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성인 대접 해주는 중위 연령, 이제는 30세가 아니라 45세다]
[나이 듦 수업]
[무엇이 그를 혼밥으로 이끄는가]
사회가 성인 대접 해주는 중위 연령, 이제는 30세가 아니라 45세다
[정희원의 늙기의 기술]
98년 30.7세에서 올해 45.6세, ‘생애 주기’ 급격히 바뀌어
대졸 신입, 첫 결혼 등 모두 늦어져… 저출생은 원인 아닌 결과
게다가 정자 질, 가임력도 악화… 주거보다 돌봄 지원 더 급해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가족이 모이면 우리나라의 뭇 젊은이를 늘 괴롭히는 몇 가지 소재가 있다. 언제 결혼하느냐. 아이는 왜 안 갖느냐. 둘째는 또 왜 안 갖느냐. 부모와 미혼 자녀들로 이루어진 소위 ‘정상 가족’을 형성하여 남들처럼 성인으로서의 생애 주기 과업을 완수하라는 강력한 압박이다.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모습을 사회 전체로 확대하면, 우리는 닮은 꼴을 관찰할 수 있다. 2023년 상반기 우리나라에서 화두가 된 숫자는 0.78(2022년 합계출산율)일 것이다. 매년 역대 최저 기록을 갈아치우는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은 이제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지표가 되었다. 최근 발표된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0으로, 이 추세라면 올해의 출산율 역시 작년보다 감소할 것이 예상된다.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출산율을 높이려는 수많은 대책이 출현했다. 2022년 저출산 대응 예산은 51조7000억원에 달했다. 온 나라가 안간힘을 쓰고 있는 셈이지만 잘되지 않는 모습이다. 지금과 같은 인구 변화가 지속되면 수백 년 내에 대한민국이 멸종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본질적으로는, 지난 25년간 급격하게 바뀐 것은 한국인의 평균적 생애 주기이며, 저출산은 이 변화의 부수 현상이자 결과로 보는 편이 옳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한국 사회의 제도와 통념이 바뀌어가는 한국인의 평균적 생애 주기를 따라가지 못했다. 한국인의 평균적 삶이 지난 25년간 변화한 양상을 보면, 여러 생애 주기 이벤트가 찍혀 있는 고무 밴드를 전체적으로 좌우로 길게 늘여놓은 것과 흡사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기대 수명이 9년 늘어나는 동안 건강 수명이 6년 늘어났다. 한국인 100명을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나이인 중위 연령은 자그마치 15세나 올라왔다. 한국 사회는 평균적으로 지난 25년간 매년 0.6세씩 나이 들어 온 것이다. 어딜 가나 나이부터 확인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 중위 연령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사회에서 이쯤 되어야 성인 취급을 받고, 자신의 의견도 낼 수 있는 나이다. 중위 연령 상승의 추세에 맞추어 대졸 신입 사원의 평균 연령도 6세가량 상승했다. 교육에 투자하는 기간이 늘어난 셈이다. 남녀 모두 첫 결혼의 시기가 5년가량 늦춰졌고, 이에 맞추어 첫째를 낳는 엄마의 나이도 그만큼 올라갔다.
가족의 모습은 어떨까? 1998년에는 부부와 미혼 자녀로 구성된 가정이 가장 흔했고, 부부가 모두 일하는 맞벌이 가구는 32.4%였다. 현재는 1인 가구가 한국에서 가장 흔한 가족 형태로 바뀌었고, 2022년 기준 유배우 가구 중 맞벌이 비율은 46.1%였다. 주지할 만한 점은, 18세 미만의 자녀를 둔 유배우 가구 중 맞벌이 비율은 53.3%로 절반을 넘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남, 여 모두가 더 오래 공부하고 또 커리어를 이어가며, 더 오래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은 한편으로는 고도화된 지식사회, 선진사회로의 발전을 방증한다. 우리 사회의 경쟁이 극심해 젊은이가 성인으로서 사회에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이를 돌보는 일에 대해서 ‘가족이 알아서 해야 할 일’로 치부해 버리는 사회의 관념은 아직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정 수준으로 신체, 인지 기능이 갖춰지기 전까지는 누군가가 계속 챙기고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사람이다. 이를 ‘돌봄 요구’라고 일컫는데, 생애 주기의 반대편에서 노화의 결과로 노쇠나 치매가 발생하는 경우 여러 면의 돌봄 요구가 존재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물리적으로, 이 ‘돌봄 요구’의 관점에서 영유아를 돌보는 것은 24시간 간병이 필요한 치매를 앓는 어르신을 돌보는 것과 유사한 면이 많다. 가장 비슷한 점은 시간적으로 빈틈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있는 맞벌이 부부가 가장 어려워하는 면이다.
평균적인 수도권의 직장인이 점심시간 1시간을 포함하여 직장에서 9시간을 보낸다. 여기에, 2022년 기준으로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평균 왕복 통근 시간 2시간을 더하면 하루 중 11시간이 비워진다. 하지만 이 11시간을 완전히 채워주는 사회의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보육 시스템이 만들어졌지만, 지금까지는 돌봄을 도와주는 수준이다. 결국 불안정한 커리어를 힘겹게 이어가는 30대의 한국인은 출산을 단념한다.
둘째, 생명체로서 사람의 몸 역시 이 세상의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 여성의 가임력은 30세부터 가파르게 떨어져서 35세가 되면 20대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고, 40대가 되면 자연 임신이 상당히 어려워진다. 첫째 아이를 낳는 시점이 점점 미뤄지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더 낮은 출산율을 부른다. 게다가 남성의 정자와 질 감소는 전 세계적 현상이며, 성인의 신체 활동이 줄고 가공식품 섭취가 늘면서 여성의 가임력 또한 과거보다 악화하는 추세다. 사회에서 성인으로 자리 잡는 연령의 상승과 생물학적 여건의 악화는 아래위 양쪽에서 출산이 가능한 기회의 창을 좁힌다. 첫째아 출산 엄마의 높은 평균 연령은 낮은 합계출산율과 연관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첫째아 출산 엄마의 평균 연령은 높고, 출산율은 낮은 쪽에 속한다. 이렇게 생물학적인 요인을 놓고 볼 때도 우리나라의 출산율 감소는 해소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저출산을 비싼 주거 비용과 불안정한 고용 문제, 그리고 출산·양육에 대한 지원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저출산 관련 예산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부동산 임대, 융자 예산(2022년 기준 46%)이었다. 이를 멀리서 뒤따르는 것이 보육, 돌봄 예산(23%)이었다. 국토교통부의 주거 실태 조사에서 생애 최초 주택 마련 가구주 연령은 2019년 기준 전국 평균 39.1세다. 이 숫자만 놓고 보면, 저출산 예산의 상당 부분이 실제 출산의 시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미래의 일에 할애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는 이러다가는 나라가 망한다며, 아이를 낳으라고 젊은이들을 채근하기에 바쁘다. 그럼에도, 일단 육아휴직이라도 좀 쓰겠다고 이야기하면 곧바로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의자는 늘어나지 않고, 게임의 규칙도 바뀌지 않으니, 줄어드는 것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 조선일보(23-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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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 수업
2009년 유엔은 '호모 헌드레드' 시대를 선포했다. 70세를 기대 수명으로 생애 주기를 결정했던 예전과 달리 100세를 새로운 생애 주기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현재 나이에 0.7을 곱해야 한다는 말인데, 지금 60세는 예전 기준으로 하면 42세인 셈이다. 의학과 시술의 발달로 40대처럼 보이는 60대도 많고, 예전 기준으로는 은퇴할 나이지만 현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많다.
아직 젊다고 느끼지만 은퇴 대열에 선 사람들에겐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라는 본질적 문제가 다시 등장한다. 명함 속 직업과 직위를 자기 정체성이라 여기고 살아온 사람들은 은퇴 후 사적 영역에 돌입하면 크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인생을 공적인 것과 사적인 삶으로 나눈다면 여성에 비해 은퇴 후 남성들이 더 취약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다.
나이 듦이 새로운 정체성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라면, 젊어서부터 다양한 정체성을 오간 사람들이 훨씬 더 성숙한 노년을 맞이한다. 그러나 젊음과 활력을 강조하고 개인을 성적 주체로 호명하는 것에 익숙한 자본주의적 삶은 노년에게 꽤 불리해 보인다. 그러므로 나이 듦에 대한 새로운 태도와 해석이 필요하다.
"어떤 점에서는 늘 병을 앓고 있는 게 좋아요. 그래야 몸을 조절합니다. 쓸데없는 욕심을 안 부리고요. 그래서 늙고 병드는 게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 달라이 라마나 교황을 보세요. 우리 시대에 정말로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잖아요. 노인이라 안 아픈 데가 없어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과 다 소통됩니다. 그것이 지혜예요. 지혜는 뭘 많이 가지고 있는게 아닙니다."
나이 듦 수업에서 이렇게 얘기한 건 고미숙 선생이다. 선생은 청춘을 모방하지 말라고, 봄은 죽어도 여름을 알 수 없다고, 그런데 봄과 여름을 지나온 나만 아는 그 시간을 왜 스스로 부정하냐고 안타까워했다. 고령화 시대는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세월이 비껴간 동안의 아름다움은 충분히 말했으니, 이제 세월을 관통한 몸에 대한 재발견이 중요하다.
-백영옥 소설가, 조선일보(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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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를 혼밥으로 이끄는가
'계란탁 순두부찌개'로 구내식당 혼밥을 마치고 왔습니다. 후배들은 각자 선약과 일정을 이유로 빛의 속도로 사라졌죠. '여우의 신포도'처럼 스스로를 위로하기 시작합니다. 괜찮아, 이건 부장에 대한 왕따가 아니야. 함께 먹는 밥도 즐겁지만, 혼밥의 쾌감도 있지 않은가. 일부러 거리 두는 코로나 시대, 혼밥은 뉴노멀(새로운 기준)이지.
'아무튼, 주말' 마감이 목요일이라, 이날 저녁은 늘 함께 밥과 술을 먹는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혼밥 역시 중요한 리추얼(의례)입니다.
누구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그 사람의 속도에 맞추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이 내 리듬에 맞춰야 하죠. 어느 쪽이든 품과 신경을 들여야 하는 건 마찬가지. 하지만 혼자 먹는 밥은 다릅니다. 세 번 만에 꿀떡이 아니라 스무 번의 면밀한 저작(咀嚼)이 주는 귀리밥의 식감, 후루룩이 아니라 후후의 속도가 어울리는 순두부 한 입, 그리고 약간의 스냅으로 남은 물기의 양을 결정하는 양상추 샐러드 한 젓가락…. 내가 결정하는 속도와 리듬은 식재료와 스스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죠.
굳이 밥 먹으면서까지 할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선불교의 전통적인 수행으로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이 있습니다. 걷거나 서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 있거나,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을 때도 참선과 명상이 가능하다는 의미죠. 혼자 밥 먹을 때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날 있었던 불안과 우울, 선후배나 가족에게 받은 스트레스 역시, 진미채 저작 활동을 하면서도 보낼 수 있죠.
역사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집중력과 통찰이 명상에서 비롯됐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매일 한 시간, 그리고 매년 한두 달의 피정을 꼭 떠난다더군요. 어쩌면 하루 한 끼의 혼밥도 당신 내면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겁니다.
-어수웅 주말뉴스부장, 조선일보(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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