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엔저, 슬픈 엔저]
[EU 이어 日도 마이너스 금리]
나쁜 엔저, 슬픈 엔저
일본에서 엔저 앞에 ‘와루이’(나쁜)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은 건 지난해 봄이다. 엔화 가치가 이른바 ‘구로다 방어선’이라는 달러당 125엔을 뚫고 내려가면서다. 통상 엔화가 약세일 때 수출 기업의 실적 호조를 앞세워 경기를 회복시켰는데, 이런 경로가 먹히지 않는다는 거였다. 엔저의 긍정적 효과보다 수입가격 상승이 쏘아올린 물가 급등, 무역수지 악화 등 악영향이 크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일본 재무상도 “그만큼 임금이 오르지 않으니 나쁜 엔저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최근 국제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달러당 150엔을 넘어 152엔 수준까지 근접했다. 152엔마저 뚫는다면 엔화 가치는 버블 경제 붕괴 초반이던 1990년 이후 3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 된다. 엔화는 1985년 플라자 합의 때 ‘엔고’를 조건으로 세계 3대 통화가 됐지만, 버블 붕괴와 함께 엔고가 디플레이션을 몰고 오면서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에 진입했다.
▷30년여 만에 맞은 초(超)엔저는 팬데믹 이후 전 세계가 금리를 끌어올리는 동안에도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한 영향이 크다. 특히 10년간 아베노믹스 집행관으로 있던 ‘엔저론자’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올 4월 떠나고 신임 총재가 들어선 뒤에도 무제한 돈 풀기가 계속되면서 엔저의 질주는 멈추지 않고 있다. 그사이 미국은 금리를 더 올려 금리가 낮은 엔화를 팔고 금리가 높은 달러를 사는 ‘엔캐리’ 자금이 엔저를 부추기고 있다.
▷엔저 특수에 힘입어 일본 수출 기업과 관광 산업은 역대급 호황을 맞았다. 엔화를 헐값에 사서 일본 주식을 사려는 외국인 자금이 몰리면서 증시도 훨훨 날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일본 기업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긴 탓에 수출 기업의 실적 개선이 임금 인상과 가계소득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는 끊겼다. 오히려 엔저로 엔화 구매력이 바닥으로 추락해 일본 국민은 더 가난해졌다.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물가 상승에 100엔숍이 사라졌고, 관광객이 넘치는 대로변 쇼핑가와 달리 뒷골목 상점은 눈물의 폐업을 하고 있다.
▷이를 두고 나쁜 엔저를 넘어선 ‘가나시이’(슬픈) 엔저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런데도 일본 정부는 디플레이션에서 확실히 탈출하기 전까지 엔저에 브레이크를 밟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 경합하는 한국 주력 제품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과거 원-엔 환율이 ‘1 대 10’ 비율보다 하락하면 한국 경제가 감기에 걸렸는데, 지금 100엔당 860원대까지 낮아졌다. 슈퍼 엔저 장기화의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우리 경제 구조를 고도화하고 수출 경쟁력을 더 높여야 할 때다.
-정임수 논설위원, 동아일보(2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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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이어 日도 마이너스 금리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29일 사상 처음으로 정책금리를 마이너스 0.1%로 내리기로 했다. 다음 달 16일부터 일본의 시중은행들이 중앙은행에 돈을 맡길 때 이자 대신 '돈 보관료'를 받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은행이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손해이므로 시중에 돈을 풀도록 압박하는 효과가 있다. 3년간 무제한 돈 풀기에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마이너스 금리라는 극약처방까지 동원한 것이다. 2년 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유럽 중앙은행도 현재 마이너스 0.3%인 정책금리를 더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과 유럽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엔화와 유로화 가치를 더 떨어뜨릴 것이다. 이들 국가의 수출 가격 경쟁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들이 살포한 돈은 중·장기적으로 세계 금융시장에서 변동성을 높일 수 있다. 모두가 우리에게는 달가운 소식이 아니다. 3년 전 일본이 본격적인 돈 풀기에 나설 때만 해도 우리 정부는 엔저(円低)에 따른 수출경쟁력 하락을 걱정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 경제의 둔화와 미국의 금리 인상이라는 불안 요인까지 겹쳐 있다. 중국의 경제 둔화로 인해 우리를 포함한 신흥국 금융시장에서 언제든 급격한 외국인 자금유출을 가져올 수 있다. 이미 외국인들은 작년 12월 초부터 38거래일 연속 국내 주식을 팔아치웠고 5조원이 넘는 돈이 국내에서 빠졌다. 만약 미국의 금리 인상이 지속되면 국내에서 외국인 자금이탈이 빨라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 경제는 중국의 경기 하강, 유럽·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미국의 금리 인상이라는 삼각 파도에 휩싸였다. 방향이 다른 세 가지 파도에 맞서 거시경제와 통화정책의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유일호 경제팀은 이번 삼각 파도를 헤쳐갈 준비가 돼 있다는 신뢰도 시장에 심어주어야 한다. 우선 달러 유출입과 외환보유액부터 철저히 챙기고 유사시 환율과 외화자금 시장 급변에 대처할 비상계획도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앞으로 거시경제 운용에서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경각심부터 가져야 한다.
-조선일보(1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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