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상도례]
[‘가족이라고 무조건 절도·사기죄 안 묻는 건 헌법불합치’]
친족상도례
이종석 헌법재판소장 등 재판관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헌재는 이날 형법 제328조 제1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 4건을 묶어 선고한다. 친족간 사기죄, 횡령죄 등 재산 관련 범죄의 형벌을 면해주는 '친족상도례' 형법 조항에 대한 위헌 여부가 결정된다. /뉴시스
2015년 경찰이 아버지가 숨겨놓은 거액을 훔쳐 달아난 18세 아들을 특수절도 혐의로 붙잡았다. 아버지가 번 돈을 은행에 넣지 않고 창고 라면 박스에 보관하는 것을 알고 1억여원을 훔쳤다. 그 돈을 오토바이, 옷 등을 사고 술을 마시며 탕진했다. 경찰은 아들을 이틀 만에 붙잡았지만 처벌하지 못했다. 친족 간 재산죄는 형을 면제하는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 규정에 따라 공소권 없음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형법 328조는 직계혈족이나 배우자, 동거 친족, 동거 가족 등 사이에서 벌어진 절도 사기·횡령 등 재산 범죄를 처벌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법이 가정의 문턱을 넘지 않게’ 한 것이다. 71년 전인 1953년 형법 제정과 함께 도입됐고 지금까지 큰 내용 변화가 없었다. 가족 간 연대가 끈끈한 동아시아 전통에서 유래한 것으로 짐작하기 쉽지만 로마법에서 유래한 조항이다. 로마법 체계를 이어받은 프랑스, 독일, 일본도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한 조항을 갖고 있다.
▶그 결과 분명한 범죄여도 친족 사이라면 처벌할 수 없는 일들이 적지 않게 생겼다. 아내가 내연남에게 주기 위해 남편 돈을 빼돌려도, 친족이 장애인 친족을 속여 금품을 갈취하거나 수급비를 횡령해도, 아들이 치매 어머니 재산을 관리하다 빼돌려도 처벌할 수 없었다. 범죄 행위자가 별거 중인 배우자나 자녀를 버리고 떠난 부모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피해자가 노인·장애인·미성년자 등 사회적 약자인 경우 문제가 심각하다. 이 조항이 있는 외국의 경우 우리보다 적용 범위가 좁다.
▶방송인 박수홍씨 사건 이후 이 조항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졌다. 박씨 부친이 출연료 등을 횡령한 건 친형이 아니라 본인이라고 주장한 이유가 이 조항으로 면책받으려는 의도 때문이었을 수 있다. 최근 골프 선수 박세리씨가 본인이 아니라 재단 명의로 부친을 고소한 것도 이 조항 적용을 피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 법조인들은 친족 간 재산 사건이 들어오면 이 조항 해당 여부부터 따진다고 한다.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 시대로 접어들었다. 3촌까지만 친족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을 정도로 친족에 대한 인식도 변했고 친족 간 재산 분쟁이 빈번해졌다. 헌재가 27일 친족상도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이런 시대 변화를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이렇게 시대에 맞지 않는 법 조항 하나가 사라졌다. 의미가 적지 않지만 시대 변화에 반영하지 못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법 조항이 이것만 있지 않을 것이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4-06-28)-
______________
‘가족이라고 무조건 절도·사기죄 안 묻는 건 헌법불합치’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법률 용어였던 ‘친족상도례’가 널리 알려진 것은 방송인 박수홍 씨 사건 때문이었다. 박 씨의 형이 박 씨 돈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을 때, 갑자기 박 씨의 아버지가 ‘박수홍의 돈은 형이 아니라 내가 썼다’며 주장하고 나서면서다. 부모는 자녀의 동의 없이 돈을 빼내도 처벌받지 않는 ‘친족상도례’ 조항을 이용해 큰아들의 처벌을 면해 주려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무성했던 것. 헌법재판소가 어제 ‘친족상도례’ 조항의 적용을 중지하고 내년 말까지 법을 개정하라며 헌법불합치를 결정했다.
▷친족상도례의 대상은 두 부류다. 먼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등은 절도 사기 횡령 등의 재산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형(刑)이 저절로 면제된다. 사이가 좋든 나쁘든, 범죄 액수가 많든 적든 예외가 없다. 다음으로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친족은 피해자가 고소를 하는 경우 수사와 기소를 할 수 있다. 이른바 ‘친고죄’다. 이 중 헌재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부분은 ‘형 면제’ 부분이다.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할 경우 피해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킬 우려가 있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친족상도례는 “법은 가정의 문턱을 넘지 않는다”는 로마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에서는 1953년 형법 제정 당시부터 이 조항이 있었다. 대가족 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농경사회에선 친족상도례 조항이 필요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71년이 흐르는 동안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크게 바뀌었다. 호주제는 폐지된 지 오래고, 1인 가구의 비중이 전체의 3분의 1을 넘는다.
▷더구나 돈의 유혹이 커지면서 부모 자식과 형제자매의 재산을 노리는 ‘불량 가족’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번에 헌법소원 사건에도 지적장애인 조카의 돈을 빼돌린 삼촌, 노모의 예금을 횡령한 자녀와 그 배우자의 사례가 문제가 됐다. 이들은 피해자 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했지만 친족상도례가 적용돼 모두 불기소 처분됐다. 일반인들의 법 감정이나 상식으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악행이 법 조항 때문에 면죄부를 받았던 셈이다. 정부와 국회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법 개정은 번번이 무산됐다.
▷정부는 1992년 친족 사이의 범죄를 기본적으로 친고죄로 규정해 처벌 가능성을 열어두는 형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도 친족상도례를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됐지만 흐지부지됐다. 가족 문제에 국가의 과도한 개입을 막는다는 친족상도례의 취지는 살려야 한다는 의견까지 감안해서 정부와 국회가 부작용을 줄일 방법을 진작 찾았어야 했다. 이제라도 법 개정을 서둘러,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두 손 놓고 보고만 있어야 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장택동 논설위원, 동아일보(24-06-28)-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時事-萬物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 6일 근무 '조르바의 후예'] [포퓰리즘이 민주주의를 망친다] .... (0) | 2024.06.29 |
---|---|
[핵 없는 전쟁은 이길 수 있나] [국제사회는 선택을 요구한다] .... (0) | 2024.06.28 |
[AI 강국 이스라엘의 숨은 비결] [처참한 한국AI] .... (0) | 2024.06.27 |
[국회 장악 정당이 낸 온갖 기이한 법안들, 혀를 차게 한다] .... (0) | 2024.06.27 |
['민주당 정권 오면 또 탈원전' 카이스트 전공 지망생 단 3명] .... (0) | 2024.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