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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젓갈왕국 [강릉] 곰치국 [삼척] 섭국

뚝섬 2025. 1. 5. 05:39

[강경] 젓갈왕국 

[강릉] 곰치국 

[삼척] 섭국

 

 

 

밥 한 술에 젓갈 한 젓가락… ‘젓갈왕국 도읍’서 만난 백반정식

 

[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충남 논산시 강경읍 ‘만나식당’의 젓갈백반정식.

 

충남 강경에 왔다. 목적은 아주 강경하고 명백한 단 한 가지. 젓갈백반정식을 맛보기 위해서다. 한국 사람들은 입맛이 없을 때 흰밥을 물에 말아 짭조름한 젓갈을 올려 먹곤 한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딱히 영양소랄 것도 없을 그 단출한 조합이 잃었던 입맛을 돌아오게 하고 원기를 불어넣어 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농경을 기반으로 하되 바다를 끼고 있어 어업을 병행하는 나라는 젓갈 형태의 음식이 있다. 농경을 통해 쌀이나 밀 같은 작물을 수확해 주식으로 삼을 경우 영양학적으로 인간에겐 필연적으로 나트륨에 대한 결핍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래서 바다를 낀 지역에서 내륙으로 소금이 유입됐고, 그 과정에서 소금이 다양한 생물 식재료를 오래도록 저장하는 데 특별한 효력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뿐만 아니라 원재료가 가지고 있는 성분과 화학작용을 일으켜 특유의 향미까지 나게 한다는 것을. 그게 바로 젓갈 되시겠다.

한국에서 강경은 젓갈 왕국의 도읍지다. 전국 유통량의 60%가량을 차지하고 해마다 10월에는 대대적인 젓갈축제까지 열린다. 강경이 젓갈의 주산지가 된 것은 금강 중류와 하류 중간쯤에 위치한 포구로서, 인근 군산 바다에서 나는 풍부한 해산물을 내륙으로 들이는 수운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전성기에는 평양, 대구와 전국 3대 시장이라는 영광과 함께 ‘강경 바닥에선 개들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풍설이 떠돌기도 했을 정도다.

 

만나식당은 강경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위치에 있다. 가게 한쪽에선 젓갈을 팔고 한쪽에선 밥을 판다. 주인 부부는 60대 중반의 인상이 아주 사근한 분들로 남자 사장님은 강경 본토 사람이고 여자 사장님은 당진이 고향이라고 했다. 장사를 시작하신 지는 25년 됐다고. 자리에 앉자마자 주저할 것 없이 이 집의 대표 메뉴인 젓갈백반정식을 주문했다. 그랬더니 수십 개에 이르는 작은 종지에 갖가지 젓갈들이 정갈하게 담겨 나오는데 군침을 삼키느라 혼났다.

사장님이 친절하게 젓갈 하나하나의 이름을 알려주신다. 새우젓, 명란젓, 밴댕이젓, 낙지젓, 오징어젓 같은 제법 익숙한 젓갈은 물론이고 갈치속젓, 창난젓, 가리비젓, 청어알젓, 꼴뚜기젓, 아가미젓, 씨앗젓, 토하(土蝦·민물새우)젓, 전어젓, 멍게젓에 이르러서는 결국 머릿속 회로가 멈춰 서버렸다. 거기에 김치, 씀바귀나물, 아욱과 늙은호박이 들어간 된장국, 고등어조림이 곁들어진다. 밥 빼고 물경 21찬인데 1인분 1만2000원. 젓갈들은 전부 알근달근 짜지도 너무 달지도 않고 딱 백반의 찬으로 제격이다.

밥 한 술에 젓갈 한 젓가락 올려서 먹다 보니, 밥 한 그릇이 정말 눈앞에서 ‘순삭’된다. 사장님께 여쭸다. 이 많은 젓갈을 직접 담갔냐고. 그랬더니 그런 질문은 수백 번도 더 받아봤다는 듯 슬며시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 식당 젓갈은 전부 강경서 담근 걸 쓰죠. 그런데 제가 직접 양념을 만들어서 버무려요.”

사장님 말인즉슨 식당에서 직접 젓갈을 담그지는 않지만, 젓갈 맛을 내는 비법은 젓갈마다 가장 적실한 양념을 배합해 젓갈 고유의 맛과 향을 배가시키는 것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아하, 또 하나를 배운다. 아무리 시간과 자연이 절로 만들어낸 산물일지라도 거기에 인간의 지혜와 정성이 섞일 때 명품이 나온다는 것을. 그게 바로 문화의 속성이라는 것도. 자연에서 문화로의 진화, 젓갈백반만큼 이걸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물도 없을 듯하다.

 

-김도언 소설가, 동아일보(25-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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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의 맛과 섬]--- 

 

[강릉] 곰치국

 

곰치국.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지원연구센터장

 

겨울철이면 먼 길이지만 동해안을 자주 기웃거린다. 한류성 물고기들이 제철이기 때문이다. 제철이어서 맛이 있는지, 많이 잡혀서 익숙해진 맛이 된 것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암튼 이제 곰치국이 시원해지는 계절이다. 이와 함께 곰치, 미거지, 꼼치, 물메기 등 명칭을 둘러싼 진위 논쟁이 이어진다.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르기 때문이다. 곰치국의 주인공은 어류도감에는 ‘미거지’로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통영이나 거제에서 물메기탕에는 미거지와 다른 종인 ‘꼼치’를 사용한다. 여기에 ‘물메기’라는 종도 있어 더 헷갈린다.

 

미거지는 겨울철이면 주문진, 속초, 삼척, 죽변 등 어시장에서 볼 수 있다. 동해 수심 200m 내외, 깊은 곳은 700m에서 서식한다. 다행스럽게 겨울철에 산란을 위해 수심이 낮은 곳으로 올라온다. 이때 어민들은 그물이나 통발을 넣어야 하니 수고로움이야 어찌 말로 다하겠는가. 더구나 새벽에 나가 건져야 한다. 

 

위판을 기다리는 곰치.

 

요란한 종소리와 함께 미거지 경매가 시작되었다. 곰치를 잡아온 배는 부부가 조업을 하는 작은 배다. 따로 인건비를 지출하지 않아도 된다. 겨울철 주문진 어가를 살찌우는 효자 물고기인 셈이다. 게다가 곰치국을 찾아 주문진이나 강릉을 찾는 여행객이 많으니 지역 경제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가. 절이라도 넙죽해야 할 판이다. 곰치가 위판장 바닥이 보이질 않을 정도도 많이 잡혔다. 비쌀 때는 10만원이 넘어갔던 곰치를 1만원이면 살 수 있었다. 배에서 곰치를 내리는 부부는 값이 비싼 것보다 많이 잡히는 것이 훨씬 낫다며 얼굴이 활짝 피었다.

 

어시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곰치국 전문집을 찾았다. 주민들은 물곰탕이라 부르기도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1인분을 팔지 않아 2인분을 시켜 먹었던 곳이다. 이번에는 1인분도 반갑게 맞아 준다. 곰치도 2인분만큼 들어 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틀림없다. 얼큰하고 칼칼하다. 강원도 음식의 특징이다. 익은 김치에 고춧가루까지 더했다. 시원한 국물에 먼 길을 달려간 피로가 한순간에 가신다. 

 

한 식당 주인은 몇 년 전 15만원에 구입할 수 있었던 크기의 곰치를 이번에 1만5000원에 구입했다.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지원연구센터장, 조선일보(2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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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섭국

 

삼척 섭국.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지원연구센터장

 

설악산에서 시작된 붉은 단풍이 동해안으로 내려올 무렵 동해 바다 맛은 더욱 진해진다. 찬 바람이 독해질 때 겨울 바다가 내준 깊은 맛이다. 그중 하나가 홍합이다. 얼큰하고 텁텁한 ‘섭국’이나 ‘섭장칼국수’<사진>에 ‘섭비빔밥’을 더하면 금상첨화다.

 

강릉에서는 홍합을 섭이라 한다. 홍합은 담치, 합자라고도 하며, 삶아 말린 것은 ‘담채’라 한다. ‘본초강목’에는 ‘동해부인’이라 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홍합, 지중해담치, 굵은줄격판담치 등은 모두 홍합과에 속하는 담치류들이다. 화물선의 평형수를 타고 우리나라에 정착했다고 알려져 있는 지중해담치는 성장 속도가 빠르고 맛도 좋아 양식 품목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섭은 참홍합이라고도 불리는 자연산 홍합으로 우리나라 모든 해역에 서식한다. 서해에서는 물이 많이 빠지면서 드러난 갯바위에서 채취를 하지만 동해에서는 파도가 높지 않은 날 해녀들이 물질로 얻는다. 홍합 요리를 할 때 껍데기에 붙은 따개비나 부착물을 떼어내야 하고, 수염이라 부르는 족사를 제거해야 한다. 족사는 부착력이 매우 강해 개체들이 모여 생활할 때 서로 붙잡는 역할도 한다. 족사는 발의 일종으로 끝에 둥근 부착판이 있다.

 

홍합은 갯바위에 붙어 생활하며 플랑크톤을 먹고 자란다. ‘자산어보’에도 ‘바위 표면에 붙어 수백 수천이 무리를 이룬다’고 했다. 홍합 살은 ‘붉은 것과 흰 것이 있으며, 맛이 달고 국이나 젓갈에 좋다. 말린 것이 사람에게 가장 좋다’고 했다. ‘정조지’에도 ‘피로 해소에 좋고, 사람을 보하는 효능이 있다. 특히 부인들의 산후에 나타나는 여러 증상에 좋다’고 했다. 강원도 속초, 강릉, 삼척에서 보양식으로 얼큰한 섭국을 많이 끓여 먹었다. 또 칼국수를 끓일 때도 섭을 넣고 얼큰하게 끓였다. 밥을 지을 때 섭을 넣기도 했다.

 

남쪽에서는 맑은 홍합탕을 즐겨 먹는 데 비해 강원도에서는 고추장을 넣어 얼큰하고 텁텁하게 끓이는 것이 특징이다. 섭국이든 섭칼국수든 국물을 만들 때 껍데기째 넣어야 감칠맛과 깊은 맛이 제대로 우러난다. 홍합 세 개면 국물을 내는 데 충분하다 할 만큼 감칠맛이 뛰어나다. 옛날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서민 조개였지만 지금은 비싸고 귀한 귀족 조개로 신분이 바뀌었다.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지원연구센터장, 조선일보(2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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