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양미리 구이
[김준의 맛과 섬]
날씨가 추워졌다. 이렇게 찬바람이 옷깃을 헤치고 스멀스멀 들어오면 마음은 동해로 달려간다. 오래전 한계령 너머 동해에 도착해 만난 친구가 양미리였다. 거진항의 어둠은 빨리 찾아왔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낯선 포구를 배회하다 포장마차에서 새어 나오는 냄새를 맡고 찾아들어가 만났다.
양미리 구이 /김준 제공
일을 마친 주민들이 연탄불을 가운데 두고 꽁치처럼 생긴 생선을 굽고 있었다. 양미리였다. 그 생선이 서해 끝자락 백령도에서 보았던 까나리와 같은 집안이라는 것을 몰랐다. 백령도 까나리는 액젓을 만들고, 삶아서 말려 멸치처럼 이용한다.
고성과 속초의 양미리는 구이나 조림으로, 말려서는 볶음으로 즐긴다. 고성에서 보았던 양미리는 까나리과에 속한 까나리이지만 강원도에서는 양미리라 부른다. 실제로 양미리과에 속하는 까나리보다 작은 양미리라는 바닷물고기가 있다. 옛날에는 산란을 위해 해안으로 몰려온 양미리를 후리그물로 잡았다. 또 잠수부가 바다로 들어가 그물을 펼치고 말뚝을 박아 잡는 ‘발그물’도 사용했다. 지금은 양미리가 지나는 길목에 자망을 펼쳐 잡는다.
어시장에서 판매되는 양미리. 옆의 큰 생선은 대구. /김준 제공
양미리는 모래밭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새벽녘에 먹이 활동을 시작한다. 이때 어부들이 펼쳐 놓은 그물코에 걸려 잡힌다. 그래서 양미리 잡는 어부들은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조업에 나선다. 이들에게 10월부터 1월까지 3개월간 이어지는 양미리 잡이는 일 년을 기다려온 바다 농사였다. 한때 수십 척이 나서 양미리를 잡았지만 지금은 겨우 손가락을 꼽을 만큼 줄었다. 한동안 양미리 덕분에 생계를 잇고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치기도 했다.
새벽에 출항하는 어선들.
양미리가 주렁주렁 꽂힌 그물이 항구로 옮겨지면 어머니들이 모여 양미리를 떼어낸다. 상처가 나지 않게 그물에서 신속하게 빼 내는 것이 기술이다. 이렇게 양미리는 강원도 바닷가 사람들에게 겨울철 최고의 일자리를 제공해 주었다. 푸른빛을 띤 노란 양미리가 살이 제대로 오른 양미리다. 서해에서는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며느리가 돌아온다지만, 이곳에서는 겨울 양미리 굽는 냄새에 식도락가들이 찾아온다. 연탄불 위에서 노랗게 구워지는 양미리가 맛있는 계절이다.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지원연구센터장, 조선일보(2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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