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隨想錄]

[아버지의 교통 과태료] [아버지의 '누드'] [샐러리맨의 告白]

뚝섬 2023. 4. 23. 05:21

[아버지의 교통 과태료]

['로댕'보다 아름다웠던 내 아버지의 '누드']

[어느 이기적인 샐러리맨의 告白]

 

 

 

아버지의 교통 과태료

 

[2030세상]

 

“네 차를 좀 타봐야겠다.” 아버지와 나는 용건이 있을 때만 연락한다. 몇 년 전 아버지는 내 낡은 차를 달라고 했다. 본인의 준대형 세단은 이제 너무 커서 처분할 텐데 전기차를 지금 사자니 기술 과도기 같다고. 이유인지 핑계인지 몰라도 아버지에게 차 내주는 것 정도야 할 수 있었다. 명의 이전을 해 드린다고 했다. 아버지는 내 명의에 가족 보험을 추가하자고 했다. 별생각 없이 응했다.

그리되니 내가 아버지에게 차를 공짜로 준 모양이 됐다. 명의상 내 차니까 세금과 보험료는 내가 낸다. 실질적으로도 내 차니까 엔진오일 교체 같은 것도 내 돈으로 한다. 아버지는 이미 이 차의 개인화를 끝내서 나라면 두지 않을 염주 같은 걸 차에 걸어두었다. 염주 같은 걸로 뭐라고 할 수는 없으나 미묘하게 거슬렸다.

집에 과태료 고지서가 날아오자 내 감정은 미묘한 불편에서 실질적 짜증이 되었다. 차가 내 명의니까 가끔 아버지가 신호위반, 과속, 불법주차 등을 할 때 그 모든 과태료가 내게 왔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이제 노인인데 정정하시네” 하고 말았지만 바이오리듬이 나쁠 때는 진지하게 화가 났다. 본가에 가서 무력 행사처럼 몰고 돌아올까 한 적도 있다.

 

“그 정도는 그냥 내드려.” 내가 씩씩거릴 때마다 친구들은 나를 타일렀다. 부친께서 건강하신 게 어디냐고. 너 지금 그 과태료 낼 정도는 벌지 않냐고. 다행히 그랬다. 지내다 보니 가끔 오는 통지서가 반가워졌다. 동해에 가셨네, 장호원 다녀오셨구나, 창원에 계셨군, 내 차로 잘 다니시는군, 아직 건강하시군. 가끔 오는 통지서가 옛날에 해외에서 보내는 안부 엽서 같다. 통지서가 줄어들자 “이제 나이 드시니 외출할 건수나 기력이 없으신가” 싶은 정도다.

나는 많이 버는 아빠들이 부러웠다. 우리는 서민 가정이다. 돈이 궁색하기도 했고 돈 때문에 티격태격도 했다. 가족보다 더 큰 사회에 나가 알았다. 세상에는 남을 속이거나 해를 끼치며 살아가는 자도 있고, 돈 버는 재능은 인간의 여러 재능 중 하나일 뿐이었다. 내 아버지는 속은 적은 있어도 속이는 자는 아니었고, 그는 나에게 돈보다 소중한 걸 여럿 알려주었다. 내 부친은 그저 사는 요령이 모자란 남자였구나. 그의 친자인 나에게도 그 요령은 없구나. 나이가 들며 이런 걸 나는 조금씩 깨달았다. 스스로를 깨닫는 건 내 주변을 깨닫는 것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부모를 더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효심과는 조금 다른, 덜 너저분하게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도시인끼리의 존중과 애정이었다.

최근 오랜만에 과태료 통지서가 왔다. 신호위반. 최근 개정된 ‘적신호 우회전 시 일시정지’를 모르고 우회전을 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이런 건 모를 수 있겠다 싶어 평소와 달리 전화를 걸었다. 법이 바뀌었으니 앞으로 조심하시라고 하고 안부를 여쭸다. 아버지는 청계천을 산책하는 중이라고 했다. 웃음이 나왔다. 초로의 남자가 금요일 저녁에 웬 청계천이야 싶었고, 실은 나도 그때 청계천에 있었다. 서울의 아버지와 아들이 이런 걸까. 내가 청계천에 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우리는 아직 서먹하다.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동아일보(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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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보다 아름다웠던 내 아버지의 '누드'

 

그 영욕과 회한의 삶 담긴 당신의 메마른 몸은 '키스'보다 아름다웠다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을 돌아보랴." 호기롭게 외친 이는 소설가 김훈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실패한 영웅이자 혁명가이며 이상주의자였지요. 식민지배와 해방, 전쟁과 독재를 온몸으로 겪었으나 끝내 광야를 제패하지 못하고 풍운아로 떠돈 영웅은 쓸쓸히 죽음을 맞습니다.

김훈은 소설 '공터에서'를 통해 그 임종을 서늘히 묘사합니다. '마동수는 빈방에서 죽었다. 마지막 날숨이 빠져나갈 때 마동수의 다리가 오그라졌다. 사체는 태아(胎兒)처럼 보였다.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사체는 입을 벌렸고 턱에 침이 말라 있었다.'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소설 속 아버지가 군에서 휴가나온 아들에게 아랫도리를 맡긴 채 용변을 치우게 하는 장면은 더욱 참담합니다. '병자의 성기는 까맣게 퇴색해서 늘어졌고 흰 터럭 몇올이 남아 있었다. 사타구니 언저리에는 검버섯이 돋아났고 고환 껍질에 습기가 차 있었다.' 곤혹스러워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남은 숨을 몰아쉬며 말합니다. "미안허다. 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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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최수앙에게도 아버지는 영웅입니다. 해병대 출신으로 산업화와 경제 발전을 대의(大義) 삼아 불도저처럼 달리던 시대에 30년간 공무원으로 봉직한 남자입니다. 세상에 겁날 게 없던 그 이름 '아버지'는 험난한 시대를 수사자처럼 헤쳐갑니다. 그 삶이 나폴레옹 못지않다고 믿은 아들은 '최평열 과장 조각상'을 만들어 경의를 표합니다. 불경스럽게도 좌대 위 아버지는 벌거벗은 나체 조각상으로 서 있습니다. 제목이 '히어로(Hero)'입니다. 영웅은 늠름하지도, 야심만만하지도 않습니다. 구부정한 등, 노쇠한 다리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합니다. 이 자그마한 노인이 한때 영웅이었다는 흔적은 불끈 쥔 주먹, 바닥을 움켜쥔 발가락에 겨우 남아 있습니다. 그는 가난을 벗기 위해 근면을 목숨처럼 여겼던 남자입니다. 국가가 있어야 나와 가족도 있다고 믿은 애국자입니다. 남은 건 탄력 없는 근육, '독재 시대의 희생양'이라는 비아냥이었으나 좌대 위 늙은 남자는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살 거라며 허공을 노려봅니다. "우린 느희 약해빠진 세대와는 차원이 다르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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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페미니스트인 딸에게 아버지는 영웅이 아닙니다. 나라와 민족, 이웃과 친구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가족은 늘 윗목 찬밥으로 밀어둔 가부장입니다. 실속 없이 허세만 작렬하던 아버지는 언제고 "대어 한 마리 낚으러 간다"며 전국을 누볐지요. 심신으로 골병든 어머니가 두 번이나 대수술 받는데도 사업을 핑계로 얼씬 안 하던 아버지를 딸은 증오했습니다. 잠시 반짝했던 무역업이 파산한 뒤 변두리 단칸방으로 쫓겨난 뒤에야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무일푼에도 "두고 봐라!" 큰소리 땅땅 치던 아버지는 끝내 재기하지 못합니다. "드디어 돈줄을 찾았다"며 우기시다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마동수의 아들처럼, 딸도 아버지의 벌거벗은 몸을 보았습니다. 병상 아버지를 씻기던 늙은 어머니가 오열했을 때입니다. "젊은 날엔 참으로 탐스럽더니, 신성일도 울고 갈 만큼 잘 생겼더니…." 가을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던 광목천 위로 마른 나무토막처럼 누워 있던 육신, 복부 한가운데 호스를 꽂아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사내는, 딸이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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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보다 아름다운 남자의 몸을 본 적 있나요? 당신이 엽서에 적어 알려준 그 전시에서 나는 그 눈부신 몸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로댕의 '키스'가 새겨진 엽서를 보내주었지만, 날 울린 남자는 키스의 근육질 연인이 아닙니다. 생의 영욕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장작개비처럼 말라비틀어진 사내. 뭐가 그리 괴로운지 머리를 감싸 안고 흐느끼는 남자. 툭 건드리면 바스러질 듯 푸석한 알몸은 그해 가을 순백의 광목천 위에 부려져 있던 내 아버지이자, 독립운동가 마동수였고, 애국공무원 최평열이었습니다. 가슴 가득 드넓은 광야를 품었으나 사막보다 황량한 시간의 벌판을 홀로 걸어가야 했던 아비들. 나라와 식솔 위해 이 악물고 살았으나 구시대의 퇴물, 탐욕의 화신으로 조롱받아야 했던 사내들이 고개 숙인 채 울고 있었지요.

언 땅에 아버지를 묻고 온 날, 서랍장에서 발견한 유품은 낯설었습니다. 허명(虛名)으로 나열된 감사패들 사이로 싸늘하게 반송돼 돌아온 당신의 초라한 이력서들과 '꽝'이 돼 휴지로 구겨진 5000원짜리 로또복권 수십 장…. 술에 거나히 취하면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흥얼거리던 아버지의 슬픔을 단 한 번도 헤아려 드리지 못한 딸은, 프랑시스 그뤼베의 '욥', 그 무너질 듯 아득한 절망에 잠긴 성서(聖書) 속 사내 앞에서 숨죽여 울었습니다.

-김윤덕 문화부 차장, 조선일보(17-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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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이기적인 샐러리맨의 告白

 

삼복더위에 노고가 많으십니다. H주식회사 영업과장으로 일하는 강아무개입니다. 일면식도 없는 분께 무례인 줄 알지만,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어 용기를 냈습니다. 마침 당직 중이고, 창밖엔 장대비가 쏟아집니다. 상반기 영업 실적이 사상 최저라고 전 부원이 전무님 방에 불려가 초토화된 일을 안주 삼아 저녁 자리에서 소주도 한 잔 걸쳤습니다. 아, 실례가 안 된다면 '누님'으로 호칭해도 될는지요.

누님의 '병법'은 짬짬이 즐겨 읽습니다. 미주알고주알 여자들 사는 풍경을 정체불명의 사투리를 섞어 풀어내는 솜씨가 제법이더군요. 처음엔 멋모르고 낄낄대며 읽었습니다. 스크랩해서 아내에게 선물도 합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기분이 나빠집니다. 뭔가에 속은 듯도 하고, 살짝 빈정도 상하고요. 대체 뭘까. 하루 날 잡아 행간을 따져가며 읽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찌질한 남자들을 통 크게 건사하며 사는 대한민국 여자들 만만세! 이유불문 만만세! 풍자와 해학을 가장한 누님의 글에는 이런 불온하고도 억지스러운 이데올로기가 시종일관 흐르고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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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남자?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오지랖 넓고 통 큰 여자들은 자신의 반려가 '소심남'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연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본 적은 있는지요. 여성 차별이라 하셨는데, 남자라서 당하는 고충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특히 숫자 싸움을 전쟁처럼 치르며 살아야 하는 영업파트는 군대나 다름없습니다. 꼴통 상사라도 만나면 "네 짬밥이었을 때 나는 야전침대 갖다놓고 사무실에서 밤새워서 일했어. 빠~져가지고"라는 소리를 귀가 닳도록 듣습니다. 회식은 해이해진 기강을 잡겠다는 애국 조회의 연장이고, '시정하겠습니다'를 연발하느라 소주 한잔 맛나게 넘길 틈이 없습니다. 워크숍은 해병대식 극기훈련소에서 하면서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스마트하고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를 내라니 머리에 땀띠가 나다 못해 분화구가 생깁니다. 거기에 왕소금을 뿌리는 건 신세대라 자처하며 들어온 아랫것들입니다. 상석(上席)이 어딘지도 모르고, 젓가락질할 줄도 모르고, 시(詩)가 뭔지도 모르는 것들이 그저 스펙만 믿고 들어와 하늘 같은 선배를 구닥다리 장롱 취급합니다. 이런 인류를 본 적이 없는 상사들은 그 애들이 '창의적'이라며 침을 튀기니, 공중부양 유체이탈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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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집에 돌아와 따뜻한 위로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주말만이라도 심신의 모든 전등을 꺼버리고 싶은데 존경하는 마눌님이 그냥 놔두질 않습니다. 자식 성공이 아버지에게 달렸다는 말도 오바마가 한 건가요? 오바마 말씀이라면 무조건 할렐루야 하는 마누라는 이번엔 또 '스웨덴 대디'가 되라며 자녀교육서를 들이밉니다. 그러면 아이비리그 갈 수 있다니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일으킵니다. 아이의 두뇌를 아인슈타인처럼 바꿔주는 블록을 쌓아야 하고, 아이의 장딴지를 박태환처럼 여물게 하는 인라인을 가르쳐야 하며, 아이의 상상력을 피카소처럼 키워주는 명작 읽기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남편 대접이 후해지는 건 아닙니다. 라면 한 개라도 아들놈 먹이려고 끓이는 법은 있어도 남편 먹이려고 끓이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 마음이 섭섭합니다. 왕고 부장한테 받은 스트레스 하소연 좀 할라치면 면박부터 날아옵니다. '당당히 항의하지, 왜 푸념만 하고 살아?' 어깨만 한 번 안아줘도 힘이 불끈 솟는다는 걸 그녀는 정녕 모를까요? 언제는 내가 자기 인생의 내비게이션이라더니, 환상의 짝꿍이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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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그립습니다. 그 쩌렁쩌렁하던 목소리가 그립습니다. 맹장(猛將), 덕장(德將) 다 필요 없고 '운짱'이 최고라며 호기를 부리던 사내였지요. 달리는 트럭에 부딪혀 휴지처럼 구겨진 자동차 안에서 뒤통수에 꽂힌 유리조각을 손으로 뽑으며 유유히 걸어나오던 불사조였습니다. 첫째도 폼생폼사, 둘째도 폼생폼사였던 아버지가 이렇듯 비틀대는 아들을 보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아버지들이 옳았다는 게 아닙니다. 가끔은 그들의 대책 없는 허풍이 그립습니다. 목말을 높이 태워주시며 대장부의 포부는 하늘처럼 높아야 한다, 진주를 캐려면 푸른 바다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당부하셨는데 저는 고작 빌딩숲 콘크리트 사무실 안에서 상사 눈치, 후배 눈치 보며 인생을 궁싯대는 못난 사내가 되었습니다. 국물 내면 버려지는 '며루치'가 될까봐 아내 눈치, 아이들 눈치 보며 사는 졸장부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개콘을 봐도 웃음이 안 나옵니다. 빈 사막을 홀로 걷는 수도승도 이렇듯 외롭진 않을 겁니다.

누님, 이번 여름휴가 중 하루만은 나를 위해 쓰고 싶다고 말한다면 이기적인 남편일까요? 혼자서 영화 보고 낚시하고 꺼이꺼이 전인권 노래 부르면서 훌쩍 떠나고 싶다면 비정한 아빠일까요?

 

-김윤덕 기자, 조선일보(1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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