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저성장 수렁에서 나라를 구해낼 능력이 없다면 재정 지출 한푼이라도 아끼는 게 그나마 할 수 있는 애국
성장의 바퀴 멈추는데 정치꾼만 즐길 수는 없어
아무리 기다려도 더불어민주당은
앞을 멀리 내다보는 영악한 포석을 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가 통과시켜 달라는 법안을 보면 경제를 회생시키기엔
턱없이 모자란 내용을 담고 있다. 모든 법안이 정부 안대로 통과된다 해도 저성장 국면은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성장률은 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을 비롯한 세계경제 상황이 워낙 좋지 않기 때문이다.
판세가 이렇다면 야당은 청와대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승부수를 던질 만하다. 원하는
대로 다 해주고서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경제 침체의 모든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당에 돌아간다.
하지만 더민주는 법안 통과를 악착같이 저지하며 스스로 그 책임을 뒤집어쓰고 있다. '야당이
뒷다리를 걸어 경제가 풀리지 않는다.' 더민주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깔아놓은 덫에 걸려 허둥대고 있는
꼴이다. 한 수 앞을 못 보는 바보 전략이다.
더민주는 정말 센스도 부족한 정당이다. 경제 민주화를 상징하는 정치인 김종인씨에게 총선
총책을 맡겼다. 그러나 요즘 우리 경제는 경제 민주화에 환호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성장률은 뚝 떨어졌다. 대기업들 실적도 추락하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기업마다 수십 명, 수백 명씩 직장을 떠났다. 성장을 걱정하는 시기에 대기업을 압박하는 전략이 먹혀들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재벌들이 밉상인 것은 총수와 그 가족들의 괴팍한 행각 때문이다. 땅콩 회항 소동부터 혼외자
고백, 형제 간 후계권 전쟁, 요란한 이혼 소송 같은 추문이
이어졌다. 오너 3세, 4세들이
경영에 참여하면서 동물적인 기업가 정신보다는 원초적인 본능과 추악한 욕망이 더 두드러지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이미 마음속에서 오너와 기업을 분할했다. 오너는 밉지만 기업은 나와 내 자식에게
생존의 터전이다. 총수는 감옥에 넣더라도 공장은 돌아가야 한다. 이런
재벌 기업관(觀)은 성장이 하락할수록 훨씬 강해지는 듯하다. 위기가 재벌을 보는 시각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더민주는 이걸 무시하고 반(反)재벌 인사들을 전면에 배치했다. 김종인 비대위위원장 덕분에 당의 지지율 하락세는 멈췄지만 저성장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저성장의 쓴맛을 모르는 건 더민주만은 아니다. 정치권 전체가 저성장이 국민 일상생활에 어떤
쓰라린 상처를 남길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유치원·어린이집
예산을 놓고 중앙정부와 지방 교육청이 다투는 것을 보라.
해마다 학생 숫자는 평균 12만명씩 줄고 있다. 반면에
중앙정부가 전국 교육청에 뿌리는 돈(교부금)은 지난 15년 동안 매년 평균 1조원 이상 늘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학생 수는 주는데 교육청 예산은 늘었다. 국민 세금 부담도 당연히 늘었다. 그런데도 일부 교육청은 돈이 없어
보육비를 못 대겠다고 자빠졌다.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여야는 2012년 총선·대선을 전후로 무상 급식, 무상 보육을 다투어 약속했다. 복지 지출을 크게 늘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학교 통폐합을 별로 하지 않았고, 학생 감소에 맞춰 교사
숫자도 그다지 줄이지 않았다. 그사이 경제는 평균 2%대
저성장에 빠져 세수(稅收)는 불안정해졌다.
이를 무시하고 무턱대고 지출만 줄곧 늘린 결과가 유치원·어린이집 예산 파동이다. 신생아가 줄고 세수가 들쑥날쑥하는 현실을 계속 외면하면 아무리 교육청에 예산 지원을 늘려주어도 보육 예산은
부족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7% 성장을 약속하고서 3% 실적을
내고 물러났다. 목표의 반 토막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성적이다. 박근혜
정부는 평균 4% 성장을 내걸었지만 2%대에서 맴돌고 있다. 내수를 훨씬 키우고, 서비스산업에서 혁명을 일으켰어야 했지만 과거와
똑같이 수출과 제조업에 더 매달렸다. 내부 유보금이 넘치는 대기업들의 투자를 끌어들이는 데도 실패했다.
현존하는 정치 세력의 능력으로는 성장의 벽을 돌파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더민주는
경기 흐름을 되돌려 놓겠다는 말도 없이 경제 민주화를 내걸었다. 국민의당은 개념을 알 수 없는 균형성장론을
들고 나왔다. 누구에게 맡겨도 청년들에게 희망의 배당금은 나뉠 것 같지 않다.
경제가 저성장이라면 정치산업은 마이너스 성장에 돌입한 꼴이다. 국회는 혐오 상품을 파는
가게처럼 비아냥의 대상이 되곤 한다. 정치권이 저성장의 수렁에서 나라를 구해낼 능력이 없다면 저성장의
틀에 맞춰 정치를 해야 한다. 재정 지출을 한 푼이라도 아끼는 게 정치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애국(愛國)이다. 성장의
바퀴는 멈추는데 정치꾼들만 흥청망청 즐길 수는 없는 일이다.
-송희영 주필, 조선일보(1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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