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여성의 야구장 습격, 올해 숏폼 허용이 촉매제 됐다"]
[야구장은 매진인데 왜 영화관은 썰렁한가]
"2030 여성의 야구장 습격, 올해 숏폼 허용이 촉매제 됐다"
[방현철의 경제로 세상 읽기]
전용배 단국대 교수가 말하는 '프로야구 1000만 관중'의 경제학
추석 연휴 기간인 지난 15일 올해 한국 프로야구 누적 입장객이 1002만756명을 기록, ‘1000만 관중 시대’가 열렸다. 이전 최고였던 2017년 840만688명을 훌쩍 뛰어 넘은 성적이다. 한국 야구는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하는 등 최근 몇 년간 국제 대회에서 부진했지만, 국내에서만큼은 최고 흥행 종목으로 위상을 굳혀가고 있다. 올해 프로야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스포츠경영학자이자 허구연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의 어드바이저로도 활동하고 있는 전용배 단국대 스포츠과학대 학장(스포츠경영학과 교수)을 지난 20일 만나 ‘프로야구 1000만 관중 시대’를 경제적 측면에서 분석해봤다.
전 교수는 “프로야구에 관중 1000만명을 넘어선 것은 ‘2030 여성의 야구장 습격 사건’이라고 고쳐 부를 수 있다”며 “여기엔 MZ세대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 야구 스토리를 짧은 영상으로 만들어 퍼트리는 게 새로운 문화 현상이 된 게 바탕이 되고 있다”고 했다. 201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저서 ‘내러티브 경제학’에서 이야기 형식을 띤 아이디어의 전염이 경제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분석하는 게 경제학의 중요한 과제라고 했는데, 비슷한 일이 프로야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일 충남 천안 단국대 천안캠퍼스에서 만난 전용배 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는 “프로야구에 관중 1000만명을 넘어선 것은 ‘2030 여성의 야구장 습격 사건’이라고 고쳐 부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배트 모형과 야구공을 들고 있다. /신현종 기자
◇ ‘프로야구 1000만 관중’ 요인
- 야구 관중 1000만, 어떤 숫자인가.
“과거엔 계산기 속에서만 가능한 숫자였지, 실제 달성하기 힘든 숫자였다. 올해 671경기 만에 관중 1000만명이 넘었다. 한 해 720경기가 있다는 걸 감안하면, 1000만명은 한 경기에 관중이 매일 1만5000명씩 들어와야 가능한 얘기다. 현재 우리나라 10개 야구장 중 3만명이 들어가는 곳은 없다. 그럼에도 한 경기장에 관중석 3만개가 있다고 가정하면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좌석의 50%가 차야 한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나 가능한 얘기였는데, 올해 현실이 됐다.”
- ‘20대 여성 효과’가 어느 정도인가.
“올해 프로야구 관중 중 20대 여성이 23~24%다. 프로야구 관중 넷 중 한 명은 20대 여성이란 얘기다. 14~15%인 20대 남성보다도 많다. 2030 여성으로 넓히면 점유율이 37~38%에 달한다. 5년 전만 해도 중장년 남성인 ‘아재(아저씨)’ 관중이 주류였는데, 세대와 성별이 확 바뀐 것이다. 여전히 미국, 일본 야구는 중장년 남성 관객이 주류인데, 세계적으로도 드문 현상이다.”
- MZ 여성 관중은 왜 늘었나.
“기존 가설은 2030 여성은 스포츠든 영화든 공연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팬 익스피어리언스(경험)를 얻기 위해 온다고 본다. 그래서 좋은 경기 경험을 확장시키면 이들이 많이 찾는다고 봤다. 하지만 지금 야구장을 찾는 2030의 상당수는 야구 팬은 아니라 게스트(손님)라고 분류해야 할 것 같다. 야구 규칙도 잘 모르고, 현장에서 경기를 유심히 보지도 않는다. 화제가 되는 장소에 자신이 있다는 걸 소셜미디어에 올리려는 경향이 크다.”
- 야구장이 MZ 화제가 된 계기는.
“KBO가 올해 새로운 뉴미디어 중계권 계약을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인 티빙과 했는데, 경기 관련 숏폼 영상 등 2차 저작물을 허용하는 조건이었다. 모든 야구 경기 관련 동영상을 뉴미디어 중계권자 외에는 포털 등에 올리는 것을 금지했던 것에서, 숏폼 즉 40초 미만의 짧은 영상만은 돈을 벌기 위한 상업적 목적이 아니면 소셜미디어에 자유롭게 올리고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해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 가면 수많은 야구 영상들이 돌아다니는 이유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KIA 치어리더들이 추는 ‘삐끼삐끼춤’이 유명해진 것도 숏폼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숏폼 허용을 촉매로 해서 야구장에서 선수 사진이 나온 카드를 들고, 먹고 마시고, 춤추는 모습 등을 짧은 영상에 담아 올리는 새로운 MZ 문화도 만들어졌다. 야구를 통해 사실은 자기 스토리를 얘기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SSG 랜더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KIA 치어리더들이 최근 소셜미디어 동영상 등에서 화제가 된 삐끼 삐끼(Pikki Pikki) 춤을 추고 있다. /연합뉴스
◇ 한국 야구는 ‘막장 드라마’?
- 미국 등보다 경기 수준이 낮은데, 관객이 환호하는 이유가 있나.
“우스갯소리이긴 하지만, 한국 야구는 드라마로 비유하면 ‘막장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볼 때는 경기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팬이나 게스트가 보기에는 예측을 할 수 없는 막장 드라마 같은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일본은 대체로 투수가 중심인 ‘투고타저(投高打低)’이지만, 우리는 ‘타고투저’다. 한국은 투수가 약하고 타격이 강하다는 뜻이다. 경기가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는 이유다.”
- 공연 등과 비교해 유리한 점은.
“세계적 팝가수인 테일러 스위프트나 아이돌그룹 BTS의 팬이 돼서 덕질(좋아하는 가수를 파고드는 것)을 한다고 하면 가까이 보기도 어려울뿐더러 공연 티켓 가격도 비싸다. 그렇지만 야구장 한 번 가는데 1만5000원에서 2만원이면 된다. 그 정도 비용으로 3시간 정도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상품은 거의 없다. 야구가 덕질하기엔 가성비가 좋다.”
◇ 1000만 관중의 경제 효과
- 1000만 관중의 경제 효과는?
“2030 여성들은 과거 팬들과 달리 굿즈(상품)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산다. 예컨대 KIA 김도영 선수가 월간 10홈런-10도루, 사이클링 히트(안타-2루타-3루타-홈런을 순서대로 치는 것)를 해서 8월에 기념 유니폼을 내놨는데, 일주일 만에 사전 예약 신청으로 1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각 구단 입장료 수입도 이미 1500억원을 넘어서고 있다. 올 시즌 프로야구 중계권 수입이 990억원이다. 뉴미디어 중계권의 경우 과거 네이버 컨소시엄을 제치고 티빙이 들어오면서 경쟁 상황이 됐고, 중계권료도 올랐다. 또 숏폼 영상을 올릴 수 있게 되면서 2030 여성 등이 새롭게 대거 야구장으로 몰려 오고 있다. 1000만 관중이 계속 유지되면 산업적으로 더 의미 있는 시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야구 산업이 더 커지려면?
“역대 최초로 관중 700만명을 넘겼던 2012년에도 여성 관중이 몰렸었다. 하지만 반짝 현상으로 그쳤다. 이번에도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 구단의 유튜브 구독자 숫자를 보면 불안하다. 한화가 34만명으로 가장 많고, KT가 10만명 정도다. 야구장을 찾는 개인은 1000만명으로 늘었지만, 구단이 더 노력할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구단들이 야구를 대기업들의 홍보 수단이 아닌 비즈니스로 인식해야 한다. MZ세대의 야구장 습격은 반갑지만, 팬심에 바탕을 둔 야구 담론이 부족한 건 아쉽다.”
“1000만 관중 시대여도 야구단 자생력 갖추기엔 시간 걸려”
전용배 교수는 ‘프로야구 1000만 관중 시대’가 왔지만, 야구단 경영의 구조적인 적자 상황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전 교수는 “구단들이 야구를 비즈니스로 봐야 흑자 전환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관중이 늘어도 야구단은 적자 아닌가.
“작년까지 보면 각 구단 매출은 한 해 400억~600억원이다. 대기업 계열이 아닌 히어로즈를 빼면, 대기업들은 대체로 구단에 100억~200억원쯤을 광고비 명목으로 지급한다. 이 지원비를 적자라고 보면 된다. 올해는 관객이 늘어 좀 다를 순 있지만, 대체로 적자인 건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대기업들 지원으로 1997년 외환 위기 등 상황에도 프로야구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인정하지만, 구단 스스로 자생력을 북돋우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한국에서 야구 산업을 흑자로 만들 수 있을까.
“매년 흑자를 내는 히어로즈만 봐도 야구단이 적자를 내지 않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매출에 맞게 비용 구조를 짜면 된다. 히어로즈는 흑자를 내기 위해 선수를 다른 구단에 팔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구단에선 그렇게 하다가는 성적 부진으로 구단 대표가 사표를 내야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구단 대표의 임기는 굉장히 짧다. 야구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대표들을 선임해서 야구를 진정한 비즈니스로 키워야 가능한 일이다. 미국에선 리그 전체의 파이를 키워야 리그가 존립하니, ‘리그십’의 중요성을 모든 구단이 인식하고 있다. 리그십은 팀 이익보다 리그 전체의 발전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일반 기업은 독점이 중요한데, 프로 스포츠는 상대가 잘해야 전체 파이가 커지고 내 몫도 커진다.”
―경기 외엔 비어 있는 야구장 활용도를 높이려면.
“원정 경기가 있는 날엔 홈 구장은 비어 있다. 기업의 세미나장이나 결혼식장 등으로 제공하는 등 좀 더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 외에도 어르신 교육, 스타트업 회의 장소 등으로 공공성을 띤 지역 밀착 공간으로 활용돼야 한다.”
:전용배 교수는
전용배 교수는 영남대 행정학과를 나와, 미국 뉴멕시코주립대에서 스포츠경영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단국대 스포츠과학대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2022년 한국스포츠산업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2014년 한국스포츠산업경영학회 학술대상, 2015년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스포츠경영학회에서 최고논문상을 수상했다. 한국야구학회 이사, KBO 총재 어드바이저로도 활동하고 있다.
☞내러티브 경제학
내러티브(narrative), 즉 전염성이 있는 이야기가 어떻게 경제와 시장에 영향에 미치는지 연구하는 분야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가 저서 ‘내러티브 경제학’에서 제기했다.
-방현철 기자, 조선일보(24-09-24)-
______________
둘 다 비슷한 1만5000원인데 야구는 천만시대, 영화는 한계산업
마치 상설 할인 상품 같은 영화… 해답은 결국 '균질한 웰메이드'
지난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4 신한 SOL 뱅크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관중들이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왼쪽)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한 영화관에서 시민들이 '베테랑2' 등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뉴스1
지난주 화제로 프로야구 1000만 관객 시대의 개막이 있다. 추석인지 하석인지 헷갈리는 34도 안팎의 폭염. 그런데도 관객들은 굳이 실외 야구장에서 함성을 질렀다. 반면 냉장고 같은 실내인데도 영화관은 곳곳에 빈자리다.
흥미로운 숫자가 있다. 주말 개봉관 티켓 가격은 1만5000원, 지난해 한국프로야구 경기당 객단가는 1만5226원. 왜 대중은 비슷한 가격인데도 쾌적한 실내를 외면했을까. 한 꺼풀 벗기면 더 민망한 수치가 있다. 공식적인 표 값 말고 영화 매출액을 관객 수로 나눈 올해 상반기 1인당 가격은 9698원. 한 사람 평균 1만원이 안 됐다는 의미다. 같은 영화라도 가격은 천차만별.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에서 평일 롯데시네마 1인 관람권을 6000원에 팔겠다는 글을 발견했다. 그 아래에는 CGV여의도서 상영 중인 알모도바르 감독의 예술영화 ‘그녀에게’를 3500원에 양도하겠다는 고지도 있다. 두 장 사면 100원 더 할인해 6900원. 지금 영화는 마치 상설할인마트의 상품 같다. 통신사 VIP면 공짜로도 볼 수 있고, 카드 사용하면 20, 30% 할인은 기본이며, 1+1 티켓도 곳곳에 등장한다. 이러니 정가 지불하면 손해 보는 것 같은 분노가 치밀 수밖에.
‘신과함께’ 1, 2편과 ‘광해’로 국내 최초 3000만 관객을 모은 제작자 원동연 대표는 이렇게 비유했다. 비슷한 가격의 평양냉면과 비교해 보자고. 우래옥이나 을지면옥에서 손님들은 누구나 같은 값을 낸다. 이재용 회장도 배우 최민식도 평범한 서민도 예외 없다. 냉면 값 비싸다고 투덜대는 사람은 있겠지만, 대접을 비울 때쯤이면 대부분 뿌듯한 얼굴이다. 오늘 가나 내일 가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균질한 슴슴한 맛.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탑건2′는 아이맥스 스크린에서 3만원 가까운 돈을 내더라도 환호하는 반면, ‘베테랑2′는 비슷한 주제의 OTT 드라마 ‘비질란테’보다도 못하다며 투덜댄다. 5000원 정도면 한 달 내내 영화·드라마·예능·다큐를 맘껏 볼 수 있는 OTT의 세상에서, 한국 영화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폭염에도 야구장이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한 비결은 결국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맥스보다 확 트인 개방감, 3만명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일체감, 치맥과 함께 춤추고 응원하는 축제의 현장감, 그리고 하향 평준화건 아니건 전력 평준화가 빚은 순위 경쟁의 긴장감.
유감이지만, 시대는 영화를 이미 한계 산업으로 대접하고 있다. 다음 주 수요일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전, 란’은 넷플릭스 영화다. 영화제 끝나자마자 넷플릭스에서 추가 요금 없이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영화제의 얼굴인 개막작으로 OTT 영화를 선정한 건 부산영화제 사상 처음. 영화제 측은 “넷플릭스 영화라고 제외하는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작품 자체를 관객이 얼마나 즐길 수 있는지만 감안했다”고 했다지만, 내심 스스로도 민망했을 것이다. OTT 아닌 작품으로 작품성과 대중성에서 더 뛰어난 작품이 있었다면, 당연히 그 영화를 내세웠을 테니까.
결국 미래에는 두 종류의 영화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첫째, 영화관이라는 예외적 장소에서만 100% 즐길 수 있는 작품. 둘째, 영화관이란 폐쇄적인 곳에 가둬 놓지 않으면 평생 보지 않을 예술 작품.
소셜미디어와 유튜브와 OTT 플랫폼이 지배하는 세상. 후자는 영화 덕후 감독들이 이미 성심 성의껏 만들고 있다. 결국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관건은 전자, 영화관에서만 보고 싶은 ‘웰메이드’를 얼마나 자주 그리고 균질하게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어수웅 기자, 조선일보(24-09-24)-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餘暇-City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예찬] (1) | 2024.10.11 |
---|---|
[막 내리는 대한극장, 사라지지 않는 잔상] [닥터 지바고] .... (0) | 2024.09.25 |
["노인 70% 스트레스 없어", 노쇠하는데 삶의 만족도는 왜 높아질까] (1) | 2024.09.22 |
[조니워커 블루 vs. 밸런타인 30년… 뭐가 더 맛있을까?] .... (2) | 2024.09.15 |
[청담동 뒷골목 샌드위치…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풍미] (0) | 2024.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