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오마카세’]
[과시 욕구가 부채질하는 음식값]
[“돈 좀 그만 써”… ‘거지방’에 몰리는 젊은이들]
[란도셀 열풍과 克日]
진짜 ‘오마카세’
최근 한국에서 ‘오마카세’가 유행이라는 한 일본 방송사의 뉴스를 봤다. 한국인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실제 ‘오마카세’란 일본어가 한국에서 그대로 사용된다고 한다. 신기한 생각이 들어 소셜미디어에 한국어로 ‘오마카세’를 검색했다가, 나온 사진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괜스레 고급 분위기를 연출하며 하이엔드(최상급) 맛집에 왔다는 걸 어필하는 사진, 스시가 ‘모둠’으로 올려진 사진도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오마카세가 한국에서 뭔가 다른 의미로 전달된 게 아닐까?
오마카세는 ‘맡긴다’는 뜻의 동사 마카세루(まかせる)에서 온 말이다. 주방장에게 메뉴를 일임한다는 뜻으로, 가격과는 상관없다. 오마카세 주문이 들어오면 주방장은 손님과 대화를 통해 손님의 취향, 못 먹는 재료, 샤리(밥)의 양 등을 파악한다. 그렇게 얻은 정보와 그날 들어온 식재료에 맞춰 내는 것이 ‘오마카세’다. 그러니 오마카세는 무조건 고급이라는 건 오해다. 미쉐린 별을 받은 고급 스시집에서도 오마카세를 주문할 수 있지만, 동네 스시집에서도 주문할 수 있는 게 오마카세다. 최근엔 일본도 물가가 많이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3000~5000엔(약 27000~45000원) 정도에 맛있는 오마카세 스시를 먹을 수 있는 동네 스시집도 많다. 단골집에선 ‘다이쇼(大将·스시 장인을 가리키는 호칭), 오늘 3000엔에 맞춰 오마카세 주세요!’와 같이 자신의 예산에 맞게 요청할 수도 있다.
또 일본에서 오마카세는 손님의 먹는 속도에 맞춰 스시를 한 피스씩 제공하는 게 일반적이다. 스시 샤리의 식감은 ‘갓 쥔 순간’이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시 오마카세 요리가 전부 나올 때까진 90~120분 정도 걸린다.
정해진 재료를 놓고 파는 게 아니므로, 오마카세는 예약하고 방문하는 게 좋다. 원래 일본 스시집은 전화로만 예약받는 집이 많은데, 팬데믹을 계기로 인터넷으로 예약 가능한 음식점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해외에서도 예약할 수 있는 예약 웹사이트(‘Table Check’ ‘OMAKASE’ ‘SAVOR JAPAN’)도 있으니,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오마카세의 이런 특징을 이해하고 먹는다면,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에노모토 야스타카(필명 도쿄네모)·'진짜 도쿄 맛집을 알려줄게요’ 저자, 조선일보(2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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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시 욕구가 부채질하는 음식값
서울 방배동의 한 일식집 스시 오마카세(맡김차림) 가격은 평일 저녁 1인당 37만5000원이다. 평범한 인테리어의 구석진 곳이지만,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에도 예약이 쉽지 않다. 이곳의 손님은 주로 20~30대 젊은층이라고 한다. 암호화폐·유튜브·스타트업 등으로 큰돈을 번 사람들이 별로 어렵지 않게 음식 값을 낸다고 한다.
▶미국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부유층의 과소비 현상을 비판했다. 과시욕이 있는 비합리적인 소비자들 때문에 비싸야 더 잘 팔리는 ‘베블런 효과’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특정 제품을 소비하면 그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 집단과 같아진다는 환상(파노플리 효과)때문에 명품 소비에 올라탄다고 했다. 그러다 명품이나 고가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신이 더 이상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에 흥미를 잃고 중단하는 스노브 효과(snob effect·속물 효과)가 일어나기도 한다.
▶명품 매장이나 위스키, 베이글 등 한정 상품을 파는 곳엔 개장 전부터 줄을 섰다가 달려가는 ‘오픈 런’이 일어난다. 이렇게 물건을 확보하는 능력을 ‘득템력’이라고 한다. 은근히 부(富)를 과시하는 세태는 16세기 정물화에도 들어있다. 미국 코넬대 연구팀이 미국과 유럽 유명 미술관에 소장된 식탁을 클로즈업한 그림 140점을 분석했더니 과일이 76%였는데, 그 중 레몬이 제일 많았다. 사과나 포도에 비해 귀했기 때문이다. 신선한 생선이나 굴, 가오리가 단골 소재로 등장한 것도 같은 이유다.
▶한국의 비싼 외식 물가에 세계적 여행 사이트 리뷰마다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맛과 서비스가 표준화된 프랜차이즈 식당마저 다른 나라보다 20~30% 비싸다고 한다. 일본 언론은 “소셜 미디어에 사진과 영상을 업로드해 타인에게 자랑하는 것까지 세트”라고 한국의 사치 문화를 소개한다. 한국 특유의 법카(법인카드) 문화와 비싼 식재료도 문제이지만, 남에게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과시 문화가 외식 물가 인플레의 주범으로 꼽힌다.
▶ MZ세대는 한 끼 10만원이 넘어도 과감히 투자하고 이 경험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야만 했던 윗세대와 달리 국가적 풍요로움의 결과물을 향유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런 과시 욕구가 터무니없이 비싼 집 값 탓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해진 현실을 하루 저녁 소비로라도 위로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건전한 소비 문화 정착을 위해서라도 집 값이 좀 더 내려야 한다.
-박종세 논설위원, 조선일보(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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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좀 그만 써”… ‘거지방’에 몰리는 젊은이들
카카오톡 오픈채팅의 재미있는 대화 내용을 캡처한 ‘짤’ 중에서 최근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아껴 쓰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거지방’의 짤이다. 대표적인 것이 스타벅스의 5300원짜리 자몽허니블랙티를 사서 마셨다는 글. 이에 대해 ‘스타벅스, 배가 불렀군요’ ‘물을 마시세요. ○○○ 1100원’ ‘○○ 미네랄워터는 600원입니다’ 등 꾸중의 답글이 속출했다. 마지막 결정타는 ‘물을 왜 돈 주고 사 먹죠? 그냥 회사 가서 마시세요’라는 글이었다. 동의한다는 글이 줄을 이었다.
▷‘거지방’은 극도의 절약으로 거지처럼 산다는 의미로 붙은 이름이다. 현재 오픈채팅에서 수백 개가 운영되고 있다. 방마다 조금 차이가 있지만 주로 참여자끼리 소비 지출 내역을 공개하고 이를 평가한다. 일부 방에선 아예 한 달 목표 생활비를 정하고, 실제 지출액을 공유한 뒤 가장 많이 쓴 사람에게 벌칙을 내리기도 한다. 또 새로 멤버가 들어오면 “돈 좀 그만 써 ○○○야,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등의 자극적인 글을 자동으로 올리는 방도 있다.
▷주로 불필요하거나 과다한 지출을 꾸짖거나 뜯어말리는 채찍성 글이 주를 이루지만 아낀 내역을 보여주며 칭찬을 유도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차 얻어 타서 택시비 아낌 +6000’ ‘학식 6900원인데 아빠 카드 씀’ 등이다. 또 돈 주고 사는 것을 대신할 수 있는 절약 방법을 공유한다. 휴대전화 그립톡을 사고 싶다고 하면 종이로 대체 거치대 만드는 유튜브 링크를 보내주는 식이다. 카드나 통신사 포인트 활용법,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이벤트 등도 단골로 올라온다.
▷기성세대는 ‘내 돈 쓰는데 남들에게 알리는 것도 모자라 꾸중까지 듣는 건 무슨 경우냐’라고 의아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거지방’은 경기침체와 고물가로 지갑이 얇디얇아진 젊은이들에게 놀이방이자 쉼터 역할을 한다. 지난해 한창 재테크 열풍이 불 때는 ‘있는 돈을 최대한 아껴 나중에 투자할 목돈을 만들자’는 ‘짠테크’가 유행했지만 지금은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아낀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경기침체로 인한 경기고통지수의 경우 15∼29세 연령층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가장 높다는 통계를 보면 ‘거지방’이 뜬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젊은이들은 ‘거지방’을 통해 “나만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건 아니지”라는 공감대를 갖는다. 젊은이들은 혼자 아끼려고 하면 힘들지만 같이 하면 서로 의지가 될 것 같은 느낌이라고 토로한다. 여기에 ‘나도 잘하고 있다’는 안도,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 대화가 오가면서 나오는 깨알 재미 등을 함께 찾는 것이다. 소비를 과시하던 ‘플렉스’와 정반대인 ‘거지방’의 인기는 요즘 경제 상황을 보면 꽤 오래갈 것 같다.
-서정보 논설위원, 동아일보(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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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도셀 열풍과 克日
이맘때면 초등학교 입학생을 둔 학부모들은 가방 고르기 전쟁을 치른다. 내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가방 사주려는 마음, 부모라면 다 같다. 엄마 취향을 넌지시 드러내고픈 과시욕까지 더해지기도 한다. 최근엔 일본 초등학생 국민 가방이라는 '란도셀(Randsel)'이 인기다. 인터넷에선 100만원이나 하는 고가 란도셀 가방을 '직구'로 반값 '득템'했다는 쇼핑 후기도 여럿이다.
조부모도 가세한다. 1940~60년대 책보 들던 그 세대에 가죽 냄새 진한 란도셀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책, 도시락 뒤죽박죽 섞이던 책보 앞에 칸 구분 명확하고 책 구겨질 염려 없던 란도셀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 시절 넉넉잖은 형편 탓에 란도셀은 언감생심이던 조부모들이 손자를 통해 대리만족하려고 쌈짓돈 푸는 건 이해된다. 그런데 이 조그만 가죽 가방에 한국인이라면 목에 걸릴 가시 같은 '역사'가 숨어 있다. '일본가방협회 란도세루공업회'에 따르면, 란도셀은 1800년대 후반 일본 에도(江戶) 막부 말기 서양식 군대제도를 도입하면서 네덜란드에서 육군 보병용 배낭을 들여온 데서 비롯됐다. 네덜란드어로 배낭을 일컫는 단어인 'ransel'이 '란도세루'라는 일본식 발음으로 바뀌었다.
이 군용 배낭이 학교 가방으로 쓰이게 된 사연은 더 놀랍다. 다이쇼(大正·1912~1926년 재위) 일왕이 왕세자였던 1887년 일본 귀족 자제 교육기관인 학습원(學習院)에 입학했을 때, 당시 내각총리대신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왕세자 입학을 축하하는 선물을 준비했다. 그게 바로 오늘날의 학교 가방 란도셀의 효시다. 이토 히로부미가 누구인가. 조선 침략에 앞장서고 고종을 강제 퇴위시킨 원흉,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인물이란 사실은 초등학생도 안다. 다이쇼 일왕 시대, 일본은 3·1만세 운동을 무력으로 억눌렀다. 딱딱한 가죽 가방 안엔 이렇듯 한국인으로선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본의 침략적 제국주의 역사가 스며 있다.
일본군위안부를 다룬 영화 '귀향'과 일제 강점기 민족 시인 윤동주를 다룬 영화 '동주'가 요즘 화제다. '역사를 잊지 말자'는 자발적 목소리가 자칫 묻힐 뻔한 두 영화를 살려내는 마당에 한편에선 란도셀 열풍에 빠지는 건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란도셀을 구입하는 학부모의 취향을 탓할 수만은 없다. 제품으로만 볼 때, 란도셀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웬만한 충격에는 흠집 날 것 같지 않은 견고한 인상, 거기다 품질은 믿고 산다는 일제다. 130년 전 디자인인데 원형은 유지하고 무게나 재질만 조금 바꿔 전통을 고수한 대표적인 '타임리스 디자인(timeless design·시대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디자인)'이다. 우리에게 이런 학생 가방이 있는가 싶다.
란도셀에 깃든 제국주의 과거사를 언급한 것은 "그러니 이 가방을 쓰지 말자"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달성해야 할 극일(克日) 과제 중엔 일본 제품에 맞서 당당히 품질로 이기는 것도 포함돼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미리 문화부 기자, 조선일보(1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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