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世界-人文地理]

[료칸 오카미] "손님 한 분 한 분 마음으로 모시는 곳" 호라이 료칸의 오카미를 만나다..

뚝섬 2008. 12. 4. 19:06

일본 여관 탐험
호라이 료칸의 오카미를 만나다


7
년에 걸쳐 건물 복원 아타미 최고 료칸으로 …
방마다 식사 따로 대접 잠잘 땐 이불도 깔아줘

 

한국에서 여관(旅館)은 남루한 숙박시설을 연상시킨다. 일본에서 '료칸'은 호텔보다 격이 높은 고급 숙소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여기에도 일본 특유의 '정신'이 큰 역할을 했다. 일본 온천 휴양지 아타미(熱海)에서 최고 료칸으로 인정받고 있는 '호라이(蓬萊)'의 유명 오카미(女將)를 만났다. 오카미는 료칸의 여주인이다. 소설 '실락원'으로 유명한 와타나베 준이치(渡邊淳一)는 그녀를 "색기(色氣)가 있는 오카미"라고 표현했다. 무례한 표현 같지만 세월을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나이를 묻는 물음에 "숙박을 하면 가르쳐주겠다"며 답을 피했지만 "1956년 스무 살 나이에 '오카미'가 됐다"는 말에서 줄잡아 일흔을 넘겼음을 알았다.

 

-최고 료칸인 '호라이'의 여주인 후루타니 세이유가 봄마중을 나온 듯 호라이 앞에 섰다.

 

이름 후루타니 세이유(古谷靑游). 철거 직전에 있던 일본 문화재급 건물을 개인 돈 수억엔을 들여 료칸 밑에 옮겨놓은 뒤 7년에 걸쳐 원형 그대로 복원해 유명해진 지독한 여자다. 센다이(仙臺)에서 아타미 료칸 집으로 출가한 지 50. 대담한 운영으로 '호라이'를 일본 최고 반열에 올렸다. 일본은 이런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일본 료칸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존재가 '오카미(女將)'입니다.(오카미는 한자의 뜻처럼 종업원을 부리는 여자 대장을 말한다. 숙박, 식사 등 료칸 운영을 관할한다. 손님이 료칸 현관에 들어서면 두 손을 모으고 단정하게 절하는 대표도 오카미다.)

 

"처음 여기 왔을 때 양친(시부모)이 계셨지요. 그때도 어머니가 앞에서, 아버지는 뒤에서 일했습니다. 주인(남편) (창업에서) 5대째입니다. 며느리로서 5대 오카미가 됐지요. 어머니에게 여러 가지 배웠습니다. 손님을 접대하는 것, 식사를 만드는 것.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중요하지요. 음식만이 아니라 식기의 구색까지. 손님 한 분, 한 분의 식사 습관까지 생각해 각자에게 맞는 음식을 내야 합니다. 그런 세심한 배려에는 역시 여자가 아니면 살필 수 없는 공간이 많지 않나 생각합니다."

 

―남편이 안 보입니다.

 

"아직 건강합니다.(웃음) 뒤에서 확실히 하고 있지요. 료칸은 접대이자, 경영이니까. 경영 부분을 남편이 합니다. 절반, 절반을 분담하지요."

 

―후계자는?

 

"며느리입니다. 그런데 아직(아들이 결혼을 못 했습니다). 지금 시대가 다르니까, 너무 힘든 일이니까요. 새벽 5시에 일어나 음식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손님을 살피다 밤 11시에 잠드는 생활을 반복하지요. (극존칭에 가까운) 언어 습관도 젊은 시절부터 몸에 익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힘들기만 한가요?

 

"손님이 '와서 좋았어요' 하고 즐겁게 돌아가시는 걸 보는, 우리들만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행복한 일이지요. 멀리서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오셨을 때 현관에서 처음 얼굴을 접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20시간 동안(체크인에서 체크아웃까지)의 이야기이지요. 그동안 손님이 얼마나 행복하게 지내는가가 가장 중요한 업무입니다. 아타미는 일본 최고의 자연입니다.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하고. 자연이 50% (손님을) 만족시켜 주니까 우리가 나머지 50%를 해야지요. 100점 만점을 만드는 일입니다."

 

소설가 와타나베는 아타미 입구에 위치한 료칸 '호라이' "일본에서 봄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어떻게?

 

"료칸은 개실(個室) 단위입니다. 한방, 한방에 식사를 드립니다. 요리가 차가워지지 않게 몇 번에 걸쳐서 가져다 드리지요. 따뜻한 요리를 다 드시면 다시 따뜻한 요리를 가져다 드리고.(료칸은 '가이세키·懷石'라고 하는 일본 전통 코스 요리를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비싸다) 저녁 식단의 경우 각 방에 요리를 내는 일을 7번 반복합니다. 주무실 때도 그냥 침대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방에 이불을 펴드리지요. 이것이 일본적인 마음 씀씀이가 아닌가 합니다. 가족 사이에도 마찬가지이지요."

 

―요즘 료칸도 변한 곳이 있습니다. 한곳에 몰아넣고 저녁을 먹으라고 하고.

 

"여러 사정이 있지요. 손님들 중에는 '조추(女中·료칸 여종업원)'가 몇 번씩 방에 들어와서 '식사 하시겠어요?' 하고 물으면 귀찮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노동 문제도 있지요. '그런데(세심한 마음을 쓰는 데)까지 일손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료칸도 많이 생겼으니까요. 요즘 대형 료칸 중에는 뷔페를 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곳은 료칸 맛이 안 나지요.

 

"역시 일본은 다다미(·왕골로 만든 바닥재) 문화입니다. 낡은 것에 고집할 필요는 없지만 전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다미방에 정좌(正坐)를 하고 식사하는 것, 가족에게도 예의를 차리는 것. 한국 분들이 윗분들에게 확실히 예의를 차리듯이 일본도 예전에 그랬습니다. 이런 문화를 조금이라도 이어가 '일본은 (원래) 이런 곳이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료칸이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하지요."

 

―너무 비쌉니다. 음식에 집착해서 그런 듯합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뷔페 료칸'도 있습니다. 아타미에도 그런 곳이 많습니다. 손님이 가격에 따라 선택하시면 됩니다."(너무 비싸다는 말에 좀 화난 눈치였다.)

 

-7년에 걸쳐 복원한 '호라이' 료칸의 입구

 

―좋은 뜻으로 말씀드린 건데, 일본 식()문화에 대해.

 

"물건을 만들 때나, 음식을 만들 때나, 일본은 '()를 넣는다'는 일관된 흐름이 있지요. 마음을 넣는다고 할까. 우리도 식단을 짤 때 지금 바다에서 무엇이 잡힐까, 지금 가장 신선한 야채는 무엇일까 늘 생각하고 고민합니다. 결국 계절이 식단을 짜는 것이지요. 일본에선 '?(·생선, 야채 등이 가장 맛있는 시기)의 맛'이라고 하는데, 이게 바로 '고치소'입니다."

 

'고치소(御馳走)' '음식 대접'을 뜻하는 일본 말이다. 달릴 치(), 달릴 주(), 분주하게 달리면서 정성을 기울이는 모습을 뜻한다. 대접을 받은 사람도 "고치소사마()"라고 답한다. 너의 정성에 감사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한국어로 해석하기 힘든 말입니다.

 

"마음이지요. 일본의 원점입니다. 마음을 넣지 않으면 요리 역시 죽어버립니다."

 

그녀가 유명해진 것은 1987년 철거 직전의 문화재급 건물을 아타미로 통째로 이축(移築)한 대담함 때문이었다. 에도(江戶)시대 일본을 지배한 도쿠가와(德川) 가문이 일본 최초의 사설(私設) 도서관으로 도쿄에 건립한 '난키(南葵)문고'의 양식 건축물이었다.

 

"관동대지진 후 난키문고가 도쿄대로 이관되고 도쿠가와 가문이 별장으로 사용하던 것을 전후 다른 분이 양도받아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가족이 줄면서 큰 집을 유지할 수 없게 됐지요. 도쿄의 아는 분이 건물을 부순다고 알려주더군요. '안에 골동품이 있을 테니까 보러 가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골동품보다 건물이 맘에 들었습니다. 건물이 불쌍했지요. 건물이 나를 끌어 잡아당긴 것이 아닌가 해요. 2시간 만에 건물을 옛날 도서관 모습 그대로 살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복원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7년이 걸렸어요. 대학 선생님을 모셔서 처음 도서관 형태로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습니다. 최후의 쇼군(將軍·도쿠가와 요시노부) '南葵文庫'라고 쓴 편액(扁額·문이나 실내에 거는 긴 액자) (소장한) 도쿄대에 부탁해 작은 모형으로 만들고,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골동품을 수집했습니다. 정말로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복원된 건물은 지금 손님의 휴식 공간(1)과 레스토랑(2)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카미는 이 건물 옆에 건물을 연결해 양식 호텔도 운영 중이다.

 

*오카미: 료칸의 여주인으로 숙박, 식사 등 료칸 운영을 관찰한다.

 

-아타미(熱海), 선우정 특파원, 조선닷컴(08-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