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위로’의 조건]
[분노 조절 장애]
‘좋은 위로’의 조건
[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현금 흐름이 어려울 때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는 스타트업 CEO의 고민들을 접한다. ‘매출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영업이익이 계속 마이너스이다 보니 밤마다 불안에 시달리고 마음과 몸을 다 바쳐 열심히 일했는데 실패한 경영자란 생각에 힘들다. 이 정도면 접고 직장에 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다’는 고민 같은 경우이다.
어떤 답변을 해주어야 할지 어렵기만 하다. 지속되는 만성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에 상당한 내상을 입힌다. 어떤 상황이든 스트레스는 존재하지만 과중한 만성 스트레스에서는 조금이라도 벗어나 마음을 재충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도전 에너지도 다시 차오른다. 그래서 가능한 상황이라면 직장에 들어가는 것도 생각해 볼 것을 권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마음 관리에도 현금 흐름이 중요하다. 마음은 무한정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기업의 현금 흐름에 문제가 생기듯 마음 자원도 쓰기만 하면 고갈이 일어나게 된다. 안타깝지만 일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현금 흐름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비즈니스 전략의 수정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마음도 진정성을 가졌다고 해서 자원이 고갈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동생이 관계 상처로 친구가 없어 언니인 나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삶의 어려움을 몇 시간씩 토로하는데 점점 들어주는 것에 지친다’와 같은 내용의 고민을 자주 접한다. 마음이란 시스템이 작동되는 것을 실제로 보면 상식과는 반대의 역설적인 특징이 많다. 최선을 다해 일한 하루라면 마음이 뿌듯해야 할 텐데 반대로 짜증 나고 심지어는 허무한 느낌도 찾아 올 수 있다. 마음 에너지라는 현금 흐름의 고갈, 즉 번아웃 때 찾아올 수 있는 현상이다. 재충전 없이 과도하게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여동생 고민을 듣는 것에 지쳐간다는 언니분께 내가 동생을 위해 제공할 수 있는 에너지 최대치의 60% 선을 구체적으로 표현해보시라고 했다. ‘한 달로 치면 2주 간격으로 한 번은 통화, 한 번은 만나서 식사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고 답했다. 그 정도도 훌륭한 배려이니 그렇게 해보자고 말씀드렸다. 이런 경우 상대방이 섭섭해 하고 힘들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과도한 마음의 에너지를 사용하면 위로와 짜증이 섞일 수 있고 결국엔 ‘왜 이전 같지 않으냐’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언제까지 너를 위해 희생해야 하느냐’라고 답하는 등의 섭섭한 대화가 오고 가다 관계까지 불편해질 수 있다.
좋은 ‘위로’는 꾸준하고 일정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마음의 현금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조선일보(2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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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조절 장애
정신과 환자에 스스로 머리카락을 뽑는 발모광(拔毛狂)이 있다. 발모벽(癖) 환자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두피가 보일 정도로 머리숱이 드문드문 비어 있다.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지저분하게 빠져 있어 원형 탈모증과는 모양새가 다르다. 스트레스를 못 견디고 제 머리카락을 잡아채서 그렇다. 10대 소녀에게 흔한 충동 조절 장애다. 정서적으로 결핍하거나, 불안과 스트레스를 견디는 조절 능력에 문제가 있어 생긴다.
▶홧김 방화, 차량 돌진, 우발적 칼부림 같은 것을 보통 분노 조절 장애라고 부른다. 정신의학에서는 '간헐성 폭발성 장애'라는 진단명을 쓴다. 크게 봐서 충동 조절 장애다. 사소한 화에도 아드레날린을 비롯한 스트레스 흥분 호르몬이 지나치게 분비된 상황이다. 상황에 맞지 않는 분노를 지나치게 표출하면서 이성적 판단을 하는 전두엽 기능을 마비시킨다. 자기 행동이 미칠 결과를 예측 못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물건을 부순다. 그러고는 후련해하거나 후회한다.
▶30대 남자가 고속도로에서 끼어들기를 하다 다른 차가 양보하지 않자 분을 참지 못했다. 터널 안에서 그 차를 세우고 앞 유리창과 보닛을 삼단봉으로 박살 냈다. 삼단봉은 짧은 막대가 3단으로 접혀 손잡이 부분 안에 밀려 들어가 있는 호신용 무기다. 피해자 차의 블랙박스에 찍힌 동영상을 보면 그의 행동은 분노 발작에 가깝다. 이럴 때 상대방을 설득해봐야 소용없다. 술에 만취한 사람과 같아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다.
▶'땅콩 회항'을 일으킨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도 분노 조절에 실패한 사례라는 게 한 정신과 의사 분석이다. 성장기에 적절한 욕구 충족과 좌절이 엇갈려야 인격이 성숙한다. 바라는 게 웬만큼 이뤄져야 긍정의 심리가 생긴다. 거기에 적절한 좌절도 겪어봐야 세상이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터득한다. 좌절 없이 충족만 누리면 존재감은 극대화하고 세상을 얕보게 된다. 결국 어쩌다 자기 성에 안 차면 극도의 분노를 드러낸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경찰청 통계로는 폭행·상해·협박·공갈·약취·감금 범죄의 절반 가까운 46%가 우발적 범행이다. 충동 조절 장애 환자도 지난 5년 사이 두 배 늘었다. 지나친 생존 스트레스, 속으로 삭이다 폭발하는 소통 부족, 자녀 과잉보호, 폭력 게임과 자극적인 드라마를 원인으로 꼽는다. 분노 발작 뒤에는 패가망신이 기다린다. 모든 화(火)는 자기에게 화(禍)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공감하게 가르치는 심성(心性) 교육이 절실하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조선일보(1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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