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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군수의 놀라운 미술 '안목'] [물 새는 거북선, 밥 태우는.. ]

뚝섬 2025. 2. 26. 06:13

[시장 군수의 놀라운 미술 '안목']

[물 새는 거북선, 밥 태우는 가마솥… 애물단지 된 랜드마크]

 

 

 

시장 군수의 놀라운 미술 '안목'

 

경기도 군포는 김연아 선수가 학창 시절을 보낸 곳이다. 2010년 김 선수가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자 군포시는 5억2000만원을 들여 관내 철쭉동산 공원에 8m 높이의 조형물을 만들었다. 조형물 꼭대기에는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여성상을 올렸다. 그러나 동상이 김 선수와 전혀 닮지 않았고, 김 선수와 전혀 상의하지 않고 동상을 무단 제작한 것이 밝혀졌다. 이 때문에 군포시는 ‘김연아’라는 이름을 동상에 쓰지 못했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지자체가 엉터리 행정으로 망신을 당하고 주민 세금을 낭비한 케이스는 이것만이 아니다. 서울시는 2014년 한강변에 영화 ‘괴물’에 등장하는 괴물을 재현한 조형물을 설치했다. 높이 3m, 길이 10m 크기로, 1억8000만원이 들었다. 그러나 이 조형물은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아 결국 2024년 철거 결정이 내려졌다. 경남 고령군은 2015년 대가야의 기상을 기린다며 6억5000만원을 들여 투구를 쓴 말머리 모양 7m 크기의 청동 조형물을 제작했다. 그러나 흉물스럽다는 민원이 이어지자 한적한 농촌문화체험장으로 옮겨놓았다.

 

▶부산 해운대구청은 2017년 해운대 해수욕장에 있던 세계적 설치미술 거장인 데니스 오펜하임의 작품을 일방적으로 철거한 다음 고철·폐기물로 버린 사실이 드러났다. 부산비엔날레 조직위가 국제 공모를 거쳐 국·시비 8억원을 투입해 만든 작품 ‘꽃의 내부’였다. 이 작품이 작가의 유작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해운대구청은 철거 사실을 작가 가족과 미술계 등에 알리지 않았다. 아마 뭔지도 몰랐을 것이다.

 

전남 신안군이 2019년 가짜 예술가 최모씨에게 속아 DJ 고향인 하의도 곳곳에 천사상 318점을 설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신안군은 그를 ‘파리 제7대학 예술학부 명예교수’ ‘리틀 로댕’으로 소개했지만 모든 것이 허위였다. 최씨는 같은 방식으로 경북 청도군에도 접근해 중국의 조각 공장에서 수입한 작품 20점을 2억9700만원에 팔았다. 보통 예술품 사기는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고 속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자신이 유명 작가라고 사기를 치는 데 속은 드문 케이스다. 예술에 무지한 탓이다.

 

▶우리 사회에선 아직도 과학과 예술에 무지한 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는 풍조가 남아 있다. 지자체 예술품 상당수가 시장·군수 치적용이라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의 검증이 필요할 텐데 그것도 없었다. 신안군과 청도군이 세금으로 사들인 ‘작품’들을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이것을 ‘예술품’으로 본 안목이 놀라울 뿐이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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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새는 거북선, 밥 태우는 가마솥… 애물단지 된 랜드마크

 

충남 금산군에는 16m 높이의 금산인삼이, 인천 소래포구에는 높이 20m의 새우 전망대가 있다. 강원 횡성군엔 한우, 강원 소양강 변엔 소양강 처녀상이 랜드마크 자리를 노린다.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고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명목으로 공공 조형물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지만 “예산 낭비”라는 비판 속에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다.

▷‘세계 최고’를 내세운 조형물들은 대개 실패로 끝난다. 충북 괴산군은 5억 원을 들여 지름 5.7m의 초대형 가마솥을 만들어 신기록에 도전했다가 더 큰 호주 질그릇에 밀렸다. 군민 4만 명이 한솥밥을 먹자고 만들었는데 아래는 타고 위는 설익는 3층밥이 됐다.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해도 이송 비용만 2억 원이 들어 포기한 상태. 광주 광산구에는 높이 7m의 세계 최대 우체통이 있지만 미국에 더 큰 우체통이 생기면서 타이틀을 잃고 사용도 중단됐다.

지역 특산물이나 유명인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방식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충북 음성군이 고추 조형물을 설치하자 괴산군은 임꺽정이 ‘청결고추’를 들고 엄지척을 하는 조형물을 만들었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의 생가가 괴산이다. 경북 군위군엔 대추 모양의 7억 원짜리 대형 화장실이 있다. 원래 조형물을 만들려다 화장실로 바꿨는데 한적한 도로변이라 이용객이 없다. 강원 인제군 소양강 변엔 환풍구에 치마가 날리는 메릴린 먼로 동상이 생뚱맞다. 먼로가 6·25전쟁 직후 이곳에서 미군 위문 공연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대형 조형물이 보기도 안 좋고 안전에 방해만 된다는 민원이 쏟아지자 국민권익위원회가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다. 2019년 기준 전국의 공공 조형물은 6287점, 추정 제작비는 1조1254억 원. 상당수 지자체가 공공물 건립이나 관리에 관한 규정도, 주민 의견 수렴 절차도 없이 만들고 있었다. 비리 의혹이 제기된 사례도 있다. 경남도가 16억 원을 들인 거북선은 미국산 소나무를 국내산으로 속여 쓴 사실이 드러나 ‘짝퉁 거북선’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바닥에 물이 새 쓰지도 못하고 방치돼 있던 거북선은 최근 일반인에게 154만 원에 낙찰됐다.

▷성공적인 공공 조형물로 영국 소도시 게이츠헤드에 설치된 ‘북방의 천사’가 꼽힌다. 탄광산업과 제철공업으로 융성했다 쇠락한 이곳에 철을 이용해 키 20m에 양쪽 날개 길이가 50m인 단순한 디자인의 천사상을 세웠다. “쇳덩어리에 16억 원이나 쓰느냐”는 주민들을 설득하느라 1998년 완공하기까지 13년이 걸렸다. 시장이 아닌 주민 모두의 프로젝트로 지역의 역사와 미래의 희망을 담은 천사상이 명물이 되면서 지역경제도 살아났다. 임기 내 업적 하나 남기겠다는 욕심만으론 오래도록 사랑받는 랜드마크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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