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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비결? 그 질문은 틀렸다] [아널드 파머]

뚝섬 2024. 4. 30. 08:44

[우승 비결? 그 질문은 틀렸다] 

[아널드 파머] 

 

 

 

우승 비결? 그 질문은 틀렸다

 

압도적 성적 유지하는 실력자들 어떻게 가능했나 늘 궁금하지만
핵심은 더하기보다 덜어내기… 절제와 단순함에 있을 때가 많다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미국)가 14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에서 합계 11언더파 277타로 우승한 뒤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셰플러는 2022년에 이어 두 번째 마스터스 정상에 올랐다. 2024.04.15/EPA 연합뉴스 

 

세계 최고 수준의 남녀 골프 리그에 초강력 지배자가 각각 등장했다. “비현실적”이라고 선수들은 입을 모은다. PGA 투어 스코티 셰플러는 다섯 대회 중 준우승 한 번 빼고 네 번을 우승했다. LPGA 투어 넬리 코르다는 다섯 대회에 나가 몽땅 우승을 휩쓸었다. 일생에 한 번 우승해도 가문의 영광인데, 나갈 때마다 우승이라니. 게다가 그 기막힌 일이 양쪽에서 동시에 벌어진 것이다.

 

셰플러와 코르다의 경기는 대체로 엄청나게 짜릿하지는 않았다. 진기명기를 선보이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빈틈없이 착실했고 때론 단조로웠다. 실수가 자주 나오지 않고, 나와도 큰 무리 없이 만회했다. 일단 앞서나가면 좀처럼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4시간 넘도록 매번 다른 위치와 상황에서 수십번 스윙하며 집중력과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게 쉬운 일인가. 그 어려운 일을 둘은 너무나 쉬워 보이도록 해냈다.

 

어떻게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가. 질문이 쏟아져도 둘은 “눈앞의 샷에만 집중한다” 같은 밋밋한 답변을 내놓았다. 뻔한 얘기로만 여겼는데, 매주 우승 기록이 쌓여가니 곱씹어보게 됐다. 두 선수가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건 ‘단순함’이었다. “목요일(1라운드)에 일요일(4라운드)을 생각하지 않는다.”(셰플러) “명예의 전당은 한 번도 목표로 삼아본 적이 없다.”(코르다)

 

우수한 선수에서 압도적 선수로 발전하기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코르다의 코치는 “단순함을 더한 것이 전부다. 더 효율적이고 정확해졌다”고 했다. “배를 떠올려 보자. 코르다는 필요 없는 건 무엇이든 배에서 던져 버렸다. 그 배는 지금 순항 중이다.” 코르다나 셰플러나 전에는 타고난 승부욕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코르다는 건강 문제, 셰플러는 퍼팅 난조를 겪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과도한 생각과 목표를 덜어내고 에너지를 집중하는 법을 터득한 듯하다. 코르다는 캐디와 코치, 트레이너, 에이전트, 가족 등이 각자 역할을 하는 시스템 안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해왔다. “매일 루틴을 지키는 것이 정신 건강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소문난 연습 벌레 셰플러 역시 “인내심을 갖고 멀리 내다보지 않는 방식으로 모든 대회를 시작한다”고 했다. 그가 마스터스 우승 후 그린 재킷 차림으로 동네 작은 바를 찾아 단 20분간 머물렀던 사실은 화제가 됐다. 코르다 역시 동료와 햄버거, 감자튀김을 먹으며 우승을 잠시 자축했을 뿐이다.

 

스포츠 기자들은 ‘잘하는 사람(팀) 왜 잘하나, 못하는 사람(팀) 왜 못하나’ 분석을 주로 한다. 지금껏 수많은 선수와 감독에게 승리 비결을 숱하게 물었어도 속 시원히 만족스러운 답변을 들은 적은 거의 없었다. 상상도 못 할 만큼 선진적인 방식으로 훈련하거나, 매우 특이한 건강식이라도 먹는 게 아닌지 ‘추궁’해봐도 대체로 답변은 예상 범위 안에 있었다. 곰곰이 돌아본다.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나. 비범한 결과를 내는 인물이 반드시 일반인과 대단히 다른 뭔가를 하고 있을까. 탁월함의 조건은 ‘무엇을 하는가’보다 ‘무엇을 하지 않는가’에 있을 때도 많았다.

 

국내 KLPGA 투어 15년 차 이정민은 첫 메이저 우승을 눈앞에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열심히 해보겠다”고 동료에게 말했다. “그런 생각조차 하지 말고, 그냥 하던 대로 하라”는 동료 조언을 듣고는 얻어맞은 듯 정신이 들었다고 한다. 이정민은 셰플러 인터뷰를 찾아 읽은 뒤 경기에 나서 28일 압도적 우승을 차지했다. 지켜야 할 것을 구분하는 판단력, 버려야 할 것을 포기하는 용기,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갖출 때 단순함의 경지에 이른다. 단순하면 강하다. 단순해야 더 강해진다.

 

-최수현 기자, 조선일보(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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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파머

 

[노동자의 아들서 골프 전설로… 여든일곱 'The King' 아널드 파머 그린과 작별]


-메이저 7승 포함 PGA 통산 62승 니클라우스·우즈보다 勝 적지만 화끈한 스윙에 남다른 카리스마
-팬들 "60타 치는 선수들보다 80타 치는 파머가 더 보고싶다"
-골프 산업의 선구자 코스 디자인 등 각종 사업… 모은 돈으로 골프 대중화 힘써

"아널드는 위대한 골퍼란 표현으로 부족한 우상이자 전설이었다. 나는 그의 수많은 팬 중 한 명이다"(잭 니클라우스)

"왕이 떠난 골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다"(펠레)

잭 니클라우스(76·미국), 게리 플레이어(81·남아공)와 함께 '영원한 빅3'로 불린 아널드 파머(미국)가 26일 미국 피츠버그대 메디컬센터에서 심혈관 이상 등으로 치료받던 중 눈을 감았다. 여든일곱 번째 생일을 보낸 지 보름 만이다.


우즈 "당신의 해맑은 웃음을 잊지않을게요" - 최고와 최고 사이에서 마흔여섯 살의 나이 차이는 결코 벽이 아니었다. 지난 2013년 아널드 파머(오른쪽)가 자기 이름으로 된 PGA 투어 대회인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한 타이거 우즈와 함께 환하게 웃음 짓는 모습. 26일 파머가 87세로 세상을 떠나자 우즈(41)는 자기 SNS에 이 사진을 올리고‘아널드, 당신의 우정과 조언, 그리고 해맑은 웃음에 감사드립니다’라는 글을 붙였다. /Getty Images 이매진스

파머는 전성기였던 1958~1964년 네 차례의 마스터스 우승을 포함해 일곱 번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했다.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에서는 통산 62승을 거둔 전설적 선수다. 기록상 '골프 역사상 최고'는 아니었다. 메이저 18승을 기록한 니클라우스를 포함해 타이거 우즈, 벤 호건, 샘 스니드(이상 미국) 등 파머보다 PGA 투어 통산 우승 횟수가 많은 선수가 네 명이나 된다. PGA 챔피언십 타이틀을 얻지 못해 '커리어 그랜드 슬램'도 달성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니클라우스, 우즈 등이 '왕(The King)'으로 부르는 유일한 인물이 파머였다. 그만큼 골프라는 스포츠에 큰 영향을 미쳤다.

파머는 엘리트 상류층의 스포츠였던 골프를 '모두가 즐기는 스포츠'로 만든 사람이었다. 178㎝, 84㎏인 파머는 공격적이고 격렬하게 경기해 '골프는 지루하다'는 편견을 깼고, 팬들을 열광시켰다. 몸에 붙어 있는 모든 근육의 힘이 공에 전달되도록 강하게 스윙했다. 위험 지역에서 안전한 곳으로 공을 빼내는 '레이업'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늘 공격적으로 경기하는 이유를 물으면 파머는 처음 클럽을 손에 잡은 네 살 때부터 아버지가 줄곧 했던 말을 소개했다. "강하게 쳐라, 아들아. 그리고 가서 공을 찾으면 또 강하게 쳐라."


동시에 팬들에게는 어떤 선수보다 친절했다. 긴장감이 흐르는 경기 중에도 팬들과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았고, 바쁘다고 대충대충 사인을 하는 법도 없었다. 이는 그가 자라난 환경과도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파머는 '부잣집 도련님'이 아니라 전형적인 노동자의 아들이었다. 철강공장에서 일했던 파머의 아버지는 이후 집 근처 골프장에 취직해 그린 보수를 했다. 돈이 없었던 파머도 아버지를 도우며 이른 새벽과 늦은 밤, 골프장 회원들을 피해 공을 쳐야 했다. 파머는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를 도와 수동 잔디 깎기를 밀고 다녔던 게 강력한 팔을 갖게 된 비결"이라고 했다.

이 때문인지 그의 애칭을 딴 팬클럽인 '아니의 부대(Arnie's Army)'에는 유독 많은 노동자가 있었다. 당시 골프팬들은 "60대 초반 타수를 치는 선수보다 80타를 치더라도 파머를 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영국 BBC는 "평범한 시골 꼬마에서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된 파머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다"고 했다.


백악관서 오바마 퍼팅 과외 - 아널드 파머(오른쪽)가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에게 퍼팅 기술을 알려주는 모습. /오바마 SNS

TV 시대의 첫 골프 스타였던 그는 일찌감치 부와 명예를 쌓았다. 파머는 1968년 사상 처음으로 상금 100만달러를 돌파한 골퍼가 됐다. 현재 PGA 투어 상금왕에게 '아널드 파머 트로피'가 주어지는 이유다. 파머는 골프 산업화에서도 선구자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골프채널의 창립자 중에 한 명이기도 한 그는 골프 코스 디자인 회사를 세워 전 세계 300개가 넘는 골프장을 설계했다. 파머는 지난해 4000만달러(약 440억원)를 벌었다. 지난해 골프계에서 파머보다 더 수입이 많았던 이는 우즈, 조던 스피스, 필 미켈슨(이상 미국),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뿐이었다. 모험을 좋아한 파머는 81세 때까지 2만 시간이 넘는 비행을 기록한 파일럿이기도 했다. 그는 "전 세계를 직접 날아다녔기에 골프를 전파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골프협회(USGA)는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골프 앰배서더(대사)'가 우리 곁을 떠났다"고 애도했다. 뉴욕타임스는 "파머는 미국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권위의 상(대통령 자유 메달, 의회 금메달, 국가 스포츠상)을 모두 수상한 첫 번째 선수로 역사에 남았다"고 전했다.

파머가 시니어 투어 공식대회에 출전한 것은 10년 전인 2006년 10월이 마지막이다. 당시 77세였던 파머는 워터 해저드에 두 차례 공을 빠뜨리고 기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굿샷을 보고 싶어 한다. 나는 그들에게 굿샷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제 떠날 때가 온 것이다."

-석남준 기자, 조선일보(1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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