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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달러 80년 시대' 막 내리나] [ .. '달러 패권'의 역사] ....

뚝섬 2025. 5. 9. 11:55

['킹달러 80년 시대' 막 내리나]

[금으로 오르고 석유로 굳히기 한 '달러 패권'의 역사]

["트럼프,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 되새겨주기를"]

[기축통화국 미국이 왜 만성 적자에 시달릴까]

[트럼프가 뒤흔드는 세계]

 

 

 

'킹달러 80년 시대' 막 내리나

 

최근 달러 가치 약세지만 여전히 무역서 압도적 유통량 

 

‘화폐의 왕’ 미국 달러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80년에 걸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화폐의 자리를 굳혀온 달러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이후 흔들리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걸고 당선된 후 지난 100여 일에 걸쳐 밀어붙인 정책들이 오히려 달러의 힘을 빠지게 만든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요국 통화 대비 미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트럼프 취임 후 ‘강한 미국’에 대한 기대감에 4월 초 103까지 올랐다가 지난 8일 100 아래로 떨어졌다. 한때 1500원을 넘어설 수 있다고 예상됐던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400원 선 아래로 내려간 상태다. 

 

◇알아야 할 배경①: 미국의 ‘소극적 방임’은 끝났다

 

전문가들이 미국을 설명하며 자주 쓰는 ‘소극적 방임(benign neglect)’이란 표현이 있다. 미국 정부가 무역 수지 적자와 재정 악화를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방관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미국의 이런 ‘초연함’은 그런데 불어나는 적자를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여겨질 때 갑자기 ‘불타는 보복’으로 변하곤 한다. 2001년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을 용인하고 이후 빠르게 불어나는 대중(對中) 무역 적자에 침묵하다가 2003년부터 존 스노 당시 미 재무장관이 압박해 중국의 위안화 절상(통화가치 상승)을 이끌어낸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많은 전문가는 미국 정부가 2020년 초 시작된 코로나로 인한 경제 침체를 방어하느라 재정 적자가 빠르게 불어난 조 바이든 전 행정부 때가 ‘소극적 방임’에 금이 가기 시작한 때라고 평가한다. 이미 불어나고 있던 무역·재정의 ‘쌍둥이 적자’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평가되는 수준으로 급증하자 미국이 돌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계와 마찬가지로 국가가 적자를 보게 되면 돈을 빌려서(국채를 발행해서) 메울 수밖에 없다. 미 연방 정부의 부채는 2020년 27조달러에서 2023년 33조달러로 크게 불어났다. 국채 이자로 지급해야 할 돈이 급증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적자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고 보고 “좋은 말로 할 때 무역 시스템 좀 바꾸자”고 은근히 압박한 사람이 바이든이었다면, 트럼프는 세계를 향해 “우리가 사기당했다. 물어내라”고 ‘호통’을 치고 있는 상황이다.

 

◇알아야 할 배경②: 무역으로 돈 벌어 미 국채 산 신흥국들

 

미국에 대해 무역 흑자를 내는 한국·중국·일본 등은 물건을 팔고 달러를 받는다. 미 달러가 시장에 많이 풀리는(공급 증가) 셈이 되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낮아져야 자연스럽다. 달러 가치가 낮아지면 미국인 입장에선 (달러 기준) 수입 물가가 오르는 셈이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수입품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해지는 미국산을 사게 된다. 통화가치가 조정되면서 자연스럽게 무역이 균형을 찾아갈 수 있다는 ‘이론적’ 이야기다.

 

현실은 달랐다. 한·중·일 등은 수출해서 번 달러를 시장에서 사용하는 대신 이 중 상당수를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는 미 국채를 사서 외환 보유고에 쌓아놓는 데 썼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등을 거치며 외환 보유고를 든든히 쌓아놓고 미래를 대비하려는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일이다. 중국의 미 국채 보유량은 2010년 초 약 8900억달러어치에서 코로나 직전인 2020년 1조700억달러로 불어나 있었다. 한국의 외환 보유액 중 미 국채는 2010년 약 400억달러에서 작년 말 약 1250억달러로 급증(미 재무부 자료)했다.

 

물건을 많이 판 나라들이 달러로 받은 대금으로 국채를 대거 사들이면 무슨 일이 생길까. 국채의 인기가 올라가기 때문에 금리는 내려간다.(그만큼 낮은 금리를 줘도 국채가 잘 팔리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 국채를 사려면 달러가 필요하기 때문에 (달러 수요 증가로) 달러 가치가 올라간다. 이런 가운데 이 국가들의 기업과 국민이 미국 국채뿐 아니라 주식까지 대거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달러 강세는 더 고착됐다. 다른 국가들은 ‘킹달러’라고 추켜세웠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강한 달러’는 안 그래도 적자가 심한 무역 수지를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어서 기분이 좋을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트럼프가 왔다.

 

◇트럼프의 과제①: 무역 적자

 

중국 등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들은 ‘미국인이 값싸고 좋은 물건이 필요해서 사서 썼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번 달러로 미국이 (재정 적자로) 빚낼 필요가 있어서 발행하는 국채를 사서 비축해놓은 것이 무슨 잘못이냐는 것이다. 트럼프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우리가 당신네 물건도 사주고, 국채 이자도 주고, (한국과 일본의 경우) 막강한 군사력으로 보호도 해주고 있다. 그런데 달러까지 강하게 만들어 우리 경제를 망치냐라면서, 다른 나라들이 미국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역 수지 적자를 줄이는 방법은 둘이다. 수입을 줄이거나, 수출을 늘리면 된다. 트럼프가 사실상 전 세계를 대상으로 벌이는 ‘관세전쟁’은 수입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미국 달러 가치가 내려가면 (수입 물가 상승으로) 수입도 줄고, (수출 물가 하락으로) 수출도 늘어날 수 있다. 트럼프가 그토록 싫어하는 무역 적자를 개선하려면 달러 가치 하락이 매력적인 방안이란 뜻이다.

 

◇트럼프의 과제②: 국채 이자

 

미국의 무역 수지 적자와 재정 적자는 ‘쌍둥이’처럼 붙어 다닌다. 정부가 재정 적자를 감수하면서 달러를 풀면 그 달러로 국민이 수입품을 사다 쓰면서 무역 수지 적자가 불어난다. (물품 대금인) 달러를 받아든 수출국은 그 돈으로 미국 정부가 재정 적자를 충당하기 위해 발행한 국채를 사서 외환 보유고에 쌓아 둔다. 이런 식의 악순환이 ‘미국 입장’에선 발생해 왔다.

 

발행한 국채가 늘어 정부가 지급해야 하는 이자가 증가한다는 점도 문제다. 미국이 국채 이자로 지급하는 돈은 2010년 4140억달러에서 지난해 1조1300억달러(약 1580조원)로 불어났다. 매일 4조원 넘는 돈이 국채 이자로 나가고 있다는 뜻으로, 이에 대해선 지속 가능한 수준이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이런 가운데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내놓은 ‘글로벌 무역 시스템의 재구성 사용자 가이드’라는 보고서가 최근 화제가 됐다. 미란은 해당 보고서에서 외국인 국채 보유자에게 주는 이자에 세금을 부과한다거나, 미국이 방위를 제공하는 외국 정부에 기존 국채를 100년 만기 채권으로 바꾸도록 압박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 국채 중 가장 많이 유통되는 것은 만기 10년짜리이고 현재 가장 긴 만기가 30년인데 이를 ‘100년 만기’로 교환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10년 만기 국채를 100년 만기로 교환한다는 것은, 10년 뒤에 상환하기로 한 빚은 100년 뒤에 갚기로 계약서를 다시 쓰자는 황당한 얘기와 다름이 없다.

 

주먹구구로 계산해 전 세계에 부과하고 유예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상호 관세,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한 자산’으로 여겼던 미 국채의 만기를 맘대로 바꾸겠다는 백악관 고위 당국자의 발상 등은 결국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국가에 대한 신뢰는 그 국가가 발행하는 통화에 대한 신뢰와 직결된다.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게 된 이유 중 하나다.

 

◇미국을 다시 전만큼 믿을 수 있을까

 

트럼프가 ‘2기’ 취임 후 100여 일 동안 내놓은 정책들은 ‘룰을 잘 지키는 나라 미국’이라는 오랜 신뢰에 타격을 주었다. 그 결과 미국의 주식·채권·통화가치가 모두 하락하는 현상이 최근 발생하는 상황이다. 여전히 세계의 압도적 최강대국인 미국에 대한 신뢰가 이대로 점점 무너질지, 혹은 회복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트럼프의 주장대로 이런 조치가 무역·재정 수지를 개선시키고 미국의 제조업을 부흥시켜 미국에 대한 신뢰가 더 견고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미국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경각심을 세계 각국이 가지게 되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친구를 뺀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다른 친구들끼리 뭉치듯이, 미국을 빼고 ‘규칙’을 정해보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결성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유럽연합(EU)의 교류 확대, 중국·러시아가 주도하는 신흥국 모임인 브릭스(BRICS)의 밀착 등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환율 전문가 마크 챈들러 베넉번글로벌포렉스 최고시장전략가는 지난달 버지니아대 강연에서 “2028년(트럼프 임기 말)이나 2026년(중간선거)을 기점으로 ‘우리의 실수였다’고 인정한다 해도 다른 국가들의 신뢰가 이전으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모건스탠리 최고 채권 전략가인 비슈와나트 티루파투르는 “일단 의심이 시작되면 ‘지니(램프에 사는 가상의 요정)’를 램프에 다시 집어넣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킹달러’가 붕괴하지 않는 이유

 

많은 전문가는 그렇다고 해서 미 달러가 강력한 지위를 일순간 갑자기 잃지는 않으리라고 전망한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경제 칼럼을 쓰는 폴 블러스타인은 예일대 강연에서 “달러의 지배력은 (글로벌 거래에서 익숙하게 쓰인 화폐를 계속 쓰려는) 관성과 ‘네트워크 효과(사용자가 많을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효과)’ 때문”이라며 “달러처럼 수십 년 동안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통화는 드물다”고 했다.

 

실제로 달러는 글로벌 무역 결제 자금으로, 여전히 압도적인 유통량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투자자·기업이 외화를 거래하는 시장에서 달러는 약 90%의 거래에 쓰였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외환 보유고의 약 57%를 달러가 차지한 반면, 유로는 20%, 엔은 6%, 파운드는 5%에 불과했다. 국제결제은행에서도 2022년 투자자와 기업이 외화를 거래하는 시장에서 달러가 약 90%의 거래에 관여했다.

 

현재로선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경쟁자도 딱히 없다. 중국 위안이나 비트코인 같은 가상 화폐가 때때로 거론되지만 아직 달러의 위상을 무너뜨리기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대세다. 특히 중국 위안이 달러에 버금갈 기축통화가 되려면 그 어떤 경우에도 위안을 자국 화폐로 환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가 이를 허용해줄지 불안해하는 시각이 많다.

 

-조성호 기자/도움말=오건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 조선일보(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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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으로 오르고 석유로 굳히기 한 '달러 패권'의 역사

 

대공황과 세계대전 거치며 지배적 기축통화로 올라서

 

오늘날 달러는 단순한 통화를 넘어선다. 국제 무역과 금융의 기준이 되는 ‘기축통화(基軸通貨·key currency)’로서 세계 경제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기축통화란 국제무역과 금융 거래의 기준이 되는 통화를 말한다. 유로, 엔, 파운드, 위안 등도 국제통화로 쓰이긴 한다. 그러나 세계 금융시장에 미치는 막대한 파급력이나 산유국들의 석유 거래에 널리 쓰인다는 점 등까지 감안하면 달러가 사실상 유일한 지배적 기축통화라는 해석이 나온다.

 

달러가 처음부터 이런 위치에 있었던 건 아니다. 20세기 초까지 국제통화의 중심은 영국 파운드였다. 당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 할 만큼 세계를 주도했다. 파운드 역시 자연스럽게 국제 기준이 됐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거치며 상황은 급변했다. 막대한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영국이 파운드를 무제한 발행하면서 금본위제에 기반한 신뢰가 무너졌고, 기축통화의 위상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 모인 44국 대표들은 새로운 국제통화 질서를 논의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이 회의에서 미국 달러를 세계 기축통화로 삼자는 합의를 이뤘다. 미국은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며 금을 막대하게 축적했고, 그 힘을 바탕으로 국제금융 질서의 중심에 섰다. 이후 미국은 마셜 플랜을 통해 유럽 재건에 나섰고, 달러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달러의 패권은 이후 수차례 위기를 맞았다. 가장 대표적인 전환점은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금 태환 중지를 선언한 ‘닉슨 쇼크’다. 이는 달러 가치를 금에 연동시키던 브레턴우즈 체제를 사실상 종료시킨 조치였다. 이후 세계는 변동환율제로 전환됐고, 달러는 더 이상 금과 교환되지 않게 됐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달러의 지위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1974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거래를 달러로만 결제하기로 합의한 뒤 ‘페트로 달러’ 체제가 굳어졌다. 세계 각국은 에너지를 사고자 달러를 보유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곧 달러 수요로 이어졌다. 

 

(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8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은행 관계자가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이날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말 외환보유액은 전월(4096.6억 달러) 대비 49억 9000만 달러 감소한 4046억 7000만 달러로 나타났다. 이는 2020년 4월(4039.8억 달러) 이후 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에 해당한다. 2025.5.8/뉴스1

 

1999년에는 유럽연합이 유로화를 출범시키며 달러에 맞섰지만, 유럽 부채 위기와 정치적 분열, 저금리 장기화 등으로 달러의 지위를 흔들기엔 역부족이었다. 로이터는 달러는 50년 이상 줄곧 비관론자들의 예상을 뒤엎어 온 통화”라며 “앞으로 달러의 이런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전했다.

 

-조성호 기자, 조선일보(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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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 되새겨주기를"

 

기축통화국 고충 크지만, 글로벌 역할 다해야 

미국 달러는 지배적 기축통화로 전세계 외환시장 거래의 90% 가량을 차지한다./위키피디아

 

달러의 역사를 살피다 보면 기축통화국의 ‘삶’이란 여간 고달픈 게 아닙니다. 다른 나라에선 “20센트도 안 되는 돈으로 100달러짜리를 찍어내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기축통화국을 유지하려면 경상수지 적자라는 태생적 독배(毒杯)를 들어야만 하기 때문이죠. 경상수지 적자는 결국 자국 제조업에 압박을 가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입니다.

 

다만 많은 나라가 이런 기축통화국의 불리함을 알고 있어 미국이 원하는 바를 잘 들어주는 경향도 있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1985년 플라자 합의입니다. 미국을 대신해 기축통화국 되기가 부담스러웠던 일본과 독일이 미국의 달러 절하 요구를 들어준 셈이죠. 결국 미국이 세계에 베푸는 만큼 세계도 미국을 대우해 준다는 뜻입니다.

 

디즈니의 마블 시리즈 중에서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스파이더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큰 메시지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미국인들은 기축통화국으로서 80년 넘게 지속돼 온 미국이란 나라의 역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자부심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일반 미국인들처럼 책임이 큰 역할을 다시 한번 되새기길 기대해 보겠습니다.

 

-조성호 기자, 조선일보(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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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통화국 미국이 왜 만성 적자에 시달릴까

 

고대 로마, 대규모 수로 발판 삼아… 인구 100만 명의 대도시로 성장
‘물길’ 없어지자 허무하게 무너져… 미국, 대규모 수입 통해 달러 유출
기축통화 유지 위해 무역적자 감내… ‘돈길’ 관리해 경제적 안정 찾아야
 

‘다리’와 ‘달러’의 연관성 고대 로마 시대에 지어진 수도교 ‘퐁뒤가르’(왼쪽 사진). 50km 밖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해 건설된 수로다. 미국 달러화는 무역 거래의 기본 수단이 되는 기축통화다. 이 때문에 세계의 자본이 수도교의 물처럼 미국으로 몰린다. 게티이미지코리아·블룸버그통신

 

퐁뒤가르 수도교는 프랑스 소도시 님에 있는 고대 로마시대 다리입니다. 총 길이 270m, 높이 49m인데 3개 층의 아치로 지어졌습니다. 1층은 자동차도 다닐 정도로 넓지만 다리의 주목적은 3층에 있습니다. 3층에는 물이 지나가는 길이 있는데 중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설계됐습니다.

수도교의 경우 다리의 시작 부분은 높고 끝부분이 낮아야 물이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경사가 너무 가파르면 물을 멀리 보낼 수 없고 다리의 내구성에도 문제가 생기기 쉽습니다. 반대로 경사가 너무 완만하면 물은 흐르지 않고 고여 썩게 됩니다. 이 다리 양쪽 끝의 고도차를 측정해 보면 차이가 1.3cm에 불과하다니 그 정교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원지에서 님의 저수장까지 오로지 중력의 원리만으로 물을 옮기는 수도의 길이가 50km에 달합니다. 높이 차이는 17m로 평균 경사도는 0.034%입니다. 일부 구간은 경사도를 0.007%까지 낮췄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 도시에는 같은 원리로 운영되던 수도가 11개가 있었고 그중 긴 것은 91km에 이릅니다. 이 중 비르고 수도는 기원전 19년경 당시 통치자 아그리파에 의해 건설됐는데 오늘날까지 로마 도심에 계속 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로마 트레비 분수가 이 물로 운영됩니다.

 

이쯤에서 오늘의 주제인 경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로마의 수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은 중력 때문입니다. 물을 돈이라고 보면 중력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자, 즉 금리입니다. 다만 물은 고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돈은 이자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릅니다.

돈에 대한 수요가 많지만 공급이 적은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금리가 오릅니다. 금리가 높아지면 조금이라도 많은 이자를 받기 위해 돈이 몰리게 됩니다. 그렇게 돈이 모이고 공급이 늘면 다시 금리가 낮아집니다. 이런 원리로 돈이 풍부한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자연스럽게 흐르게 되는 걸 자본 유출 또는 유입이라고 부릅니다.

다만 물이 흐르려면 ‘물길’이 있어야 하듯 돈도 ‘길’이 있어야 흐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가는 돈이 흐르는 길을 통제합니다. 나라마다 통화가 다르기 때문에 외환 시장에서 환율에 따른 환전 절차를 거쳐야 국가 간에 돈이 오갈 수 있습니다. 때로는 불편해 보일지 모르지만 각국의 통화 제도는 일종의 방파제이자 안전망이면서 경제 주권의 관문 역할을 합니다. 한 나라의 경제 위기가 다른 나라로 파급되는 것을 완화해 주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미국은 대규모 수도를 보유한 고대 로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수요가 많기 때문에 전 세계의 돈이 모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달러가 기축통화로 널리 사용되기 위해선 미국 밖으로 많이 나와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많이 나올까요? 미국이 수출을 많이 해 돈을 벌어들이기보다 수입을 많이 해 다른 나라의 상품들을 많이 소비해 주면 됩니다이는 기축통화국의 특권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왕관의 무게에 비유되는 책무이기도 합니다. 결국 미국은 기축통화 보유국으로서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만성적인 무역 적자를 감내해 온 것입니다.

고대 로마는 대수로를 발판으로 인구 100만 명이 거주하는 대도시로 성장했고, 3000명이 동시에 목욕할 수 있는 대중목욕탕과 가상의 해상 전투까지 구현할 수 있는 콜로세움을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물의 도시’라는 명성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번영의 견인차였던 대수로가 게르만족에 의해 파괴되면서 로마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너지게 됩니다. 대수로가 아킬레스건이었던 겁니다.

미국 통화 당국이 이 같은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고 경제적 안정을 지속해 나갈 수 있을지 지금도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축 통화 보유가 마냥 좋아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그 자리에 오르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도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철욱 광양고 교사, 동아일보(2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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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뒤흔드는 세계

 

-4% 성장 위해 '약한 달러' 필요.. 양적완화 중단 후 달러 강세 계속
무역 적자 줄이고 고용 늘리려면 힘으로 弱달러  만들 수밖에 없어

-우리나라도 불똥 우려..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 커
위안화·원화 가치 10% 오르면 한국 성장률 0.4~0.6%p 하락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핵심 무역 참모가 중국, 일본, 독일 등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을 대상으로 '환율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주요국들은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환율 착취론'까지 거론하며 통화 전쟁을 선포한 데 대해 아연실색하고 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국제 경제의 피해자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이런 수를 두는 걸까. 

 

-사이버 안보 행정명령은 철회-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1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사이버 안보 전문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범정부적인 사이버 안보 점검을 골자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예정이었으나 막판에 철회했다. /EPA 연합뉴스 

 

4% 성장을 하겠다는 트럼프노믹스는 그 자체로는 달러 강세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달러가 강해지면 미국 기업 수출 경쟁력이 떨어져 2500만개 일자리 창출, 무역수지 적자 감축 등 대선 공약을 이행하기 어려워진다. 이윤석 금융연구원 국제금융연구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노믹스가 강(强)달러로 좌초되는 것을 막기 위해 힘으로 달러 약세를 만드는 카드를 꺼내든 것

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强) 달러 막기 위해 선제적인 '환율 전쟁'

미국 달러 가치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양적 완화로 달러를 풀면서 2010~2014년 약세를 보였다. 그러다 2014년 중후반 미국이 양적 완화를 중단하고 다시 전 세계에 풀린 달러가 미국으로 회귀하면서 강세 흐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작년 11월 트럼프 당선 이후 '트럼프노믹스'에 대한 기대로 달러 가치는 더 상승했다. 유럽·일본 등 주요 10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블룸버그 달러 인덱스는 작년 10월 1200대 초반에서 최근 1230대로 2.5%쯤 올랐다.
 

 

최근 달러 강세는 트럼프노믹스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트럼프노믹스로 경기를 부양하면 현재 실업률이 4.7%로 완전 고용에 가까운 미국 경제가 달아오르게 되고 미 연준이 경기 회복 속도 조절을 위해서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 전 세계에 풀린 달러가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달러 강세'가 불가피하다. 여기에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로 해외 공장을 미국으로 옮기고 무역 적자를 줄이면 달러 가치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달러 강세 흐름이 강해지면 미국 수출 기업이 타격을 받기 때문에 해외로 나가는 미국 기업들을 붙잡았던 트럼프로선 할 말이 없어진다힘으로라도 달러 약세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미국의 '환율 착취론'은 어불성설

주요국이 통화 가치를 낮춰 미국을 착취하고 있다는 주장은 경제 논리엔 맞지 않는다. 미국은 달러가 기축통화여서 어떻게 보면 종이 조각에 불과한 달러를 전 세계에 주고 스마트폰, 자동차, 인형 등 실물을 값싸게 확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은 "터무니없는 특권"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미국이 무역수지 적자로 전 세계에 달러를 공급해 주기 때문에 그런 특권을 누리는 것인데, 미국이 착취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미국이 초대형 사고를 치고도 경제 위기 없이 넘어갈 수 있었던 것도, 무제한 달러를 찍어낼 수 있었던 기축통화 지위 덕분이었다. 누구보다 달러 중심 글로벌 금융 시스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미국이 "다른 나라에 착취당하고 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이런 배경과 상관없이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한 한국 같은 소국은 희생양이 되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환율 조작 관찰 대상국인 우리나라로선 '환율 전쟁'의 불똥이 튈까 걱정이다. 이시욱 KDI정책대학원 박사는 "우리나라가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은 아직 높지 않다"며 "다만 미국이 달러 약세를 추구해 원화나 위안화 가치가 오르면 부정적인 여파가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원화와 위안화 가치가 10% 오르면서 중국 성장률이 1%포인트 낮아지면 우리나라 성장률은 0.4~0.6%포인트 하락할 것이라는 게 이 박사의 분석이다.

                              
-방현철 기자, 조선일보(17-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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