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창이 신혼여행 때 한 일]
[삼성전자 걱정보다 혁신에 저항하는 우리 사회부터 반성을]
["우리는 지금이 전성기다"]
모리스 창이 신혼여행 때 한 일
23년 전 TSMC 모리스 창 회장
신생 엔비디아 젠슨 황 직접 방문
"꼼꼼함, 과감함, 신뢰, 큰 포부"
TSMC의 위기도 그렇게 넘겼다
세계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장악하고 있는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과 엔비디아의 CEO(최고경영자) 젠슨 황은 같이 있을 때 마치 부자지간 같다. 중국계(창은 중국, 황은 대만 태생)에 사업적으로 끈끈한 관계인 걸 감안해도, 황이 모리스 창을 아버지처럼 대하듯 하는 것은 비즈니스 세계에선 낯선 모습이다. 엔비디아가 TSMC의 고객사인데도 그렇다. 두 사람과 관련된 글들을 찾아 읽다 보면, 그럴 만하게 된 일화들을 알게 된다.
2001년 황은 자신의 캘리포니아 사무실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잠깐 사무실에 들러도 되겠냐”는 모리스 창의 전화였다. 당시 TSMC는 이미 전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 1위 기업이었고, 창업 10년도 안 된 엔비디아는 겨우 게임용 그래픽처리장치(GPU)로 이름을 조금씩 알릴 때였다. 이전에 만난 적은 있지만,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다.
모리스 창은 어느 금요일 오후 다른 직원 없이 혼자 사무실에 나타났다. 모리스 창은 황에게 사업은 잘되는지, 필요한 웨이퍼(반도체 원판)는 몇 장인지 세세히 묻고 자신의 검은색 노트에 적었다. 황은 긴장한 나머지 자신이 말한 숫자들이 맞는지 확인할 정도였다. 당시 모리스 창이 재혼한 아내와 신혼여행 중이었다는 것을 황은 나중에 알았다. 엔비디아가 없어서 못 판다는 ‘AI 가속기’의 생산을 TSMC에 맡긴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론이었다. 2007년 10월 모리스 창과 황이 캘리포니아 컴퓨터역사박물관에서 가진 대담에서 밝힌 내용이다.
모리스 창이 공을 들인 초창기 기업은 엔비디아만이 아니다. 퀄컴이나 브로드컴 같은 회사들도 사업 초기부터 TSMC에 칩 생산을 맡겼다. 이런 기업들이 TSMC의 성장에 밑바탕이 됐다. 2000년대 초 퀄컴이 TSMC에 첨단 칩을 맡긴 것은 TSMC가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경영자로서 모리스 창의 저력은 위기 속에서 더 빛을 발했다. 그는 2005년 일흔넷의 나이로 TSMC의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TSMC는 전례 없는 타격을 받았다. 고객사들도 하나둘 떠났다. 2009년 모리스 창은 구원 투수로 투입됐다. CEO로 복귀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경영난으로 회사를 떠난 연구·개발(R&D) 인력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이들의 복귀를 요청하며 모리스 창은 직접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20억달러(약 2조7600억원)였던 TSMC의 투자액도 90억달러(약 12조4000억원)로 늘렸다. 몸집을 줄이던 경쟁사들과는 정반대 결정이었다. 모리스 창은 복귀 후 생산 현장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직원 한 명 한 명에게 질문을 던지고 개선점을 찾았다. 그는 “개별 직원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지 고민했다”고 회상했다.
TSMC가 ‘반도체의 제왕’이 된 것은 그런 위기를 극복한 결과물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스마트폰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때, 선제적 투자로 이 시장을 선점했다. 2016년 아이폰의 주문을 따낼 때도 모리스 창은 직접 미국으로 날아가 팀 쿡 애플 CEO와 담판을 지었다. TSMC나 모리스 창뿐 아니라 위기 이후 더 단단해진 기업의 사례들을 알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지난해 모리스 창 특집 기사에 위기 극복의 해법을 짐작할 수 있는 문구가 있다. “모리스 창은 사업을 할 때 꼼꼼하고, 타협하지 않으며, 동료들을 신뢰했다. 그리고 맞다고 생각되면 큰 포부를 갖고 과감하게 움직였다.”
-이성훈 기자, 조선일보(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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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걱정보다 혁신에 저항하는 우리 사회부터 반성을
[최재붕의 디지털 신대륙]
대만은 '반도체 입문'이 고교 필수… 사실상 전국민에 반도체 교육
혁신지향 사회와 규제지향 사회의 격차… 유럽이 쓴 반성문을 보라
규제는 쇄국의 상징… AI시대, 국민 모두의 세계관 전환이 절실하다
생성형 AI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지금 대만 경제는 신이 났다. 대장 기업인 TSMC가 연일 매출 신기록을 내면서 주가도 신나게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TSMC뿐 아니라 많은 관련 기업들이 동반 상승 중이다. TSMC가 이토록 폭발 성장하게 된 것은 그동안 공들였던 파운드리 분야에서 경쟁 기업인 삼성전자와 큰 격차를 벌리면서 AI 반도체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주문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심지어 가격을 50% 올리겠다고 발표했는데 엔비디아는 꼼짝없이 받아들였다. 대안이 없다.
엔비디아는 지금 초고속으로 성장 중이다. 실적 발표만 하면 어닝 서프라이즈고 신기록이다. 최근 생성형 AI 계산과 서비스에서 가장 빠르고 전기를 적게 쓰는 최신 블랙웰 시리즈를 출시했는데 순식간에 1년 치 생산분이 완판되었다고 발표했다. 시총도 4400조원을 돌파하며 마이크로소프트를 꺾고 애플에 이어 세계 2위 기업으로 우뚝 섰다. 이렇게 내놓는 상품마다 완판이고, 그것도 서로 달라고 아우성이니 기업은 신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제품에 들어가는 GPU 칩을 만들 수 있는 기업이 TSMC 하나뿐이니 가격 협상도 불가능하고, 돈을 내면서도 항상 을의 처지다. 이러니 대만은 신날 수밖에.
그런데 TSMC는 어떻게 세계 1위 반도체 제조 기업이 되었을까? 우리나라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에서도 메모리 제조 분야에 집중해 왔다. 그래서 지금도 메모리만큼은 세계시장 점유율 1위다. 반면 대만은 주문한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분야에 집중 투자해 왔다. 반도체 산업 도전 시기에 이미 미국과 일본이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를 모두 선점하고 있던 탓에 하청 생산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랜드 네임은 없었지만 주문받은 반도체 생산 기술만큼은 세계 1위로 키워냈다. 그런데 파운드리 시장이 점점 성장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분야에서 번 돈을 대거 투자해 파운드리 산업에서 TSMC를 추격하는 노력을 해왔는데 이 기술 격차를 극복하는 길이 험난했다. 우리만이 아니다. 반도체 산업의 황제라고 하던 인텔도 결국 이 도전에 실패하고 적자를 기록하며 주가가 하루 26% 폭락하더니 지금은 구조 조정과 M&A라는 최악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만큼 기술이 어렵다는 뜻이다. 실제로 최고 기술이라는 3~5나노 반도체 제조 기술의 TSMC 시장 점유율은 무려 92%에 달한다. 그야말로 싹쓸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려운 걸 대만이 해낸 것은 여러 요건이 합쳐진 덕분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전 국민이 반도체 산업이 우리의 살길이라고 합의하고 세계관을 바꾼 노력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대만은 일찌감치 반도체 입문 교육을 고등학교 필수과목으로 도입했다. 말하자면 2500만 대만 국민들에게 반도체는 기본 상식이라고 선언한 셈이다. 당연히 관련 학과가 많아지고 인재 규모가 커진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충분한 인재 확보가 가능하다. 반도체 산업은 대기업만 있다고 해서 성장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소재, 부품, 장비 등 전 분야에서 엄청나게 많은 작은 기업이 연구 개발에 투자해 첨단 기술력을 축적하고 매년 또 신기술을 개발해야 앞서 갈 수 있는 산업이다. 결국 풍부한 연구 개발 인재가 산업을 키우는 에너지가 된 셈이다. 대만이 그 어려운 걸 오랜 기간에 걸쳐 실천했고 지금 그 과실을 따는 중이다. 대만 가권의 주가지수는 불과 1년 사이 43% 상승했고 전체 기업 시총 합계는 3000조원을 훌쩍 넘어버렸다. 인구 2배인 우리나라가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 10% 상승에 머물고 전체 시총 합계가 2600조원에 불과한 걸 보면 반도체 산업의 성장이 가져다 준 열매는 정말 달콤해 보인다. 이러니 TSMC를 국민 모두가 호국신산(護國神山·나라를 지키는 신령한 산)이라 부를 만하다. 초격차 기술을 발전시키려면 이렇게 국민 전체의 세계관이 변화하고 새로운 기술 개발에 도전해야 한다.
최근 유럽은 자기 반성 보고서에서 디지털 문명 전환에 규제와 기존 산업 보호로 대응했던 것이 현재의 실패 원인이라고 실토했다. 1995년만 해도 미국과 비슷했던 GDP는 이제 30% 이상 격차가 나버렸고(2022년 기준 미국 25.5조달러, EU 17조달러) 앞으로 더 벌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20여 년간 규제는 강화하고 경쟁은 게을리한 결과라고 자탄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제프리 힌턴(인공지능의 아버지) 교수나 데미스 허사비스(알파고를 만든 인물) 모두 영국 출신이다. 실제로 유럽에서 창업한 첨단 디지털 관련 스타트업의 70%가 미국으로 이전했다는 사실은 혁신을 지향하는 사회와 규제를 지향하는 사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는 지난 20년간 유럽을 모델로 삼으며 경쟁보다는 보호, 혁신보다는 규제로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우버 불법, 에어비앤비 불법, 주 52시간 이상 근무 불법 등 법이 경쟁을 막아서는 사회로 전환되었다. 물론 그때는 국민 모두가 찬성한 길이니 누구도 탓할 수는 없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모두가 나눠 지고 있는 중이다. 지난 2년간 반도체 산업 불황으로 못 걷은 세금만 60조가 넘는다고 아우성인데 이제는 삼성전자 위기론까지 겹쳤다. 모두가 삼성전자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분석하고 이것 저것 고치라고 난리법석이다. 호국신산은커녕 호구 대접하더니 지적질에는 참으로 열정적이다. 반도체 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혁신보다 규제를, 경쟁보다는 보호를 열망했던 우리 국민 마음 자세가 아닐까? 규제는 쇄국의 장벽이다. AI 시대 국민 모두의 세계관 전환이 절실하다. 삼성전자 걱정보다 혁신에 대한 우리 사회 세계관부터 챙겨 볼 때다.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조선일보(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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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이 전성기다"
[특파원 리포트]
지난 11일 뉴욕 맨해튼에 있는 '맨해튼 몰'에 조성된 오징어 게임 체험 테마파크에서 독일에서 온 일가족이 드라마에 나오는 인형 '영희'를 보며 사진을 찍고 있다./오로라 특파원
기자가 2009년 미국 워싱턴DC에서 유학했을 당시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중국에서 왔느냐’는 말이었다. 그때만 해도 현지 사람들은 동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 모두를 중국 사람이라 짐작했고, 아니라 하면 ‘혹시 일본인이냐’라는 말이 돌아왔다. 씁쓸함을 삼키며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상대방은 순진한 얼굴로 “남쪽? 북쪽?”을 물었다. 2009년은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와 소녀시대의 ‘Gee’가 아시아 음반 시장을 강타하고, 드라마 ‘선덕여왕’ ‘아이리스’같은 대작이 해외 수출로 큰 성과를 낸 해였다. 그런데도 미국인들이 한국하면 떠올리는 것은 한국전쟁과 분단의 이미지가 먼저였던 것이다. 한국은 충분히 멋있는 나라가 됐는데,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어린 마음엔 말 못 할 설움이 쌓여갔다.
무려 15년 전의 일이 문득 떠오른 건 지난 11일.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맨해튼 몰’에 조성된 대형 ‘오징어 게임’ 체험 공간을 취재하면서다. 이날은 마침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첫 한국인 노벨문학상’이라는 음절이 주는 벅차오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오징어 게임의 팬이라며 한국 전통 놀이를 즐기는 외국인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속에서 뜨거운 감동 같은 게 솓구쳤던 것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이 지구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잘 모르던 때가 있었는데, 뉴욕에서, 독일에서, 영국에서 왔다는 사람들은 어쩌다 ‘영희’ ‘딱지’ 같은 한국어를 곧잘 하고 있단 말인가.
격세지감은 이런 것이다. 이젠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나 그 아이돌 그룹 좋아해’ ‘그 드라마 재밌게 봤어’ 같은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되레 이상하게 느껴진다. 한국 작품이 넷플릭스 비영어권 콘텐츠에서 1위를 하는 것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고, 그와 비슷하게 누가 빌보드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얘기도 조금은 진부해졌다. 아카데미 봉준호, 쇼팽 콩쿠르 조성진, 그래머폰 임윤찬….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문화 영역에서 한국인이 트로피를 받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덕분에 오직 국적만으로 ‘쿨한 사람’으로 비치는 사치를 부릴 수 있게 됐구나, 내가.”
최근 이른바 ‘Z세대’라 불리는 젊은 테크 업계 종사자 미국인과 저녁을 할 자리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양식 음식점에는 스테이크, 치킨 알프레도 파스타 같은 음식 사이에 ‘코리안 고추장 치킨윙’을 인기 메뉴로 팔고 있었다. 기자가 그에게 “6·25전쟁이 끝난 지 겨우 70년인데, 요식업에서조차 한국 문화가 인기 트랜드가 되다니 참 신기하다”고 얘기를 꺼내자, 그 친구는 “정말? 나한테 한국은 그냥 원래부터 힙한 나라였는데!”라고 답했다. 한국의 음악, 영화, 심지어 음식까지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접해온 이 세대의 외국인들에게 나는 더 이상 내 나라를 설명할 필요가 없겠구나. 이런 확신이 드는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우리는 지금 일종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실리콘밸리=오로라 특파원, 조선일보(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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