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덫]
[체납 세금 안내려고 로또 1등 당첨금까지 빼돌린 철면피들]
[작전 세력의 최후]
탐욕의 덫
[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탐욕(貪慾)은 욕심이 지나친 상태입니다. 널리 퍼져 있어서 흔히 접합니다. 탐욕은 성장 과정, 사회의 특성, 전통 가치관, 문화적 배경, 경제 상황과 뿌리 깊게 연결이 되어 있는 큰 주제이나 짧은 글에 담아보겠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종교나 철학이 탐욕을 부정적으로 정의해 온 것은 탐욕이 세상에 널리 퍼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의 입장과는 달리 경제적 관점에서는 탐욕을 긍정적이고 중심적인 요인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탐욕의 끝은 비극입니다. 때로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스캔들로 등장해서 본인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마무리됩니다. 물질 숭상 시대에 탐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염병처럼 번져가고 있습니다.
탐욕의 부당함을 교육한다고 해도 없애기는 불가능합니다. 본능적 욕구에 숨어서 은밀하게 움직이기에 찾아내기부터 어렵습니다. 탐욕을 부끄러운 가치가 아닌 당당하게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더 많이 가지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서 살고 있다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게 보유한 자산에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합니다. 그 사람에게 대인관계는 자산과 자산 사이의 상대적 관계일 뿐입니다. 탐욕이 축적한 결과가 혼자서 쓸 수 있는 한도를 훌쩍 넘어도 개의치 않습니다. 처음부터 실용성보다는 안전함, 부러움, 힘 있음과 같은 상징성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탐욕의 뿌리는 어디일까요?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는데 개략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젖을 먹고 자라는, 입에서 본능적 만족을 찾는 구강기에 제대로 젖을 먹지 못하고 고생했던 경험에서 유래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젖 달라고 보채면서 겪은 불안, 좌절로 인해 마음의 발달이 구강기에 고착되어 탐욕스러운 어른으로 자랐다는 이야기입니다. 젖을 떼는 시기에 느낀 굶주림에 대한 두려움과 엄마와 떨어지면서 느낀 불안이 탐욕으로 연결된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좀 과격하게 들리지만 어린 시절 충족되지 않았던 배고픔에 대한 심리적인 복수로 탐욕스러움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멈출 수 있다면 탐욕이 아닙니다. 탐욕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로 달리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이때 함께 움직이는 마음의 에너지는 버림받거나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얻고자 하는 물건, 지위, 소속 집단에 대한 욕망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두 손에 힘을 꽉 주고 잡고 있으려 합니다. 그렇게 해야 자신의 정체성과 집단 내 존재감을 지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다가 탐욕에 눈이 멀면 현실판단력이 너무 떨어져서 실수를 하게 되고 애써 잡고 있던 것을 결국 놓치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탐욕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악순환의 고리를 돕니다. 돈과 같은 자산의 손실이 자기 정체성의 일부가 허물어진 손상과 같다는 환상에 빠집니다. 이를 회복하려고 물질을 탐하게 되면 다시 탐욕의 늪에 더 깊이 빠집니다.
탐욕은 편식과 같아서 불균형을 초래합니다. 돈으로 행복을 추구하면서 자신이 지닌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스스로 버리게 됩니다. 탐욕스러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람이 아닌 목적을 성취할 수단이자 도구로 봅니다. 그 사람의 대인관계 공간은 사람들과 같이 모여 즐기는 잔치 장소가 아닌 살벌한 사냥터입니다. 사냥감을 자신이 잡으려고 하면서 어울림의 기쁨을 외면합니다. 다른 사냥꾼들은 동료가 아닌 경계의 대상일 뿐입니다. 빼앗기거나 총에 맞을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 세계의 법은 정글의 법입니다. 사냥감을 최종적으로 가지는 사람만이 승자입니다.
확보한 사냥감만이 자신을 위기에서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가져야 하고 절대 지켜야 합니다. 사람과 달리 두둑한 주머니는 배신하지 않습니다. 부러움, 인정, 존중, 권력을 넉넉하게 얻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에는 값을 치러야 합니다. 탐욕이 치르는 비싼 값은 사회적 비판입니다. 공정이라는 엄정한 사회적 가치를 흔들었기 때문입니다.
탐욕은 사회적 적응장애입니다. 장애를 겪으면서 자신의 건강을 해치고 주변과 사회에 상처를 줍니다. 탐욕스러운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니 탐욕을 버릴 수 없다면 공적인 직업을 피해야 합니다. 겉치레에 그치는 사무적인 관계로 자신의 욕망만을 충족시킨다면 공공의 적이 되는 겁니다. 근검절약 흉내로 끝내 탐욕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 탐욕스러움을 부인하고 합리화할 의도로 다른 사람을 근거 없이 비난한다면 자신 속에 숨긴 ‘나쁜 사람’을 엉뚱한 사람에게 투사한 것이니 소용없는 짓입니다.
혼탁해진 마음의 문제를 물질을 탐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을 다스려서 정리해야 합니다. 탐욕에 휘둘리지 않으면 자존감이 올라가고 대인관계가 향상되어서 진정성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물질로 얻는 위안은 한 줄기 바람처럼 지나갑니다. 탐욕은 결승점 없는 달리기 경기와 같아 쓰러질 일만이 남은 허망한 움직임입니다. 쓰러지기 전에 애써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동아일보(2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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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납 세금 안내려고 로또 1등 당첨금까지 빼돌린 철면피들
“신도 있고 왕도 있지만 더 무서운 건 세금징수관이다.” 고대 수메르인의 격언 중 하나였다는 이 한 문장은 세금 납부가 얼마나 오래된 인류의 숙제였는지를 보여준다. 세금을 걷으려는 국가와 어떻게든 이를 피해 보려는 납세자들의 숨바꼭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다. 그 과정에서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각종 ‘창의적 능력’이 발현됐다지만, 탈세가 처벌 대상인 범죄라는 사실 또한 역사적으로 예외가 없었다.
▷로또 1등에 당첨되고도 연체된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버티던 체납자가 최근 국세청에 적발됐다. 그는 20억 원이 넘는 당첨금을 받고도 내야 할 수억 원의 연체 세금을 처리하지 않았다. 대신 돈을 가족 계좌로 이체하거나 현금, 수표 등으로 인출하며 빼돌리려 했다고 한다. 이처럼 1등 혹은 2등 거액 로또에 당첨됐는데도 밀린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가 적발된 이는 36명에 달한다. 없던 돈이 하늘에서 떨어졌는데도 그걸로 세금은 내기 싫다는 심보다.
▷국내 세금 체납자는 현재 132만 명, 밀린 체납액은 100조 원이 넘는다. 내야 할 세금이 1억 원 이상 쌓여있는 사람만 16만 명에 달한다. 사업 실패 등 안타까운 사연도 없지는 않겠으나 체납자 중에는 고의로 재산을 은닉하고 호화 생활을 누리는 사람도 상당수다. 고액 체납자이면서도 개인금고에 현금 4억 원을 숨겨놨거나, 배우자 명의로 재산을 돌려놓고 부촌의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례가 이번 국세청 조사에서 줄줄이 나왔다. 하루 단위로 늘어나는 연체료 따위는 신경 안 써도 되는 부자들이 아니고서야 보이기 힘든 배짱이다.
▷‘유리지갑’ 직장인들이야 고민할 여지조차 없다지만 숨길 구멍이 있는 경우엔 절세와 탈세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올 초에는 유명 웹툰 작가와 프로게이머, 운동선수 등이 줄줄이 세무조사를 받았다. 법인 명의로 산 고가의 슈퍼카를 사적으로 굴리고, 친인척을 직원으로 등록해 허위 인건비를 지급하는 등 각종 수법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 헌법에 명시되고 교과서로 가르치는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를 우습게 본다. 탈세범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의 전례들은 이들을 더 대담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최근엔 해외 암호화폐 시장 등을 이용해 조세당국의 추적을 빠져나가는 지능범들도 많아지는 추세다. 조세 정의가 무너지면 “성실한 사람들만 세금을 뜯긴다”는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혈세 징수에 앞서 효율적으로 투명하게 쓰이는지부터 입증하라는 항변은 정부도 한번 더 들여다볼 부분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점들이 악의적 체납이나 탈세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이 피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죽음과 세금’이라고 했던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누구도 세금을 회피하지 못하는 세상이 돼야 한다.
-이정은 논설위원, 동아일보(2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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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세력의 최후
[차현진의 돈과 세상]
/midjourney·조선디자인랩
한 달 전 8종목 주식의 매물이 쏟아져서 주가가 반 토막 났다. 차액결제거래(CFD)라는 위험한 방법으로 큰돈을 벌려던 불법 투자 클럽 회원들이 쪽박을 찼다. 제아무리 작전을 잘 짜도 매물 폭탄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 미국의 도금 시대(Gilded Age) 즉,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썩었던 시대에 횡행한 사건들의 결론이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 재벌 코널리우스 밴더빌트가 물동량의 폭발적 증가를 예상하고 철도 사업에 뛰어들었다. 동북부 세 철도망을 독점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려면 이리호에서 맨해튼까지 이어지는 철도망을 가진 이리철도회사를 은밀히 인수해야 했다. 대니얼 드루라는 사람이 그 낌새를 챘다.
드루는 원래 가축 상인이었다. 소에게 소금을 먹여 물을 들이켜게 해서 체중을 늘리는 방법으로 부당 이익을 챙겼다. 그 돈으로 이리철도회사 경영권을 선점한 뒤 주식에도 물타기를 적용했다. 경영권을 탐내는 밴더빌트가 죽도록 주식을 사들일 것을 예상하고 몰래 무상증자를 한 것이다.
밴더빌트는 주식 매수를, 드루는 물타기 증자를 은밀히, 끝없이 반복했다. 이를 ‘이리 전쟁’이라고 한다. 그 전쟁은 밴더빌트가 거액을 손해 본 후 추가 매수를 포기하면서 끝났다. 매물 폭탄 앞에서는 재벌도 별수 없었다.
드루의 기쁨은 잠깐이었다. 물타기 동업자 짐 피스크의 배신으로 회사를 잃었다. 피스크가 배신한 것은 금에 투자해서 더 큰돈을 벌려고 했기 때문이다. 피스크는 투자 클럽을 만들어 몰래 금을 매집했는데, 작전 세력의 매수 주문을 관리하던 또 다른 친구가 한쪽에서 몰래 금을 팔아 자기 이익만 따로 챙겼다. 하필 그때 정부도 금을 풀었다. 금값이 너무 올랐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금값은 폭락하고, 이는 주식시장 붕괴로 이어졌다. 1869년 9월의 그 사건을 ‘검은 금요일’이라 부른다. 돈을 보고 뭉친 불법 모임에서 의리란 있을 수 없다. 배신과 의심과 원망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이사, 조선일보(2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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