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안동 도산구곡에 농암 이현보(李賢輔) 선생의 종택이 있다. 대문을 넘어 사랑채와 안채를 지나면 별채들, 마당 뒤편에 사당이 위치한다. 그리고 다소 떨어진 곳에 ‘강각(江閣)’이라는 정자가 보인다.
안동 도산구곡에 농암 이현보(李賢輔) 선생의 종택이 있다. 마을의 초입부터 산과 강, 절벽과 바위들로 만들어진 세계로 들어간다. 대문을 넘어 사랑채와 안채를 지나면 별채들, 마당 뒤편에 사당이 위치한다. 그리고 다소 떨어진 곳에 ‘강각(江閣)’이라는 정자가 보인다<사진>. 처마 곁으로 마당을 지나며 하나씩 펼쳐지는 경관, 그리고 끝났다고 느껴질 때 멀리서 등장하는 이 정자의 실루엣은 정점이다. 기념비적 외관을 강조하는 서양 건축과 달리 진입의 과정을 중시하는 한국 건축의 배치다. 단계적으로 공간이 전개, 확장되는 ‘켜’의 정수를 보여준다. 건물마다 내부에서 밖을 바라보는 풍경은 조금씩 다르고 시시각각 변한다. 집 바로 앞을 흐르는 이 강에서 조선 시대에만 천 편의 시(詩)가 지어졌다고 한다.
안동 도산구곡에 자리한 농암 이현보(李賢輔) 선생의 종택, 처마 곁으로 마당을 지나며 하나씩 펼쳐지는 경관, 그리고 끝났다고 느껴질 때 멀리서 등장하는 ‘강각(江閣)’이라는 이름의 정자의 실루엣은 이곳 풍경의 정점이다.
수백 년의 스토리를 간직한 종택은 언제나처럼 객(客)을 초대한다. 집의 보존을 위해서라도 한옥 스테이는 바람직하다. 숙박하는 손님은 종택에서 빚는 가양주 ‘일엽편주(一葉片舟)’를 구입할 수 있다. 서울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한두 군데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술이다. 술병에 달려있는 ‘일엽편주’ 글씨는 퇴계 선생의 친필이다. 또 한 가지 선물은 밤하늘 풍경이다. 몇 해 전 묵었던 사진작가가 여기서 밤하늘을 촬영한 후, ‘농암종택에서 별보기’는 소셜미디어의 인기 포스팅이 되었다. 실제로 한밤중 마당에서 밤하늘을 올려보면 얼굴 바로 위로 별들이 쏟아진다. 손님의 대부분인 젊은 사람들이 숙박객으로서 어떠냐고 여쭈어보았다. “아주 깔끔하고 예의 바르다”고 종손 어른이 답하신다. 한옥에 익숙하지 않을 젊은 세대가 이런 문화에 대한 존경을 가지는 건 바람직하다.
이 종택에서는 개를 키우지 않는다. 다른 동물이 놀러오는 걸 쫓아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집 전체가 늘 손님을 맞이하는 개방된 공간이다. 집에 찾아오는 누군가를, 비록 일개 짐승일지라도, 쫓아낸다는 건 옳지 않다는 설명이다. 종택을 떠나는 날 아침에도 인근 산에서 고라니가 놀러와 마당을 서성이고 있었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조선일보(2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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