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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 전집] ["춘원,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

뚝섬 2024. 1. 31. 10:50

[세계문학 전집]

["춘원,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

 

 

 

세계문학 전집

 

[김도훈의 엑스레이]

 

새해면 다짐을 한다. 매년 다짐은 글을 더 잘 쓰자는 것이다. 매년 실패한다. 글은 외모와 같다. 글솜씨도 어느 정도는 타고난다. 내 얼굴을 김수현처럼 만들 수 없다면 글도 계속 이 모양일 것이다. 참, 여기서 김수현은 배우다. 드라마 작가가 아니다. 조선일보 독자 세대의 넓은 폭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한 번 더 강조하는 것이다.

 

어느 새해 어머니는 외판원 꼬드김에 넘어가 양장으로 된 세계문학 전집을 샀다. 그래서 내가 남들보다 빨리 세계문학을 읽어낸 영특한 아이가 되었느냐. 그럴 리가. 누구는 십대 시절 읽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인생을 바꿨다고 했다. 신격호 회장이 회사 이름을 여주인공 이름에서 따 ‘롯데’로 지은 건 유명한 이야기다. 연애소설이 한 기업을 만들다니 놀라운 일이다. 역시 될 사람은 따로 있다.

 

나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어내려 노력했다. 예민한 남자가 유부녀에게 빠져 죽는다는 이야기를 이해하기에는 어렸다. 사랑을 알아야 사랑에 죽는 이야기를 납득할 것이 아닌가.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10대 초반에 읽었다는 사람을 존경하는 동시에 의심하는 버릇이 있다. 죄라고는 참고서 살 돈으로 떡볶이 먹은 죄밖에 없는 내가 이해하기에 도스토옙스키는 너무 두꺼웠다.

 

이 글을 읽는 학부모 독자들도 아이를 위해 세계문학 전집을 샀을 것이다. 내 자식은 이해할 거라는, 여러분이 자식일 때도 이해하지 못한 사명을 갖고 샀을 것이다. 그 시절 친구들 책장에도 세계문학 전집은 있었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 특정 챕터만 반들반들해진 채 꽂혀 있었다. 나는 D.H. 로런스만큼 한국 아이들 특정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친 문학을 알지 못한다. 이 칼럼이 나가는 순간 전국 아이들 방에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만 사라질까 걱정이다. 아니다. 어차피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알 건 다 알고 시작한다. 채털리 부인이 할 일도 끝난 것이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조선일보(24-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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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

 

1970년대는 집집이 돌아다니며 전집(全集)을 파는 월부 책장수 전성기였다. 여유가 생긴 중산층이 자식들을 위해 아동용 문학전집이나 위인전기를 호기롭게 사들였다. 진홍색 표지의 50권짜리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이나 15권짜리 한국전기전집, 세계위인전집은 아이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전집이 배달되면 도서관이라도 집에 들인 듯 잔뜩 들떠 책을 펼쳤다. 동화책을 어느 정도 읽어치우자 책 읽기가 시들해졌다.

춘원 이광수를 만난 건 그때였다. 월부 책장수가 성인용 책으로 추천한 첫 책이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10권짜리 삼중당 이광수 전집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에게 '이광수 전집'은 버거웠다. 세로쓰기로 빡빡하게 들어찬 활자에 질렸다. 그래도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다. '무정' '유정' '흙' '사랑' '마의태자'…. 제대로 된 배경지식 없이 만난 이광수 소설은 초등학생이 소화하기엔 무리였다. 이광수는 그렇게 멀어져갔다.

한국문인협회가 얼마전 춘원과 육당 최남선을 기념하는 문학상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가 계획을 접었다. 일부 단체에서 "친일파를 기리는 문학상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며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춘원과 육당은 각각 최초의 근대소설 '무정'과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해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히지만, '친일(親日)'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이광수는 일찍이 문학평론가 김현이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로 꼽을 만큼 한국 문학의 아킬레스건이다.

춘원이 일제 말기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세운 총독부 시책 홍보에 앞장서고, 일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학병(學兵) 지원을 촉구하는 연설에 나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도 있다. 1943년 11월 교토에서 이광수의 학병 권유 연설을 직접 들은 김우전 전(前) 광복회장은 2014년 본지 인터뷰에서 "'당신들이 희생해야 우리 민족이 차별을 안 받고 편하게 살 수 있다. 조선 민족을 위해 전쟁에 나가라'고 했다"며 이광수의 '친일'에서 민족을 위한 '고민'을 봤다고 했다. 이 연설을 듣고 지원 입대했다가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한 독립운동가의 말이니 무게가 가볍지 않다. 원로학자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도 "춘원 소설을 읽으면서 '황국신민(皇國臣民)'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면서 "춘원을 친일 문인으로 매도하는 기사를 대할 때마다 나는 그를 나무랄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한 적 있다. 부분만 보고 전체를 놓치는 편협한 역사 인식을 우려한 것이다.

'춘원 이광수' 하면 '친일파'를 떠올리는 요즘 세대에게 이광수는 잊힌 작가다. 문학도 말고는 '무정' 같은 그의 소설을 찾는 사람도 없다. 이 땅에는 그의 문학과 삶을 온전하게 들여다볼 문학관 하나 제대로 없다. 춘원이 어쩌다 친일의 길에 들어서게 됐는지, 그 과정에 대한 고민과 성찰 없이 욕만 한다고 극일(克日)이 되는 걸까.

최근 개봉한 영화 '밀정'은 친일과 독립운동 사이에서 갈등하는 일제 고위 경찰을 주인공(송강호)으로 내세웠다. 총독부 경무부장이 의열단에 협조한 혐의를 받던 주인공을 다시 회유하는 막바지 장면, 송강호의 흔들리던 눈빛은 압권이었다. 우리 지식사회의 수준은 영화관을 찾은 600만 관객 눈높이보다 빈약한 걸까.

-김기철 문화부장, 조선일보(1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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