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간 실격']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이 남긴 유산]
소설 '인간 실격'
나는 1948년 6월 19일 도쿄 서점가를 서성인다. 다음 달 25일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이 출간돼 진열될 그 거리를. 오늘은 다자이에게 특별한 날이다. 그의 생일이자 그의 시신이 다마가와 상수로(玉川上水)에서 발견된 날이니까. 그가 내연녀와 함께 물속으로 몸을 던진 건 6월 13일이었다. 1909년생인 그는 군국주의 일본 제국이 망하고 연합군 점령 하에서 3년을 더 사는데, 이게 그의 전성기이긴 하나 죽음 ‘직후부터가’ 진짜 전성기다. 신조사(新潮社) 문고판 초판 ‘인간 실격’이 600만부 이상 팔렸다니까. 전쟁으로 패망해 자존감이 바닥난 사회 분위기가 저 어두운 소설이 메가히트하는 데 일조했겠지만, 일본 고유의 탐미주의와도 연관이 있다.
일본 근대소설의 한 형식인 ‘사소설(私小說)’은 자신의 삶과 사회를 폭로한다. 내용적으로는 사소설의 요소가 다분한 ‘인간 실격’은 ‘인간’이라는 것의 허무를 폭로한다. 주인공 오오바 요조는 병약하고 예민하며 극단적 내향인이다. 이런 그가 선택한 자기방어라는 게 익살, 연극하기, 일탈, 자학, 방황에 미달하는 ‘표류’ 같은 것이다. 요컨대 요조는 자신의 ‘캐릭터(character)’ 때문에 망한다. 이게 이 소설이 현대소설로서 훌륭한 점이다. 자신의 캐릭터 때문에 잘되거나 망하는 건 ‘현대성(modernity)’의 중요한 요소다. 개인이거나 국가이거나 제 캐릭터를 온전히 파악해 장점은 조정(調整)하고 단점은 제거하는 게 성장과 성숙함, 곧 ‘살길’이다.
나는 다자이의 작품들 속 문장 가운데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보다는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라는 대목이 더 좋다. 그리고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제가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그것뿐입니다” 하는 고백에 공감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들이 쓰라린 달콤함처럼 아름다운 건, 그게 인간의 외로운 일면이고 평소 우리가 감추고 살아가는 허무한 속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응준 시인·소설가, 조선일보(2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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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의 죽음이 남긴 유산
1970년 11월 25일 도쿄 이치가야 육상자위대 주둔지에서 당대 인기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할복으로 생을 마감하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 당일 총감실 발코니에 서서 사자후를 토하는 그의 모습이 TV로 생중계되었다. “일본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와 문화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지금 자위대가 일어서지 않으면 헌법 개정은 이룰 수 없다. 제군(諸君)은 무사다. 무사라면 자신을 부정하는 헌법을 어째서 지키려 하는가?”
간부들에게 칼을 휘두르고 인질극을 벌이는 자가 늘어놓는 황당한 일장 훈계에 자위대원들의 야유가 터져 나오자 미시마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제군 중에 나와 같이 행동에 나설 사람은 없는가? 그러고도 무사인가? 이것으로 자위대에 대한 나의 꿈은 사라졌다.” 연설을 중단하듯 마치고 총감실로 돌아온 그는 할복을 감행한다. 장절(壯絶)한 죽음으로 자신의 충정(衷情)을 호소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증언에 따르면 장절과는 거리가 먼 고통스럽고 끔찍한 최후였다.
그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광기 어린 우거(愚擧)로 비판하는 시각도 있고, 무사도의 화신으로 치켜세워 미화하는 일각의 분위기도 있다. 일본 내의 복잡한 심경과는 별개로, 그 주장의 과격함과 방법의 엽기성은 어떠한 의미로건 일본이라는 나라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충격적 사건으로 역사에 박제되었다.
헌법 개정을 위해 자위대가 궐기해야 한다는 발상은 현대 민주국가 이념과 양립할 수 없는 시대착오적 망상에 불과하다. 그런 식으로 헌법을 바꾸는 나라를 정상적인 국가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의 죽음을 우국(憂國)의 혼이 담긴 거사로 포장하고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어 그의 존재는 지금도 망령처럼 일본 사회를 떠돌고 있다. 한 사람의 그릇된 신념과 소영웅주의가 한 나라의 트라우마가 된 사례라 할 것이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조선일보(25-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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