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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지(注山池).. 저수지 이름을 동네 주소로 삼는 까닭]

뚝섬 2020. 8. 23. 06:20

주왕산에서 열린 회의가 밤늦게 끝났는데도 새벽에 눈을 뜨는 습관대로 서둘러 주산지(注山池)로 향했다. 아침 안개 가득한 몽환적 풍광을 상상한 것은 나그네의 지나친 기대심인가. 긴 장마 끝의 아침 해는 수면에 반사되면서 더욱 찬란하게 반짝이고, 물이 그득한 호수는 무심하리만치 해말갛다.

경북 청송의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평범한 작은 저수지이지만 많은 이를 찾게 만드는 매력은 물속에서 자라는 왕버들 수십 그루가 연출하는 멋스러움 때문이다. 그 나무가 물가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속에서도 살 수 있는 식물은 아니다. 어쩌다 보니 할 수 없이 물에서 살게 되었고 그 나름의 대책을 세우며 진화했다. 평소에는 잔뿌리인 호흡근(呼吸根)을 활성화하고 또 가뭄 때는 수위가 낮아져 밑동이 물 밖으로 드러나면 그동안 부족했던 것을 보충하는 기회로 한껏 활용했다. 이런 과정을 짧게는 수십 년, 많게는 수백 년간 각 나무의 나이테만큼 반복하며 살아남는 지혜를 터득한 것이다. 어쨌거나 맑은 물과 듬직한 나무가 서로 의지하면서 만들어 내는 귀하고 조화로운 광경은 멀리서 달려온 수고로움과 지난밤 설친 잠으로 인한 피로감을 잊게 할 만큼 경이롭다.

나무 못지않게 물이 주는 감흥도 작지 않다. 공자(孔子)도 물을 대할 때마다 "물이여! 물이여!(水哉 水哉)"를 반복하며 좋아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 화가 강희안(姜希顔·1418~1464)이 그린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주인공처럼 가만히 물을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은 삶의 근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물속에서 살 수는 없다. 그럼에도 살고 있는 마을 주소에 물 이름을 붙인다면 명분으로나마 함께 사는 것이 된다. 그래서 아랫마을 행정명은 '주산지'리(里)다. 중국 장강(長江)의 홍수를 조절할 수 있을 만큼 큰 규모인 동정(洞庭·둥팅) 호수는 리(里)급이 아니라 호북(湖北·후베이)성, 호남(湖南·후난)성이라는 성(省)급 지명을 쌍으로 만들었다.

 

/일러스트=이철원

 

우리나라 호남(湖南) 지명도 저수지 이름에서 나왔는데, 전북 익산 황등제(黃登堤) 남쪽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황등제는 이미 논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명칭만 남았다. 일각에서 호서(湖西)도 충북 제천 의림지 서쪽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모두 한국사 시험문제로 빠지지 않을 만큼 역사성 있는 곳이지만 동네 저수지를 읍면(邑面)이 아니라 도(道) 단위 이름으로 삼았다는 것은 누가 듣더라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농사가 생산의 전부였던 부족국가 시대에 총력을 다해 만든 의림지 황등제 벽골제(김제) 눌제(訥堤·정읍) 등을 포함한 크고 작은 모든 저수지를 합친 '가상적인 호(湖)'를 설정했을 수는 있겠다. 또 호수처럼 잔잔하게 흐르는 금강(錦江)의 특정 구역을 가리키는 옛 이름 호강(湖江)에서 비롯되었다는 설(說)도 함께 구전(口傳)되고 있다.

주산지는 삼백 년 역사를 자랑한다. 1720년 8월에 착공하여 1721년 10월 완공했다는 사실을 기록한 공덕비는 1771년 조선 영조 때 세웠다. 축조한 주인공인 이진표(李震杓) 처사(處士)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후손인 월성 이씨와 임(林)씨, 조(趙)씨 가족이 함께 자리했다. 규모가 작은 비석이라 비용이 크게 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세 집안의 핏줄을 대표하는 명단을 올린 것은 당시 인근 집성촌 씨족(氏族)들이 모두 힘을 합해야 할 만큼 저수지 만드는 일이 대역사(大役事)임을 기억하고 후세에 알리기 위함이다. 전면의 본문은 16자로 "일장저수(一障貯水) 불망천추(不忘千秋) 유혜만인(流惠萬人) 유일편갈(惟一片碣)"이라는 쉬운 한자를 써서 꼭 해야 할 말만 간단하게 새겼다.

"정성으로 둑을 막아 물을 가두어 만인에게 혜택을 베푸니, 그런 뜻을 오래도록 기리고자 한 조각 비석을 세운다."

 

-원철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조선일보(20-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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