. 드라마 장면 중 시청자들 마음을 사로잡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려 서북면 도순검사를 지낸 무신 양규 장군이 거란군과 전투를 벌이다 전사한 장면이에요. 지금까지 고려거란전쟁에서 양규 장군의 활약은 강감찬 장군 등에 비해 덜 알려졌어요. 하지만 조선 초기 집현전 유학자였던 양성지가 세조에게 위대한 업적을 세운 장군들 위패를 모시자고 건의했을 때, 신라의 김유신, 고구려의 을지문덕, 고려 강감찬과 함께 양규 장군도 포함했답니다. 흥화진을 ..

[광개토왕이 남긴 ‘묘지기 관련 당부’ 유언] [귀주대첩]

[광개토왕이 남긴 ‘묘지기 관련 당부’ 유언] [귀주대첩] 광개토왕이 남긴 ‘묘지기 관련 당부’ 유언 [이한상의 비밀의 열쇠] 광개토왕의 유언을 포함한 1775자가 새겨진 광개토왕릉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한국 고대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물어보면 응답자 가운데 다수는 고구려 19대 광개토왕을 지목하곤 한다. 그 이유는 그가 친히 군사를 이끌고 전장을 누비며 고구려를 일약 ‘동북아의 패자’로 견인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온 세상을 호령하던 광개토왕은 재위 22년이 되던 서기 413년 10월, 3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그의 장례식은 이듬해 9월 성대히 거행되었고 왕위를 이은 장수왕은 그에 즈음하여 무덤 가까이에 거대한 비석을 세웠으니, 그것이 바로 유명한 광개토왕릉비다. 그런데 이 비석에..

[패전 후 일본인 71만명, 단돈 1000엔씩 들고 조선을 떠났다]

패전 후 일본인 71만명, 단돈 1000엔씩 들고 조선을 떠났다 [전봉관의 해방 거리를 걷다] 한강의 기적 마중물 된 일본인 귀속 재산 “1945년 8월 9일 이후 일본 정부, 공공기관, 단체, 회사, 개인 등이 소유한 일체의 재산은 1945년 9월 25일부로 미군정청이 접수하고 그 소유권을 행사한다.”(미군정 법령 제33호, 제2조. 1945.12.6.) 해방 당시 한국은 ‘세계 최빈국’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본 축적 면에서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2위에 해당하는 상대적으로 산업화된 지역이었다. 1930년대 이후 공업화 정책에 따라, 한반도의 산업 구조는 광공업 비율이 53%, 제조업 중 중화학공업 비율이 51.3%에 달했다. 다만, 그중 80%가 일본 정부와 일본인 소유였기 때문에 산업화의 과실이 ..

[해방 이후 평양, 광복 직후엔 '민족주의'… ]

해방 이후 평양, 광복 직후엔 '민족주의'… 소련군 나타나며 갑자기 '공산주의' 3월 26일 북한과 일본은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축구 국가대표 경기(A매치)를 치른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A매치 경기가 열리는 것은 4년여 만입니다. 2019년 10월 한국과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경기를 김일성 경기장에서 치른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평양은 매일 뉴스에 나오지만 가장 멀고 잘 모르는 도시라고 할 수 있지요. 지금의 평양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요? 일제강점기로 돌아가 당시 평양 지역의 정치·사회적 특징을 알아보고, 이어서 해방 이후 평양에서 일종의 임시정부 기능을 맡았던 '평안남도 건국준비위원회'의 활동을 살펴보겠습니다. 기독교 중심지였던 평양 평양..

[‘건국전쟁’ 62만명, 이제야 걷히는 이념 전쟁의 장막 뒤] ....

[‘건국전쟁’ 62만명, 이제야 걷히는 이념 전쟁의 장막 뒤] [지우다 못해 조작까지 해서 없애버리는 이승만의 흔적] ‘건국전쟁’ 62만명, 이제야 걷히는 이념 전쟁의 장막 뒤 [강경희 칼럼] 한강 다리 끊고 도망간 ‘런(run)승만’이라고? 전시 외교 올인하고 망명정부 거부하면서 끝까지 싸우다 죽겠다고 머리맡에 권총 놔둔 ‘건(gun)승만’이었다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이 개봉 17일 만에 관객 60만명도 넘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제일 황당하게 와닿았던 장면은 한강다리 끊고 도망간 ‘런(run)승만’으로 조롱받고 폄하되고 있다는 대목이었다. 김덕영 감독이 3여 년간 제작하면서 101분 필름에 다 보여주지 못한 미반영 분량이 훨씬 많을 것이다. 김일성과 스탈린의 6..

[재건된 덕수궁 돈덕전] [대한제국 선포와 원구단(圜丘壇)] ....

[재건된 덕수궁 돈덕전] [1897년 대한제국 선포와 황제의 제단, 원구단(圜丘壇)] [덕수궁 돌담길] 재건된 덕수궁 돈덕전 대한제국 영빈관… 건립 2년 뒤 외교권 빼앗겨 무용지물로 최근 국립고궁박물관이 발간한 소장품 도록 '조명기구'에서 대한제국 궁궐의 대형 샹들리에를 소개했어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세운 조명 회사인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 만든 제품이에요. 특징은 장식에 대한제국 황제 문장(국가나 집안 등을 나타내고자 쓰는 상징적 표지)인 이화문(자두꽃 문양)을 썼다는 점입니다. 덕수궁 돈덕전(惇德殿)의 접견실 회랑에 1904년 무렵 설치된 것으로 보여요. 그런데 돈덕전은 어떤 건물이기에 이런 근대 서양식 조명 기구가 달렸던 걸까요? 대한제국의 외교를 위한 영빈관 겸 연회장 '사진 찍기 좋..

[“난 이승만을 너무 몰랐다”...‘건국전쟁’ 상영관 눈물과 박수]

[“난 이승만을 너무 몰랐다”...‘건국전쟁’ 상영관마다 눈물과 박수] [‘이승만 죽이기’ 60여 년, ‘팩트’를 지어내는 역사가들] “난 이승만을 너무 몰랐다”...‘건국전쟁’ 상영관마다 눈물과 박수 이승만의 생애와 업적을 조명한 다큐 영화 ‘건국전쟁’ 상영관은 전국 301곳에 이른다. 처음 132곳에서 시작해 두 배를 넘었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과 그가 만든 나라에서 살아온 국민의 상봉이 그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영화가 상영되는 100분 동안 누군가는 어둠 속에서 한숨을 내쉬었고, 누군가는 손수건을 꺼내 눈을 닦았다. 필자도 영화를 보다가 여러 번 가슴이 뛰고 눈이 뜨거워졌다. ▶각종 감상평 사이트엔 “이승만을 몰랐던 내가 부끄럽다”는 글이 줄을 잇는다. 베스트셀러 ‘세이노의 가르침’의 저자는 “이제..

[고구려 두번째 수도.. 국내성 유적지]

고구려 국내성 유적지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 광개토대왕비·장군총 있어 지난달 24일 국립중앙박물관이 디지털로 재현한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를 처음으로 공개했어요. 이 비석은 고구려 장수왕(長壽王, 재위 413~490년)이 아버지인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 재위 391~ 413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알려져 있죠. 문헌 사료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당시 고구려의 상황이 잘 드러나 있어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유물입니다. 현재 광개토대왕릉비는 우리나라가 아닌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集安)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안 일대는 한때 고구려의 수도였기 때문에, 광개토대왕릉비 외에도 고구려 시대의 성곽과 고분 등 다양한 유물과 유적이 분포해 있어요. 지안으로 함께 가서 고구려 역사를 살펴보겠습..

[故 최창조 교수, 術을 學으로 높인 풍수학인… ] [한국의 풍수]

[故 최창조 교수, 術을 學으로 높인 풍수학인… “그곳에도 단골술집 있겠죠”] [한국의 풍수] 故 최창조 교수, 術을 學으로 높인 풍수학인… “그곳에도 단골술집 있겠죠” 31일 별세 최창조 교수를 기리며 김두규 우석대 교수 추모 기고 2013년 12월 17일 최창조가 30년 전‘한국의 풍수사상’을 펴낼 때만 해도 광화문 뒤에 일제가 세운 조선총독부 건물(옛 중앙청)이 버티고 있었다. 지금은 헐려 북악산이 훤히 보인다. 그는“일제는 조선사람들의 무덤을 건드리는 대신 왕궁인 경복궁의 목과 입에 해당하는 자리에 건물을 세워 단번에 조선의 기를 누르려했다”고 말했다./이덕훈 기자 풍수쟁이는 많았어도 진정한 풍수 학인은 없었다. 최창조 교수가 등장하기 전까지 1980년대 상황이다. “지리학”이란 명칭으로 ‘국학(..

[美蘇는 한반도의 38선으로 일본 제국을 분할했다]

美蘇는 한반도의 38선으로 일본 제국을 분할했다 [김명섭의 그레이트 게임과 한반도]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한반도 해방 1945년 9월 말 돈 오브라이언(Don O' Brien, 왼쪽)이 38선 인근에서 소련군을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미군 소속 사진가 돈 오브라이언은 1945년 해방 직후 한국에 도착해서 다음해 1월 떠날 때까지 해방 직후의 한국 모습을 기록했다./돈 오브라이언 flickr 계정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전개된 미·일 전쟁은 이상한 전쟁이었다. 만주사변이나 중일전쟁 개전 때와 달리 일본군은 승전에 대한 확신 없이 개전했다. 미국에서 유학했던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하와이 공습을 성공시킨 후 의심했다. “잠자는 사자를 건드린 것이 아닌가?” 일본은 중화민국을 지원..

[세계문학 전집] ["춘원,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

[세계문학 전집] ["춘원,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 세계문학 전집 [김도훈의 엑스레이] 새해면 다짐을 한다. 매년 다짐은 글을 더 잘 쓰자는 것이다. 매년 실패한다. 글은 외모와 같다. 글솜씨도 어느 정도는 타고난다. 내 얼굴을 김수현처럼 만들 수 없다면 글도 계속 이 모양일 것이다. 참, 여기서 김수현은 배우다. 드라마 작가가 아니다. 조선일보 독자 세대의 넓은 폭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한 번 더 강조하는 것이다. 어느 새해 어머니는 외판원 꼬드김에 넘어가 양장으로 된 세계문학 전집을 샀다. 그래서 내가 남들보다 빨리 세계문학을 읽어낸 영특한 아이가 되었느냐. 그럴 리가. 누구는 십대 시절 읽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인생을 바꿨다고 했다. 신격호 회장이 회사 이름을 여주인공 이름에서 ..

[당대 최고의 감식안 오세창.. 신라~조선 서화가 역사 정리]

당대 최고의 감식안 오세창.. 신라~조선 서화가 역사 정리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 “은인자중하다 기회가 오면 와락 출동해야 하네” 새해 들어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에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다시 전시된다고 한다. 추사가 제주도 유배 중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작품. 사실 ‘세한도’는 가로 70㎝ 정도의 작은 그림이고, 장장 14m에 달하는 중국과 조선 문인 20명의 감상평이 진짜 압권이다. 이 중 1949년 위창 오세창(1864~1953)이 쓴 글이 두루마리 끝자락에 나온다. “금년 9월에 군(君)이 문득 소매에 넣고 와서 나에게 보이기에 서로 펴서 읽고 어루만지니 비유컨대 황천(黃泉)에 있는 친구를 일으켜 악수하는 것과 같이 기쁨과 슬픔이 한량없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두루마리 끝자락에 ..

[죽으면 쫓겨났던 서울 사대문 안에 死者를 위한 공간이 있네]

죽으면 쫓겨났던 서울 사대문 안에 死者를 위한 공간이 있네 성공회성당에 있는 무덤의 비밀 ‘도성 10리 안으로 들어와 무덤을 쓴 자는 사형에 해당하나 감하여 유배를 보낸다.’(‘대전통편’ 형전 금제(禁制) 경성십리내입장자(京城十里內入葬者)) 조선시대 수도 한성에서 사람이 죽으면 사대문 안은 물론 성저십리(城底十里)라고 부르는 성밖 10리까지도 무덤을 만들지 못했다. 거기에 사람을 묻으면 사형에 맞먹는 유배형을 당했다. 그런데 그 엄한 조선 법과 관습에도 불구하고 사대문 안에 무덤이 있는 공간이 있다. 서울 정동에 있는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과 가톨릭 명동성당이다.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1층에는 성세례요한성당이 있다. 여기에는 이 성당 건물을 건축한 3대 교구장 마크 트롤로프 주교가 묻혀 있다. 천주교 명동..

[해방 후 첫 정치 테러, 배후 없는 ‘몽상가’의 범행이었나?]

해방 후 첫 정치 테러, 배후 없는 ‘몽상가’의 범행이었나? [전봉관의 해방 거리를 걷다] 어지러운 해방 정국… 우익 지도자 송진우 암살사건 총독부 2인자 엔도 류사쿠 정무총감이 패전 후 ‘치안 유지’ 요청을 위해 처음 접촉한 인물은 여운형이 아니라 전 동아일보 사장이자, 우익 지도자 송진우였다. 그 또한 일본과 타협하는 행위라 생각한 송진우는 엔도의 제안을 즉석에서 거부했다. 이후 엔도의 제안을 수락한 여운형이 ‘건국준비위원회’ 참여를 요청했을 때는 여운형을 ‘경멸’하며 그 제안 역시 단칼에 거절했다. 대신 호남 지주와 우익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임시정부(임정) 봉대(奉戴)’를 기치로 한국민주당(한민당)을 조직했다. ‘당수’에 오르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이승만과 김구가 환국하면 당수로 추대해야 한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