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군(四郡)은 충북의 청풍·단양·제천, 강원도의 영월을 가리킨다. 이 네 고을은 서로 붙어있다시피 한데, 산수가 특별히 아름답다. 그래서 조선 시대 내로라하는 강호의 방랑자와 시인들은 이 네 고을의 산수를 ‘사군산수’라고 특별하게 불렀다. 대부분의 산들이 바위산들인 데다가 그 산들의 주변을 남한강이 끼고 흘러가고 있다.
바위와 물은 찰떡궁합이다. 바위산에서는 화기가 뿜어져 나오고, 강물에서는 수기가 이 화기를 중화시켜 주고 있다. 충주호 댐 가운데에 있는 청풍의 한벽루(寒碧樓). 누각에 앉아서 주변 산세와 물세를 바라다보니까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향 산천에 안겨 있는 것만 같다. ‘우리 땅 조선 강산이 이렇게 좋은데 뭐가 그리 바쁘다고 이 풍광을 놓치고 살았단 말인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먹고산다고 부박(浮薄)해진 내 마음에다 치료 연고를 발라주는 것만 같은 산세이다.
수백 년 전에 다녀갔던 이 땅의 선배들도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살아온 반평생 산수를 등진 게 부끄러워라(半生堪愧北山靈)’. 퇴계 선생이 한벽루에 하루 묵으면서 쓴 시 구절이다. 퇴계가 걸어갔던 청풍에서 단양 향교까지 10㎞의 봄 길을 걸어보니 주변 산들이 도끼로 탁탁 잘라 놓은 듯한 바위 암벽들이다. ‘인생 그리 길지 않으니까 늦기 전에 어서 산으로 들어오라’고 충고를 한다. 단양 군수 시절의 퇴계 시 한 구절이 또 가슴을 친다. ‘청산을 거닐 때는 구름에 깃든 학처럼 살고 싶었고(在山願爲棲雲鶴)’. 그까짓 거 별것도 아닌 벼슬한다고 종종걸음 하고 산다는 한탄이다. 같은 풍광이라도 자기 처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게 인생이다.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은 스승인 수운이 처형당하기 전에 건네받은 쪽지가 ‘고비원주(高飛遠走)’. 이후로 해월은 평생 도망 다니면서 살았다. 대략 35년. 보따리 하나 들고 끊임없이 도피처를 궁리해야만 하는 탈주자의 신세였다. 해월이 도망 다닐 때 가장 많이 숨었던 공간이 이 사군산수 일대이다. 이 지역이 산골 깊숙한 오지여서 숨기에도 좋았을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의 접경 지대여서 월경(越境)을 하기에 좋았다. 예를 들어 경상도 추적대는 해월이 충청도 땅으로 월경해 버리면 추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2년도 아니고 30년 넘게 이런 도망자 생활을 했으니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나도 남은 인생을 생각해 본다.
-조용헌 교수, 조선일보(21-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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