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탕개 3

[이순신 리더십] [7] 지도자로선 결격 사유인 선조의 이중인격

'의로운 임금' 명예 추구한 선조, 여진족 추장 니탕개 제거 원하며 "의로운 방법으로만 하라" 위선 가득한 명령으로 혼란 빚어 정유재란 초기 이순신 내칠 때도 "그가 어떤 자인지 모르겠다" 말해 이순신이 극소수 군관급 무장들과 결행한 '우을기내 생포작전' 때 함께 거사한 무장으로 이..

[이순신 리더십] [6] 毒蛇 머리 치듯 여진족 최고 수뇌부를 부수다

여진족 니탕개가 침범하자 전방과 대궐 모두 내분에 빠져 풍전등화 위기에 나선 이순신… 말 탄 적병 추격전 포기하고 '독사를 죽일 땐 머리를 치는' 전략으로 수뇌 잡아 승리 이끌어 선조 16년(1583년) 1월에 함경도 육진(六鎭)에서 니탕개의 난이 발발하자, 당년 38세의 훈련원 무관 이순신..

[이순신 리더십] [5] 선조의 참혹한 武將 다루기가 시작되다

선조는 계산된 리더십의 전형… 장군들의 사생결단 효과 노리고 '니탕개의 亂' 때 잘 싸운 武臣을 '패배한 무장은 사형'이라며 처형 어린 시절엔 명종 임금 앞에서 '영악한 계산'으로 후사 낙점받아 선조가 시행했던 대(對)일본 전쟁 방어 조치 중에서 최고이자 최선의 성공 사례는 바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