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餘暇-City Life]

[영화 하나가 스크린 거의 100% 독점… 너무 한 것 아닌가] ....

뚝섬 2024. 5. 8. 06:22

[영화 하나가 스크린 거의 100% 독점… 너무 한 것 아닌가]

[성수기 여름 극장가에서도 맥 못 추는 대작 한국 영화]

[발길 끊긴 영화관]

[‘장애물 경주’가 된 한국 영화]

[42년 추억 밴 서울극장… 영사기 멈춰도 원형은 보존해야] 

[한국 영화, 기둥이 무너진다] 

[親文 코드 인사들의 당당한 문화계 進軍]

 

 

 

영화 하나가 스크린 거의 100% 독점… 너무 한 것 아닌가

 

여러 영화를 상영해야 정상인 멀티플렉스 극장이 또다시 ‘모노(mono)플렉스’가 됐다. 요즘 영화관에 가면 주야장천 ‘범죄도시4’만 튼다. 다른 영화들은 오전에만 반짝 상영하는 탓에 사실상 조조영화가 됐고, 저녁 시간대 등은 거의 100%가 ‘범죄도시4’다. 이 영화의 상영점유율은 지난달 24일 개봉 뒤 80%를 넘었고, 이달 들어서도 70% 안팎이다. 전국에 스크린이 3000개쯤 되는데, 5일에만 2778개 상영관이 이 영화를 1만5002회 틀었다. 스크린을 도배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화계에서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라는 성토가 나온다. 과거 사례와 비교하면 ‘범죄도시4’의 상영관 독점이 어느 정도인지가 뚜렷이 드러난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거세게 일었던 2017년 영화 ‘군함도’의 상영점유율이 50%대 중반이었다. 12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명량’(2014년)의 점유율은 40%대였고, 최근 1000만 영화인 ‘파묘’도 50%대였다. ‘범죄도시4’의 스크린 독점은 2019년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극장으로선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한다’는 항변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영화관들은 막대한 적자를 봤다. 부채 비율이 치솟았고, 국내 3대 멀티플렉스 중 2곳이 한때 사실상 자본잠식 직전에 이르기도 했다. 계열사의 출자 등으로 연명한 극장들은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줄줄이 지방 상영관의 문을 닫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범죄도시4’는 ‘서울의 봄’(2023년), ‘파묘’에 이은 구세주 격이다. 특히 비성수기로 여겨지는 4, 5월의 흥행 성공은 가뭄의 단비와 같을 것이다.

 

▷‘범죄도시4’를 제외하고 당장 크게 눈에 띄는 영화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는 역으로 다양성 부족이라는 한국 영화계의 구조적 문제가 극심해졌음을 드러낸다. 박스오피스 10위권 내 우리 영화는 이 영화와 파묘뿐이다. ‘1000만 아니면 쪽박’이라는 말이 현실화한 것이다.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이런 영화에서 제작진이 새로운 시도나 모험을 하기 쉽지 않다. 2021년 30%까지 떨어졌다가 올해 68%까지 반등한 한국 영화 점유율이 불안한 이유다.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관객 300만∼400만 명을 목표로 하는 ‘중박 영화’나 독립영화도 관객을 만날 기회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제2의 봉준호, 박찬욱 감독이 나온다. ‘범죄도시4’를 보고 ‘마동석표 액션은 볼만하지만 되풀이되다 보니 슬슬 지루해진다’는 관객이 적지 않다. 이는 곧 한국 영화가 처한 현실이기도 할 것이다. 프랑스처럼 특정 영화에 일정 비율 이상 스크린을 배정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스크린 상한제 도입을 논의해볼 시기가 가까워 오고 있다.

-조종엽 논설위원, 동아일보(2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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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기 여름 극장가에서도 맥 못 추는 대작 한국 영화

 

“영화 ‘비공식작전’ 부진은 속상하고 가슴 아팠지만,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기대가 컸지만, 현실은 달랐다. 연기 인생의 오답노트에 쓰고 더 좋은 작품을 받아들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겠다.”

올해 데뷔 20년을 맞은 영화배우 하정우(45)가 팬데믹 이후 얼어붙은 여름 극장가 상황을 절감하며 털어놓은 고백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 ‘비공식작전’은 지난달 2일 개봉해 105만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모로코와 이탈리아 현지 촬영이 70%에 달해 2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들인 대작이었기에 손익분기점(약 600만 명)도 높았다. 하정우는 한국 영화 최초로 시리즈 연속 천만 관객을 돌파한 ‘신과 함께: 죄와 벌’(2017년), ‘신과 함께: 인과 연’(2018년)의 주연을 비롯해 다수 영화에서 성공한 ‘흥행 보증수표’와 같은 배우다. 그런 그도 팬데믹 후 달라진 관객들의 온도에 맥을 못 췄다.

극장가에서 여름 시즌(7, 8월)은 대표적인 성수기로 꼽힌다. 그래서인지 엔데믹 후 첫 여름을 맞아 지난달 ‘밀수’를 시작으로 쌍천만 흥행 기록(‘신과 함께’ 시리즈)을 세운 김용화 감독의 5년 만의 신작 ‘더 문’을 비롯해 ‘비공식작전’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 대작 한국 영화가 연달아 개봉했다. 영화계는 대작 영화의 잇단 개봉이 극장가에 활기를 불러일으킬 것이라 기대했지만, 4편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은 ‘밀수’가 유일하다. 제작비 280억 원이 든 김용화 감독의 ‘더 문’은 손익분기점이 600만 명이었지만, 관객은 51만 명에 그치며 흥행에 참패했다.

 

제작비 100억 원 미만의 중소형 영화들 사정도 비슷하다. 올해 개봉한 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은 중소형 작품은 공포 영화 ‘옥수역 귀신’ 단 1편뿐이었다. 그나마 저예산 영화여서 손익분기점(20만 명)을 넘길 수 있었다.

영화계에선 한국 영화의 부진을 놓고 여러 분석을 내놓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대목은 팬데믹 기간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익숙해진 관객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단 점이다. OTT 한 달 구독료에 맞먹는 영화 관람료를 지불하고 극장을 찾을 땐 ‘극장에서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인지가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됐다.

팬데믹 때 영화 제작 및 개봉이 연기되면서 스타 배우, 유명 감독, 스태프 등 대다수가 OTT로 넘어갔다. 그렇다 보니 스타가 출연하고 탄탄한 스토리에 화려한 연출을 자랑하는 OTT 작품이 많다. 더 이상 관객들이 영화에만 출연하는 ‘영화배우’를 보러 극장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개봉작 대다수가 극장에서 내려오면 OTT에서 볼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일부 관객 사이에선 ‘정말 끌리는 영화가 아니면 기다렸다가 OTT에서 보겠다’는 말도 나온다.


결국 한국 영화 부활의 필수조건은 ‘양질의 콘텐츠’를 내놓는 것이다. 뻔한 전개와 한물간 신파, 자기복제가 의심되는 연기에 대한 대중의 평가 잣대는 엄격해졌다. 내년 여름 극장가에선 ‘한국 영화의 저력을 맛봤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으면 좋겠다.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 인생의 오답노트’가 다시 펼쳐지지 않길 기대해본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 동아일보(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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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끊긴 영화관

 

지난달 말 개봉한 영화 ‘드림’은 ‘극한직업’으로 1600만명을 동원한 이병헌 감독이 만들었다. 코로나 이후 썰렁해진 극장에 다시 관객을 불러모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100만명을 가까스로 넘겼다. 올해 개봉된 영화로 ‘드림’ 이전에 100만명을 넘긴 영화는 황정민과 현빈이 주연한 ‘교섭’이 유일하다. 극장 주변에선 “참혹하다”는 말이 흘러 나돈다.

 

▶극장가에선 코로나 전인 2019년을 ‘극장이 가장 사랑받았던 해’로 꼽는다. 22600만명이 극장을 찾았다. 1000 관객 영화도 5 탄생했다. 칸과 아카데미를 거머쥔 봉준호의 ‘기생충’도 그해 제작됐다. 하지만 영광은 지나갔다. 영화계는 한국 극장가에 ‘2억 관객’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난달 영화관을 찾은 관객은 697만명으로, 2019년 기준 절반에 불과했다.

 

▶영화관을 찾은 관객이 코로나 이전에 비해 반 토막 났다는 기사가 25일 자 조선일보에 실렸다. 한 조사에선 ‘티켓 값을 내려도 영화관 생각 없다 응답이 20% 넘어섰다고 한다. 이렇게 된 데는 티켓 가격이 크게 오른 것이 첫 이유로 꼽히지만, 근본적으로는 코로나 사태가 극장 이용 방식에 변화를 줬기 때문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958 문을 대한극장은 한국에 처음 등장한창문 없는 영화관으로 인기를 끌었다. 코로나 사태 때는 오히려 이 조건이 극장을 기피하는 이유가 됐다. 가정마다 대형 TV 장만하고 넷플릭스 OTT 극장을 대신하게 것도 극장 가는 발길을 붙잡는다. 한 대형 가전 매장은 코로나 이듬해 초대형 TV 판매량이 두 배로 늘었다. 초대형 TV 구매층도 전엔 주로 5060세대였지만 2021년엔 구매자 절반 이상이 3040세대로 바뀌었다. 영화 주고객층인 3040이 극장 덜 가고 집에서 영화 본다는 의미다. 방해받기 싫어하는 청년들이 앞사람 머리 신경 쓰느니 집에서 편하게 보겠다는 것이다.

 

▶극장(theater)은 객석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테아트론(theatron)에서 비롯됐다. 당시 객석은 연극만 감상하는 장소가 아니라 함께 모여서 신에게 제사 지내고 술과 춤을 즐기는 축제 공간이었다. 극장의 이런 모임 기능은 2000년 넘게 이어졌다. 최근까지도 극장은 영화만 보는 곳이 아니었다. 청춘 남녀가 처음으로 손을 잡아보는 데이트 공간이었고, 많은 가족과 친구들이 가족애와 우정을 나누는 곳이기도 했다. 수천년 지속된 극장이 코로나 복병을 만나 최고의 시련을 맞고 있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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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물 경주’가 된 한국 영화

 

7일 서울 한 관람객이 영화 ‘한산 : 용의 출현’과 ‘비상선언’ 포스터 옆을 지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다. /뉴스1

 

흥겨운 파티는 끝났고 냉정한 결산만 남았다. 올여름 한국 영화의 흥행 성적은 넉넉하게 잡아도 ‘2무 2패’에 가깝다. ‘이순신 3부작’의 두 번째 영화였던 ‘한산’(675만명)과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313만명)가 간신히 한숨 돌렸을 뿐, 나머지 두 편은 흥행 부진을 면하지 못했다. 이 영화들은 관객 460만~600만명을 동원해야 손익 분기점을 넘길 수 있지만, 최종 결산하면 청신호보다는 적신호가 켜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코로나 장기화와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영상 서비스(OTT)의 급부상까지 흥행 부진의 사유는 적지 않다. 지난 2년간 영화 티켓 가격이 25% 가까이 인상된 것도 관객들의 지갑 부담을 가중시켰다. 주말 기준으로 1만5000원이면 웬만한 OTT 한 달 구독료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 모든 악재(惡材)가 앞으로 변수보다는 상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흥행 부담은 더욱 커진다는 뜻이다.

 

코로나 이전까지 극장 개봉작들은 평평한 레이스를 질주하는 100m 단거리 선수와도 같았다. 특히 방학과 휴가 시즌이 겹치는 한여름 극장가는 회전율 높은 인기 식당처럼 관객들을 빨아들였다. 하루 관객 100만명을 넘어서는 영화들이 수두룩했고, 1~2주면 1000만 관객 달성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OTT와 티켓 가격 상승 같은 허들을 줄줄이 넘어야 하는 장애물 경주가 될 공산이 높다. 경기 종목이 바뀌면 방식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과연 코로나 이후 영화계는 어떻게 변화할까. 미래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향방은 가늠할 수 있다.

 

우선 극장 관람과 안방 시청의 양분화는 심화될 공산이 높다. 넷플릭스와 극장이 상호 공존할 수 있는 보완재(補完財)인지, 치열하게 경쟁하는 대체재(代替財)인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지난 2년간 영화와 드라마를 소비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면서 선택권이 관객들에게 넘어갔다는 점이다. 공급과 소비의 역학 관계가 역전된 것이다. 관객 평점과 영화평을 꼼꼼하게 살핀 뒤 비로소 예매하는 ‘스마트 컨슈머(smart consumer)’가 늘어날지언정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김성현 기자, 조선일보(2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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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추억 밴 서울극장… "영사기 멈춰도 원형은 보존해야"

 

[인사이드&인사이트]“

‘종3 시네마천국’ 서울극장 폐관

 

이달 31일 폐관을 앞둔 서울극장 앞. 김재명 기자

 

“토, 일, 월. 사흘 연속 오전 10시에 출근도장을 찍고 있네요.”

대체 공휴일이던 16일 오후 2시 김정옥 씨(61·여)는 친구 김영민 씨와 함께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 1층에서 30분 뒤 시작하는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오전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본 그는 한 편만 보고 집에 가기는 아쉬워 두 시간 더 극장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평소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집 근처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찾는 김 씨가 집에서 30분 넘게 걸리는 서울극장을 방문한 건 이달 31일을 끝으로 이 극장이 문을 닫아서다. 그는 “젊었을 때 친구들과 자주 왔다. 그때는 서울극장과 피카디리, 단성사 세 극장 중 마음에 드는 영화가 걸린 곳 앞에 줄을 서서 티켓을 샀다. 영화 시작 전 극장 입구에서 파는 고구마와 오징어, 군밤을 사서 영화를 기다리곤 했다”고 회상했다. “이번이 서울극장에서 보내는 마지막 휴일이네요”라고 말하는 그의 눈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날 서울극장 곳곳에선 마지막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폐관을 앞두고 선착순으로 공짜 티켓을 배포하는 ‘고맙습니다 상영회’ 행사가 끝났는데도 한 할머니는 “마지막인데 그냥 돈 내고 보자”며 남편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서울극장을 운영한 합동영화주식회사(합동영화사)가 제작한 주요 영화 포스터들이 걸린 벽 앞에서 사진을 찍는 젊은 커플도 있었다. 친구인 최은미 씨(41·여)와 김숙현 씨(41·여)는 광화문에서 일을 마치고 함께 영화를 보려고 서울극장을 자주 찾았다고 했다. 최 씨는 “단성사가 문을 닫고, 피카디리는 CGV에 인수됐는데 서울극장마저 문을 닫는다는 뉴스를 보고 아쉬운 마음에 찾아왔다”고 했다.

 

○ 종로3가 ‘골든트라이앵글’ 시대 이끌다

 

서울극장이 개관 42년 만에 문을 닫는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영화 제작과 수입 배급을 겸한 합동영화사의 고 곽정환 회장은 재개봉관(개봉관에서 상영이 끝난 필름을 받아 상영하는 영화관)이던 세기극장을 1979년 인수해 서울극장을 열었다. 1980, 90년대 한국영화 부흥기를 이끈 서울극장은 2000년대 초반 멀티플렉스의 등장 이후 지속된 수익성 악화로 고전했다. 여기에 설상가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폐관을 결정했다. 합동영화주식회사는 서울극장을 1000억여 원에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영화사에서 제작총괄을 맡아 ‘편지’ ‘그놈은 멋있었다’ 등을 제작한 김진문 아트시네마 대표는 “재벌기업이 운영하는 멀티플렉스가 들어오면서 전통 극장들은 전멸하다시피 했지만 서울극장은 역사와 특색으로 버텨 왔다. 코로나가 터진 뒤 한 달에 1억 원씩 적자를 봤다. 고 곽정환 회장이 일궈놓은 걸 어떻게든 지켜내려고 아내인 고은아 회장이 애썼지만 결국 적자가 누적돼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1907년 세워진 국내 최초의 상설 영화관 단성사와 서울극장, 피카디리 극장은 서울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을 중심으로 몰려 있어 ‘골든트라이앵글’로 불리며 한국영화 호황기를 이끌었다. 특히 서울극장은 당시 영화계를 주름잡던 곽 회장의 경영하에 급속도로 성장했다. 곽 회장은 서울극장에 더해 부산 대영극장, 아카데미극장(전 왕자극장), 대구 중앙극장 등 지방 유력 극장들을 인수하며 전국 배급망을 갖췄다. 김진문 대표는 “외화 제작사들은 국내에 극장체인이 없어 한국에서 극장을 많이 갖고 있던 합동영화사에 독점 배급권을 줬다”며 “당시 수입할 수 있는 외화가 한 해 30편으로 제한돼 있었다. 해외에서 매년 제작되는 500∼600편의 외화 중 가장 잘 만들어진 것들만 선별해 30편을 가져오는데 흥행이 안 될 수가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 종로3가 빅3 극장 줄이 흥행의 척도

 

2000년 9월 9일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기 위해 추석 연휴 기간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 앞에 몰린 인파. 당시 종로3가에 들어선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 등 3곳은 개봉 영화를 보려는 관객들로 가득 찼다. 동아일보DB

 

세 극장이 경쟁적으로 영화를 제작·수입 배급하면서 종로3가는 자연스럽게 한국영화 흥행의 중심지가 됐다. 신작이 개봉하는 날이면 티켓을 사기 위한 사람들로 극장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웃돈을 얹어 티켓을 되파는 암표상들도 극장 앞에 진을 쳤다. 김정옥 씨는 “줄을 늦게 서서 티켓을 못 사면 어쩌나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슬쩍 다가와 ‘티켓 사실래요?’라고 말을 건네던 암표상들, 이들을 단속하려고 어슬렁거리던 경찰들을 피해 암표를 샀던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영화인들 사이에선 종로3가 극장들에 얼마나 관객들이 모였느냐가 흥행의 척도가 된 시절이었다. 서울극장 기획팀에서 영화 일을 시작한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1990년대 중반까지 영화 개봉은 지역별로 한 곳만 했기에 서울극장과 단성사, 피카디리 극장의 흥행 경쟁이 치열했다. 당시에는 예매 수치를 확인할 시스템도 없었기 때문에 개봉일 아침 일찍 종로3가역에 제작사와 수입배급사 관계자들이 모두 모였다. 서울극장 2층 팡세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극장 앞에 얼마나 줄을 섰는지를 보고 흥행 여부를 판단했다. 영화인들이 오전에 줄을 선 상황을 체크하고 근처 설렁탕집이나 중국집에 가서 함께 밥을 먹고 헤어지는 게 일상이었다”고 전했다.

 

○ 멀티플렉스에 자리 내준 전통 극장들

 

1998년 CGV강변을 시작으로 서울 강남 일대에 대기업 자본의 멀티플렉스가 들어서면서 전통 극장들을 찾는 관객은 점차 줄었다. 단일 극장들도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재개관하며 시대의 변화를 쫓았지만 판세를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 1개 스크린으로 시작한 서울극장은 1989년 베니스, 아카데미, 깐느 등 3개 관으로 증축해 한국 최초로 멀티플렉스화를 시도했다. 이후 상영관을 11개관까지 늘려 2019년까지는 흑자를 봤지만 코로나19로 적자가 쌓였다. 단성사는 2001년 옛 건물을 철거하고 2005년 지하 4층, 지상 9층의 7개 관 규모를 갖춘 뒤 2006년 3개 관을 추가했으나 멀티플렉스 체인의 공세를 이기지 못했다. 결국 2015년 3월 영안모자 계열인 자일오토마트에 575억 원에 팔려 귀금속 매장이 됐다. 피카디리는 2015년 CGV에 운영권을 넘겨 현재 ‘CGV 피카디리 1958’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극장을 끝으로 종로3가를 지키던 옛 극장들이 모두 사라지면서 이들과 함께한 영화인들은 아쉬움과 더불어 불가피한 흐름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김진문 대표는 “서울극장의 역사를 함께한 사람으로서 한국영화의 한 시대가 저무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은 크지만 세상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심재명 대표는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관인 단성사도 외관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서울극장도 이후에 어떻게 거듭날지 모르지만 외형은 사라지는 거다.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우리 사회가 보존이나 기록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멀티플렉스 시대, 디지털 시대가 됐어도 원형 보존과 아카이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재희 문화부 기자, 동아일보(21-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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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기둥이 무너진다

 

[동서남북]

 

코로나 확진자 증가와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인 9일 오후, 서울 용산의 한 영화관에 관객이 없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0.12.9./고운호 기자

 

한국 영화계라는 텐트를 떠받치던 든든한 기둥이 넘어질 판이다. 한 해 극장가에서 최대 성수기로 꼽히는 대목이 여름이다. 그래서 흔히 7~8월에 상영하는 한국 대작 영화들을 ‘텐트 폴(tent pole)’이라고 부른다. 안정적인 흥행으로 다른 작품의 손실까지 메우는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텐트 기둥이라는 뜻이다. 코로나 사태 이전 한국 영화 산업의 규모는 2조5000억원에 이르렀다.

코로나 발생 첫해였던 지난해 성적과 단순 비교해도 올해 상황은 암울하다. 확진자 숫자가 가파르게 증가했던 지난해 7~8월에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435만명) ‘반도’(381만명)’ 같은 대작들은 비교적 선전했다. 반면 올해 여름 성적은 여기에도 크게 못 미친다. 아직 개봉 중이기 때문에 최종 성적을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모가디슈’(23일 현재 278만명) ‘싱크홀’(165만명) 등 거의 반 토막에 가까운 수준이다. ‘천만 영화’가 실종된 지는 오래됐고, 요즘엔 여름 개봉작을 모두 합쳐도 ‘천만 관객’이 안 된다.

 

단순 비교 이면의 속사정은 훨씬 심각하다. 극장의 좌석 판매율에도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까지 흥행작의 좌석 판매율은 30%에 이르렀다. 극장에 가면 10석 가운데 3석에는 손님이 있었다는 뜻이다. 반면 지난해부터 인기작의 좌석 판매율도 10%대로 떨어졌다. 영화를 공장에 비유하면 공장 가동률은 그대로인데 제품 판매량이 급감한 셈이다. 극장에서 한 번 틀었을 때 평균 관객이 너덧 명에 불과한 작품이 수두룩하다. 영화관이 비디오방으로 전락했다는 장탄식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올해 영화 산업이 지난해보다 악화된 요인이 또 하나 있다. 올해 복합 상영관(멀티플렉스)들은 극장가를 살리기 위해 ‘모가디슈’(제작비 250억원)와 ‘싱크홀’(140억원) 등 한국 영화 두 편에 대해서 제작비의 절반은 보장해주기로 했다. 설령 망하더라도 들어간 투자금의 절반은 무조건 돌려주는 파격적 지원책이다. 한국 영화의 ‘인위적 경기 부양책’이라고 할까. 만약 자체 출혈을 감수하고 지원했는데도 매출이 급전직하(急轉直下)한다면 그 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지금 한국 영화계가 바로 그렇다.

 

산업적 관점에서 한국 영화 발전의 결정적 분기점을 꼽으라면 두 가지 사건을 든다. 1998년 서울 테크노마트의 CGV 1호점 개관과 2004년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가동이다. 그때부터 실시간 통계를 통해서 합리적 예측과 전망이 가능해졌고 극장 매출도 더불어 급증했다. 박찬욱·봉준호 같은 거장들이 세계 무대에서 나래를 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멀티플렉스와 통합전산망은 한국 영화계의 든든한 인프라스트럭처(기반 시설)와도 같았다.

 

하지만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영상 서비스의 등장과 코로나 사태라는 이중고 속에서 한국 영화계는 또 한번의 자체 혁신과 구조조정을 요구받고 있다. 넷플릭스가 폭발력을 지니고 있는 건 시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언제 어디서든 관람 가능한 ‘손바닥 안의 영화관’이기 때문이다.

 

극장의 대형 화면을 선호하던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감독들은 물론, 디즈니·워너브러더스 같은 할리우드 영화사들마저 온라인 서비스와 오프라인 극장의 공존을 대세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 영화계는 애써 무시하거나 무심한 척하고 있지만, 자칫 넷플릭스·디즈니 같은 해외 강자들의 콘텐츠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금 한국 영화 산업에 절실한 건 단기적 지원책이 아니라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고속도로’다. 그래야 차세대 박찬욱과 봉준호도 그 도로를 타고 신나게 질주할 수 있다.

 

-김성현 기자, 조선일보(21-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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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文 코드 인사들의 당당한 문화계 進軍

 

前 정부 관련자 예외 없이 '적폐'와 '부역'으로 몰고
예술인도 코드로 다 채우니 권력에 줄 대는 이들 판쳐
  

 

지난주 청와대 본관에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들과 활짝 웃는 표정으로 찍은 사진이 몇몇 신문에 실렸다. 민중화가 임옥상이 작년 광화문 광장의 '촛불집회'를 주제로 그린 대형 그림 앞에서였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닥치고 OUT'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시위 군중이 담긴 그림이었다. 청와대를 찾는 외국 정상들도 드나드는 입구에 이런 구호가 담긴 그림을 거는 게 품격에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9일 밤 대선(大選) 승리가 확정된 직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섬기는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연설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대통령이 "우리 정부 정신에 부합하는 그림"이라는 해설까지 내놓으며 이 그림 앞에서 보란 듯이 기념촬영까지 했으니 뭐라 할 말이 없다.

임옥상은 2012년과 2017년 대선 때 문 대통령을 공개 지지했고,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에도 포함된 인물이다.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해 블랙리스트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그림이 권력의 심장부인 청와대 본관 로비에 걸렸다. '블랙리스트'가 이제 승자(勝者)의 완장으로 보일 만큼, 드라마틱한 반전(反轉)이다.

새 정부 출범 후 진행된 문화예술계 인사(人事)에선 문재인 대통령 대선 캠프에 있었거나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이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노무현 정부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창동 감독의 동생이자 영화계 대표적 '친문(親文)인사'로 꼽히는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가 연 600억원 가까운 지원금을 나눠주는 영화진흥위원회 실세 위원으로 입성했다. 좌편향 논란을 빚은 고교 한국사 교과서 대표 필자이자 국정교과서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주진오 상명대교수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관장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모진, 국무위원들과 21일 오전 청와대 본관 로비에서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이어진 촛불집회 모습이 담긴 대형 그림 '광장에, 서'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광장에, 서'는 임옥상 작가 작품으로 30호 캔버스(90.9㎝X72.7㎝) 108개를 이어 완성한 그림이다. /뉴시스


한 해 2300억원 가까이 문화예술계에 나눠주는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에는 지난 5월 대선 직전 '문재인 후보 지지 문학인 선언'을 주도한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가 사실상 내정됐다고 한다. '최순실 사단'의 국정 농단 근거지였던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에도 2012년과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일한 김영준 전 다음기획 대표가 확정적이라는 얘기가 나돈다. 다음기획은 문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2002년부터 본부장으로 있었던 곳이다. 김 전 대표는 김제동과 윤도현 밴드가 소속된 기획사를 이끌며 블랙리스트 문제가 나올 때마다 이들을 대변해 언론에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새 정부 내각이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출신)로 채워진 것을 신호탄 삼아, 정부 산하 문화예술기관과 단체에도 이렇듯 '캠코' 인사들이 속속 들어올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대선 캠프 출신들이 대거 문화예술기관에 포진했으니 시비할 일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번 정부가 다른 점은, 전 정부에서 일했거나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들을 '적폐 세력'으로 몰아 패대기치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에 줄을 대야겠다고 마음먹는 문화예술계 인사가 점점 늘어날 판이다. '부역자'를 몰아낸다더니, 스스로도 '부역'의 길로 들어서는 격이다.

조선왕조실록은 폭군(暴君) 광해군을 제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인조반정(反正)에 성공한 공신들을 바라보는 백성의 민심을 이렇게 기록했다. "너희 훈신(勳臣)들이여, 잘난 척하지 말라. 그들의 집에 살고, 그들의 땅을 차지하고, 그들의 말을 타며, 또다시 그들의 일을 행하니, 당신들과 그들이 무엇이 다른가." 광해군 때 집권 세력과 이들을 몰아낸 반정 공신들이 하나도 다를 게 없다는 얘기였다. '블랙리스트' 항의와 촛불집회 참여를 훈장 삼아 '문화 권력'에 속속 진입하는 이들은 이런 민초(民草)들의 질문 앞에 떳떳할 수 있을까.


-김기철 문화부장, 조선일보(1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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