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 매력의 도시.. 인도 뭄바이 여행
꽃향기 가득한 골목, 비린내 진동하는 부두… 발리우드 영화가 일상인 '감각의 제국'
인도는 거대한 코끼리다. 아무리 여러 번 다녀와도 코나 몸통, 다리나 꼬리만 만질 뿐 전체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인도를 체험하기 가장 알맞은 도시를 꼽으라면 단연 뭄바이(Mumbai)가 떠오른다.
1200만 명 넘게 거주하는 인도 최대 도시. 뭄바이는 ‘인도의 뉴욕’이라 불리는 경제 수도이자 인도 영화 산업 발리우드의 본고장인 ‘꿈의 도시’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억만장자가 사는 동시에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배경인 세계 최대 슬럼가 다라비(Dharavi)가 있는 메가시티. 수많은 민족과 언어, 종교, 문화, 전통, 맛, 감각이 공존하는 인도의 역설적 매력이 농축된 장소다.
◇지참금으로 영국에 넘겨진 ‘봉베잉’
뭄바이는 인도 서쪽 아라비아해를 끼고 있는 항구 도시다. 원주민 콜리족 수호신을 위한 신전 ‘뭄바(Mumba)’와 콜리족과 뭄바이가 있는 마하라슈트라주(州)의 공식어인 마라티어로 어머니를 뜻하는 ‘아이’가 합쳐져 뭄바이가 됐다고 전해진다.
바스쿠 다 가마가 1498년 개척한 항로를 따라 인도로 진출한 포르투갈은 인도 북서부 구자라트 술탄 바하두르 샤에게 일곱 섬으로 이뤄진 뭄바이 군도를 1534년 할양받았다. 동서로 길게 이어진 만으로 보호받는 천혜의 항구인 뭄바이를 그들은 ‘봉베잉(Bombaim)’이라 불렀다. ‘좋은 만(灣)’이라는 뜻이다.
포르투갈은 1661년 영국과 혼인 동맹을 체결했다. 영국왕 찰스 2세가 포르투갈 카타리나 공주와 결혼했다. 공주는 지참금으로 봉베잉을 영국에 들고 갔다. 동인도회사는 찰스 2세에게 매년 10파운드를 내는 조건으로 뭄바이 군도를 임차했다. 영국인들은 봉베잉을 영국식으로 ‘봄베이(Bombay)’라고 바꿔 불렀다. 인도 정부는 1995년 도시 이름을 봄베이에서 뭄바이로 공식 변경했다.
뭄바이 출신 건축가 니킬 마하슈르(Mahashur)씨는 “뭄바이가 오늘날과 같은 거대한 국제도시가 된 건 19세기 후반”이라고 했다. 마하슈르씨는 건축물을 둘러보며 뭄바이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는 ‘워키텍처 투어(Walkitecture Tour)’를 진행한다.
“1861년 미국 남북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미국산 면화 수입이 막히자 유럽은 인도로 눈길을 돌렸어요. 마침 수에즈 운하가 1869년 개통하며 인도와 유럽을 잇는 바닷길이 짧아졌죠. 뭄바이는 인도 면화 수출항으로 번성하기 시작했어요. 도시로 돈이 쏟아져 들어왔고, 부를 축적한 이들이 엄청나게 많아졌죠.”
신흥 부자들은 건축으로 눈을 돌렸다. 뭄바이의 명소이자 인도 최고급 호텔인 타지마할 팰리스(Taj Mahal Palace)가 대표적이다. 인도 최대 재벌 타타그룹 창업주 잠셋지 타타(1839~1904년)가 지었다.
인도 최대 재벌 타타그룹 창업주 잠셋지 타타가 지은 '타지마할 팰리스 호텔'. /김성윤 기자
“잠셋지 타타가 당시 특급 호텔 왓슨스에서 인도인이란 이유로 문전박대당한 뒤 막대한 재산을 쏟아부어 더 화려한 호텔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호사가들이 지어낸 ‘가짜 뉴스’라고 봅니다. 기업가로 명망 높던 타타를 내쫓았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요. 세계적 수준의 호텔이 인도에도 있음을 보여주겠다는 원대한 꿈에서 비롯됐다는 근거가 속속 발견되고 있어요.”
타지마할 호텔은 타타가 별세하기 1년 전인 1903년 문을 열었다. 본관 건물에 얹혀진 대형 붉은색 돔을 가리키며 마하슈르씨가 말했다. “자세히 보면 인도 건축과 무굴제국을 통해 들어온 이슬람 건축, 영국 빅토리아·고딕 등 유럽 건축이 절묘하게 섞여 있습니다. 이러한 건축 양식을 ‘인도-사라센 건축’이라고 불러요.”
타지마할 바로 앞 부두에 세워진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Gateway of India)도 대표적 인도-사라센 양식 건물이다. 높이 26m, 폭 15m의 거대한 개선문 형태. 인도 왕이기도 했던 영국 조지 5세가 메리 왕비와 함께 1911년 인도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식민지 정부가 지었다. 영국이 식민 통치를 끝내고 1948년 인도에서 군대를 철수할 때 마지막 병력인 서머싯 경보병 제1대대가 이 문을 통과해 해군 함정에 올랐다고 한다.
뭄바이 대표 명소이자 대표적 인도-사라센 양식 건물인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 /인도정부관광청
차트라파티 시바지 터미널(CST)도 대표적 인도-사라센 건물로 볼 만하다. 옛 이름은 ‘빅토리아 터미널’. 빅토리아 여왕 즉위 50주년을 기념해 만들었다. 뭄바이 주 기차역으로 하루 종일 어마어마한 인파가 드나든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도 등재됐다.
◇감각 과부하-다다르, 사순, 사비아사치
오전 7시, 다다르 꽃시장(Dadar Flower Market)은 총천연색이었다. 꽃 가게와 노점상이 좁은 길을 따라 끝도 없이 늘어섰다. 빨강·하양·노랑·분홍·주황색 꽃들이 뿜어내는 꽃 향기가 진동했다. 외식 기업 ‘푸드 매터스 그룹’의 가우리 데비다얄(Devidayal) 대표는 “인파가 줄어든 게 이 정도”라며 “다다르 꽃시장의 ‘진수’를 체험하려면 새벽 5시에 와야 한다”며 웃었다.
뭄바이 최대 꽃시장 '다다르 꽃시장'. / 다다르 꽃시장에서는 종교와 민족, 행사에 맞는 다양한 꽃을 판다. /김성윤 기자
다다르는 뭄바이 최대 꽃시장이다. 엄청난 양의 꽃이 매일 거래된다. 이곳을 안내한 데비다얄 대표는 “꽃은 인도 예식·축제·의식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이라고 했다. “종교마다 신마다 바치는 꽃이나 방식이 다릅니다. 예를 들면 붉은 장미는 무슬림, 노란 마리골드는 힌디의 상징이죠.”
사순 부두(Sassoon Docks)에서는 정반대 방식으로 감각 과부하를 겪었다. 아침 7시, 부두에 들어서기 전부터 생선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부두 앞바다는 들어오고 나가는 배들로, 부두 위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부 남편과 아들들이 밤새 잡아온 생선을 아침에 아내와 딸들이 팔았다. 어디선가 중독성 강한 리듬의 인도 팝송이 흘러나오자 생선을 옮기고 팔던 이들이 즉흥으로 춤을 췄다. 발리우드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1875년 건설된 '사순 부두'. /김성윤 기자
이곳은 1875년 건설된 뭄바이에서 가장 오래된 부두이자 가장 큰 어시장이다. 19세기 인도 면화가 이 부두를 거쳐 유럽으로 수출됐다. 뭄바이 유대인 공동체 지도자인 앨버트 압둘라 데이비드 사순이 영국 식민 정부의 의뢰를 받아 만들었다.
사순은 바그다디 유대인(Bagdadi Jew). 18세기 무굴제국 시절 바그다드 등 중동에서 인도로 이주·정착한 유대인 집단을 바그다디라 부른다. 19세기 대영제국이 통치한 뭄바이·싱가포르·홍콩·상하이 등 아시아 무역 거점에서 번영했다.
뭄바이를 대표하는 식당 중 하나인 ‘더 테이블’ 윌 아가자니안 셰프는 “봄베이 덕을 구하러 왔다”고 했다. 수산시장에서 오리(duck)를 구한다고?
“봄베이 덕은 오리가 아니에요(웃음). 매퉁잇과(lizardfish) 생선이죠. 과거 이 생선을 말려 건어물로 만들었고, 우편 철도(mail train)에 실어 다른 지역으로 보냈어요. 우편이 힌디어로 ‘닥(daak)’이에요. 이걸 영국인들이 잘 못 알아듣고 ‘봄베이 덕’이라 부른 것이 이름으로 굳어졌습니다. 이름은 희한하지만 살이 희고 결이 보드라워서 튀겨 먹으면 특히 맛나요.”
부두에서 나온 아가자니안 셰프가 “살 수는 없겠지만 사비아사치(Sabyasachi)는 꼭 가보라”고 했다. “아이쇼핑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거예요. 패션 매장이 아니라 박물관 같다니까요!”
인도 패션 브랜드 '사비아사치' 매장. /김성윤 기자
문화·예술 거리로 이름난 칼라고다(Kala Ghoda) 지역에 있는 사비아사치 매장 문을 열자 놀라운 세상이 펼쳐졌다. 복도를 따라 명·청대 중국 청화백자가 늘어섰고, 바닥에는 페르시아 카펫이 깔려 있었다. 판매하는 옷에 더 놀랐다. 비단에 금·은, 진주, 보석으로 수놓은 예복과 옷감이 가득했다. 과거 왕족들이 입었을 법한, 고급스러움과 호화로움의 극치.
사비아사치 무르케지는 인도 전통 의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패션 디자이너. 발리우드 여배우들이 즐겨 입는 브랜드다. 인도 여성들은 사비아사치를 입고 결혼하는 게 꿈이라고. 사비아사치 레헨가(전통 인도 여성복) 가격은 평균 1만달러(약 1350만원)이며 2만달러(약 2700만원) 이상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놀랍도록 다양한 음식 스펙트럼
뭄바이가 채식의 나라 인도에 있다고 고기를 먹을 수 없는 건 아니다. 뭄바이에 살고 있는 다양한 종교·민족·계층의 취향과 소득 수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부터 최신 커피숍까지 놀랍도록 다양한 음식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더테이블(The Table)은 뭄바이를 대표하는 파인다이닝(고급) 레스토랑이다. 따뜻한 브리오슈, 메밀 그리시니, 가볍게 양념해 구운 정어리, 고등어 타르타르, 먹물 소스 아기 오징어, 타이거 새우 숯불구이, 소 골수 오븐 구이, 양고기 구이 등 세계 각국 음식을 자유롭게 가져다가 맛있게 업그레이드했다. 주말 브런치 메뉴도 인기다.
매그 스트리트(Mag St)는 젊은 여성들로 북적이는 브런치 카페. 콜라바(Colaba) 본점과 로워 파렐(Lower Parel)에 이어 세 번째 지점을 요즘 뭄바이에서 가장 힙한 동네로 꼽히는 반드라(Bandra)에 냈다. 세련된 분위기에 사워도우 피자, 트러플 감자튀김, 랍스터 롤, 스무디, 칵테일 등 MZ세대가 좋아할 요소를 두루 갖췄다. 가게 직원은 “‘코리안 크림치즈 갈릭 번’이 아주 인기”라고 했다.
브런치 레스토랑 '매그 스트리트' 인기 메뉴 '코리안 크림치즈 갈릭 번'. /김성윤 기자
뭄바이에 왔으면 구자라티 탈리(Gujarati Thali)를 맛봐야 한다. 구자라트 지방 전통 식사로, 다양한 커리와 빵, 쌀밥에 디저트까지 나온다. ‘남도식 백반의 인도 버전’이라면 이해가 쉽다.
1945년 창업한 슈리 테이커 보자날레이(Shree Thaker Bhojanalay)는 최고의 구자라티 탈리 맛집으로 꼽힌다. 복잡한 상업지구인 칼바데비(Kalbadevi) 좁은 골목 2층에 숨어 있다. 테이블에 앉으니 커다란 스테인리스 쟁반이 앞에 놓이고, 직원들이 각종 커리·빵·밥을 차례대로 쟁반이 가득 담아준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커리가 한국인 입에도 잘 맞을 듯하다. 무한 리필.
브리타니아&컴퍼니(Britannia&Co)는 뭄바이 사람들이 어린 시절 추억의 맛으로 꼽는 노포. 1923년 파르시(Parsi) 출신 코이누르 가문이 문을 열었다. 파르시 데어리 팜(Parsi Dairy Farm)도 파르시 출신이 운영하는 유서 깊은 유제품·디저트 가게다.
1923년 창업한 '파르시 데어리 팜'. / 뭄바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길거리 음식 중 하나인 '바다파브'. /김성윤 기자
파르시는 ‘페르시아인’이란 뜻으로, 7세기 페르시아(현 이란)를 정복한 무슬림의 박해를 피해 조로아스터 교도들이 인도로 피란 왔다. 자신들을 받아달라는 파르시 피란민들에게 구자라트 왕은 넘칠 듯 가득 따른 우유 잔을 내밀었다. ‘받아줄 땅이 없다’는 뜻. 파르시 지도자가 설탕을 한 숟가락 가득 우유에 넣고 녹였다. “우리를 받아주셔도 우유가 넘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달아질 것입니다.” 탄복한 왕이 이들을 받아줬다.
상대적으로 옅은 피부색과 서구적 이목구비를 가진 파르시들은 대영제국 하급 관료로 활약했다. 타타그룹 타타 가문 등 상업에서 성공을 거둔 회사도 많다. 록 밴드 ‘퀸’의 프레디 머큐리도 파르시 출신이다.
길거리 간식은 어느 종교나 민족에서도 금기시하지 않는 채식이 압도적이다. 바다파브(vada pav)는 크로켓처럼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튀긴 감자를 처트니(양념)·구운 고추·마늘과 함께 부드러운 번(빵)에 끼운 샌드위치의 일종. 파니푸리(pani puri)는 속이 빈 탁구공만 한 튀김 빵을 병아리콩, 감자 따위로 채운다. 매운맛과 단맛 두 종류가 있다. 파브바지(pav bhaji)는 채소 커리와 토마토 소스에 번이 곁들여져 나온다.
카카오빈부터 최종 초콜릿 제품까지 모든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서브코 카카오 밀'. /김성윤 기자
포트 지역에 올해 문 연 난단커피(Nandan Coffee)는 마리왈라 가문이 소유한 남인도 타밀나두주(州) 해발 1370m 코다이카날 고산지대 농장에서 직접 재배하고 로스팅한 원두로 뽑은 커피를 세련되고 쾌적한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제과류와 함께 맛볼 수 있다. 커피 전문업체 서브코(Subco)가 운영하는 ‘카카오 밀(Cacao Mill)’에서는 카카오빈부터 최종 초콜릿 제품까지 모든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대중 초콜릿 브랜드를 수제로 고급화한 제품들은 이름도 재밌다. ‘SREKAENS’는 ‘스니커즈(Sneakers)’, ‘XIWT’는 ‘트윅스(Twix)’의 철자를 뒤집었다.
-뭄바이=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조선일보(25-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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