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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시간을 이겨낸 간고등어…35년 손맛으로 펄떡대다] ....

뚝섬 2024. 10. 27. 05:46

[시간을 이겨낸 간고등어…35년 손맛으로 펄떡대다 ]

[육즙을 움켜쥐듯 머금은 생갈비, 그 단단한 위안] 

[나무의 시간(용계리 은행나무)]

 

 

 

---[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시간을 이겨낸 간고등어…35년 손맛으로 펄떡대다 

 

경북 안동시 성전식당의 된장찌개 간고등어구이 백반. 김도언 소설가 제공

 

안동으로 맛기행을 가면서 내심 간고등어 백반을 첫손에 꼽았다. 안동은 찜닭과 한우갈비도 유명하지만 가장 서민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음식으로 한국인들의 허기를 달래준, 감히 ‘국민 솔 푸드’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안동 간고등어를 안 먹어 본다는 것은 그 원천을 소유한 고장에 대한 예의가 아닐 테니까.

언젠가 이 연재 코너에 썼지만, 나는 인생이란 별것 아니라 먹어본 음식의 가짓수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실 어려서부터 쉽게 맛볼 수 있는 음식이 있는 반면 나이 50이 돼서야 어렵사리 먹어보는 음식도 있는 법이다. 생각해 보자, 평균적으로 스무 살 청년과 50세 장년 중 누가 먹어본 음식의 가짓수가 많겠는가를. 그것이 곧 그 둘의 인생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고등어는 내 생각에는 두부, 콩나물, 돼지고기 등과 함께 한국인이라면 보통 두세 살 무렵이면 예외 없이 맛보는 식재료인 것 같다. 그만큼 친근하고 거부감이 없는 음식이라는 것이다.

1989년부터 장사를 시작했다는 성전식당은 구 안동역 건너편, 비교적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집이지만 간고등어 맛 하나만으로 유명해져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바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재발라 보이는 60대 주인아주머니가 휙 감겨오는 안동 사투리로 반갑게 맞아주는데,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집이다. 거기서부터 마음이 사뭇 푸근해진다. 신발을 벗으라는 것은 무엇인가. 안심하라는 것이다. 여기는 집처럼 편안하고 아늑한 곳이니 안심하라고. 그래,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밥 먹다가 도망갈 일이라도 생기는 양 다들 신발을 신고 급히 밥을 먹는다. 나는 신발을 벗고 밥을 먹는 것이 백반집에 썩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렸다. 드디어 이 집의 대표 메뉴 된장찌개 간고등어구이 백반이 나왔다. 정갈한 밑반찬에 노르스름한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간고등어구이와 함께 걸쭉한 느낌의 된장찌개가 앞에 놓인 것.

 

주인아주머니가 알려준 대로 밥을 큰 대접에 넣고 밑반찬을 골고루 얹은 뒤 된장찌개를 넣고 비벼서 한술 떠 입에 넣으니, 정말 벗어놓은 신발 따위 잊고 미각에만 골몰하게 하는 맛이다. 거기에 짭조름하고 고소한 간고등어구이를 찢어서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는 맛이라니. 안동에 와서 안동 간고등어구이 안 먹어본 사람과는 앞으로 말을 트고 싶지 않다는 발칙한 생각마저 들었다. 35년이라는 세월 동안 간고등어구이 백반을 내놓는 사이, 주인아주머니는 초로에 접어들었다. 처음 식당을 냈을 때는 분명 서른 안팎의 색시 소리를 들었을 터인데, 그 고운 나이에서부터 비린내 나는 생선을 손질하고 된장찌개를 끓이면서 그이는 장차 35년의 시간을 살아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을까.

안동 간고등어는 제법 알려진 대로 안동에서 가까운 어항인 영덕에서 잡은 고등어를, 집성촌과 동성촌이 많아 제사 등의 수요가 있는 안동으로 가져오는 동안 썩지 말라고 소금을 친 데서 유래한다. 그러니까 시간을 이겨보려는 지혜의 산물이 안동 간고등어다. 구 안동역 건너편 성전식당 주인아주머니도 안동 간고등어와 함께 시간과의 싸움을 견뎌냈을 것이다. 간고등어가 시간을 달래면서 사람을 살리는구나. 참 기특하다.

-김도언 소설가, 동아일보(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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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즙을 움켜쥐듯 머금은 생갈비, 그 단단한 위안

 

경북 안동 ‘원조 안동한우갈비’의 생갈비(왼쪽 사진)와 갈비찜. 김도언 소설가 제공

 

퇴계 이황 선생과 서애 유성룡 선생의 뚜렷한 자취가 있는 경북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내심 시민들이 자부하는 별칭을 갖고 있는 도시인 동시에 지리적으로는 전형적인 내륙 분지다. ‘안동 분지’라고 하여 지리교과서에서 분지 지형을 설명할 때 언급될 정도.

그런데 이 같은 자연 조건으로 산물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 도시가 한우 갈비와 자반고등어, 찜닭으로 전국적으로 ‘유명짜한’ 이름을 얻고 있다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다 소이연이 있을 테지만 우선 여기서는 한우 갈비만을 이야기하도록 하자.

안동이 숯불에 구워 먹는 한우 갈비로 이름을 낸 건 당연히 필연적인 사정이 있다. 안동 지역은 오래전부터 농경이 흥해서 농가에서 소를 많이 키운 데다가 관내에 이들을 처리할 꽤나 유서 깊은 도축장이 있었다. 이 도축장은 올해 4월 현대식 ‘안동농축산물공판장’으로 탈바꿈해 도축뿐 아니라 경매장과 가공장까지 갖춘 대규모 축산물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이곳에서는 일일 한우 200마리의 도축 및 가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단 인간의 섭식을 위해 희생된 한우들 앞에 성호를 긋는다.)

 

이런 종합적인 조건에 기인해 구 안동역, 그러니까 안동의 구도심 앞 상가 지구에는 ‘한우갈비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이곳엔 못 잡아도 40여 호의 갈빗집들이 성황리에 영업을 하고 있는데 골목 모퉁이를 돌 때마다 갈비 굽는 숯불 향이 기분 좋게 코를 자극한다. 그중 한 곳을 찾았다. 50년을 헤아린다는 원조 ‘안동한우갈비’가 그곳. 60세 즈음의 인상 좋은 사장님과 또래 찬모 두 분이 따뜻한 미소로 손님을 맞는다. 생갈비와 양념갈비 마늘갈비가 이 집의 주메뉴. 예의 안동농축산물공판장에서 가공된 신선한 고기를 주재료로 쓴다. 1인분에 공히 200g의 양이 제공되는데, 3인분을 시키면 갈비찜이 서비스로 주어진다. 숯불에 막 구워진, 지방이 끓으면서 육즙을 움켜쥐듯 머금은 생갈비 한 점과 함께 삼키는 소주 한 잔. 천국이 따로 없다. 안동은 그 순간 정신문화 같은 관념의 수도가 아니라 미각 같은 감각의 수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사장님 말씀으로는 50년 전 자신과는 무연한 할머니 한 분이 소갈비를 구워서 팔기 시작한 것이 이 집의 시작이란다. 그러다가 2대 사장님이 30년을 운영했고 당신이 가게와 노하우를 인수받아 영업을 한 것은 17년 되었다고. 그러니까 창업자까지 사장님 세 분이 50년을 이어온 것. 보통 50년 정도 된 노포는 가족이 대를 이어서 물려받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집 경영권이 타인에게 계속 이전된 것은 상당히 예외적이다. 그런데 내 눈엔 오히려 그게 더 쿨해 보인다. 맛을 내는 원칙과 정성을 존중하고 그 정신만 잘 이어간다면 가족을 고집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사장님은 처음 한우갈비골목 일대가 자갈밭이었다고 귀띔한다. 자갈밭에 숯불 화로를 걸쳐 놓고 석쇠에 갈비를 구워 노상을 오고 가는 식객들에게 팔았다는 것이다. 그 식객 중엔 필시 고등어 간잡이도 있었을 것이고 찜닭용 닭을 잡는 사람도 있었을 터. 그 자갈밭은 지금은 시멘트로 잘 도포된 공용주차장이 되어 있다. 자갈이 오랜 시간 서로 부딪쳐 모서리가 깎여 둥근 마음이 되듯 이곳 안동 한우갈비골목 사람들도 어느새 그리 된 듯 보였다.

 

-김도언 소설가, 동아일보(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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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시간 

천연기념물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장맛비에 천연기념물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196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이다. 직경 35cm가량의 가지가 꺾였지만, 수령이 약 700년으로 알려진 우람한 나무이다 보니 큰 지장이 없어 보여 그나마 다행이다. 부러진 나뭇가지를 발견하고 재빨리 조치하게 연락한 사람은 용계리 이장이다. 물가에 매어 둔 배로 가려던 길이었다.

 

어부이며 농부인 그의 고향이자 삶의 터인 용계(龍溪)는, 용이 누운 형상으로 뒤로는 산을 휘두르고 앞에 물을 둔 마을이다. 조선 시기부터 은행나무를 보호하는 계를 조직했다는 유서 깊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나무는 길안초등학교 용계분교 운동장 한편에 위치해 아이들의 웃음까지도 품은 든든한 당산목이었다. 그러다 1985년 임하댐 건설 계획으로 마을과 같이 수몰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마을 주민은 물론이고 관련 전문가와 기관, 대통령까지 나서서 은행나무를 살릴 방법을 찾았다. 많은 논의 끝에 제 자리에서 특수 공법으로 나무를 15m 올려 심는 상식(上植)을 택했다. 1990년부터 약 4년의 공사로 총 24억원이 넘는 사업비가 들었고 1994년 주변 마무리 공사까지 완료했다. 그러다 보니, 용계의 은행나무는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 25수 중 ‘가장 비싼 은행나무’라는 별칭이 붙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를 올려 살린 사례로 2013년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올해 10월이면 상식을 완료한 지 30년이다. 그사이 오랜 세월 나무 곁을 지켰던 할머니도 은행나무가 내려다보이는 산 위에서 영면에 드셨다. 할머니 때문인지 은행이 열리는 암나무임에도 할배나무로 불렸던 일도 이젠 희미해졌지만, 고향 마을을 물속에 묻어 둔 수몰민의 향수 어린 장소로 남았다.

 

수몰 전 100여 가구였던 마을에는 이제 24가구 46명의 주민이 있다. 임하댐의 수위도 만수일 때가 많아, 흔적이 남아 있던 옛길도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나아지는 고향과 은행나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거는 91년생 젊은 이장을 응원한다. 그리고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라 표현한 시인의 마음도 좇아 오래된 나무의 시간에 기대어 본다.

 

-윤주국가유산청 문화유산·자연유산위원, 조선일보(2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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